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만영은 양미연과 좋지 않은 일이 있고 나서 여자를 멀리하고 있었다. 동현은 가끔 백영을 통해 만영의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천룡문의 일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아 찾아가지는 않았었는데 지금은 한가하니 만나볼 생각이었다.
동현이 만영이 있는 곳으로 가보니 만영이 새롭게 시작했다는 가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개업식에 가지 못한 동현은 화분을 보내주었었다.
“바쁘냐?”
“어? 오랜만이네? 오늘은 어쩐 일이냐?”
동현이 바쁘다는 것을 아는 만영이 물었다.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
동현의 질문에 만영은 씁쓸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그냥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자식, 시간 되면 소주나 한잔하자.”
“잠시만, 안에 얘기하고.”
만영은 점원들에게 말을 하고 다시 나왔다.
동현과 만영은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소주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너 정말 장가 안 갈 거냐?”
“여자가 무서워서 가기 싫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건데? 남자가 한번 실패를 했다고 그러면 되냐?”
만영이 마음이 여려 저러는 것을 아는 동현이 말했다. 물론 설득한다고 들을 놈도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하나 있는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라. 나중에 나 장가가면 멋진 선물이나 해라.”
만영의 대답에 동현은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너 여자 생겼지? 그렇지?”
동현이 눈빛을 빛내며 묻자 만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식이, 눈치는 진짜 빨라. 요즘 한 사람 만나는 중이다. 아직은 보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착해 보여서 생각 중이다.”
“야, 축하한다, 만영아. 그런데 가족들에게 말도 좀 하고 그래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면서, 자식이 말이야.”
“조만간 아버지에게 얘기할 생각이야. 아직은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잖아.”
“아무튼 좋은 여자였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언제 소개시켜 줄래?”
“어, 조만간 연락할게. 그런데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마라.”
동현은 만영이 무엇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소개나 시켜줘라.”
둘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현은 친구인 만영이 만나고 있는 여자가 있다는 소리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는데 이는 그동안 실망감에 빠진 만영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를 소개해 주려고 해도 거절을 해서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만영과 헤어지면서 동현은 그에게 약속을 받았다.
“나에게 먼저 보여주는 것 잊지 마라.”
“그래, 자식이 그런 말은 기억도 잘해.”
“내가 보고 싶어서 그렇지.”
동현은 진짜로 만영이 만나고 있는 여자가 보고 싶었다. 친구라고는 유일하게 있는 놈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아무튼 조만간 연락할게. 그때 거하게 식사나 대접해라. 있는 놈이 친구니 나도 자랑 좀 하게.”
“그래, 소개만 해라. 그러면 내가 정말 거하게 산다.”
동현은 그렇게 만영과 헤어졌다. 차에 탄 동현은 운기를 하여 술기운을 모두 날려버렸다.
“역시 내공이 좋아. 술기운을 한 방에 보내버리니 말이야.”
동현은 운전을 하면서 스스로 칭찬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미연은 동현이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오셨나요?”
“세 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사장님.”
가게에서는 동현과 미연을 부르는 호칭이 둘 다 사장님이었다.
“알았어요.”
대답을 하고 사무실로 가던 미연은 동현이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미연은 궁금증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드드드.
―여보세요?
“오늘 무슨 일이 있어요?”
―일은 무슨, 그냥 보고 싶어서 간 거지.
미연은 동현이 그냥 왔다고 하자 고개를 흔들었다. 동현이 지금 무인들을 가르치고 있어 매우 바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연은 동현이 천룡문의 문주라는 것은 모르고 무인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있어서 제법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가게의 자금은 미연이 알아서 관리하지만 동현이 개인적으로 버는 돈에 대해서는 미연이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이는 남자가 일을 하다 보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게 자금도 솔직히 미연 개인의 것이 아니었는데 동현이 미연을 믿고 가게 자금을 알아서 관리하라고 했기 때문에 미연의 입장에서는 동현에게 고맙고 미안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자금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가게에서 버는 돈 중 일부는 자신의 집에 주고 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바쁜 분이 무슨 일로 온 거예요?”
동현은 미연이 집요하게 묻자 조금은 곤란한 표정이었다.
―정말로 자기가 보고 싶어 간 거야.
동현의 대답에 미연은 인상을 썼다. 이건 마치 죄를 짓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미연이 다시 물었다.
“혹시 나 모르게 여자 건드렸어요?”
―잉?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오로지 당신밖에 없는 거 몰라서 그래?
동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동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안 미연은 속으로 안심이 되었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바람은 피우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요즘 미연은 동현과 사이가 좋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밤마다 열심히 하는데도 아기가 없어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 미연을 보며 동현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미연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시부모님도 은근히 아이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에 미연은 밤마다 더욱 동현에게 달라붙어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내가 보고 싶어 온 거예요?”
―그래. 이긍, 신랑을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어.
“그런데 자기, 우리 병원 한번 가요.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요.”
미연이 병원에 가자고 한 건 조금 되었지만 동현은 그런 미연을 달래주고 있었다. 하지만 미연이 아이 때문에 이렇게 불편해하는 것을 보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러면 지금 갈 테니 준비하고 있어.
동현이 오늘따라 아주 기분 좋게 허락을 하자 오히려 미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정말 갈 거예요?”
―그래, 오늘따라 이상하게 반문이 많네?
동현의 말에 미연은 자신이 오늘 따라 이상하게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이렇게 쉽게 허락을 하니까 그렇지요. 아무튼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래,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야.
동현과 미연은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동현은 차 안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자신의 몸이 인간의 몸인지에 대해서.
인간이 신과 만나 대화를 했고 신의 부탁으로 다시 돌아왔기에 동현은 혹시 그런 것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론,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신과 만나서 그런 걸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과 인간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마스터는 인간이십니다. 다른 인간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동현이 보통 인간과는 달리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만 빼고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동현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너무 강해서였다. 동현의 정자가 미연에게 주입되면 합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난자들이 정자의 강력한 힘에 죽어버리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현이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직 동현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희귀한 일은 아직 없었기 때문에 정자가 강해서 그런 것이라고 진단을 내려줄 수 있는 병원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동현이 가게 앞에 도착을 하자 준비하고 있던 미연이 바로 나왔다. 미연은 동현의 차를 타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가려 했다. 시간을 주면 또 가지 않으려고 할지 몰라서였다.
“우리 이대로 가요.”
“병원은 예약하고 가는 거야?”
“전부터 예약은 해두었어요. 자기가 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미연은 결혼한 지 3년이 되어 가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특히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어머님 앞에 있으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만큼 동현의 부모는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동현이 허락하자 미연은 그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에 연락해서 담당 의사와 통화를 했다.
“선생님, 우리 남편이 검사를 받겠다고 했는데 또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검사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미연과 예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 의사는 미연의 사정을 이해하고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하하하, 신랑분이 오신다고 하니 바로 검사를 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오세요.
“아, 감사합니다. 남편이 오면 바로 가겠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미연이 사전에 연락을 해서 검사받을 준비를 해두었기에 동현은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고 검사를 받아야 했다.
동현은 솔직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게 쪽팔려서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인 미연이 저렇게 원하니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동현은 이번에 확실히 검사를 해서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동현은 운전을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병원에서 그런 검사를 어떻게 하는 거지? 설마 간호사가 사정을 하게 해서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병원에 가본 적이 없는 동현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동현은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옆에 타고 있던 미연은 놀라서 동현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자기야! 운전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미연의 고함 소리에 동현은 정신을 차렸다.
“어? 미안.”
차선을 넘어가려던 동현은 놀라서 핸들을 틀어 다시 제 차선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옆 차선의 차량 운전자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야, 이 개 새끼야! 운전 똑바로 못 해!”
동현은 자신이 실수를 했기에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고는 넘어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상대는 저렇게 멀쩡하게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잠시 후 동현과 미연은 병원에 도착을 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종합 병원이었다.
“여기예요. 이미 예약했으니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요.”
미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바로 팔짱을 끼었다. 이럴 때 보면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용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동현이었다.
미연은 동현을 데리고 담당 의사에게 갔다.
진료실 앞에서 간호사가 미연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오늘 검사를 받기로 예약한 한미연과 김동현이에요.”
미연의 말에 간호사는 예약자 명단을 확인해 주었다.
동현은 미연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여자가 저렇게 당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내 당차네. 나는 쪽팔리는데 말이야.’
동현은 이런 검사를 받아야 하는 자신이 쪽팔렸지만 미연이 옆에 있어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예, 고마워요.”
미연은 진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선 40대 초반의 여자 의사가 미연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남자가 아닌 여자 의사라 동현은 더 민망해졌지만 그래도 참고 대화해 보기로 했다.
동현은 속으로는 민망했지만 겉으로는 철판을 까는 일명 철판 신공을 대성한 인물이었기에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분이 남편분이세요?”
“예, 선생님.”
동현을 본 여의사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눈으로 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저런 속사정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눈빛이었다. 동현은 쪽팔려도 해야 할 것은 하는 성미였기에 참고 의사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해주었다.
한참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던 의사가 동현과 미연을 보며 말했다.
“지금 가서 검사를 하려면 소변과 피를 뽑아야 해요. 그리고 남편분은 따로 검사를 해야 해요.”
============================ 작품 후기 ============================
아고 12시 정각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거 쉬운 일이 아니네요.
두개의 작품을 동시에 하려는 조아라 버그도 생기고 결국 건드리지마는 자동으로 하고 두려워하지마는 12시에 연재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건드리지만 예약으로 항상 7분에 올라가게 될 것이니 독자여러분들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