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병실로 돌아온 동현은 어머니에게 외출을 허락 받았다고 전해 드렸다.
“수고했다. 그럼 함께 나가자.”
아버지는 동현이 수고했다고 간단히 말을 하고는 어머니를 부축하셨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몸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는 것이 병세에도 차도가 있었다. 역시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 가장 크다는 것을 깨달은 동현이었다.
‘어머니 앞으로는 정말 잘 할게요.’
동현은 속으로 반드시 어머니를 편하게 모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동현을 통제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어머니였다.
동현의 가족은 택시를 타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갔다.
“아저씨 수고하셨고요. 잔돈을 그냥 두세요.”
동현은 남은 돈이 삼천 원이나 되었지만, 어머니가 편하게 왔다는 생각에 그냥 두라고 했다.
“어머니 저기 보이는 집이 우리 집이에요.”
어머니는 동현이 손짓하는 곳을 보았다. 동현의 손끝에는 아담하게 지어진 주택이 그 자리하고 있었다.
“안에 나무는 원래 있었던 것이니?”
“예, 계약을 할 때부터 있던 것이라, 이제 우리가 키우면 돼요.”
“자 들어가 보자.”
아버지는 집을 보시며 마음에 드시는지 어서 가자고 재촉하셨다.
동현은 먼저 앞장을 서서 대문을 열어 드렸다.
부모님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으셨다. 평생의 소원이 자신의 집을 가지시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 소원이 풀렸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크진 않지만 아담하게 만들어진 정원을 구경하고 계셨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둔 것이 가장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셨다.
동현은 행복해 보이는 두 분의 모습에 집을 아주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크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정확했다.
동현도 처음에는 조금 큰 집을 사려고 하였다. 하지만 나와 있는 단독 주택도 여기뿐이었고,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추다보니 이 집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저렇게 좋아하시니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은 정원을 모두 구경하셨는지 이제 안으로 들어가시고 계셨다. 안에는 이 층으로 되어 있어서 일 층은 부모님이 생활하시고, 자신은 이 층에서 살기 위해 꾸몄다.
“저기가 안방인가 보구나?”
“예, 일 층에는 방이 두 개인데, 한 개는 그냥 아버님 서재로 사용하려고요. 이 층은 방 한 개와 화장실이 있으니, 제가 쓰기에는 좋아서 그렇게 꾸며 보았어요.”
동현의 설명에 아버지는 아주 만족한 얼굴이 되었고 어머니도 흡족해하셨다. 어머니는 가장 먼저 안방으로 가셨다. 이제 두 분이 살아가실 방이니 보고 싶으셨나 보다. 안방은 어머니의 취향대로 꾸미기는 했지만,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솔직히 불안하기는 했다.
어머니는 방문을 여시면서 갑자기 환하게 웃음을 지어 주셨다.
“호호호, 여기는 아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도배를 해 놨네.”
“험, 조금 요란스럽지 않소?”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요란한 것을 싫어 하셨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를 위해서 과감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당신도 이번은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도배를 한 것이니 참아 보세요.”
어머니는 딱 부러지게 아버지를 보며 말씀하셨다.
동현은 솔직히 조금 놀라고 있었다. 예전의 어머니라면 아버지의 말에 절대 토를 달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상황이 묘하게 뒤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자신 때문에 병이 드시면서 아버지에게 가슴속에 있는 말을 모두 하셔서 그런 것 같았다. 사실 아버지가 잘못을 많이 하시기는 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 마음에 드세요?”
“그럼, 우리 아들이 만들어 주었는데, 마음에 들지 수고했다.”
어머니는 방이 아주 마음에 드신 듯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영 탐탁지 않아 하시는 아버지셨지만, 어머니 때문에 결국 그대로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버지 서재를 한번 구경하실래요?”
“험, 그래 가 보자.”
두 분은 일 층을 모두 구경하고는 다음에는 이 층도 찬찬히 둘러 보셨다. 이층에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간 옥상은 햇볕도 잘 들어오고, 빨래를 널기에도 아주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옥상도 구경을 하시고는 아주 흡족한 얼굴이 되셨다.
“아주 좋은 집을 구했구나. 당장이라도 여기 와서 살고 싶구나.”
“어머니 일단 병원에 퇴원을 하시면, 앞으로는 계속 여기서 사실 테니. 얼른 몸부터 잘 챙기셔야지요.”
동현은 어머니의 마음을 안정시켜드리고 싶어 하는 말이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빙긋이 웃어 주었다.
동현이 산 집으로 인해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에 행복감이 생겼다는 것에 동현은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동현은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느낀 감정에 아주 기분이 좋은 날로 기억이 될 것이었다.
오늘 약속이 없었으면 그냥 부모님과 같이 있고 싶었는데, 자신의 입으로 한 약속이라 지켜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동현이 어제 갔던 강남의 룸살롱에는 약속대로 성철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철은 어제 팔이 부러진 탓에 지금은 깁스를 하고 있었다.
“어제 어제의 약속대로 왔으니, 이야기를 해 봐.”
동현의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건달의 세계에서는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먼저 족보에 이름이 알려져 있으면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철과 동현은 어떻게 보면 친구로 볼 수도 있는 위치였기에, 동현이 편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성철은 동현의 말에 지금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남은 서울의 요지라 많은 건달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조직들이 강남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세 곳이 지역을 나누어 관리하고 있었다.
바로 ‘세기파’와 ‘역삼동파’, 그리고 ‘한영파’, 이 세 조직이었다. 세 조직은 그동안 나름대로 서로의 구역을 인정하고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작년부터는 이상한 조직이 강남을 노리고 공격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 조직이 누구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세 조직이 합동으로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성철은 개인적으로 많은 정보를 모았고 결국 꼬리를 잡기는 했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세부 사항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남을 노리는 조직에 일본인이 끼어 있다는 이야기지?”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정보에 의하면 일본인이 끼어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
“일본인이 왜 강남을 노리는 거지?”
동현이 생각하기로는 일본의 야쿠자가 강남을 노릴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일본인이 포함된 조직이 강남을 노린다는 것은 누군가가 뒤에 있다는 이야기였고, 그 뒤는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동현은 생각보다 강남의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남의 조직이 무너지면 지금까지 각 조직에서 취급을 하지 않았던 마약이 대량으로 풀릴 수도 있으니, 강남을 장악을 하려고 하는 것이겠지.”
강남은 마약을 취급하지 않고 있어서 아직까지 조용하게 지낼 수가 있는 지역이었다. 물론 일부 마약이 팔리고는 있지만, 이는 타 지역에서 강남을 경유해서 오는 것 일부였지 강남에서 자체적으로 마약을 팔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마약 때문에 기습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지?”
동현은 성철의 말에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약 때문에 기습이 일어나고 있다면, 이미 조직에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일본의 야쿠자가 끼어 있다고 해도 여기는 한국이었고, 한국의 건달들도 일본의 야쿠자에 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동현의 의심스러운 시선에 성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았다.
“여기 강남은 유일하게 마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데, 언제부터인가 강남에도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묘하게도 우리가 공격을 받고 난 이후라는 거야. 나는 그 후로 마약에 대해 알아보았고, 결론은 마약 때문에 강남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일본의 야쿠자가 깊이 개입이 되어 있을 것 같아,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성철은 자신이 알고 사실을 모두 동현에게 말하고 진심으로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뜻을 내비추었다.
지금 공격을 받고 있는 조직의 대가리들이 모두 실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런 실력을 가지고도 당하고만 있으니 고민이 되어서였다.
동현은 성철의 말을 듣고는 무언가 수상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일본인을 싫어하고 있었고, 건달들은 특히 심했다. 한국의 건달들은 일본의 야쿠자와 비교를 당하는 것이 자존심을 건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말하기를 실력으로 논하자고 하고 있을 정도였기에 그런 건달들은 늘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달들 중에 수장급이 당하고 있는데, 범인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상대의 수준이 이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는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현은 만약의 상황에 대해서도 준비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본인이 한국에서 설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 나라에서 설치는 거야 문제가 없지만, 감히 한국에 와서 설치는 것이 심히 동현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어이 니네 정말 조직이 맞냐? 어떻게 조직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방비로 두들겨 맞을 수가 있는 거냐?”
동현의 말에 성철은 기분은 나쁘지만 현실이 그러니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사실 기습을 당한 것도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습을 한 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거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고 사라졌다는 것이 성철과 강남의 조직들을 더욱 긴장하게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강남의 조직들 중에 수뇌급만 기습을 당한 것이 열 번이 넘는 데도, 아직도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 상하게 하고 있었다. 세 조직이 연합을 하고도 잡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목급이 지금 기습이 두려워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누군지 알면 이러고 있지 않는다. 적을 찾기만 하면 목숨을 걸고라도 해결을 할 수가 있지만, 지금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다.”
성철은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실지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동현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듯 동현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현도 다른 일이라면 그냥 갔었겠지만, 일본인들이 개입이 되었다는 말에 약간의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알았다. 일본 놈들이 개입되었다고 하니,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
동현의 대답에 성철은 대번에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아직 동현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당해 보았으니 그 실력만큼은 믿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도와줄 것이라는 예상 하에 이미 어느 정도의 계획은 세워 놓고 있었다. 동현의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조직의 수장급으로 보이게 하면 놈들이 기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 그 때 동현의 실력으로 놈들을 잡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현은 성철과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성철의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어차피 상대를 모르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기습을 하는 놈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조치였고 말이다.
동현은 성철의 조직 간부로 행동을 하기로 하고는 일단 부모님에게 전화 드렸다.
“아버지, 제가 조금 일이 있어 한 일주일 정도는 가지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 그리 바쁘냐?”
“집도 생겼으니 이제 돈을 벌만한 것을 찾아야 하지 않아요? 지금 장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제가 아는 것이 없으니 일단 경험을 조금 쌓아 보려고요. 어머니 때문에 자주 가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버지.”
동현이 장사를 본격적으로 한다는 이야기에 동현의 아버지는 흡족했는지 오히려 동현을 다독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