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남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을 하며 동현이 사라진 곳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동현이 돈을 주고 간 남자의 이름은 최석환이었고, 한 때는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이었으나 지금은 혼자서 공장을 운영 중이었다.
직원도 없이 혼자서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납품을 하고 있는 공장이라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우연히 한 아이를 보게 되었고 그 사정이 너무 가여워서 자신이 데리고 있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처럼 없는 사람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혼자서만 하기에는 너무 벅차 주변에 아는 사람을 모으게 되었고 모두 없는 처지에 있지만 선뜻 함께 해 주었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모임을 결성하게 되어 점차적으로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항상 부족한 것이 돈이었다.
그런 와중에 동현이 이렇게 큰돈을 주고 갔으니 석환의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그것도 모두 현금을 주고 갔는데 그냥 가지고 도망을 갈까?’
석환은 돈의 유혹이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석환이 그러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가 있었다.
“아저씨 바빠요?”
석환은 아이의 말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어? 미경아 언제 왔니?”
“응, 아저씨가 오지 않아서 왔어요. 나 배고파요.”
미경이라는 아이는 석환을 아빠와 같이 의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석환은 예전에 중소기업을 할 때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지만, 그 당시 회사가 망하면서 아내와의 불화로 화가 난 아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로 가족이 모두 사망을 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혼자 살아왔다가 미경을 만났는데 자기의 딸과 너무도 비슷한 미경의 처지가 불쌍하여 자신이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석환은 미경이를 보면서 속으로 자신을 욕하고 있었다.
‘이런 겨우 돈 때문에 타락의 길을 가려고 하였다는 나도 이제 돈의 노예가 되려고 그러는 건가?’
석환은 미경의 말에 정신을 차렸고 미경과 밥을 먹으면서 동현이 주고 간을 돈을 가지고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동현의 돈은 그렇게 아주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좋은 일에 사용이 되기 시작했다. 동현은 석환에게 돈을 주었기는 하지만, 석환이 어디에 돈을 사용하는지를 감시하게 하고는 미연과 식당의 공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오빠, 저기 가운데에 라이브 무대를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라이브 무대를?”
“네, 피아노도 놓고 라이브 무대를 함께 설치하면 많은 분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일종의 결혼 신청 같은 거요.”
“결혼 신청이라면 프러포즈 같은 거 말이야?”
동현의 대답에 미연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프러포즈를 우리 가게에서 하면 성공한다는 이미지를 주게 되면, 아마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연의 말에 동현은 솔직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더니 지금 보니 미연의 아이다어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미연아 너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알아 온 거니?”
동현은 미연의 얼굴을 보며 묻자 미연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을 해 주었다.
“헤헤, 사실은 오빠에게 그런 프러포즈를 받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가 난 생각이에요.”
미연이 동현에게 부끄러운 듯이 한 말에 동현은 아주 행복한 미소가 생겼다. 동현은 그런 미연을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걱정 마. 미연이에게 그렇게 프러포즈를 할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미연이에게 하는 것인데 가장 멋지게 해 줄게.”
동현이 미연에게 아주 자신 있게 대답을 해 주었고 그 말에 미연은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점점 커지고 있었고 동현과 미연은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미연의 두 동생도 이제는 새로운 집이 생겼고 동현이 동생들에게 넉넉하게 용돈도 주고 있어, 더 이상 재영과 지연은 학교에서도 이제는 기가 죽지 않고 당당하게 다니고 있었다.
전에도 기가 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자신감이 없어보였는데, 이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는 친구들에게도 자신 있게 집으로 가자는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부끄러워서 말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미연의 어머니는 아이들의 당당해진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미연의 집은 이제 불행이라는 단어는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고, 앞으로는 행복함만 가득한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식당이 오픈을 하게 되려면 앞으로도 세 달은 족히 걸려야 했지만 동현과 미연은 하루하루를 매우 바쁘게 살고 있었다. 동현은 이제 미연을 부모님에게 인사를 시켜 드려야겠다 싶었고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저기 미연아 오늘은 시간이 어때?”
“저는 항상 바빠요. 왜요?”
“사실은 오늘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시켜 드리려고 하는데 어때?”
동현의 말에 미연은 깜짝 놀랐다. 동현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 일은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렇게 들으니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는 설렘이 아닌 두려움이 먼저 앞선 것이었다.
미연은 자신이 동현의 부모님에게 만약에 허락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오빠 오늘 해야 하는 거예요?”
“응, 이미 말씀을 드렸고 하니 오늘 갔으면 해.”
동현은 어제부터 아버지에게 이미 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렸고 오늘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미연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들이 선택한 여자이니, 일단 데리고 오라는 말씀만 하셨다. 역시 며느리는 어머니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미연은 갑자기 부모님에게 인사를 가자는 말에 재빠르게 오늘 자신이 입고 온 옷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것이라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인사를 가기에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빠, 나 집에 먼저 갔다 올게요. 옷도 좀 갈아입고 그리고 올게요.”
“무슨 그냥 가도 되는데 그래.”
“아니에요. 여자는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에도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해요. 나 집에 갔다 올게요.”
미연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바로 나가 버렸다. 가게의 공사를 하는 인부들은 그런 동현을 힐끔 보기만 하였지만 동현은 지금 그냥 가 버린 미연 때문에 조금 황당스럽기만 했다.
‘이런 말만 하고 그냥 가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동현은 그렇게 미연에게 버림을 받게 되는 첫날이었다. 그날 저녁 동현의 집에서는 미연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온다고 해요?”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고 하니 기다려 봐.”
“당신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우리 동현이의 색싯감이 오는데 말이에요.”
“나도 궁금하지만 어차피 기다리면 알게 되니 참고 있는 거지.”
동현의 아버지는 미연에 대한 궁금증이 어머니 보다는 더 했지만 지금은 참고 있는 중이었다.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고, 그 아들과 결혼을 할 사람이라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두 부부는 동현이 오기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동현은 집 앞에 도착을 하자 미연과 차에서 내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빠, 나 어디 이상하지 않아요?”
미연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동현을 보며 물었다. 미연은 오늘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집안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어머니도 미연의 그런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미연에게 신경 써주었다.
미연의 어머니는 이미 동현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미연이 인사를 하러 간다고 해도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속으로는 미연의 어머니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미연은 집에서 무려 세 세간 동안이나 가장 좋은 옷을 고르다, 겨우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동현이 있는 곳으로 왔다.
동현은 미연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새삼 귀여운지 웃기만 했다.
“하하하, 미연아 여기 누가 너 잡아먹는 사람이 있어? 왜 그렇게 떨어?”
동현의 말에 미연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연도 오늘 인사를 하는데 최대한 신경을 썼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본인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자 기다리고 계시고 있다고 하셨어.”
동현은 미연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현이 손을 잡아 주니 조금 불안감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부모님은 미리 거실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연을 맞이해 주었고, 미연은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미연이라고 합니다.”
“어서 와요. 이리 앉아요.”
박 여사는 미연을 보며 참하게 생겼다고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착해 보였고 동현의 아내로 삼기에는 그리 부족해 보이지가 않았다.
동현의 아버지도 미연을 보고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집안에 여자가 하나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에 미연에 대해 상당히 궁금해했는데 이제 안심이 되는지 한결 부드러워진 인상이셨다.
자식이라고는 달랑 하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자식 놈이 제법 꼴통이라 만약에 결혼을 한다고 우기게 되면 아무리 반대를 해도 대책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결혼을 할 여자를 데리고 오겠다는 소리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 보니 아주 마음에 들었기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님 저에게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미연은 박 여사에게 말을 편하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박 여사는 그런 미연이 마음에 드는지 바로 말을 내렸다.
“그래, 고맙구나. 우리 동현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니?”
박 여사는 미연에게 서서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동현이 갑자기 여자를 데리고 오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사실 조금 놀라기는 했었다. 이제 동현이도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기에 조금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여자를 인사시키겠다고 하니 아주 기특하기도 했고 여자가 누구인지도 궁금했었다.
미연은 동현의 어머니인 박 여사에게 자신의 가족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고, 살아온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동현과 만남은 미연의 동생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거짓을 보태어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동현의 부탁도 있었지만 미연이 생각하기에도 장소가 그리 좋게는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어머니는 지금 어떠시니?”
“예, 아직도 조금 편찮으시지만 이제는 그래도 거동을 하시고 계세요.”
“그래야지. 몸이 아프면 마음이 병이 들게 되어 있단다. 항상 어머니를 신경 써 드리고 알겠지?”
“예. 알았겠습니다.”
“그래야지.”
박 여사는 미연과 대화를 하면서 심성이 곱다는 것을 알았고, 얼굴도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이니 며느릿감으로 바로 인정을 해 버렸다.
미연이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 있을 때 동현은 아버지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 솔직히 이야기해라. 저 아가씨는 어디서 만난 거냐?”
“에이, 아버지는 지인이 소개를 해 주어서 만난 것이라고 했잖아요.”
“너의 지인이라. 허허허, 동현아 이 애비가 너를 모르니?”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동현은 내심 약간 긴장했지만, 지금은 미연을 위해 강하게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잘나가는 사람들 많아요. 저 무시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