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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지마-16화 (16/222)

16화

동현은 도대체 만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 일인 것을 자꾸 문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미연이랑 사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사귀는 거야 무슨 문제가 되냐, 사귀고 싶으면 그냥 사귀면 되지.”

동현은 둘이 사귄다고 하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만영의 성격상 미연을 건드렸으니 아마도 속으로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둘이 인연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연이가 술집에 있던 아이라, 조금 조심스러운 것 같아 보여서 하는 말이야.”

“걱정마라. 그런 내색하지 않고 너희들을 봐 줄게.”

동현은 만영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한 시원하게 말을 해 주었다. 만영도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인데, 동현이 저렇게 대답해 주니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미안하다. 이런 말을 해서.”

“참나, 우리 친구 맞지? 친구끼리는 그냥 그런 소리 하지 말자.”

동현은 만영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쿨하게 인정해 주니 만영도 얼굴도 조금은 밝아진 기색이었다.

“밥 나온다. 어서 먹자.”

만영도 미안한지 설렁탕이 오는 것을 보고는 재빠르게 말을 돌리고 있었다. 이미 미연과의 일은 모두 이야기를 했기에, 더 이상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동현도 그런 만영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둘은 그렇게 서로의 멋쩍게 웃으며, 뽀얀 설렁탕에 숟가락을 뜨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자고 있던 은주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옆에 있어야 할 동현이 보이지가 않았다.

“오빠, 지금 욕실이 있어?”

은주의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은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을 찾으려 옷을 뒤지자 옷 속에는 거액의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은주는 돈을 보니 잠시지만 얼굴에 슬픔이 묻어났다. 자신은 술집을 나가는 여자고, 결국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라는 사실이 은주를 슬프게 하였다. 자신도 한때는 학창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나간 시절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이 은주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흑흑흑, 오빠도 나를 단지 돈에 몸을 파는 여자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은주는 돈을 주고 떠난 동현을 원망하고 있었다. 어제 정말 동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자신의 신분은 몸 파는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주는 동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남자에게 매달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쿨하게 생각하자고 항상 마음을 달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동현에게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은주가 동현을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난밤에는 은주의 모든 이성을 지배하던 동현이었다. 그렇게 남은 강한 기억은 은주의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런 아쉬운 마음이 돈을 보자,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은주는 그렇게 울면서도 동현이 다시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동현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것인지, 은주의 마음은 온통 동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주를 힘들게 하고 있는 동현은 지금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서 새로운 집을 구했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어서였다. 동현과 가족들이 정착할 집은 단독 주택에 아담하게 만들어진 집이다. 정원에는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꽃을 심을 수가 있으니 더욱 좋아하실 것이었다.

자신이 여태 몰래 꾸며 온 집을 보시고 기뻐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 걸음에 내달렸다.

병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저 왔습니다.”

“어서 와라.”

“동현이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일은 무슨 일이겠어요? 어머니, 여기 우리가 살 집이에요. 한번 보세요. 이미 인테리어도 마쳤으니 들어가시기만 하면 돼요.”

동현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한 사진을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동현이 집을 구했다는 말에 조금은 어두운 얼굴이 되셨다. 집안의 가장으로 계신 아버지는 아직 집도 한 채 마련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드신 것 같았다.

동현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누가 집을 사면 어때요. 저는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동현의 말에 아버지는 마냥 어린아이 같던 자식이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의 말대로 누가 사면 어떠냐? 우리 가족이 살 곳인데 말이다. 애비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한 것 같구나. 그런데 집은 좋으냐?”

“예,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머니만 퇴원을 하시면 모두 함께 가서 살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어요.”

“여보, 여기 사진을 봐요. 집이 상당히 예쁘게 꾸며져 있네요.”

어머니는 일 층에 있는 큰방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셨다.

“이거 직접 도배를 한 거냐?”

“에이 도배를 제가 어떻게 해요. 전부 전문가 불러서 시킨 것입니다. 도배지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으로 부탁한 거지요.”

동현은 아버지의 질문에 기분 좋게 대답해 드렸다.

“짐은 언제 옮기면 되는 것이냐?”

“바로 들어 갈 수 있게 해 놓았으니, 아무 때나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언제 비워 주어야 하나요?”

동현의 말에 아버지는 안심이 되는 얼굴이 되셨다.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당장 비워 주어야 하는 것 같았다.

“잘 되었구나.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면 바로 비워야 하니, 지금이라도 비우면 될 것이다.”

“그러면 제가 내일 이사를 하면 되겠네요. 새로운 집으로 모두 옮겨 두겠습니다. 아버지는 한번 가셔야 하지 않아요?”

동현은 자신이 없을 경우에 아버지라도 집을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시간이 나면 가도록 하자.”

“어머, 저도 같이 가요. 이제 우리 집이 생겼는데 구경은 해야지요.”

어머니는 아프신 몸이지만 자신의 집이 생겼다고 하시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평생을 남의 집에서 세를 사시다가 우리 집이 생겼다는 소리에 당장이라고 가서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퇴원을 하시고 가면 되잖아요.”

“아니다. 병원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그러니, 잠시 외출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 보고 싶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가자고 하셨다.

오랜만에 가족들의 나들이가 될 수 있는 일이라 동현도 반대를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함께 나들이를 한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이제 자신이 조금만 더 수고를 하면, 식구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동현은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 싶었다.

‘가족들이 편히 살려면 생활을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좀 편하게 버는 방법은 없나?’

동현은 아직까지 이계를 떠나 현실에 완전히 적응을 하였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현대인의 가장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였고, 이용할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대책을 세우기라도 할 텐데, 자신은 아직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동현의 머리는 이럴 때 가장 잘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이 직접 공부를 한다는 것은 뇌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세론을 이용할 방법을 찾았다.

세론은 눈에 보이는 않지만 일단 에고였고,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존재였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었다.

‘세론을 이용하여 정보와 공부를 하자. 그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동현이 자기 편하자고 세론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동현이 모르고 있었다. 세론도 차원을 이동하면서 서서히 진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주인인 동현의 지시만 받아 해결을 하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사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세론 지금 뭐하냐?’

‘마스터를 위해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열심히 수련을 해야지. 그런데 이곳의 정보를 모아야 하는데, 너의 기억력이 필요하게 생겼다.’

‘무슨 일이십니까?’

세론은 기억력이 필요하다고 하니 바로 호기심을 보였다. 세론이 아무리 발전을 하고 있어도, 동현의 잔머리를 당할 재주가 없었는가 보다.

‘이곳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우선 너도 이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니?’

동현의 자세한 설명에 세론도 쉽게 수긍하는 바였다.

‘당연하지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수련을 하여 이곳에 대해 배우려고 합니다만.’

‘그래, 하지만 수련만 해서는 여기를 배울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수련을 열심히 해야 아공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아공간을 사용하게 되면 좋은 일이지. 하지만 우선 정보를 모아야 하니, 네가 공부를 좀 해야겠다.’

동현은 세론에게 이곳의 지식을 배우게 하기 위해 살살 꼬드기고 있었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와는 인연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제가 공부를 하려면 마스터께서 보고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요?’

세론의 말에 동현은 이계의 신들이 했던 말 중에 깜빡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들은 세론을 함께 보내면서 이곳에서는 세론이 세상을 직접 보지 못하니, 오로지 동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동현은 열심히 세론을 꼬드긴다고 잔머리를 굴렸는데, 모두 필요 없게 되자 열이 올라 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자기 변하는 동현의 낯빛에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동현아 무슨 고민이 있니?”

“아…아니에요.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다가 보니 그랬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집은 오늘 갈 수 있는 거니?”

“예, 일단 간호사에게 외출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동현은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세론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계의 신들이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난 동현이었다. 동현은 병실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세론에게 질문을 하였다.

‘세론, 신들이 가한 제재가 더 있냐?’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아! 한 가지 더 있다면 제가 조금 이상하게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상하게 변한다는 것은 무슨 소리냐?’

‘아마도 저에게 이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감정이 생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현은 세론의 말에 기겁을 하였다. 세론은 에고이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정이 생긴다는 말인가?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동현이었다.

‘에고에게 감정이 생기면 어떻게 변하는 거냐?’

‘저도 모릅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동현은 아무래도 신들의 장난에 자신이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곳의 신은 알지 못하지만, 이계에는 분명히 신들이 있었고 자신이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점차 신들도 완벽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현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세론이 감정이 생기게 되면, 이거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것이 아냐?’

세론과 동현은 서로가 의사소통도 가능했고, 지금까지는 세론을 통제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감정이 생기게 되면, 앞으로 세론을 예전과 같이 대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세론의 생각을 동현도 읽지 못하고, 세론도 마찬가지로 동현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동현에게 속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소유가 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동현이 스스로 예전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과연 이곳에서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수련을 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마나가 풍족한 이계에서조차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고, 그나마 기연이 없었으면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현은 일단 세론의 문제는 시간이 가야 해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간호사를 만나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간호사들이 있는 곳으로 간 동현은 오만 가지 변명을 다해서 겨우 외출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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