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형님의 아들인 동현에 대해서는 자신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때 중계동에서 꼴통이라고 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주먹들도 겁을 내는 인간이었지만, 성민이 형이 두들겨 패서 건달의 세계로 가지 못하게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아둔한 자식들이 그런 인물을 건드린 것이다.
비록 전국구나 되어야 알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성민이 형도 한때 해결사로 그 명성이 드높을 정도로 주먹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부하들은 사장이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몰랐지만, 자신들이 지금 엄청난 실수를 하였다는 것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사장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인간을 자신들이 건드렸다는 것을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켜서 일어난 일이니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사장님.”
“어이, 날치! 너 지금 죽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 거지?”
사장이 자신의 별명을 부를 때는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나 있다는 뜻이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하였습니다.”
날치는 사장의 앞에 바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눈앞에 있는 날치를 보니 정말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따르는 부하였기에 차마 그럴 수는 없어 화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부하의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생각하고는 이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그분에 대해 조금 알려 주었으면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내가 실수했다.”
사장의 말에 부장은 진심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구길래, 저러는 거지?’
부장은 속으로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때 부하들 중에 눈치가 없는 놈이 사장에게 질문을 하였다.
“사장님, 대체 그분이 누구십니까?”
사장은 방금 질문을 한 놈에게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질문을 한 놈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 어린, 사장의 눈빛에 질겁하고는 바로 머리를 깊숙이 처박았다. 그런 부하를 보며 저 모자란 놈들에게 조금은 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치야.”
“예, 형님.”
“너 중계동에 꼴통이라고 들어 보았냐?”
“듣기는 했지만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사장은 그런 날치를 보며 기가 막혔지만 조금만 더 참자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을 아작 낸 사람이 바로 중계동 꼴통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전국구로 유명한 해결사고 무슨 소린지 알겠냐?”
사장의 설명에 날치는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그러면 전국구로 유명한 해결사의 아들이 꼴통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성민이 형님은 나처럼 전국구 주먹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내가 왜 그분에게 정중하게 대하는지를 알겠냐?”
사장의 말에 날치는 까딱 잘못했으면 죽었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에 모골이 다 송연해졌다.
자신도 주먹의 세계에 살고 있고, 전국구로 유명한 주먹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사장도 전국구로 유명한 주먹이었고, 한때는 불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불곰이 형님으로 모실 정도였다면, 자신 정도는 눈만 까딱거려도 조용히 은퇴를 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이었다.
“사…사장님 제가 지금 살아 있는 겁니까?”
날치는 목을 만지며 놀란 눈을 하고는 사장을 보며 물었다.
“너희들 당장 나를 따라 나가자. 가서 형님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겠다.”
사장의 말에 부하들은 이구동성으로 힘차게 대답을 하였다.
“예, 사장님.”
상호실업의 직원들은 그렇게 동현의 아버지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동현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새로 구입한 집을 단장하는 것만 신경 쓰고 있었다.
이제 살고 있는 집은 어차피 비워 주어야 했기 때문에 짐만 가지고 올 생각이었다. 동현이 짐을 옮기기 위해 집에 도착을 하니, 집 앞에 고급 승용차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집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올 사람이 없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지난번 자신에게 맞은 상호실업의 직원들이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얼레? 너희들 여기는 왜 왔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거냐?”
동현은 건달들이 집에 와 있다는 것에 서서히 몸에서 살기가 일고 있었다. 동현의 독기 어린 모습에 건달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오늘은 정식으로 사과를 하기 위해 왔습니다. 저희 사장님과 함께 말입니다.”
“사장님이 왔다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사장의 출현에 동현은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집안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주인이 없는 집에 함부로 들어가 있는 것이 썩 유쾌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아버지의 손님이라는 생각에 잠시 참기로 했다.
“지금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건달 중에 막내로 보이는 놈이 동현에게 정중하게 말을 하였다. 부장이라는 놈은 나이가 동현보다는 많았기에 존대를 하는 것이 조금 껄끄러운지 딴청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과는 무슨 사과를 한다는 말이냐?”
“저희 사장님의 지시를 어기고, 저희들이 독단적으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동현은 사장이 이들에게 사정을 듣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부장이라는 놈은 부러진 다리를 치료했는지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구들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동현입니다.”
동현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먼저 인사를 하였다.
“반갑네. 한때 아버님을 형님이라 불렀던 김정민이라고 하네. 자네 아버님을 만나 뵈러 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이렇게 실례를 하고 있다네.”
동현은 여태까지 사장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시는 바람에 그곳에 계십니다.”
“아니 입원을 하셨다는 말인가?”
“예, 몸이 안 좋으셔서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병원이 어디인지 알려 주게.”
사장은 동현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며 물었다.
“공릉동 사거리에 있는 좋은 병원 405호실입니다.”
“고맙네.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실수를 하였다고 들었네. 자네에게는 정말 미안하네.”
사장은 동현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않고, 직원들의 실수에 대한 사과만 하였다. 동현도 사장의 진심을 알고는 바로 사과를 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과한 짓을 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저들이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니 과한 것은 아니지.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동현의 말에 사장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아마도 사장과 직원들은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으로 갔을 것이다.
동현은 문득 아버지가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눈으로 보아도 건달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흠, 아버지의 과거를 캐 봐? 아서라.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따져야 나만 손해지.”
동현은 이계에서는 단순 무식이 아니라 제법 머리를 굴리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다시 현대로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동현이 새로운 집을 새롭게 꾸미기 위해 도배와 장판을 모두 다시 하였고, 이제 어머니만 퇴원을 하시면 완벽해지는 것이었다.
며칠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동안 병원과 집을 왕복하면서 누구도 모르게 은밀히 집을 꾸몄고, 퇴원 선물로 이 집을 어머니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다.
“이 정도면 어머니도 만족하시겠지? 동현은 자신이 직접 고른 벽지 덕에 집안이 화사하게 변한 것 같아 아주 만족을 하고 있었다.
일부는 어머니의 취향을 반영했지만, 전체적으로 동현이 꾸민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
드드드드-
호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동현은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종로의 박민영입니다.”
종로의 박민영이라는 소리에 다이아가 팔렸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이아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시간이 되시면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매장으로 가면 될까요?”
“아닙니다. 시청에 있는 롯데호텔 입구에서 4시에 만나도록 하지요. 구매를 원하는 손님이 그 장소를 원하시네요.”
“알겠습니다. 시간에 늦지 않게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동현은 통화를 마치고 오늘은 정장을 입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소도 장소이고, 구매를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니 만큼, 그래도 옷을 어느 정도는 차려 입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보기보다 동현의 옷걸이는 상당히 좋았기에 싸구려 정장이라고 해도, 충분히 고급스럽게 보이게 했다.
시청의 롯데 호텔이 있는 곳에는 종로의 박민영 책임자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현이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는 바로 달려 나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오늘 큰 거래라 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예, 이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자, 안으로 가시지요.”
박민영은 동현을 데리고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민영이 최소 오십억이라고 불렀던 다이아가 직접 시장을 알아보니, 무려 백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사무실보다는 안전한 장소를 고르게 되었고, 호텔로 정해진 것이다.
동현은 자신을 데리고 가는 장소가 고급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룸이라 조금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참, 돈 많은 놈들은 이런 데서 식사를 하니, 맛이 좋은가?’
동현이 알기로는 이런 곳은 식사비가 장난이 아니라고 알고 있어서였다.
“여기입니다.”
민영은 고급 룸의 입구의 문을 열면서 들어가라고 하고 있었다. 룸의 안쪽에는 고급스런 옷을 걸친 중년의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동현을 보고 거만하게 고개만 까닥이고 있어, 동현도 그대로 고개만 약간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민영은 그런 동현을 보며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아직 상대가 누구인지를 모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 이분은 다이아의 실소유자이고 저기 계시는 분은 이번 물건을 구입하실 분입니다. 자 그럼 가격에 대해 말씀을 하시지요.”
민영의 설명에 동현은 상대에 대한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에 금방 이해를 하였다. 안전한 장소까지 택하며 이런 귀한 보석을 구매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다이아의 소유주를 보니 반갑네요. 그런데 너무 젊은 분이라 조금 의외네요.”
“왜죠? 젊은 사람은 다이아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동현은 중년 여자의 질문에 맞받아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바로 가격을 말하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말이었다.
여자도 그런 동현의 뜻을 파악하였는지 이내 얼굴색이 변했지만, 옆에 있는 여자가 더 높은 사람인지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호호호, 젊은 분이 상당히 도전적이시네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얼마면 되나요?”
동현은 여자의 질문에 민영을 보았다.
이미 입구에서 가격에 대해 어느 정도는 들었기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 정도에 기절을 할 정도로 담이 작지는 않았다.
“가격에 대해 따지고 싶지 않으니, 그냥 딱 한 장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동현의 말은 백억을 말하는 것이었다.
민영이 알아본 바로는 백이십억 정도의 말이 나왔지만, 아직 정해진 금액은 아니었다. 대강 가격이 그 정도가 된다는 것이었다. 동현은 이런저런 말로 골치가 아픈 것이 싫어 바로 백억으로 정해 버렸다.
“물건은 가지고 오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동현은 품에서 다이아를 꺼내 놓았다. 보통은 다이아 정도면 보석 상자에 보관을 하는 반면에 동현은 그냥 안주머니에서 다이아만 꺼내고 있으니, 중년의 여자도 놀라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