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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지마-53화 (53/222)

53화

동현의 말에 미연은 환하게 웃었다.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가지게 되는 미연이라 그런지,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다. 집값이 무려 오억이나 하는 엄청난 거금이었지만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집이었다.

“이제 계산은 되었고 마지막으로 청소는 오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빨리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전히 바닥에 먼지 하나 없게 깨끗이 청소를 해 놓겠습니다. 사장님.”

동현은 업체의 이사라는 남자의 대답을 듣고 기분 좋게 웃으면서 나왔다. 미연은 동현이 모든 일을 처리한 덕에 손쉽게 일이 진행되었고 등기도 모두 미연의 앞으로 해 두었다.

“우리는 이제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 볼까?”

새로 이사를 오는 집이니 물건도 모두 새것으로 바꾸자는 말이었다. 사실 미연의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도 모두 오래 전에 사용하던 것이라 이런 집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알았어요.”

동현과 미연은 즐거운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물건들은 모두 내일 배달이 되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다.

“동생들에게는 모든 물건들이 준비가 되면 말을 하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바로 이사를 하면 되잖아.”

“오빠, 정말 너무 고마워요.”

“바보, 이런 것을 뭐라 그러는지 알아?”

“????”

“바로 기쁨 두 배 행복 따블이라고 하는 거야.”

동현의 개그에 미연은 한바탕 크게 웃고 말았다.

“호호호, 오빠 그만 웃겨요.”

환하게 웃는 미연을 바라보며 동현도 다정스레 웃어 주었다. 동현은 이제 과거의 인연은 잊고 미연에게만 진심으로 대하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도 비슷한 얼굴이라 놀라고 신기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는 과거는 사라지고 미연만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미연의 식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날이 되었다.

미연은 자신이 집을 구했다고 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동현이 사 주었다고 하기로 했다. 미연이 무슨 돈이 있어 이런 고급 집을 살 수 있겠는가?

동현도 미연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해 주었다. 이왕이면 미연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현은 미연이 가족들과 택시를 타고 출발을 하였다는 전화를 받은 터라, 미리 빌라 정문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도착을 했고, 안에서는 미연과 동생들이 나이가 있으시지만 몸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분을 부축하며 내리고 있었다. 그 분은 미연이 어머니셨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편찮아 보이시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김동현이라고 합니다.”

동현은 어머니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미연의 어머니는 이미 이야기를 모두 들었기 때문인지, 입가에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반가워요. 그런데 인상이 참 좋아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동현은 스스럼없이 곧장 어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했다.

“호호호, 벌써 어머니라고 하시네. 무지 급하시다. 호호.”

미연의 여동생이 웃으면서 동현의 행동에 제동을 걸자, 미연은 그런 여동생을 사납게 째려보며 눈치를 주었다.

“지연이 너 죽을래!”

“어머, 언니는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너어…!”

미연의 얼굴이 점점 표독스럽게 변하기 시작하자 지연은 이내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미안, 언니 다시는 안 그럴게.”

확실히 미연이 집안에서는 파워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동현은 그런 자매를 보며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어머니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래요, 어서 가요.”

동현의 안내로 미연의 가족들은 집을 구경하면서 모두 감격을 하고 있었다. 방이 모두 네 개라 각자 방을 쓸 수 있었고, 학생들의 방에는 책상과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꺄아, 오빠! 내 방에 컴퓨터하고 침대도 있어.”

지연이는 자신의 방이라고 해 준 방을 구경하다가 연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는 재영이도 마찬가지였는데, 자신의 방을 보면서 거의 천국에 와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방안의 풍경이 늘 상상만 하던 그런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던 방은 바로 이런 방이었어.”

미연의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방을 보면서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주방을 보시며 항상 저렇게 살아 보았으면 하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져 있으니 창백하고 힘없던 낯빛에도 환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한참을 그렇게 구경을 마친 가족들은 거실에 자리를 했고, 동현은 이제 가족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풀기 시작했다.

“어머니 집이 마음에 드세요?”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집은 처음 살아보네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어머니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미연은 그런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엄마, 이제 그만 우세요, 우리도 이제부터는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요.”

“그…그래, 그러자.”

모녀지간의 대화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해 보이자 동현은 자신이 하려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머니, 우선 재영이 대학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재영이 대학을 보냈으면 합니다. 학비는 미연이와 제가 하는 사업으로 벌어서 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사업이 제법 크게 하는 것이라 그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현의 말에 재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집안이 힘들다고 생각하여 대학은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대학을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꿈만 같았다.

“저… 정말 대학에 갈 수 있나요? 매형.”

재영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동현을 보며 매형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미연은 동생이 갑자기 매형이라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지며 어쩔 줄을 몰랐다. 지연은 오빠의 갑작스런 발언에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바라봤고, 어머니는 오히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계셨다.

미연의 어머니 한 여사는 미연이 동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많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을 보여 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마음속으로 동현을 이미 사위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말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아들인 재영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내 이야기를 듣도록 해라. 나는 이렇게 고급스러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평생을 내 집이라고는 꿈꾸지도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이제는 집이 생겨서 너무도 기쁘기만 하구나. 하지만 우리가 이런 집에 살 수 있게 해 준 사람과의 관계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미연이와 그냥 아는 사이라면 나는 아무리 좋은 집이라고 해도 이런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딸을 팔아서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고 결혼을 할 사이라면, 정말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진심으로 물어 보겠는데 우리 미연이와 무슨 사이요?”

한 여사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가슴속에 있던 말을 모두 뱉어 버렸다.

하루 만에 이런 엄청난 행운이 생기기는 했지만 평생을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아이들을 키워 온 고집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냥 주는 것을 덥석 받아먹을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아 이참에 확실하게 동현을 가족으로 만들려고 하고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딸인 미연이도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으니 자신이 확실하게 정리를 해 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동현은 한 여사의 말을 들으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솔직히’가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하자는 것이지 미연의 사고를 말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말을 할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는 것쯤은 동현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으니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지금 마트를 하고 계시고 저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연이와는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에 있었고 지금은 깊이 사랑한다고 해야겠지요. 어머니의 말씀대로 허락만 해 주신다면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나고 있습니다.”

동현의 말에 미연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도 동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결혼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와 동현은 지금 자신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있으니 미연은 솔직하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움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한 여사는 동현의 말에 진심이 있다는 사실에 아주 흡족한 기분이었다. 항상 딸이 고생을 하고 있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데,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났다는 것이 한 여사를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도 미연의 복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말이다.

‘저것이 그래도 복은 있어 이런 남자를 만나게 되었구나. 이제는 너도 행복한 생활을 해야지. 언제까지 집의 일에 매달려 너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니.’

한 여사는 속으로 미연에게 많은 말을 하고 있었고 또 어느새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미연도 어머니의 눈가가 젖어 드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동현은 모녀의 사정을 대강은 알고 있기에 어서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에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저기 어머님 그럼 이제 저는 미연이와 결혼을 해도 되는 겁니까? 확실히 대답을 해 주셔야 저도 준비를 하지요. 허허허.”

동현의 엉뚱한 이야기에 주변은 금세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호호호, 아저씨 정말 웃긴다.”

“하하하, 재미있어요.”

“호호호.”

한 여사도 동현의 발언에 그만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단지 미연만 웃지도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웃으니 분위기는 전과는 다르게 아주 훈훈한 온기가 돌았고, 동현을 보는 시선도 이제는 조금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이제 말을 놓아도 되지요?”

“그럼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를 이제는 사위라고 생각하시고 대하세요.”

“그렇게 하겠네. 이름이 김동현이라고 했지?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사위로 인정을 하니 김 서방이라고 부르겠네.”

“아이고 장모님 감사합니다.”

동현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여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고, 동생들은 그런 동현의 행동에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진짜 웃겨요. 개그맨 하세요. 호호호”

“하하하, 정말 웃겨요.”

미연은 동현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모두 자신을 생각하여 저렇게 익살스럽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동현에게 미연은 정말 고마움을 느꼈고, 지금은 진심으로 동현을 사랑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미연의 만면에는 사랑이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한 여사는 딸애의 눈빛만 보아도 지금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저렇게 좋아하고 있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기에 끝까지 저 모습을 지켜주고 싶었다.

“고맙네. 김 서방.”

한 여사는 여러 소리보다는 가장 많은 뜻이 함축된 한마디를 해 주었다. 동현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기만 했다.

그 미소에는 행복과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 누가 보아도 아주 따스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동현이 이렇게 미연의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한 여사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음식을 할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고 가게.”

“예, 장모님이 주시면 무조건 먹고 가겠습니다.”

미연은 그런 동현이 정말 고마웠고 좋았다.

미연의 방으로 들어간 동현은 미연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오늘 정식으로 미연을 사랑한다고 했고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미연이 받아주었으면 해. 비록 프러포즈가 별로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진심이니 말이야.”

“오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진심이에요. 저는 오빠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미연의 대답에 동현은 기분이 좋은지 미연을 그대로 안아 버렸다.

“미연아 고마워.”

“저도 고마워요.”

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있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직은 완전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연과 동현이 그렇게 서로 안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꺄악, 지연이 너 죽을래??”

“헉!”

둘은 지연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서 후다닥 떨어졌다.

“어머. 언니 미안해 나는 그냥 형부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지연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짓궂은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도현은 그런 지연의 표정을 보고는 바로 받아쳐 주었다.

“하하하, 우리 처제가 나를 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디 보자.”

동현이 갑자기 지연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고 있으니, 지연은 순간적으로 당황이 되는지 얼굴이 빨갛게 변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어머.”

지연이 놀라고 있는 모습에 동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주었다. 지연도 동현이 갑자기 다가오자 놀라서 그런 것이지 싫어서 피한 것이 아니었지만, 왠지 기분이 묘하게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한참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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