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동현이 주는 수표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계약금이라고 하니 영민이 공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어머니와 동생은 어디에 계시냐?”
“집에 계십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는 곳입니다.”
“오늘은 가족들과 외식이나 하고 집도 구경시켜 드려라. 내일 전화하마.”
동현의 배려에 영민은 진심으로 감격을 하고 말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영민이었다.
동현은 그런 영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바로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영민은 황급히 동현의 뒤를 따라 가려고 하였지만, 이내 동현의 목소리로 인해 멈추고 말았다.
“따라오지 마라. 오늘은 내 지시대로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내일 연락하마.”
동현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사라지자 영민은 동현이 주고 간 수표를 보게 되었다.
“헉! 이게 얼마야?”
영민이 보고 있는 수표는 무려 일억이라는 금액이 써져 있는 수표였다.
영민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엄청난 금액의 수표를 가지고 가족들과 어떻게 외식을 하겠는가 말이다. 아직 은행이 문을 닫을 시간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 영민은 바로 은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수표의 은행이 그리 멀지 않으니 바로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영민은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집을 구경시켜주었다.
“어머니 여기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집입니다.”
“정말 여기가 우리 집이냐?”
“오빠 진짜로 우리 집이야? 여기가 내 방이야?”
32평의 빌라라 그런지 방이 세 개였고, 모두가 각자 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집이었다.
“그래 여기가 우리 미영이 방이란다. 마음에 드니?”
영민은 동생의 방을 조금 큰 방으로 주었다. 자신은 작은 방이라고 해도 충분히 방이 크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입구에 있는 작은 방이지만, 동생의 마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방으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
고3이 되도록 자기의 방도 없이 엄마와 함께 사용하고 있었던 미영의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모두 자신의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가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구경하고 이제 이사를 하기만 하면 되니, 기쁨이 넘치는 날이었다.
그날 영민의 가족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얼굴을 보며 칭찬을 하였고, 여동생은 오빠가 자랑스럽다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영민의 인생에 있어서 오늘처럼 행복한 날은 없었다. 영민의 마음속에는 동현에 대한 충성만이 가슴에 새기게 되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르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영민이 가족들과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동현은 닌자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놈을 데리고 온 거지?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동현은 일단 위험한 놈이라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처리가 문제였다. 당장 일본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였고, 무작정 데리고 있기에는 솔직히 조금 껄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가네마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뭘요?”
가네마는 동현이 말하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바로 반문을 했다.
“이제 어떻게 지낼 생각이냐고?”
가네마는 동현의 말을 이제 이해를 했는지 웃으면서 대답을 하였다.
“저는 강자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따라다니겠다는 말이냐?”
“예, 강자와 있으면 언젠가는 저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동현의 가네마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강자를 따르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는 나를 따라다니겠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너 일본에는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되냐?”
동현은 닌자가 속해 있는 조직이 있으니, 그들에게 연락을 하여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는 말이었다.
가네마는 동현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을 해 주었다.
“한국에 이렇게 강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허락을 해 주실 것입니다. 촌장님이 평소에 항상 하시는 말씀이 강자가 있으면 그를 존중하고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닌자촌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그 촌장의 사고방식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 동현이었다.
지금 시대에 무예를 익히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무예를 익히기 위해 산속에 숨어 있는 기인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동현이었다.
그런 숨은 기인에게 작은 것이라도 배우게 되면 이는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이니, 당연히 배움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따라가는 거야 문제가 없지만, 너 어디서 먹고 잘 곳은 있냐?”
“허락만 해 주신다면 숙식을 제공하는 곳을 마련하겠습니다.”
가네마는 동현이 허락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이내 눈빛이 밝아졌다.
동현은 그런 가네마를 보며 속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배움을 갈망하는 눈빛을 보니 조금은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순수한 무인이라면 이렇게 배움을 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동현은 일본인에게 무예를 알려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강자를 동경하고, 배움을 갈망하는 가네마의 간절한 눈빛이 마음에 걸려, 이계의 어쌔신이 익히는 것들 중에 가벼운 것을 전수해 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나에게 배움을 얻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는 명심해야 한다. 배움이라는 것이 본인의 노력이 없이는 절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가네마는 동현이 허락을 하자 운전을 하다가도 깊숙이 머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일본의 무인들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는 사부와 같이 인식을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배움을 주는 존재에게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다.
이는 닌자들의 전통적인 습성이었다. 아마도 동현에게 배움을 받은 가네마는 앞으로 한국의 일에는 절대 간섭을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의 사부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말이다.
동현이 가여운 마음으로 베푼 작은 것이, 이처럼 크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지금은 모르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우리 집이 있는 곳으로 가고 너는 바로 너의 숙소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에 나를 찾아 와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나이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자신에게 스승이라고 하니, 동현은 왠지 간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내 가네마를 타박하고 있었다.
“너 앞으로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지 말고 동현님이라고 불러라. 스승이라고 불리면 내가 늙은 것 같아 보이잖아.”
동현의 말에 가네마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신에게 배움의 길을 알려 주는 스승은 왠지 참으로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야쿠자들을 대할 때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잔인하게 검을 휘둘렀는데, 지금 자신을 대하는 모습은 마치 동생을 대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강자의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색깔이 있는 그런 존재가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내심 기분이 좋아지는 가네마였다.
“알겠습니다. 동현님.”
동현은 다네마의 운전으로 집에 도착을 하자 이내 가네마에게 숙소를 정해 놓고 오라는 말만 하고는 자신은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네마는 그런 동현을 보며 피식 실소가 나왔다.
“후후후, 재미있는 분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 같구나.”
가네마는 자신이 앞으로 생활할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막상 이 집의 근처에 얻을 생각을 하니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전화를 하였다.
“미네르 상 안녕하세요.”
“아, 가네마 상 반갑습니다.”
“한 가지 도움을 받았으면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도움을 말하시는지요?”
미네르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조금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닌자들이 활동하는 것을 지원하는 직책에 있는 자신이었다. 하지만 가네마는 말이 이급 닌자지, 실지로는 일급 닌자와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닌자촌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니 대체 무슨 일인지 걱정이 앞섰다.
“내가 지금 한국에 있는데 이곳에 숙소를 얻었으면 하는데, 여기 말을 하지 못하니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미네르는 가네마가 갑자기 한국에 자리를 잡는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눈빛을 하였다. 닌자가 하는 일이 한곳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상대가 원하는 것이니 시간을 두고 알아보면 되겠지만, 우선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미네르는 바로 허락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지금의 위치에 계실 생각이십니까?”
일본은 닌자들은 자신이 있는 위치가 언제든지 알 수 있도록 핸드폰에 위치 추적이 되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있을 것이니 바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한국의 지부에 연락을 하여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런데 닌자촌에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차피 연락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가네마는 일단 전화를 마치고 이내 다시 다른 곳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닌자촌의 촌장인 자신의 사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촌장이 아무리 강자에게 배움을 받으라고 하였지만, 사부의 허락도 없이 움직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동현의 앞에서는 워낙 다급한 마음에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사부의 허락을 받기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가네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게 되면 자신의 실력은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부에게 억지를 부려서라도 배움을 얻고 싶었다.
“가네마 무슨 일이냐?”
전화기에서는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촌장님 부탁이 있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부탁이 있다는 소리에 촌장도 궁금하였는지 이내 물었다.
“무슨 부탁인데 그러는 것이냐?”
“촌장님 제가 한국에 와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만난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실력은 제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경지에 도달하신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분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네마는 동현과의 만남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동현에 대해서는 자신이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촌장은 가네마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무예를 익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도 뜻밖인데, 익숙하게 내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상대가 이미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가네마 너의 말에 한 점 거짓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진실로 모든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네마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기에 그 목소리가 당당했다.
“너의 말대로 그가 정말 그렇게 강자라고 하면 내 직접 그를 평가해 보고 답을 주겠다. 그러니 기다려라.”
촌장의 말에 가네마는 속으로 촌장에게 욕을 하였다.
‘빌어먹을 늙은이가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이려고 하는 거야?’
촌장이 평소에 음흉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네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촌장의 뜻을 반대할 수가 없으니 결국 촌장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오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저보고 한국에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가네마는 촌장의 말에 자신이 심정을 조금은 드러내고 있었다. 기분 나쁘다는 뜻이 그대로 나타나는 말이었기에 촌장도 알아들었을 것이었다.
“허허허,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일 바로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하마. 그러니 기다리고 있거라.”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네마에게 불리한 것은 없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분에게 내일 오신다고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다. 내일 만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