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자신이 일본인이지만 동현은 의외로 일본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가네마는 예전에 동현에게 일본인을 싫어하면서, 자신은 왜 받아 주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동현의 대답에 감격을 한 기억이 났다.
“저도 일본 사람인데 저에게는 어찌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까?”
“야! 일본인라고 다 같은 사람이냐? 너는 배우려는 진심이 있었으니 내가 받아 주는 거야. 진심으로 배움을 원하는 사람을 어떻게 거절하겠냐?”
동현은 상대가 일본인이라고 해서 모두 거절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진심으로 행동을 하면 그 사람도 달라질 수가 있다는 말이라 가네마도 감동을 하고 말았다. 그런 동현이 야마꼬를 본다고 하였으니, 가네마가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라고 일본인이 아니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동현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먹으러 왔으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소리는 그만 두고 오늘은 일단 먹자. 여기 갈비 더 주세요.”
동현의 외침에 갈비는 더 왔고 일행은 그날 아주 배터지게 먹을 수가 있었다.
가네마는 동현의 그런 성격을 보면서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자신도 모르는데 남이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동현의 집에서는 지금 어머니가 동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동현이가 오늘은 조금 늦네요?”
“온다고 했으니 기다려 봅시다.”
아버지는 동현과 통화를 하여 빨리 오라고 지시를 내려 두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새로운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런 집에 사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는데 지금 자신이 원하고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있으니, 요즘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데 행복 뒤에는 마가 낀다고 집을 샀다는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자신의 친가에서 연락이 왔다. 집 살 돈이 있으면 동생을 좀 구해 달라는 전화에 답답한 마음이 되어 동현에게 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동생은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금 사정이 좋지 않게 되어 지금 부도가 나게 생겼다고 하였다. 집안의 모든 돈을 투자한 회사라 부도가 나게 되면, 모두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박성희 여사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박 여사의 친가는 삼 남매로 박 여사가 그 중 가장 장녀였다. 원래 집안이 그리 없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와 결혼을 할 때도 강력하게 반대를 받았고, 혼자 힘들게 살고 있을 때에도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아 거의 인연을 끊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동생인 박상민은 가끔 연락을 하며 도움을 주었었다.
그 당시에는 작은 도움이었지만 그 덕분에 동현이를 키울 수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동생이 부도가 나게 생겼다는 연락을 받으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동현은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다음이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는 독특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동현이 그렇게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아버지에게 받은 서러움 때문에 그랬다.
“어서 와라. 피곤하지 않니?”
어머니는 동현이 동생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아니에요. 피곤하기는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동현도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하고는 끊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아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 박성희 여사는 그런 동현을 보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아니, 어머니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동현은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나오니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감히 누가 자신의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나게 만들었는지를 알면,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흑흑, 동현아 어떻게 하니? 너희 외삼촌이 부도가 나게 생겼다고 하는구나. 우리가 힘들 때 도움을 주었는데, 나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동현은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다. 외삼촌이 부도가 나게 생겼다는 연락을 외가에서 해 준 것 같았다.
“어머니 부도가 나는 분이 누구세요?”
동현은 막내 외삼촌이라고 하면 절대 도움을 주지 않을 생각에서 묻고 있었다.
큰 외삼촌은 자신들이 힘들 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막내 외삼촌은 그런 자신과 어머니에게 마치 거지가 무언가를 구걸하러 왔냐는 눈빛을 하며 서럽게 하였던 기억이 나서였다.
눈에 눈물을 훔치시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어머니는 동현의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해 주었다.
“너희 큰 외삼촌이 부도가 나게 생겼다는구나. 집안의 모든 자금이 지금 회사에 투자가 되어 만약에 부도가 나면, 집안이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난리가 아니란다.”
큰 외삼촌이라면 은혜를 갚아야 하는 대상이었기에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다.
“제가 내일 외삼촌을 만나서 상황을 알아볼게요. 어머니.”
“그래 주겠니?”
“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큰 외삼촌이라면 제가 어렸을 적에도 오셔서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 당연히 찾아가서 도움을 드려야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동현의 대답에 박 여사는 기쁨의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동현아, 내 아들이 지금 이렇게 커서 나는 행복하단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동현은 그런 어머니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평생을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시다가, 겨우 이제야 조금 행복해지려고 하니 주변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동현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제가 내일 가서 모두 해결을 하고 올게요. 아셨죠?”
“그래, 아들이 간다고 하니, 이제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구나.”
동현의 말에 박 여사는 여간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박 여사가 이렇게 동현을 믿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바로 동현의 실종 때문이었다. 실종이 되기 전에는 항상 아이 같아 불안하기만 했었다. 다시 돌아와서는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고, 자신을 병원에 데리고 갈 때 자식의 등이 이렇게 든든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그 뒤로는 동현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자신의 방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신의 수중에는 지금도 상당한 자금이 남아 있었고 그 정도의 자금이라면 충분히 부도를 막을 수가 있겠지만, 삼촌의 화사가 과연 회생이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야겠다고 판단이 들었다. 막말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고 물이 세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삼촌이야 지금 부도를 어떻게 하든지 막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만약에 회사가 도저히 회생하기 힘들다고 판단이 들면 동현은 그냥 부도가 나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욕을 조금 먹겠지만, 그것이 삼촌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일단 내일은 수련을 쉬어야 하겠네. 야마꼬도 온다고 했는데, 어쩔 수없이 다음으로 약속을 잡아야겠다.”
동현은 야마꼬의 문제를 내일 확실히 정리를 하려고 하였는데, 기회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가네마와 영민은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방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네마는 야마꼬의 문제를 동현이 직접 해결한다고 해도, 자신이 약간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 가네마는 참지를 못하고 전화를 걸게 되었다. 이들 닌자들은 서로의 번호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언제든지 전화를 할 수가 있었다.
“야마꼬, 난 가네마다.”
“무슨 일이지?”
“우리 선생님에게 배움을 얻고 싶다는 말은 알겠는데, 내가 보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그러는데 솔직히 말해 줘야겠다.”
야마꼬는 가네마가 눈치를 채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하게 되면, 다음에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닌자다. 우리 닌자는 강자를 존경하지. 그래서 나는 동현 상과 사귀고 싶어서 그런 거다.”
야마꼬는 가네마도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가네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예전에는 야마꼬가 가네마를 마음속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가네마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수가 있다고 판단을 내린 야마꼬는 가네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대답을 하게 된 것이다.
“음, 야마꼬 너의 생각은 알겠는데, 선생님은 우리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분이 너의 고백을 들어주실 것 같은가?”
가네마는 동현이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며 야마꼬를 설득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동현에게 미쳐 있는 야마꼬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가네마 설마 질투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야마꼬는 가네마가 지금 질투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가네마는 야마꼬의 대답에 더 이상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해 줄 말은 모두 했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이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마라. 나는 절대 도움을 줄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가네마의 확실한 대답에 야마꼬는 가네마와의 인연이 완전히 정리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가네마는 야마꼬와 통화를 마치자 조금은 기분이 상해 있었다. 가네마도 야마꼬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자신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번에 그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그 뒤에 야마꼬의 마음을 받아 주려고 하였는데, 이제는 야마꼬의 마음이 변해 있었다.
“여자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고 하더니, 정말이구나.”
가네마는 야마꼬가 누구를 좋아하든지 이제는 더 이상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의 정리를 하니 조금은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꽝! 꽝!
“가네마 안에 있냐?”
가네마는 영민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문을 열어 주었다. 아직 서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함께 수련을 하면서 몸짓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온 영민이 핸드폰을 들고 받으라는 시늉을 하여, 가네마는 잠시 영민이 하는 짓을 보기만 했다.
“아유, 답답해, 형님의 전화를 받으라고.”
동현이 영민과 가네마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네마에게도 연락을 하였었다. 그런데 계속 통화중이라 영민에게만 내일 쉰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가네마에게 가서 전화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영민이 정확하게 가네마에게 전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영민은 가네마가 아직 자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답답함에 가네마의 핸드폰을 빼앗아 대신 전화를 걸었다.
“가네마냐?”
영민은 동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재빠르게 가네마에게 핸드폰을 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가네마는 핸드폰에서 들리는 동현의 목소리에 바로 대답을 하였다.
“내일은 내가 일이 있어 시간이 나지 않으니, 수련은 둘이서만 해라. 그리고 야마꼬가 오면 나중에 내가 연락을 하겠다고 전해 줘라.”
“알겠습니다. 선생님.”
가네마는 동현이 내일 오지 못한다고 하자 내심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조심스럽게 내숭을 떨고 있었다.
동현과 하는 수련은 사실 사람 잡자고 하는 수련이지, 무엇을 배우는 수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어서였다.
물론 동현이 약속한 육 개월이 시간이 지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야마꼬의 문제도 야마꼬에게는 미안하지만 동현이 야마꼬를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되니,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기에 가네마는 내심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