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그 때 한 마담이 고함을 질렀다.
“그만하세요!”
한 마담은 성철이 부상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다음 공격을 하려는 동현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상태로는 절대 동현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철이 부상을 당하게 되면 가게를 지킬 수가 없다.
요즘 강남에 이상한 기운이 돌고 있다는 것을 한 마담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성철마저 부상을 당하게 되면 강남의 힘은 지금보다 더 약해질게 뻔했다.
그리고 성철과 한 마담의 사이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도 했다. 한 마담이 어렸을 적에 성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거의 애인과 같은 사이로 발전하여 지금까지 지내고 있었다.
동현은 자신을 말리려고 하는 한 마담을 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같은 패거리냐? 나는 여자라고 그냥 두지 않아.”
한 마담은 동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온몸에 한기가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차가운 목소리인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었다.
“그…그게… 아니에요. 저는 이럴 줄은 몰랐어요.”
떨리는 한 마담의 목소리에 동현은 그 안에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 같으면 먼저 공격하는 놈들을 그냥 두고 보겠냐?”
동현의 말에 한 마담은 한숨만 나왔다. 건달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아는 한 마담의 입장에서는 동현의 일처리가 당연한 것이었다. 가게를 지켜 줄 성철이 부상을 당하게 되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 뻔했기에 말리고 싶었다.
“성철 씨 무슨 일인데, 이러시는 거예요?”
성철은 동현에게 팔이 부러졌지만, 아직도 동현이 팔을 잡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성철의 팔을 잡은 상태에서 팔을 부러뜨리고, 그 몸에 내공을 집어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기라는 것을 모르는 성철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신기하기만 했지만, 자신이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동현과 같은 고수를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동현은 지금 성철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내공을 회수하고 있었다. 내공을 회수하자, 성철은 밀려오는 고통에 저절로 신음소리가 났다.
“크윽!”
“엄살 부리지 말고 이제 대답해 보시지. 나를 공격한 이유에 대해서 말이야. 나를 알고 있으면서 공격을 한 것은 누가 시켜서 한 짓이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냐?”
자신을 바라보는 동현의 눈빛에 아직도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잘못 말을 하면, 아마도 자신은 더 이상 건달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크윽!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다. 단지 부탁을 하려고 실력을 알아보고 싶어서 한 일이다.”
“너 비룡이 하고 무슨 사이냐?”
“비룡이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냐?”
동현은 성철이 하는 말을 대강 알아들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건달들을 얼마나 두들겨 패고 다녔는데, 그런 자신에게 부탁을 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건달들 중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놈들도 있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부탁을 하려고 하다니 도대체가 무슨 꿍꿍이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대강은 들었다. 한 때 비룡이도 맞고 다녔다고 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데 부탁을 하기 위해 시험을 하였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너한텐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 조직의 사정이 급하게 돼서 어쩔 수 없었다.”
성철은 어차피 실력이 되지 않으니 비겁하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동현도 성철의 눈 속엔 거짓이 없음을 느꼈지만, 건달들을 도와준다는 것이 왠지 껄끄러웠다.
잠깐의 침묵 동안 동현의 태도가 냉정하게 변하는 것에 성철은 점점 초조함에 식은땀만 흘렸다. 하지만 그런 간절함이 묻어나는 모습에 동현은 마음이 흔들렸다.
“휴우, 일단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 봐.”
동현의 말에 성철은 팔에서 오는 고통도 잊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마담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동현은 성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는 말이 끝나자 곧바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강남에는 조직이 얼마나 되냐?”
“모두 세 개의 조직이 있지만 지금은 두 개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너희 조직의 대가리는 무엇을 하기에 당하기만 하는 건데?”
성철은 동현이 가장 중요한 핵심을 묻자, 제법 상황을 파악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직도 대항을 하고는 있지만, 이상하게 항상 뒤에 도착을 하고 있다.”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군.”
동현은 바로 이유를 알아챘다.
성철도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동현처럼 확신을 하지는 않았다. 동현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결론을 내리니, 속으로 조금 놀라고 있었다.
‘대단하군, 실력도 좋고 머리도 뛰어난 인물이다.’
성철은 동현의 명성이 왜 이렇게 알려져 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너는 그만 가서 팔이나 치료해라. 그냥 가볍게 부러뜨린 거니 금방 붙을 거다. 그리고 내가 좀 생각해 보고 연락을 하마.”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 마담을 한차례 보고는 나갔다. 동현의 눈빛에 한 마담은 마른 침만 조용히 삼킬 뿐이었다.
동현이 나가고 한 마담은 성철에게 다가갔다.
“저런 사람을 시험한다더니 되레 부상을 입으면 어떻게 해요.”
“나도 몰랐다.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도와주기만 하면, 강남의 일은 처리가 쉬워질 텐데 말이야.”
성철도 동현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이미 자신이 실수를 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동현의 대답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마담은 그런 성철을 보고 한숨만 나왔다.
자신이 보기에 동현은 그리 악랄해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오히려 악감정만 심어 줘, 강남 일이든 뭐든 아무 것도 성사되는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일단 애들 좀 불러 줘. 치료부터 해야겠다.”
“알았어요.”
한 마담이 나가고 혼자 남은 성철은 동현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조직의 대가리들은 일부는 병원에 있었고 일부는 숨어 있었다. 상당수가 부상을 입어 지금은 기동력이 없었기에, 성철은 동현의 도움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성철은 남은 한손으로 품에 있는 전화기를 꺼냈다.
“크윽! 제기랄… 제법 아프네.”
부러진 한 팔에서 오는 통증 때문에 인상이 저절로 써졌다. 통증을 참으며 성철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다. 성철이.”
“안다. 아까도 통화했는데, 다시 전화를 건 것을 보니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지?”
“그래, 그 꼴통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성철의 말에 비룡은 바로 다급하게 물었다.
“뭐?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
성철은 비룡의 다급해 보이는 말에, 속으로 이놈이 꼴통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애들과 잠시 다툼이 있었는데, 애들이 모두 박살이 났다.”
“다른 문제는 없고?”
“도대체 꼴통은 누구냐?”
비룡은 성철의 가게로 동현을 소개해 주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 동현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두를 이야기해 주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자신도 동현에게 무진장 두들겨 맞았으니 절대 동현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 동현의 실력은 전국구 주먹보다 강했다. 무엇보다도 그 성격이 개차반이라 한번 폭주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으니 주의하라는 소리였다.
성철은 그런 소리를 왜 진즉에 하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얼른 수습을 할 수밖에는 별다른 길이 없었다.
“휴우,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나?”
φ φ φ φ φ
성철이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자리로 돌아간 동현은 지금 만영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비 내리는 호남선 완행열차에…….”
만영의 파트너가 노래를 부르고, 동현과 만영은 신나게 춤을 추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미 양주는 벌써 두 병을 넘어 세 병째를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노래가 끝나자 동현은 자신의 파트너인 아가씨를 보며 눈치를 주었다. 아가씨도 눈치가 빠른지 바로 마이크를 넘겨받아 분위를 띄우기 시작했다.
동현과 만영은 그렇게 신 나게 놀았고, 동현은 만족해하는 만영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친구라고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놈이었기에 최대한 잘해 주고 싶어서였다.
이제부터는 친구인 만영도 잘살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동현은 그저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즐겁게 놀고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싶었다.
“어이! 이제 마담 오라고 해.”
“호호호, 알았어요. 오빠.”
아가씨는 이제 이차를 가야 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지 앙칼스럽게 웃고 있었다.
만영의 옆에 있는 아가씨가 무슨 소리를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만영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동현은 그런 만영의 얼굴을 보며 아주 흡족하게 생각했다.
“이제 나가면 바로 호텔로 가는 거다.”
“호호호, 알았어요. 오빠도 좋지?”
아가씨는 만영을 보며 물었고, 만영은 더욱 얼굴이 붉어지며 간신히 대답을 하고 있었다.
“조…좋지.”
만영의 파트너는 수줍어하는 그런 만영이 좋은지 더욱 만영을 놀리고 있었다. 동현이 보기에는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잠시 후 한 마담이 들어왔다.
“여기 계산하고 가려고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계산서 가지고 올게요.”
한 마담은 그러면서 동현을 보며 자꾸 눈짓을 하였다. 동현은 마담의 눈짓에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여자가 부탁을 하는데 외면할 수는 없어 따라 나가고 있었다.
“어머, 오빠 설마 마담 언니에게 관심이 있었던 거예요?”
아가씨는 마담과 나가는 동현을 보고는 장난처럼 농담을 던졌다. 한 마담은 그런 아가씨에게 싸늘한 눈빛을 날렸고, 아가씨는 바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동현은 그런 두 여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어서 가지.”
동현의 말에 마담은 고개를 돌려 바로 나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마담이 동현의 말에 군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동현은 마담의 안내로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마담은 갑자기 자존심을 버리고, 동현을 앞에 두고 무릎을 꿇어앉다.
“제발 우리 성철 씨를 도와주세요.”
“아니 마담.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도와달라는 거?”
“제발 부탁이에요. 성철 씨도 그렇지만, 우리 여자들도 생계가 달린 문제에요. 도와주세요.”
한 마담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동현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동현은 한 마담의 눈물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약점이 있다면 바로 여자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눈물로 호소를 하고 있으니, 동현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하기만 했다.
이대로 한 마담을 둘 수도 없고, 자신도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 다시 말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성철인가 하는 사람에게 내일 내가 찾아오겠다고 하시오.”
무턱대고 도움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내일 만나서 정확한 사정을 들어 보기 위해서였다. 한 마담은 동현의 약속에 기쁨이 어린 얼굴을 하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허참, 아직 나는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 아니니 너무 고마워하지 마시오.”
동현은 확실하지 않는 일에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건달들의 세계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이기 때문에, 힘이 약하면 어쩔 수없이 잡아먹히게 된다. 자신이 도움을 준다면 지금은 편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결국 사라지게 되는 것이 이 세계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동현은 아가씨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에 한 마담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계산은 어떻게?”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애들에게도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나가시면 바로 호텔로 안내를 해드릴 것입니다.”
한 마담은 처음부터 이차를 갈 애들만 골라 데리고 왔다.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잘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동현은 그냥 가라는 말에 왠지 찜찜한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계산을 하려고 하면 친구인 만영이까지 나가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일단을 이들의 친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맙소. 아가씨들은 내가 책임지고 계산을 해 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