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동현과 아버지는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탁자에 마주 앉았다.
“소주라도 한잔 할 테냐?”
“소주 좋지요.”
동현도 아버지와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기에 바로 찬성을 하였다. 오늘은 아버지와 대작을 하면서 궁금한 것들을 모두 알고 싶어서였다.
두 부자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소주만 마시기 시작했고, 어느덧 두 병을 비워 가고 있었다.
동현은 이제는 말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용히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일은 아니고 네 할아버지가 오늘 오신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너의 어머니는 사실…….”
아버지의 긴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고 동현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친아버지가 맞지만 어머니는 계모라고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계모가 할아버지와 정식으로 혼인을 한 사이였고, 어머니의 모친은 할아버지와 애인인 사이였기에 어머니가 그동안 모진 고생을 하며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소문이 나자, 계모인 여자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고, 마침 작은 삼촌이 되는 철민이 가게를 하려고 하니 돈이 필요하게 되어 며칠 전에 찾아 온 것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계모에게 당당하게 계모라고 하며 실랑이가 벌어지셨던 것이다.
동현이 모르는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니 대강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떠난 계모와 할아버지는 둘이 어떻게 하면 돈을 뜯어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 마침내 할아버지가 직접 혼자만 오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키워 준 보답을 하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십억의 금액을 준비하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절대 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돈을 주면 죽은 할머니의 묘지를 알려 주겠다는 일종의 제안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아버지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그냥 계셨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 너의 어머니는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친엄마의 무덤인데 돈 때문에 포기를 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아버지의 말을 듣던 동현은 지금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기의 친딸에게 저렇게 대할 수가 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돈 때문에 무덤을 포기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돈을 주지도 마세요. 여기 이 집은 우리 가정의 화목을 위해 마련한 곳입니다. 그런 터전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분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현의 말에 아버지의 안색도 좋지는 않았다. 정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치사하고 더러운 양반이었다. 하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그렇게 모질게 대할 수만은 없어 그냥 보고 있었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돈이 걸린 문제를 동현이 저렇게 말을 하니, 엄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 그도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동현아, 너는 어머니는 생각하고 하는 말이냐?”
“예,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 십억이라는 돈을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할머니의 묘지가 어디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일단은 우리가 먼저 알아보고 나중에 주게 되어도 지금은 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동현은 진심으로 단 한 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가족이라면 최소한의 도리가 있는 것인데 저들은 그 자그마한 양심조차도 없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한 가족이 저렇게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동현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제는 이해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동현의 대답에 아버지도 충분히 동현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노력을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돈을 준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알았다. 시간은 내가 어떻게 해 볼 것이니 너는 최대한 할머니의 묘지가 어디인지를 알아보도록 해라.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네. 아버지.”
동현과 아버지는 그렇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동현은 가네마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에는 가네마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은밀히 일을 진행하는 것에는 닌자였던 가네마가 가장 어울렸다.
“가네마, 한 가지 일을 해 주어야겠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군.”
동현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을 대강 설명해 주고 바로 할머니의 묘지가 어디인지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서 조금 강하게 상대를 대해도 좋으니 절대 실수를 하지 말라는 말도 남겼다.
가네마는 주군의 가족들 문제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처리를 하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주군, 제가 최선을 다해 처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네마 너를 믿고 기다리도록 하겠다.”
동현은 일단 가네마에게 일을 주고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단 큰삼촌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이대로 할아버지에게 끌려 다니게 되면 아마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당하시게 될 것이니 말이다.”
동현은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양반들이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친아버지이기에 좋게 해결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동현은 해결을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알려 드리려 삼촌에게 연락을 하니 바로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냐?”
“예, 저는 정말이지 친할아버지가 맞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동현의 말에 삼촌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동생인 철민이 이번에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철민은 항상 여자 문제로 일을 만드는 놈이라 평소에도 항상 야단을 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또 난리를 치고 있으니 속에서 열불이 나는 상민이었다.
어머니만 아니라면 당장에 내쫒아 버렸을 것인데, 그냥 두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나이 드신 분들이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였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정말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현아, 어머니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해 드리도록 해라. 내가 직접 알아보고 연락을 하마.”
“알겠습니다. 저는 삼촌만 믿고 있을게요.”
“그래, 이만 끊는다.”
삼촌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동현은 아직도 마음이 불안하기만 했다. 어머니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면서까지 저러는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계모가 어머니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제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할아버지는 친아버지였는데 저러고 있는 것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거 진짜 친자 확인을 해 보아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친자식이 아니니까 저러는 것 같은데 말이야…….”
동현은 어머니의 진짜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동현은 이내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갔고,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는 방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웠다.
이번에는 확실히 확인을 하기 위해 동현이 친자를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은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검사를 해 보려고 하였다.
이윽코 동현은 가네마에게 연락을 하였다.
“가네마, 지금 당장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구해서 보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주군.”
가네마는 동현의 지시에 바로 대답을 하였고, 머리카락 정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
가네마가 구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동현은 직접 친자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만약에 친자가 아니라는 검사가 나오면 이는 할아버지도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행동을 하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국내에서도 제법 큰 종합 병원에 도착한 동현은 바로 친자 확인을 위한 검사를 해 달라고 하였다.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바로 나오지를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확실한 검사를 원해서 왔습니다.”
“그러시면 바로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병원에서는 친자 유무에 대한 검사를 하기 시작했고, 동현은 오늘 만나기로 한 정국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시간 정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주식을 이번에 팔기 시작했고, 정국이 주식을 파는 것은 바로 일성그룹에 알려지게 되었다.
정국이 그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성그룹이 가족이라 그에 따른 배분을 해 주었는데 갑자기 자기의 주식을 팔기 시작하자 바로 그룹에 보고가 되었다.
“회장님, 지금 김정국 상무가 주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을 팔아? 왜 팔아?”
회장은 아들이지만 애물단지 같은 정국이 주식을 팔고 있다는 소리에 놀라지도 않고, 의문스러운 눈빛을 하며 실장을 보고 있었다.
정국이 비록 상무로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자식이라, 그에 따른 재산이 상당히 가지고 있었기에 주식을 팔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설사 주식을 판다고 해도 일성은 가지고 있는 보유 주식이 많아 절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회사였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돈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돈이 왜 필요한데?”
일성그룹의 김상중 회장은 재계에서도 차가운 사람으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절대 정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로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용서를 모르는 냉철한 피를 가진 인물이었다.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최 실장은 나하고 제법 오래 생활을 했지?”
김 회장이 하는 말에 최 실장은 흠칫 몸을 떨었다. 저런 말을 할 때는 아무리 부하 직원이라고 해도 용서를 해 주지 않을 때 하는 말투였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원인을 파악해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명쾌하게 대답을 해 주는 것을 원해. 나가 봐.”
“예, 회장님.”
최 실장은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가고 있었다.
‘어휴, 짤릴 뻔했잖아. 그 새끼는 갑자기 왜 주식을 팔아가지고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고 있는 거야?’
최 실장은 정국을 씹고 있었다. 회장은 최 실장이 나가자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주식을 팔고 있다고 하는데, 원인을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 회장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비밀 정보처가 따로 가지고 있었고, 항상 그 정보처를 이용하여 비리나 개인에 대한 문제를 확인하고 있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김 회장도 알고 있기에, 어쩔 수없이 아무도 모르는 이런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철혈의 냉정한 김 회장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고급 정보를 다루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정국은 가지고 있던 모든 주식을 은밀히 판다고 했지만, 이미 회사에 포착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거의 준비가 되어 가니 준비를 마칠 수가 있겠어. 시간이 되면 연락을 하면 된다고 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정국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돌면 준비를 하려던 모든 금액을 준비할 수가 있었기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동현은 정국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 마음이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바로 집안의 일 때문이었다.
비록 할아버지를 믿지 못해 유전자 검사를 맡기고 왔지만, 만약에 유전가 검사에서 확실히 자식이라고 판정을 받으면 자신이 어찌해야 하는지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