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챠앗! 천왕현세!”
현대 호국 가문의 비기라고 할 수 있는 무예를 펼치고 있는 정세찬이었다.
하지만 수호대의 조장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조장은 세찬이 펼치는 무공이 제법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저 정도로는 아직 자신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모여있는 호국 가문의 무인들은 세찬이 천왕현세를 펼치는 것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찬은 저 무공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팍팍팍!
손과 발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무공이기는 했지만 조장은 적당하게 방어를 하며 세찬이 더욱 강한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헉, 헉. 제가 아는 모든 무공을 사용하였지만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는군요. 저를 이끌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힘이 빠진 세찬은 이제는 더 이상 아는 무공도 없었기에 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수호대의 조장은 그런 세찬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바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하하하,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그런 것이니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나중에라도 우리 천룡문에 오실 기회가 있으면 저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주 즐거웠습니다.”
조장은 절대 건방지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호국 가문의 무인들도 그런 조장을 보며 과연 천룡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국 무인들은 강자라고 생각하면 지금 천룡문의 무인과는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과거 가문들끼리 대련하며 강자를 선발하던 날에는 이렇지 않았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천룡문에 갈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가르침은 잘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정세찬은 오늘 자신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수호대의 대원들과 조장은 예전에 자신들이 운동선수 생활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들도 다른 선수들처럼 강하지 못해 서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동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양아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동현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대련을 원하는 무인이 없어 호국 가문의 무인들과 수호대의 대련은 거기서 마무리가 되었다.
동현과 가주 그리고 원로와 장로들은 문을 열어놓고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국 가문의 무인들이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이들도 무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라 동현은 흐뭇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주와 다른 이들은 그런 동현의 눈빛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이세기 원로만이 그의 눈빛을 이해하고 있었다.
“허허허, 문주께서 우리 가문의 무인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예,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가문 분들이 모두 무인의 자질이 넘쳐나니 보기가 좋습니다.”
“허허허, 문주가 그렇게 극찬을 해주니 이거 우리 호국 가문엔 영광이구려.”
이세기 원로와 동현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동현의 눈빛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주는 그런 동현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진짜 무인의 마음을 원하고 있구나. 과연 현대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
가주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현대엔 동현과 같은 마음을 가진 무인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현대인과 같이 이득에 미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이들도 무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이었다. 호국 가문의 무인들은 서서히 그런 변화를 갖게 되었고 이세기 원로는 그런 가문 사람들을 보며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 천룡문의 문주가 우리 가문에 제대로 된 무인 정신을 가르치고 있으니 가문의 앞날에 서광이 비치겠구나.’
동현도 무인들의 행동을 보고 이들도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 무인이라면 그런 깨달음이 있어야 발전을 하는 거지.’
동현은 가주와 다른 무인들이 무언가 느끼는 것이 좋은 쪽으로 가기를 바랐다. 솔직히 동현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이득만 바라는 모습을 보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주께 솔직히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이오.”
이세기 원로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동현을 바라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것은 말씀드리겠습니다.”
“허허허. 다름이 아니라, 저기 대련을 한 수호대라고 하는 무인들은 천룡문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소?”
“아, 수호대는 지금 저를 따라온 자들이 1기생이고 2기생들이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문의 수호대는 100명으로 모두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로님.”
“그러면 수호대 말고 다른 무인은 없는 거요?”
“아닙니다. 수호대가 천룡문의 전체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암영단이라는 비밀 단체가 따로 있습니다. 천룡문의 전력은 아마도 암영단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다른 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우리 문파의 비밀이라 더는 말씀드릴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현의 이야기를 들은 이세기 원로는 기절할 듯 놀랐다. 수호대의 실력만으로도 엄청난데 이들 말고 다른 전력이 또 있고 그들이 실질적인 무력 단체라고 하니 도대체 천룡문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졌다.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려. 천룡문은 언제 그런 무력을 가지게 된 거요?”
“하하하, 천룡문의 가장 기밀 사항을 말하라고 하면 제가 입을 열 수 있겠습니까.”
이세기 원로의 말에 동현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천룡문이 저런 전력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만약 믿는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천룡문에 강력한 무인을 만들어주는 비법이 있다는 사실을 천하에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천룡문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동현은 누구라도 천룡문을 노린다면 그만한 대가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대답을 피해버렸다.
이세기 원로도 천룡문에 무언가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더 이상 물을 수는 없었다.
“문주도 강하고 문도들도 강한 천룡문을 보니 정말 부럽기만 하구려.”
“하하하, 제가 보기에는 호국 가문의 무인들도 약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뭐가 부럽습니까.”
“허허허, 그야 문주가 좋게 봐주셔서 그런 것이지 수호대와 대련한 우리 가문의 무인들은 모두 패하지 않았소.”
“원로님은 대련의 승패를 따지지 마시고 저들이 가지게 되는 마음의 무게를 보십시오. 제가 보기에 앞으로 호국 가문의 무인들은 전과는 다른 수련을 할 것 같습니다만.”
동현의 말대로 호국 가문 무인들의 눈빛이 많이 달라져 있기는 했다. 이들은 수호대가 강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 실제로 대련을 하니 얼마나 강한지 몸으로 느끼게 되었고, 그동안 갖고 있던 자만심을 모두 버리고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수련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다만 이세기 원로가 그런 가문 무인들의 눈빛을 보기는 했지만 아직 정확하게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한 말이었다.
동현의 대답에 이세기 원로는 가문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저들의 눈빛이 매우 달라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허허, 이거 오늘 천룡문에 정말 많은 빚을 지는구나.’
이세기 원로는 무인의 가문은 빚을 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무인이었다. 그래서 오늘 천룡문에서 받은 은혜를 갚으려면 앞으로 호국 가문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을 다르게 먹으니 세상이 달라 보이는 기분을 느낀 가주는 동현과 이세기 원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가문의 무인들을 보게 되었고, 무인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는 것에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이 자리가 비급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문이 얻는 것이 많았다는 것에 가주는 아주 만족했다.
“문주님, 오늘 우리 가문이 문주님을 초청한 것은 바로 가문에 전해지는 비급을 해석해 주십사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뜻하지 않은 커다란 것을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동현은 상대가 너무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자신도 그냥 있을 수 없어 바로 일어나 답례를 했다.
“아니 가주님, 그러지 마십시오. 오늘은 무인과 무인이 만나 대련을 한 것이고, 그에 대한 깨달음은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저희가 한 일이라곤 그냥 대련을 해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허허허, 이렇게 커다란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무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문주님.”
가주가 자신 있게 무인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동현은 가주의 눈빛이 전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눈에 혼탁한 기운이 있었다면 지금은 매우 맑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무인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이제 가주께서도 무인에 대한 마음을 품으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가주님.”
“허허허, 오늘에야 저도 무인의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말이더군요, 문주님.”
가주와 동현은 요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그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이세기 원로는 가주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허허, 우리 가문의 홍복이오. 앞으로 가문이 얼마나 발전할지 눈에 보이는군요.”
이세기 원로의 말에 다른 원로들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호국 가문에는 세 명의 원로가 있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사실 가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주는 그냥 허울뿐인 자리가 아니었기에 원로들도 가주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반대만 할 수는 없었고 결국 가문을 위해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호국 가문의 가주는 원로를 무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그 권한에 대해서는 아무리 원로라고 해도 개입할 수 없는 것이 가문의 법이었다.
그런 가주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문에 도움을 주는 일이었기에 이들이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문주님, 우선은 자리에 앉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가주님.”
동현이 다시 자리에 앉자 가주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가문이 문주님을 초청한 이유는 바로 가문에 있는 비급의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가문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비급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아직도 해석을 못 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에 문주님이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 것을 보고 우리 가문에 전해지는 비급의 해석을 부탁드리면 좋겠다 싶어 이렇게 오시게 한 것입니다.”
동현도 이곳으로 오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기다렸다.
“오늘 저희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만 하던 비급을 문주님에게 개방하려고 합니다. 물론 저희 가문의 비급이니 다른 곳에 발설하시진 않겠지만 그래도 저희에게는 소중한 물건이라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바로 비밀을 지켜 주시겠다는 문주님의 약조를 말입니다.”
동현은 가주가 하는 말을 들으며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가문의 비급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해석을 위해 보여주는 것이라지만 다른 가문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가문의 소중한 물건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천룡문의 당대 문주인 나는 호국 가문의 비급을 절대 다른 이에게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늘에 두고 하겠습니다.”
동현이 바로 약속을 하자 가주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동현을 보니 무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본인의 입으로 직접 약속을 하게 만든 것이다. 동현이 스스로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주가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의 옆에 있는 사람은 장로였는데 가주가 허락을 하자 바로 품에서 세 권의 비급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는 비급은 모두 열 권이지만 하루에 모두 해석을 할 수는 없으니 오늘은 우선 여기 있는 세 권의 비급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