소설리스트

#80 (80/305)

#80

거대한 전개도를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이 40개나 있다고요?!”

“용도가 확실한 곳을 제외하면 20개라니까.”

“숨겨진 방이 더 있을지 모른다면서요.”

“그래서 다 뒤져 보기 힘들다는 거지.”

ㄱ자로 꺾인 저택의 전개도를 유심히 살펴보니 신기한 구조가 돋보였다. 특히나 인상 깊은 곳은 저택 한가운데 1층부터 3층까지를 관통하는 온실이었다. 연회가 열리는 홀과 모든 층의 다이닝 룸에서 온실이 보이도록 한쪽 벽을 유리로 설계했다.

“이 안에 뭘 키우고 있었는지 기억해요?”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관상목이랑 색은 화려하지만 향은 없는 꽃이었어.”

“으음. 동물은요?”

“작은 새 몇 마리. 그나마도 유리가 두꺼워서 지저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

아이리스는 뒤이어 클라우스 자작이 온실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온실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인력을 두기도 하고, 매번 온실을 바라보며 식사한다고 했다. 또한 온실은 마력 덕분에 한 철 피었다가 지는 꽃도 1년 내내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한단다.

“특이한 점 없었어요?”

“딱히 없어. 나도 왜 저렇게 집착하나 싶어서 몇 년간 살펴봤는데, 돈 지랄하는 것만 빼면 그냥 평범한 온실이야. 독초나 재배가 금지된 화초는 하나도 없었어.”

“정원은 전부 데히드 꽃밭이라고 했나요?”

“그래. 특히 해 질 녘에 보면 보랏빛 바다를 보는 것 같아.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음산하지.”

꼭 그 사람처럼 말이야. 아이리스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중얼거렸다.

클라우스 자작은 여느 귀족에 비해서 연회를 그리 자주 열지는 않는댔다. 소규모로 모이길 좋아하며, 마음이 맞는 귀족들을 불러 다과회나 토론을 즐긴다고 했다. 그때마다 옆자리를 지킨 아이리스는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단다.

“좋게 말하면 사람 마음에 파고들길 정말 잘하고, 나쁘게 말하면 약점이나 치부를 잘 잡아.”

아이리스의 말과 함께 장내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완성된 전개도 두 개 중 하나를 원통 모양으로 말아 끈으로 단단히 봉했다. 그 후 세잔에게 건네며 말했다.

“세잔 경은 주변에서 많이들 알아볼 테니, 손님과 대화하면서 자작과 관련된 화제를 끌어내 주세요. 아예 이목을 집중해서 클라우스 자작이 세잔 주변으로 먼저 다가오게 하는 방법도 좋고요. 그 어떤 주최자도 자신보다 눈에 띄는 손님은 달갑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이번만큼은 가문의 이름을 아낌없이 써야겠군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옆에 앉은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연회가 시작되면 아이리스는 평소대로 자작을 따라다니며 정보를 수집해 주세요. 가능하다면, 하인들에게 아이리스가 저택에 없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물어보면 좋고요.”

“알겠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니 다들 반가워할 거야.”

세잔과 아이리스는 고맙게도 군말 없이 계획을 받아들였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니, 남은 내 일을 무사히 완수하기만 하면 된다. 책상에 펼쳐진 전개도를 짚으며 말했다.

“그사이 제가 저택을 돌아다닐게요. 절 아는 사람이라곤 자작뿐이니 비교적 움직이기 쉬울 거예요.”

“기왕이면 손님이 막 들어올 때를 노려. 아마 그 사람은 손님맞이에 정신없을 거야.”

“쉽게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연구 발표회 때가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두 분의 의견대로 할게요.”

회의가 끝나자마자 아이리스는 클라우스 저택으로 떠났고, 세잔은 저택 전개도를 가지고 본가로 돌아갔다. 당분간 안겔루스 대학에 그 두 사람은 없다. 앞으로 나흘 후, 약속한 대로 클라우스 저택에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전개도를 기숙사에 놓고 연구실로 돌아가자 아스레인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초대받은 명단을 몇몇 알아보니 공통점이 있더군.”

“정말요?”

역시 유능한 사람은 짧은 시간 안에 어려운 일도 거뜬하게 해냈다. 아스레인은 펜촉으로 서류 위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다스리는 영토가 마물의 서식지와 인접할 것, 영토 내에 3년 이내 신축된 신전이 있을 것. 그리고 최근 마물과 관련해 황실 직할 보호소에 중재를 요청한 바가 있을 것. 이 조건 중 두 가지 이상에 부합한 영주라면 초대장을 받은 모양이네.”

“마물에게 피해를 입은 영주들끼리 모여 방법을 강구한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요.”

아스레인이 말한 조건들은 전부 마물의 생태와 밀접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근데 클라우스 자작도 저 조건에 부합한가요?”

“내가 알기론 영토 내에 신전은 있지만, 달리 마물과 연관이 있진 않네.”

“…이상한 일이네요.”

정작 클라우스 자작이 다스리는 마을에 마물이 출몰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었다.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그가 어째서 마물과 인간 사이의 효과적인 공생을 들먹이는 걸까. 연구 내용부터 연구 목적까지 꺼림칙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저도 더 알아볼게요.”

다시금 밖으로 나서려 하자 아스레인이 급하게 불러 세웠다.

“태오, 잠깐.”

“네?”

웬일로 아스레인이 그답지 않게 말하기를 망설였다. 몇 번씩 열렸다가 닫히는 입술은 초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그가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아스레인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교수님.”

문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마물학과 수업 듣는 학생입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노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스레인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기다렸단 말인가. 망상은 날 행복하게 하지만, 착각이 되는 순간 비참해질 뿐이다.

미련 없이 문을 열러 나가며 아스레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급한 용무이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가 보게.”

끝내 아스레인이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듣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좋으니, 앞으로 계속 이대로만 하면 된다.

“그럼 필요하실 때 불러 주세요.”

문을 열자마자 연구실을 찾아온 학생과 마주쳤다. 두꺼운 전공 책을 들고 있는 학생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아스레인에게 인사했다. 오로지 선망으로 가득 찬 표정을 보니 어쩐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연구실을 뒤로 하고 필요한 준비물을 얻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약초밭에 도착하니 구석진 곳에서 일일이 밭을 손질하는 사람이 보였다.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가자 관리인이 무엇을 뽑고 있는지 보였다.

“이 꽃은 왜 뽑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관리인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얘들은 번식력이 좋아서 약초한테 갈 영양분까지 먹어 버리거든요.”

“그럼 지금 뽑으시는 꽃들은 다 버려지나요?”

“보통은 비료로 쓰는데, 요샌 양이 너무 많아서 거의 태워요.”

안 그래도 자연물이 필요했는데, 잘됐다. 냉큼 관리인 옆에 쪼그려 앉아서 슬쩍 물었다.

“그럼 제가 가져가서 써도 되나요?”

“네? 뭐… 그러세요.”

난데없이 들꽃을 가져간다는 내가 영 수상하게 보였는지, 관리인은 떨떠름한 눈초리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뽑힌 꽃들을 꿋꿋이 챙겨 품에 안았다.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세어 보니 대략 마흔 송이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직 부족했다.

“혹시 이 꽃들 더 없을까요?”

“얘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니 관리인이 원예용 삽으로 벤치를 가리켰다.

“저기 자루로 모아 놨어요. 근데 약초로도 못 쓰는 애들인데, 어디에 쓰시게요?”

“말려서 향료로 쓰려고요.”

“아~ 그럼 편하게 쓰세요. 저야 따로 처리 안 해도 돼서 좋죠.”

“감사합니다!”

앞으로 꽃이 필요할 때면 관리인에게 부탁하면 되겠다. 꽃다발을 옆구리에 끼고 자루를 질질 끌어 마법학과 실습실로 향했다. 학술대회가 막 끝나서 그런지, 다행히 빈 실습실이 남아 있었다. 꽃이 담긴 자루를 실습실 한가운데 열어 놓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스템.”

- 예, 태오 님.

“도감에 있는 마물을 소환해 볼 거야. 매 시도마다 사용하는 마력량과 꽃의 수를 바꿀 거니까 빠짐없이 기록해 줘.”

- 확인했습니다.

처음엔 오로지 마력만 써서 누르를 소환해 보기로 했다. 컨디션이 좋으니 무리 없이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도감을 꺼내 놓고 사이누르의 정보가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그 위에 손을 올리며 온 정신을 마력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했다.

손끝에 미세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그때, 눈을 질끈 감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이누르, 이쪽이야. 지금 내게로 와 줘.”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휘날리는 들꽃 사이로 새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소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뻐하기도 잠시, 급성 빈혈이 찾아온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어리둥절한 누르를 향해 인사했다.

“누르, 안녕. 그사이에 또 많이 컸네.”

[여기 어디야? 아니, 넌 왜 그래?!]

“어어, 여긴 그러니까….”

세탁기 안에 들어간 빨랫감은 항상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세상이 빙빙 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자루를 베개 삼아 누웠다. 당황한 누르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내 주변을 방황했다.

“하하. 누르야, 일단 나 좀 잘게….”

[뭐야. 날 불러 놓고 갑자기 자면 어떡해. 야!!!]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 기절하듯 자다가 자연스레 눈을 떴다. 실습실은 24시간 밝은 탓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두덩을 벅벅 비비며 일어나자 시스템이 인사했다.

- 영영 눈을 안 뜨는 줄 알았습니다.

“아쉽게 됐네. 그래서 나 얼마나 잤어?”

- 십 분도 안 됐습니다.

“누르는?”

- 당신의 의식이 끊기자마자 실체를 잃었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오직 내 마력만으로 소환은 가능하지만, 유지 시간이 상당히 짧다. 소환한 마물과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물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노끈으로 묶인 꽃다발을 들고 다시금 누르를 소환했다. 그러자 물기를 머금어 싱그러웠던 꽃잎은 수초도 지나지 않아 시들시들해졌다.

꽃이 완전히 바짝 말라 생기를 잃은 순간, 귓가에 불호령이 들렸다.

[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실습실에 소환된 누르가 곧바로 내 다리에 달려들어 종아리를 가볍게 깨물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벌하게 빛나는 탓에 장난임을 알면서도 서둘러 사과부터 했다.

“미, 미안해. 효율적으로 소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실험을 하고 있거든.”

[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거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괜히 오해받을까 봐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겼으니 망정이지.]

“역시 누르야. 똑똑하다니까?”

작게 박수를 치자 누르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도 꼬리 끝이 살랑거리는 걸 보니 칭찬이 기분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슬쩍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앞으로 또 이럴 거야?]

“미안하지만, 그럴 거 같네.”

[하아…. 그래. 몇 번이나 할 건데?]

“글쎄~ 한 30번?”

[너 진짜 미쳤구나. 인간들은 원래 정도가 없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누르는 거절하지 않았다. 허락을 받은 순간부터 눈치 보지 않고 계속해서 사이누르를 소환했다가 돌려보내길 반복했다.

“이번이 몇 번째지?”

- 10번째 시도입니다.

시행착오 끝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누르를 소환하는데 필요한 꽃은 최소 20송이였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누르가 사라졌다. 그걸 기준으로 삼아 꽃을 한 송이씩 줄여 보았다.

“음. 그럼 이번엔 꽃을 빼낸 만큼 마력으로 대체해 봐야겠어. 아그누스 소환 때처럼 잔여 마력량을 알려 줘.”

- 빠짐없이 기록하겠습니다.

꽃 한 송이에 깃든 생명력이 어느 정도의 마력으로 치환되는지 알고 싶었다. 물론 완벽한 비례를 이루진 않겠지만, 대략 감만 잡아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사이 바짝 마른 꽃들이 발등에 수북이 쌓여 갔다.

미리 준비해 온 사라세니아 약물을 이온 음료처럼 들이켜며 말했다.

“21번째 실험. 슬슬 알 것 같기도 하고….”

- 지금껏 결과를 총합하면, 사이누르는 대략 50송이의 꽃으로 1시간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좋네. 한 번 증명해 보자고.”

자루에서 정확히 들꽃 50송이를 꺼내어 누르를 소환했다. 이 상황에 완전히 적응한 누르는 내가 앞에서 어떤 말을 중얼거리든 해탈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지금부터 1시간 카운트해 줘.”

- 확인했습니다.

“그나저나 2급인 누르가 이 정도라면, 히페리온 본체를 붙잡아 두려면…. 꽃밭 하나든 나무 한 그루든 거뜬히 날리겠는데?”

- 등가교환의 법칙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뭐든 쉬운 일이 하나 없었다. 설상가상 피로감이 한가득 몰려와 또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마른 꽃잎이 한가득 쌓여 마치 푹신한 솜이불처럼 몸을 감쌌다. 내친김에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자 누르가 슬그머니 다가와 곁에 앉았다.

“하아…. 마력을 너무 썼어.”

[나 이제 안 돌아가도 돼?]

“으응. 일단 나 잠 좀 잘게.”

[또?]

이번엔 따뜻한 누르를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푹신한 털에 얼굴을 묻으니 금방 잠에 빠졌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아직도 뺨에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어? 뭐야, 누르가 왜 아직도 있어?”

[있을 만했거든.]

“내가 잠들었는데도?”

[응. 괜찮던데. 그런데 이젠 가야겠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누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다. 실험 초반엔 내가 잠들자마자 누르가 사라졌었다. 그 현상에 대해 시스템은 ‘내 의식이 끊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 이번엔 얼마나 잤어?”

- 약 1시간입니다.

“계산은 맞았네.”

불현듯 한 가지 가설이 뇌리를 스쳤다. 자연물만 이용해 소환하면, 마물은 자연물의 생명력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소환자가 기절하거나 마력이 끊겨도 마물은 자연물에게서 얻은 생명력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마력이 완전히 제어된 공간에서도 이론상으로는 소환이 가능할지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니 피곤한 몸과 달리 머릿속은 훨씬 시원해졌다. 기쁜 마음에 바닥을 뒹굴자 옷과 머리카락에 새하얀 꽃잎이 잔뜩 붙었다. 꽃잎에 파묻혀 가지런히 누워 있자 시스템이 슬쩍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 장관이군요.

“응? 뭐가?

- 새하얀 꽃에 둘러싸인 모습을 보니 꼭 당신의 장례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비유를 꼭 그렇게 해야겠어?”

곁눈질로 흘겨보자 시스템이 얄미운 미소를 흘렸다. 오케아노스의 일부분을 물려받아 뒤틀린 성격은 고칠 방법이 없나 보다. 한숨을 푹 내쉬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일이나 하자.”

- 이번엔 또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히페리온의 씨앗을 최대 얼마까지 소환할 수 있나 실험해 보려고.”

- 그 정도면 실험 중독입니다.

질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시스템을 보곤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보다 더 똑똑해져야 돼. 그래야 아스레인을 도울 수 있어.”

- 당신은 정말….

머리카락과 옷을 털어내자 꽃잎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묘하게 금빛을 띠는 꽃잎은 태양을 머금은 그의 머리카락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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