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 (55/305)

#55

오늘따라 연구실 밖이 유독 소란스러웠다.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여럿 지나갔다. 그들은 팔과 어깨에 갑옷을 덧대고 있어 도무지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연신 창가를 기웃거리자 눈치 빠른 아스레인이 말을 얹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니 걱정 말게.”

“엇, 교수님은 저 사람들이 왜 왔는지 아세요?”

“구조한 마물을 옮기는 걸세.”

새로운 마물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떤 마물인가요?”

“남동부에 위치한 오케아노스 해안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쓸려 나온 마물 ‘오필리아’를 구조했네. 인근 보호소에 있는 수조는 전부 찼다고 하여 일단 대학 내 온실에서 임시 보호하기로 했지.”

“와…. 수생 마물이군요. 심하게 다친 건가요?”

“큰 문제는 없으나 기절한 듯 잠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다고 전달받았네.”

비록 인근 보호소에서 새로운 수조를 구할 때까지만 온실에 머물겠지만, 이건 절호의 기회다. 처음으로 수생 마물을 마주할 수 있단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지어 이름이 냇물에 잠긴 가련한 꽃 ‘오필리아’라고 하니 저절로 아름다운 외형이 상상되었다.

당장 온실로 가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아스레인에게 물었다.

“폭풍우로 인해 다른 피해는 없었나요?”

“안 그래도 그게 걱정이던 차였지. 그래서 직접 오케아노스 해안으로 가서 확인하려고 하네.”

“…!! 연구차라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물론 자네는 함께 가야지.”

흔쾌한 대답과 달리 아스레인의 안색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어느새 세상 모든 걱정을 짊어진 얼굴이 된 그는 핏대가 드러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문제는 어쩌다 이 사안이 다른 교수의 귀에도 들어갔단 사실일세.”

“그게… 왜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뚫을 듯 거센 한숨이 이어졌다.

“아예 마물학과에서 우수한 학생을 몇몇 뽑아 답사를 가자더군.”

“예?! 오케아노스 바다로요?”

“그래. …뭐, 학생 지도는 다른 교수가 일임하기로 했다만 귀찮은 일인 건 여전하네.”

학과 단체 답사라니. 여기도 지옥 같은 야외 수업이 있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아스레인이 지쳐 보이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꽤 규모가 큰 답사가 되겠네요.”

“…하아…. 벌써 머리 아프군.”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교수가 책임을 져야 하니, 그가 싫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마 마물학과 전체가 가는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급격히 피곤해진 얼굴을 쓸어내린 아스레인은 회중시계를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련 사안으로 회의하고 오겠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류를 챙기는 아스레인은 지금껏 보았던 모습 중 가장 기운 없어 보였다. 당장은 어떤 말도 와 닿을 것 같지 않아 가벼운 인사만 건넸다.

“아하하… 다녀오세요.”

아스레인이 연구실을 나간 후, 읽던 책을 다시 펴 보았다. 하지만 글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중될 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물속을 유영하는 마물의 형상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과연 무슨 모습일까. 또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헤엄치는 방법은? 사이누르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진 않을까?

“…안 되겠다.”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책을 탁 덮었다. 언제 이 학교를 떠나갈지 모르는 마물이니 시간 날 때 봐 둬야 한다. 연구실을 떠나 온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수풀을 지나서 나타난 유리 온실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벌써 오필리아를 수조에 두고 간 모양이다. 한껏 부푼 기대를 끌어안고 온실 안으로 들어갔으나, 나를 반기는 것은 울창한 나무뿐이었다.

“수조를 어디에 둔 거지…?”

워낙 넓은 데다가 미로처럼 복잡한 온실 속에서 수조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작정 끝에서부터 돌아볼까, 하고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음?”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으나 인기척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가사 없는 콧노래가 고요한 온실 안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몸이 서서히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툭, 모래사장 위에 몸을 눕히는 착각이 들어 천천히 눈을 떴다.

유리 온실로 들어오는 햇빛이 수면 아래 부서지는 빛 같아 보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몽롱한 상태로 노랫소리를 좇아갔다. 맨손으로 나뭇가지를 헤쳐 가며 앞으로 나아가자 노랫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마침내 거대한 수조 앞에 다다랐다.

“와….”

수족관에서 볼 법한 크기의 수조가 벽 한 면을 차지했다. 그 안은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온갖 해초와 산호가 가득했다. 천천히 수조로 다가가자 산호 뒤에 숨은 그림자가 크게 일렁거렸다. 마물인가? 곧장 몸을 낮춰 수조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죽은 이의 손가락처럼 창백한 말미잘 사이로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필리아.”

이름을 들은 것일까. 사슴뿔 모양의 산호 옆에서 연분홍빛 촉수가 스르르 흘러나왔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자 이내 오필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파리 같은 투명한 몸체에 열대어 베타처럼 화려하고 넓은 지느러미가 달렸다. 오필리아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자 여러 겹으로 갈라진 촉수가 일렁거렸다. 중심부는 짙은 장밋빛에 끝으로 갈수록 색이 서서히 옅어지니, 이름 그대로 물에 빠진 한 떨기 꽃이었다.

오필리아는 마치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춤을 추는 것처럼 수조 안을 유영했다. 왈츠가 연상되는 우아한 몸짓에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몽롱한 머릿속엔 가녀린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가까이서. 나와 오필리아 사이를 가로막은 두꺼운 유리를 없애고, 직접 닿고 싶었다. 평소와 달리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 그때였다.

- 새로운 마물을 확인했습니다.

“……!!”

시스템의 목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끊겼다. 그와 동시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이 번쩍 떠졌다. 모르는 사이 나는 수조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사다리에 올라가 있었다. 게다가 왼손으로 유리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숙여 수면에 손끝이 닿기 직전이었다.

“…뭐, 뭐야.”

어깨를 크게 움찔거리자 덩달아 놀란 오필리아가 산호 속으로 숨어 버렸다. 서둘러 사다리 아래로 내려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시스템의 음성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수조 안으로 들어갈 뻔했다.

대체 뭐였을까. 정체 모를 노랫소리에 홀린 걸까? 분명 오필리아는 폭풍우에 휘말려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고 들었는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수조를 흘겨보았다. 산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오필리아가 내게 손짓하듯 촉수를 흔들었다. 노랫소리가 다시 들릴 것만 같아 곧장 온실을 빠져나왔다.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에 시스템을 통해 오필리아에 대해 검색했다. 도감에 적힌 정보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은 자, 내면의 욕망이 깨어나리라.]

***

밤새 머릿속에서 노랫소리가 떠나가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는 탓에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겨우 해가 뜨고서야 기절하듯 잘 수 있나 싶었건만,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 맞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헤어지면서 대뜸 아이리스에게 과제를 도와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약속한 날이 하필이면 잠을 못 잔 오늘이다. 차라리 아이리스에게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아, 스마트폰도 없고.”

잠에서 깨려 뺨을 치고 일어나 거울부터 봤다. 간밤의 후유증으로 역시나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꼬여 있었다. 정리할 새도 없이 급하게 세수만 하고 약속 장소인 도서관으로 튀어 갔다.

그 사건이 발생한 후로 도서관에서 아이리스를 만나는 일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뭐…. 웬 거지꼴로 왔냐고 욕만 안 먹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2층에 있는 열람실로 들어가자 창가에 팔짱을 끼고 앉은 아이리스가 보였다.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갔다.

“많이 늦어서 미안해요. 기다렸어요?”

“어. 딱 보니 자다가 왔네. 머리는 왜 그러냐?”

“아하하, 뛰어오느라 좀….”

“뭐 어떻게 뛰면 그렇게 되는 거야. 계단에서 굴러도 그 정돈 아니겠다.”

제발 귓가에서 울리는 노랫소리를 꺼 달라고 애꿎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이 꼴이 됐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허탈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화제를 돌리려 책장 앞에 서서 아이리스를 돌아보았다.

“과제가 뭐라고 그랬죠?”

“서식지가 다른 마물을 비교하면 돼.”

“그럼… 비교가 확실히 되게 늪지대와 사막이 좋을 것 같은데….”

발판을 끌어다 놓고 책등을 훑으며 도움이 될 만한 서적을 찾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기억에 남은 선율을 흥얼거렸다. 이미 찾아 놓은 책을 읽던 아이리스가 휙 돌아보며 말했다.

“야. 그 노래….”

“아, 미안해요. 시끄러웠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꽤 기대하고 있구나 싶어서.”

“뭐가요?”

“네가 지금 부른 노래. 오케아노스 찬가잖아.”

“…오케아노스 찬가요?”

단지 어제 온실에서 들었던 노래가 뇌리에 박혀 흥얼거린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오케아노스 찬가였다니. 눈을 휘둥그레 뜨자 아이리스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뭐야. 그것도 모르고 부른 거야?”

“그냥 들려서 따라 부른 건데요…. 아이리스는 어떻게 알아요?”

“저택에서 일하는 놈들 중에 어부의 자식이 있었거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본 아이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오케아노스의 장난으로부터 겨우 도망친 어부가 이 노래를 불러 살았다고 했지. 그때부터 오케아노스 바다를 가로지를 때면, 선원이고 어부고 할 것 없이 전부 그 노래를 불렀어. 오케아노스의 자비를 바라면서.”

드르륵. 의자를 끌며 일어난 아이리스가 책장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책 한 권을 꺼내어 열심히 뒤적거리더니 내게 어떤 페이지를 펼쳐 보여 주었다.

“관심 있으면 이거나 봐.”

곧바로 책을 받아들고 첫 줄부터 빠르게 정독해 나갔다.

오케아노스 바다의 날씨가 변덕스러운 이유는 주인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 바다에 태어난 모든 생물은 응당 왕이라 불리는 오케아노스를 숭배한다. 항상 오케아노스의 주변에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신하들이 따라다니며 충성을 맹세한다. 그러다 이따금씩 지루함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왕을 위해 매혹적인 노랫소리로 인간을 꾀어낸다. 스스로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인간은 다신 햇빛을 볼 수 없으리니- 그곳은 하나의 왕국이자, 하나의 성역이다. 그러니 바다에 발을 들인 자. 누구든 오케아노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마라. 만약 그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곧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자비를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죽지 못하고 그의 변덕에 놀아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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