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장사라도 해 볼까? 술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하던데.”
동현은 술을 먹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문득 자신도 술장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장사라고 해서 모두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어머니는 내가 술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아마도 다시는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하실지도 모르지.”
동현은 술장사에 대한 미련은 바로 버려 버렸다.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어머니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이내 아침이 되었는지 출근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분비기 시작했다. 동현은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한가하게 있는 자신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모두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는 이렇게 한가하게 있으니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드네.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해 있자.”
동현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신림동은 번화가라 그런지 9시가 되자 금방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동현은 하나의 금방이 보이는 자리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기에, 금방이 문을 열자 바로 그곳으로 갔다.
제 딴에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천천히 움직인다고 했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동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장인지 종업원인지 반갑게 인사를 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동현은 자신에게 하는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그동안 다른 세상에서 지내면서 저절로 몸에 베인 습관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다.
“여기 혹시 금도 매입합니까?”
동현의 말에 금방 주인은 눈빛이 달라지면 동현의 몸을 수색하듯이 살폈다. 혹시나 장물이 아닌가 하는 눈빛이었다.
“예, 매입합니다. 손님.”
주인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기는 했지만, 동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이 장물이 아닌 자신의 물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동현의 이런 행동은 주인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해 주었고 주인의 눈빛은 이내 부드럽게 바뀌었다.
동현은 마법 주머니에서 빼 두었던 금화를 열 개 정도를 청바지에서 꺼내, 주인이 보는 앞에서 내보였다.
“여기 주화인데 외국에서 만든 기념주화입니다.”
골드는 모두가 같은 것이고, 한국에서는 외국의 금화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에 하는 말이었다.
주인은 금화를 보며 조심스럽게 받아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기념주화를 가지고 오는 손님들은 그리 형편이 좋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금화를 확인하게 되면, 가격을 최대한 적게 주어도 거래가 되기 때문에 주인의 눈에는 반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주화는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 주화가 맞습니다. 지금 파시겠습니까?”
“예, 팔려고 가지고 온 것이니 팔아야지요. 얼마나 됩니까?”
주인은 속으로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이내 계산기를 꺼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순금의 시세가 한 돈에 십사만 원 정도 합니다. 하지만 매입을 하는 가격은 십만 원 정도입니다. 손님.”
주인은 보통은 십일만 원이었는데, 자신의 앞에 있는 손님은 당장 돈이 급한 듯이 보여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기 위해 그렇게 말을 하였다.
동현은 주인의 눈빛을 보고는 이내 알아차렸지만, 금화 열 개 정도는 손해를 보고 팔아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여기 금화 한 개에 얼마나 합니까?”
“금화 한 개가 대량 석 냥 정도 되니, 개 당 삼백만 원입니다. 손님.”
주인은 사실 금화 한 개에 석 냥 반하고도 한 돈 정도가 더 되었지만, 그냥 석 냥 반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동현은 한 개에 삼백만 원이라고 하니 바로 두 개만 팔기로 마음을 정했다. 앞에 있는 주인이 욕심을 부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팔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럼 여기 두 개만 팔겠습니다. 바로 계산해 주세요.”
동현이 두 개만 판다고 하니 주인의 얼굴은 금세 변해 버렸다. 눈에 보이는 금화가 모두 열 개인데 두 개만 판다고 하니, 더욱 욕심이 나는 것이었다.
“손님 그러지 마시고 저희에게 모두 파시지요. 제가 조금 더 계산을 해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더욱 친절한 얼굴을 하며 동현을 보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동현에게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두 개만 팔겠습니다. 사기 싫으시면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동현의 냉정한 말에 주인은 속으로 조금 더 불렀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두 개만 사도 이득이었기에 바로 웃으면서 대답을 하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통장으로 보내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냥 돈으로 주세요. 지금 당장 써야 하니 말입니다.”
동현은 지금 주민등록증도 없었고, 자신의 통장은 있지만 번호를 몰라 알려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동현의 말에 주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고는 금고에서 돈을 꺼냈다.
“여기 수표하고 현금입니다.”
평소에 금전 거래가 많은지 주인은 백만 원씩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현은 주인이 주는 돈을 확인하였다.
“육백만 원이 맞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바로 나갔다. 동현이 나가는 모습에 주인은 상당히 아쉬운 눈빛을 하며 동현의 뒷모습을 쫓았다.
φ φ φ φ φ
현금이 생기자 동현은 가장 먼저 옷을 사 입기로 하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자신에게 조금 작아 불편해서였다. 신림동은 번화가라 그런지 군데군데 옷을 파는 곳이 많이 보였다.
“저기로 가서 사면 되겠다.”
동현의 눈에 보인 곳은 영화관이 있는 건물이었고 건물 전체가 옷을 파는 곳 같아 보였다.
나이가 나이니 만치 정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동현은 자신의 몸에 맞는 양복을 구입하였고, 다음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움직였다.
군 제대를 하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 바로 핸드폰이었다. 동현은 아직도 핸드폰이 없이 지내 왔기에, 이번에는 구입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동현은 핸드폰 매장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지만, 아직까지 신분증이 없었기에 살 수가 없었다.
“이거 주민등록증을 먼저 발급받아야겠네. 신분증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잖아.”
동현은 신분증을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바로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때르릉-
“여보세요?”
“만영아 나다.”
“누구? 혹시 동현이니?”
만영은 자신과 산에 갔다가 실종이 된 동현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동현이 실종이 되고 난 뒤, 가장 고생을 한 사람이 바로 만영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산에서 실종이 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밤에 나가서 실족을 하여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근 일 년을 산을 뒤지고 다닐 정도로 고생을 한 만영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동현은 만영이 묻자 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래, 너의 베스트 동현이다.”
“야! 이 망할 새끼야,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데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은 거냐?”
만영의 입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욕설이 뛰어 나왔다. 동현은 그런 친구의 반응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대꾸를 해 주었다.
“미안하다. 나름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되었다. 일단 나하고 좀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
“너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여기 신림동 사거리인데, 어디로 갈 것인지 말해 주면 찾아갈게.”
“아니 너 거기 그대로 있어 내가 그리로 갈게.”
동현은 만영이와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는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다고 하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동현은 친구인 만영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로 갔다고 하면 아마도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니, 다른 말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땅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자, 결국 그냥 대강 말을 지어내기로 했다.
동현이 그러고 있을 무렵, 만영은 급하게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차를 몰아 동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이 새끼 만나기만 해 봐라. 아주 아작을 내 버릴 테니.”
만영은 동현의 연락을 받고 상당히 놀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친구라는 놈이 그동안 연락도 없어 죽었다는 생각에 엄청난 맘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동현의 부모님을 뵈면서도 죄송한 마음에 얼굴을 들지도 못하였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머니의 수척해지신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만영은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렸다. 신림동 사거리에 있는 커피숍의 입구에는 만영이 도착을 하여 가뿐 숨을 달래고 있었다.
“휴우, 휴우.”
잠시 숨을 고른 만영은 문을 열고 안을 보았다. 카페의 안에는 그리 많은 손님이 없었기에, 창가에 앉아 있는 동현을 바로 찾을 수가 있었다. 동현의 모습을 찾은 만영의 얼굴에는 열불이 나서인지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바로 동현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 어서 와라.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
동현은 친구인 만영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모른 척 편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만영도 동현의 말에 우선은 동현이의 사정을 들어 보기로 하였는지, 눈에서는 불길이 나오고 있었지만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우선 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고 말을 하도록 하자.”
만영이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지며 말을 하자 동현은 괜히 몸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만영이의 얼굴에 한기가 돌고 있어서였다.
“만영아 내 말을 오해 하지 말고 들어 주었으면 한다.”
동현은 자신이 지어낸 말을 만영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갔을 때 동현은 답답함을 느껴 잠시 밖으로 나가게 되었고, 불어오는 찬바람이 답답함을 없애 주는 기분이 들어 잠시 바람이나 쐬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고는 무엇인가에 홀렸는지 걷기 시작했고, 결국 절벽이 있는 곳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 자신을 누군가가 구해 주었고 치료를 위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문제는 떨어진 후유증 때문인지 자신은 기억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기억이 없는 동현은 치료를 마치고 자신을 구해 준 기인의 말대로, 약초를 캐내서 파는 일을 하게 되어 한동안을 그렇게 지내다가 얼마 전, 산삼을 발견했다. 기쁨에 겨운 나머지 한 뿌리의 산삼은 자신이 먹었고, 결국 산삼의 약효인지 자신은 기억을 찾을 수가 있게 되었다. 다시 기억을 찾은 동현은 산삼을 팔아 자금을 만들었고, 곧바로 자신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였다.
만영은 한참을 동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동현의 이야기가 마치자 겨우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고가 나서 그동안 기억을 잃었는데, 마침 산삼을 캐서 그걸 먹고 기억을 찾았다는 이야기네. 그치?”
“응, 맞아.”
“야! 지금 장난하냐? 너 때문에 너희 어머니는 지금 병으로 쓰러지셨는데,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나 하고 있는 거냐?”
동현은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데? 어서 말해 봐.”
동현의 반응에 만영도 놀랄 정도였다. 동현의 눈빛이 너무도 강렬하여 만영은 꼼짝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저것이 진짜로 산에서만 살았나?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
만영은 동현이 보이는 태도에 약간은 의심이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이도 동현의 의도적인 행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식이 까불고 있어. 내가 그렇다고 하면 무조건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