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9장. 공동파와 싸우다(5권) (41/62)

제39장. 공동파와 싸우다

갑자기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접속을 하자 총관이 내게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공동 장문인 해광이 보낸 서찰이었다.

그걸 본 나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조 문주 보시오.

조 문주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악독한 계책을 꾸몄는지 본 도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소.

무엇이 그리 아쉬웠던 게요? 감숙의 삶이 비록 풍요롭진 못해도, 사황성과 같은 마인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더라도 버텨 볼 수 있진 않소? 더구나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소요파에서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소.

길게 말을 늘어놓을 이유도 없을 것 같소.

이미 일은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렸고, 대화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인 것 같소.

조 문주가 이번 일을 꾸민 배짱만큼 실력도 있길 바라오.

공동파 장문인 해광의 이름으로 소요파 문주 조연에게 전하오.

더 이상 공동파와 소요파가 같은 하늘을 보고 살 순 없을 것이오.

-공동 문중 장문 해광>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서찰을 다시 읽어봐도 내용은 똑같았다. 공동파의 선전포고였다!

“야, 총관! 이거 언제 온 거야!”

놀란 눈이긴 총관도 매한가지였다. 녀석도 이제야 편지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이,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주님! 고, 공동파가 정말 우릴 공격하는 건가요?”

녀석도 얼마나 놀랐는지 대답은 않고 잔뜩 겁에 질려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놈아, 묻는 말에나 대답해! 이거 언제 온 거냐고!”

면상에 대고 버럭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총관이 질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오늘, 오늘 아침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문주님!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오늘 아침이라… 그렇다면 잉어들을 만난 게 들통 났다는 것인가? 하지만 겨우 그거 가지고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 리는 없을 텐데…….’

우호 관계가 갑자기 전쟁으로 변할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배신이 들통 난 경우.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내가 내 입으로 직접 배신을 입에 담지 않는 한 외부인이 지금 우리 상황을 알아차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어제 잉어와 내가 나눈 대화를 공동파 사람이 목격했다고 해도 바로 선전포고로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명 NPC 소행은 아닐 것이다. 대화 내용을 낱낱이 파악한 유저가 중간에 농간을 부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인간은 두통이라는 녀석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아무리 공동파라도 NPC들만이라면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숫자지만 공동에도 유저들은 있었고, 어쩌면 두통은 백무보다 더한 골칫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총관! 지금 공동파와 어떤 상태인 거지? 설명 좀 들어야겠다. 제약 없는 무제한 전쟁이 발발한 건지, 아니면 문파대전만 치르면 되는 건지 말이야.”

일단 현 상태를 확실히 알아두어야 다음 행보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흐유, 문주님이 또 무슨 사고를 쳐서 일이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정말 큰 실수 하신 겁니다. 간단히 문파대전만 치르면 될 거라 생각하실 문제가 아니라구요.”

“야, 총관! 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잡설은 그만 하고 지금 소요파가 처한 상황이나 잘 설명해보라고!”

총관은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이 입을 우물거리다가 내가 무섭게 노려보자 겨우 설명을 해줬다.

“아무리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무분별하게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건 아니죠. 공식적으론 문파대전만 허용됩니다. 사적인 싸움이라면 또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무림맹 소속 문파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지면 맹은 방관하는 게 관례였지만, 사황성이 걸린 문제다 보니 분명 개입하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죠.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랍니다. 지금 겨우겨우 결맹을 맺은 문파들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어쩌면 소요파는 무림공적이 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흐유, 내가 말년에 어쩌자고 이런 고생을 하게 되는 건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흐유…….”

총관이 차분하게 설명을 하다가 끝에 가서는 또 한숨을 토해낸다.

듣고 보니 녀석이 이렇게 청승을 떠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이 아니었다. 무림공적이 되어 강호 전체와 싸운다는 것은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살아날 도리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꼬여 버렸지? 반쯤 재미로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정도로 가볍게 진행하진 않았는데……. 대체 두통이 놈이 어떻게 내 뒤를 밟을 생각을 한 거지?’

놀랐던 가슴이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경직됐던 머리가 조금씩 풀어지고 해답의 실마리가 겨우 머리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렸다. 이대로 달려가 볼 수밖에 없어.’

지금 당장 확인하고 수습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일의 성사는 할 일을 다 마쳐 놓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총관을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총관! 다음 문파대전 전까지 결맹한 문파들이 이탈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해줘! 흔들릴 것 같으면 돈으로 회유하든 협박을 하든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공동파에 붙게 만들지는 말아줘! 그리고 난 문파대전 전까지 낙양 무림맹에 들러봐야 하니까 일이 생기면 바로 전서구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고!”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총관의 대답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계가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문도들에게 이 꼬여 버린 상황을 설명하는 전서구를 날리고, 일주일 후의 문파대전 하루 전까지는 문파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간부들에겐 지금 당장 문파로 돌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문파로 집결한 간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 지침을 내렸다.

각룡이 형은 사황성으로 출발했다. 이 상황에서 사황성마저 소요파에 칼을 들이댄다면 정말로 큰일이었다. 협조는 못 받을지언정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받아내야 했다.

공동파로 들어가 적황을 알아보는 일은 조자건과 고현 두 사람의 몫이었다. 관계를 회복시킬 요량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 진중한 성격의 조자건과 고현의 잔머리라면 놈들의 대응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 *

한시도 지체 없이 낙양으로 달려온 난 무림맹 접객당주 노대광의 극진한 호의 속에 무림맹주 조운학을 만날 수 있었다. 무림에서의 지위가 올라간 탓인지 그 기분 나쁘던 호위무사들의 검속(鈐束)도 받지 않았다.

조운학은 여전했다. 능구렁이가 푸근한 웃음으로 날 맞이해주었다.

“조 문주,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근자에 소요파의 발 빠른 행보에 대해선 아랫사람들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창 바쁘실 텐데 어인 일로 오셨소이까?”

‘휴, 다행이군.’

맹주의 말을 듣고서야 은근히 품고 있던 걱정이 가셨다. 아직 조운학은 공동파에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매번 일이 있어야만 찾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자주 맹주님께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날 쳐다보던 맹주는 금세 그 의구심 가득 찬 표정을 너털웃음으로 지워버린다.

“허허, 이 자리가 일하라고 있는 것이니 조 문주는 그런 말씀 마시구려. 다급해 보이는 것 같으니 겉치레는 던져 버리고 조 문주가 들고 온 용건이나 들어봅시다. 그래, 이번엔 또 무슨 문제로 오셨소이까?”

잘게 웃음을 흘리며 말을 건네는 조운학은 마치 새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같은 느낌을 주었다. 능구렁이 같은 녀석의 태도가 다른 때라면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만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상황을 반기고 싶었다.

지금의 난 놈이 명분을 들고 나온다면 속수무책 손을 들 수밖에 없지만, 욕심을 충족시켜 줄 순 있기 때문이다.

맹주의 말대로 나 역시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게 공동파와 소요파의 분쟁을 시작부터 차근차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조운학의 얼굴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처음엔 흥미 있다는 표정이었다가 이내 이마에 굵은 주름살을 만들었고, 내가 설명을 마쳤을 때엔 침음성을 흘리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맹주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이 생기면 자리를 내주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난 맹주에게 사황성의 침공을 막는 제일선의 역할을 꼭 공동파가 맡아야만 하느냐고 강변했다. 소요파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굳이 무림맹의 개입이 없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할 이야기는 다 한 것 같은데도 조운학의 입은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맹주님, 솔직히 공동파 입장에서 보자면 소요파가 잘못을 한 건 맞지요. 그걸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요파와 공동파는 강호에 뿌리를 박고 사는 무림 문파라는 걸 상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설령 지금은 무림맹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있지만, 공동파는 저희 소요파가 언젠간 뛰어넘어야 할 상대라는 건 분명합니다.”

다시 말을 보탰을 때에야 조운학이 고개를 바로 하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기 전에 보였던 탐욕이 아닌 다른 표정이 그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난감함과 단호함이 섞인 복잡 미묘한 표정이.

“조 문주가 처한 상황은 잘 알겠소. 자세한 것은 따로 조사해봐야 하겠지만, 우선은 조 문주의 말을 믿어보도록 하지요. 그런데 말씀을 듣고 있자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군요. 조 문주는 무림맹이 이번 일에 개입하지 말았으면 하는 의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요파가 공동의 힘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단호히 대답했다.

“흐음… 조 문주가 허튼소리나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는 있소만, 여하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고… 조 문주가 말한 대로 사황성을 소요파 독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겠지요. 본인은 믿고 싶지만 맹의 원로들도 그렇게 생각해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오.”

‘맹주가 승인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던가?’

무림맹 원로들이 걸림돌이 될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맹주의 마음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었다.

“정확히 어떤 문제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들었으면 합니다. 지금 상황은 본 파의 존폐에 관한 일입니다. 어떤 수고라도 감내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흐음… 좋은 마음가짐이오. 한번 들어보시오. 원래 맹에선 사황성의 침공을 십 년 후에나 시작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오. 솔직히 지금까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오. 그런데 최근 사황성의 준동이 본격화됐다는 첩보가 들어왔답니다. 조 문주도 새외의 소요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게 조 문주의 계획에 따른 것도 있지만, 꼭 그것 때문에 불거졌다고 생각하시오? 조 문주가 불을 댕기긴 했지만 사실은 이미 터지기 일보 직전인 화약고였다고 봐야겠지요. 그 때문에 최근 맹의 판단은 수정되었소. 길어야 이 년 안에 사황성의 진군이 시작될 거라고 말이오. 그런데 이 년이라는 기간은 전쟁을 준비하는 데 너무 짧은 시간이라오. 조 문주의 소요파가 공동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 짧은 기간에 사황성의 침공을 대비하기에는 솔직히 무리가 있지 않겠소?”

‘이 년이라… 현실 시간으로 두 달……. 맹주가 우려할 만도 하군. 시간이 너무 촉박해.’

하지만 맹주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맹주님, 원래 공동이 맡은 역할은 독자적으로 사황성을 상대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맹주님 말씀을 듣자니 침공이 시작돼도 맹의 지원은 없다는 걸로 들립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렇다오. 조 문주에겐 안됐지만, 알고 있어야 할 일이 있다오. 무림맹은 사실 사황성에 대비한다기보다는 마교를 염두에 두고 세워졌지요. 아직은 흔적조차 잡지 못한 마교보단 당장 시급한 사황성에 대항하는 게 중요한 일이지만, 나쁜 일은 항상 같이 오는 법이지요. 분명 마교와 새외 세력들의 침공은 거의 동시에 일어날 게 분명합니다. 누천년 계속돼온 강호의 역사가 그러니까요.”

마교 이놈들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오나.

마교는 맹주 말대로 아직 그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은 곳이다. 강호 문파 랭킹에서만 그 이름을 볼 수 있을 뿐, 마교 출신의 마인들이 강호에 출현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악운이 겹친다고 해도 마교가 지금 모습을 드러낼 리는 없을 것이다. 사황성이야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에피소드가 빨라졌다고 하지만, 마교가 출현하는 건 개발사에서 전력으로 막아설 게 당연했다. 현재 강호 유저들의 역량은 마교를 감당할 수준이 못 된다.

맹주가 왜 마교를 들먹이는 건지 의도를 모르겠다.

‘인공지능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조 문주, 솔직히 말할 테니 들어보시겠소?”

맹주의 말을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가 정색을 하면서 다시 말을 건넸다.

“말씀하시죠.”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성급한 것 같긴 하지만, 잘 들어보시구려. 사황성의 침공은 원래 감숙의 공동, 그리고 섬서의 화산과 종남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마교가 들고일어날 게 뻔한 상황에서 화산과 종남을 감숙으로 돌릴 수는 없다오. 솔직히 아직 정도무림만의 힘으로 마교와 새외 세력의 준동을 모두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게 사실이니까요. 정사대전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무림맹의 작전은 이미 정해져 있다오. 전황이 확실히 파악될 때까지는 무림맹이 움직이는 일이란 없을 것이오. 전력을 분산시켜서는 안 되니까요. 한마디로, 사황성을 소요파만의 힘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말이오. 혹 조 문주가 어떤 기대를 하고 계셨다면 그저 미안할 따름이오.”

맹주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미 그런 계획이 짜여 있었다면 사황성을 대비해 무림맹에 가입한 게 무의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맹의 원로들을 언급한 이유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만.”

“허허, 그게 같은 이야기지요. 홀로 사황성을 감당할 능력이 소요파에 있느냐, 아니면 공동파에 있느냐 하는 문제지요. 공동이 소요파에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원로들은 공동의 저력에 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이건 단순히 힘의 우열로 가늠할 수 없는 문제인데 조 문주가 어찌 방도를 강구해낼 수 있겠소?”

결국 신흥강호보단 전통의 명문이 우선이란 소리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것은 무림맹의 결정을 좌우할 명분으론 부족하지 않습니까? 저는 전에 맹주님이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강호는 힘으로 결정되는 곳이라고요.”

“음…….”

조운학이 다시 난감한 기색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맹주님,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맹의 원로 분들의 의심도 풀고 맹주님의 신뢰도 받는 수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문제는 확실한 실력이 아닙니까? 원로 분들의 의구심도 확실한 실력이라면 풀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실력을 단번에 드러내기엔 맹주님 말대로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래서 이러면 어떨까 합니다. 소요파는 곧 치러질 공동파와의 문파대전에서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공동에도 그렇게 연락을 주십시오. 소요파가 패하게 되면 당연히 해산을 하게 될 것이고, 설령 이기더라도 압도적이지 않다면 무림맹의 개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양 문파가 건곤일척의 한판을 벌이면 미흡하긴 해도 맹의 원로들께서 결정을 내리기엔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흰 다만 무림맹이 이번 일이 어떻게든 결판날 때까지 한발 물러서 있길 바랍니다.”

무림맹이 원하는 것은 사황성을 묶어둘 문파였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림맹이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황성의 침공에 무림맹의 조력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중에 생각할 일.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맹주가 내 의견의 이득을 따지기 시작했다. 몇 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을 거듭하던 맹주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좋소이다. 양 문파의 첫 문파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무림맹은 모든 결정을 유보해두겠습니다. 그리고 문파대전 이후의 처리도 조 문주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지요. 다만, 그 모든 일에 앞서 조 문주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게 우선이겠지요. 사황성과 소요파 사이에서 어떤 재화나 인원이 오고 간 흔적이 발견된다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할 말은 다 드린 것 같군요. 더 이상 하명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돌아갈까 합니다.”

“한창 바쁘실 조 문주를 묶어둘 능력이 본인에겐 없소이다. 마중은 안 할 테니 먼 길 조심히 가시구려.”

* * *

난주 소요파.

문파로 돌아오자 조자건과 고현이 공동파에서 일을 마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보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역시 두통이란 놈이 문제더군요.”

고현이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녀석이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두통에게 된통 당한 듯 보였다.

“두통을 만난 거야? 그놈이 대체 뭐라고 했길래?”

“어떻게 안 건지 장문인실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아, 정말! 그놈이 해광 옆에만 없었어도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었는데.”

고현이 정말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쩍쩍 다셨다. 정말로 그럴 수 있었다는 듯이.

자건 일행은 공동산에 올라가자마자 장문인실로 끌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취조를 당하는 모양새였지만, 고현의 말장난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단다. 하지만 해광이 거의 다 넘어왔을 즈음에 가만히 지켜보던 두통이 반격을 개시했고, 옴짝달싹 못하고 죽게 된 형국에서 간신히 날 팔아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 수고들 많았다. 그럼 그쪽 분위기는 어때 보였어? 이번 일요일에 얼마나 동원할 거 같아?”

공동파엔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전쟁은 당연지사였고, 이들을 보냈던 건 그쪽의 대응을 조금이나마 엿보기 위해서였다.

“글쎄요. 지금은 병력이 사황성 쪽으로 올라간 상태라 금방 돌아오긴 힘들지 않겠어요? 뭐 이건 제 생각일 뿐이고, 대충 분위기로는 내일이라도 당장 잡아먹을 기세였죠.”

고현의 생각 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은 내가 공동파에 자신들을 보낸 이유를 모른다는 식이었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조자건이 입을 열었다.

“문주님, 아마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동산을 내려오다 도사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사황성 때문에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때문에 온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지금 공동산에 상당한 수의 도사들이 집결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지파(支派)나 속가무인들도 모여들지 모르는 거구요.”

구대문파는 보통의 무림 문파나 세가들과는 다른 면이 많다. 강호행도 그중 하나인데, 본래 승인이나 도사들의 수행이라는 게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본산에 거주하는 문도들의 숫자는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아마 조자건이 봤다는 도사들은 사황성과의 전쟁 때문에 소환된 것이겠지만, 자건의 말대로라면 이젠 그 병력이 우리 소요파에 창을 겨누게 된 것이다.

일주일만 먼저 공동파와 적대 관계가 되었다면 우린 한층 약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루가 더 지나자 사황성에 갔던 각룡이 형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형을 보낼 때, 어차피 알게 될 일 처음부터 다 밝히고 들어가라고 했는데, 이미 그쪽은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약삭빠른 두통의 사주를 받은 공동 장문인이 이미 친전(親傳)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공동파보다 오히려 그들이 더 화를 내야 할 것이 분명했는데도 사황성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기분 나쁜 일이긴 하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니 덮어두겠단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 개입 않겠다고 확답까지 주었다.

하긴 그런 반응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젠 그들이 공동파와 소요파의 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잠재적인 경쟁자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데 괜히 끼어들어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입장이었는데 완전히 바뀐 것이다.

더구나 녀석들은 공동파의 위협이 사라진 탓에 내실을 다질 기회를 얻게 된 셈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유저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쪽의 전쟁이 마무리될 즈음에 그들은 훨씬 막강해진 전력으로 감숙을 제패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게 맹주가 말한 두 달 후일지, 혹은 그 이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흑룡 나름대로는 괜한 수렁에 발 담그지 않겠다고 머리를 굴렸겠지만, 놈은 분명 후회할 것이다.

적수의 숨통을 끊을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 것이다.

* * *

문파대전을 하루 앞두고, 앞서 내린 공지에 따라 문도들이 문파로 속속들이 집결했다.

난 문도들을 데리고 이번 문파대전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했다.

작전은 간부들과 이미 입을 맞춰둔 상태였고, 연습은 그간 치른 감숙성 중소 문파들과의 문파대전으로 충분하다 못해 오히려 과할 지경이었다. 문제는 이 전투가 단순한 일회성 문파대전이 아니라 문파의 존폐를 좌우할 중요한 전투라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게임이라고 해서 설렁설렁 임해선 안 됐다. 소요파의 이름 아래 모인 모든 이들의 꿈은 겨우 공동파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의 꿈은 원대했고, 지금은 겨우 과정에 불과했다. 소요파를 강호 최강의 문파로 만들고 스스로도 최고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무림맹 맹주에게 받아낸 한시적인 유예 기간을 문도들은 잘 이해해주었다.

공동산이 제아무리 높고 험하다지만 이 산을 넘어야 우린 계속 꿈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파대전 당일.

“문주님, 백호단 이 조입니다! 봉황령 침투 작전은 무사히 종료됐습니다. 사망자 무(無), 도관 여섯 개 점거, 공동 도사의 피해 스물한 명입니다.”

전서구로 연락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직접 사람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어요. 다른 곳도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니 바로 다음 경로로 이동하세요. 원안대로 전면전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보고를 하러 본진에 들렀던 전령이 인사를 꾸벅하고는 본래 위치로 되돌아갔다.

지금 척살단과 백호단의 총 5개조는 봉황령과 황룡천 등 공동산 곳곳에 산재한 도관들을 휘젓고 있었다. 문파대전이 벌어지는 와중이지만 이 도관들을 지키는 도사들은 공동파 내부로 후퇴하지 않고 있었다.

곳곳에 산재한 도관, 수행 동굴이 평소엔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오늘 같은 날엔 오히려 전력의 분산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었다.

유저 문파라면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건물이 부서지든, 조사의 묘가 파헤쳐지든 유저라면 전혀 상관치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 소요파 본진은 공동파 상청궁이 위치한 마종산(馬?山)의 기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 내 곁엔 조립산의 주작단과 소봉의 현무단, 그리고 비밀 병기 현운자가 같이하고 있었다.

“아직 보고 안 온 곳이 있나?”

“다 왔습니다.”

조립산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 그럼 우리도 휘저으러 가볼까?”

지금 이 상태로 버티기만 해도 이번 문파대전은 우리의 승리였다. 문주가 사망하지 않는다면 죽어나간 문도원 숫자로 판정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정도로 끝나서는 감숙의 중소 문파들의 협력을 얻어내는 일이 불가능했고, 무엇보다 무림맹 원로들의 마음을 소요파로 돌리기에도 미흡했다.

원로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면 정말로 문파를 해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공동 장문인 해광을 처치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마음먹었다.

“지금부터 각 단주들과 조장들은 계획대로 움직여 주세요. 지금쯤이면 공동파에서 척살단과 백호단을 잡으러 병력을 내보냈을 겁니다. 그럼 조심들하고 따로 연락할 때까지 열심히 해봅시다!”

명을 내리자 문도들이 조별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임무는 앞서 혼란을 일으켰던 선봉대를 추격하는 공동 도사들의 뒤치기였다.

이 작전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동 도사들의 이동 상황과 전력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아군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자칫 장로급으로 꾸려진 공동 도사들이라도 만난다면 작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소요파에 우호적인 일반 유저들이 해결해주었다.

흑룡의 격문 때문에 난주에 몰려든 흉인들을 우리가 적절히 처리해준 탓에 일반 유저들은 소요파에 호의를 품고 있었다. 거기에 소요파에 가입하지 못한 유저들 중엔 내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안달난 사람도 상당했다.

공동과의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문파 가입을 시켜 준다는 조건하에 지금 그들은 공동산에 가히 천라지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감시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만 가봅시다.”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얼른 시작해보자구요!”

광견의 말마따나 모두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걱정은커녕 긴장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이것들이 내가 있다고 너무 방심하는 거 아냐?’

내가 거느린 문도는 총 8명이었다. 모두 척살단에서 차출된 문도들이었다.

이 중엔 술사단 단주인 고현을 비롯해 광우와 광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나머지 다섯 또한 간부급과 실력의 고하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잘 단련된 문도들이었다. 그와 더불어 비밀 병기 현운자까지 대동하고 있었으니 무서울 게 없는 전력이었다.

다른 문도들은 따로 침투로가 주어졌지만 내가 맡은 파티는 일종의 별동대.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공동파 상청궁이 자리한 마종산 정상을 향해 전진했다.

우리가 가는 길목에는 단 한 명의 공동파 문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망을 보던 유저들이 건네는 인사를 몇 번 받고 나니 어느새 우린 별일 없이 공동파 산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문 뒤로 뻗은 소로를 1분여만 올라가면 그곳이 공동파 본산 영역이었다.

“문주 형! 설마 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죠?”

여태 묵묵히 따라오던 광우가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는 물었다. 설마 다짜고짜 여기까지 끌고 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글쎄, 난 그래볼 생각인데?”

공동산에 유저들 도움으로 천라지망을 구성해놓긴 했지만 공동파 심처에까지 눈을 심어둘 수는 없었다. 문파대전이 벌어지면 유저들의 출입 또한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건이가 우려했던 속가나 지파 세력의 집결 여부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단 직접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심처에 숨은 장문인을 잡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 어? 튀어요!”

광우를 보고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현이 내 뒤를 가리키며 소란을 떨었다.

“음?”

산문 뒤쪽의 산길에서 공동 도사들 수십 명이 바람 같은 기세로 내려오고 있었다.

공동산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소란을 제압하기 위한 공동 문도들의 출진이었다.

공동 도사의 수는 대략 오십 남짓 돼 보였다.

‘아직도 내려 보낼 놈들이 있었던가?’

놈들의 수가 우리보다 많다고 해서 겁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녀석들을 상대하는 와중에 또 다른 응원 세력이 달라붙을까 염려됐다.

“산 아래로 물러섭니다!”

도사들의 목표는 우리가 아니었겠지만, 우연히 조우한 새로운 적들을 그대로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못 봐줘도 절정 이상의 무인 오십이 우릴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미 몸을 돌린 우린 산 아래를 향해 꽁지 빠져라 줄행랑을 쳤고, 도사들이 그 뒤를 쫓아왔다.

하지만 경공술은 그들이 월등히 좋았던 탓에 족히 2백여 장은 떨어졌던 거리가 조금씩 줄어만 갔다.

더구나 경공이 약한 몇몇 문도(특히 고현!)들 때문에 후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십여 장까지 쫓기게 되자 문도들을 돌려세웠다.

“그만! 돌아선다! 긴장 풀고 연습대로만 해!”

말과 동시에 난 경공을 멈추고 몸을 젖혔다.

마침 멈춘 마종산 산길 양옆은 울창한 수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서 그곳으론 사람이 오갈 수 없는 지형이었다. 이 좁은 소로만 틀어막으면 적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장시간 버틸 수 있는 지형이었다.

내가 소로의 중앙을 점하자 좌우로 이광이 재빨리 포진했고, 다른 문도들도 우리 뒤를 받쳤다.

그리고 고현이 품에서 고급 부적 3장을 꺼내 허공에 날렸다.

“연환진(連環陣)!”

[천사연환진이 발동됐습니다. 1시간 동안 방어력과 회피력이 10% 상승합니다.]

연환진은 파티원 전체에 적용되는 버프. 열 명의 문도들 머리 위로 일제히 진법이 발동됐다는 이펙트가 펼쳐졌다.

“집원(輯原)! 집원! 집원! 연신(煉神)! 연신! 연신!”

진법이 완성되자 고현이 나와 이광의 등에 최고급 부적 5장씩을 연달아 날리며 소리쳤다. 단 한 번의 시전에 은자 10만 냥이 소모되는 최강의 부적술이 펼쳐진 것이다.

[집원부가 발동됐습니다. 10분간 체력이 회복됩니다.]

[연신부가 발동됐습니다.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여기까지가 고현이 맡은 역할. 최고급 부적술이나 연환진 술법은 막대한 내공을 잡아먹는 기술이었다.

내공이 완전히 소진된 고현은 입에 소환단을 털어 넣고 운기 조식에 들어갔다.

“시전, 사상검진!”

[방어력이 1분간 20% 증가합니다. 재사용하려면 30분 남았습니다.]

부적으로 증가된 능력에 다시 내가 사상검진을 운용했고, 드디어 공동파 도사들과의 첫 격돌이 시작됐다.

카카캉!

‘큭!’

선두에 선 도사가 금검(金劍)을 휘두르자 몸이 크게 흔들렸다. 천잠보의를 걸친 데다 각종 주술로 방어력과 회피력이 놀랄 정도로 뻥튀기된 상태인데도 충격파가 대단했다.

‘최절정급인가? 쉽지 않겠는걸.’

오십의 공동 도사들 중에 금검을 휘두르는 도사들의 수는 모두 셋.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들이 전면에서 이광과 날 압박해왔다.

“우씨! 시작부터 뭐 이리 강한 놈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그러게! 야, 고현! 뭐 해? 부적 좀 날려 봐, 이 자식아!”

간신히 금검수들의 공격을 막아대던 광우와 광견이 죽는 소리를 했다. 그때 고현은 소환단 덕분에 이미 운기 조식을 마치고 부적을 날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거참, 시끄럽네! 이거 한 번 날리는 데 돈이 얼만 줄 알아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미 고현의 손은 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금검수들은 공동파 최정예로 보였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공동 장로 무운처럼 주변 공간을 지배하는 초절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격력 하나만은 장로급 도사들에 뒤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고현의 벽자술법과 만봉, 해갑이 연달아 금검수의 몸에 적중되자 그런 그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그렇지! 잘한다!”

“크하하! 이제 좀 할 만하다!”

이광은 급박한 상황인데도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쉼 없이 말을 쏟아내면서 금검수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정신 사납다, 이놈들아! 그만 떠들고 빨리 정리해!”

오십이나 되는 도사들을 만나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지금 이곳의 지형이 수비하기엔 유리한 곳일지 몰라도 적의 근거지와 너무 가까운 곳이었다. 분명 이들은 날 보자마자 공동파에 전서구를 날렸을 것이고,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공동의 최정예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처럼 금검수들을 빨리 제압하기란 쉽지 않았다. 공동 도사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좁은 산길을 촘촘히 틀어막고 있는 탓에 우리도 마음대로 무공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방이 계속되면서 내 금강저가 금검수에게 몇 번 박혀 들어갔고, 나도 몇 번의 검을 허용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집원부 덕에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는 내가 결국 이기고 말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걸린다.

‘고현 이놈은 뭐 하는 거야!’

욕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뒤에서 부적 한 장이 비도처럼 쏘아지더니 내 앞의 금검수 가슴에 틀어박혔다.

“방(防)!”

고현의 짤막한 외침이 들려왔다.

마침 금검수의 검이 이리저리 기괴막측하게 움직이며 짓쳐 오고 있었다.

때마침 그려진 부적술에 금검수의 검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튕겨지고, 그의 가슴에 큰 틈이 생겼다.

‘좋았어!’

눈앞의 빈틈이 먹음직스럽다고 해서 보이는 그 길만 따라가는 것은 하수의 방법.

강기에 덮인 내 좌수가 금검수의 검을 쫓아갔다.

방자 부적술에 잠시 시전자의 의지를 벗어난 검이 내 손아귀에 잡혀 들어왔고, 검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금강저를 든 우수가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쾅! 콰콰콰쾅!

금검수는 부적술의 여력에 자신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내 권강을 연달아 받아야 했다.

그의 안면과 복부, 어깨와 옆구리 가릴 것 없이 타격이 가해졌고, 꿈틀거리면서 빚어내는 빈틈에 금강저가 오롯이 꽂혀 들어갔다.

절정검수답게 그 와중에도 예리한 반격을 종종 내지르는 금검수였지만, 검을 제압당한 상태에서 그의 손길은 무력할 뿐이었다.

내가 좁은 공간에서 가진 재간을 마음대로 펼쳐 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회피할 공간이 없었기에 속절없이 내 공격을 그대로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그의 사망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쓰러진 금검수 자리로 또 다른 공동 문도가 비어져 들어왔지만 내 관심은 그쪽이 아니었다. 녀석이 어떤 수작을 부리든 상관치 않고 내 옆, 광견이 상대하던 금검수의 왼 팔목을 들어올렸다.

생각만큼 놈의 검이 허공으로 치솟진 않았지만 녀석의 왼팔이 움찔거리며 전개하던 초식이 흐트러졌다.

굳이 말을 전하지 않아도 광견은 내 의도를 잘 알아주었다.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에서 흐느적거리는 금검수의 팔목을 금나수로 잡아끌어왔다. 그리고 내가 했던 방식대로 금검수의 몸통에 대력금강장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력금강장은 변화보단 힘을 우선시하는 무공이다. 빠름을 중시하는 무공은 아니었기에 제대로 정타를 먹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온전히 힘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황소라도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는 신공절학이었다.

움직임이 제압당한 금검수의 몸뚱이에 광견의 장력이 ‘팡팡’ 큰 소리를 내며 틀어박혔다.

소리가 날 때마다 금검수의 몸이 들썩들썩하더니 결국은 한물간 생선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다.

취이익!

잠깐 금검수를 상대하는 사이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공동 도사의 검이 내 몸을 요란하게 긁고 지나갔다.

하지만 각종 버프에 천잠보의까지 걸쳐 금강불괴가 되어버린 내 몸에 의미 있는 타격을 주진 못했다. 더군다나 집원부의 효력으로 체력마저 자동으로 회복되는 마당이었으니 나보다 경지가 떨어지는 공동 도사의 공격은 애들 장난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광견이 제 앞의 금검수를 발아래에 재우고 광우가 맡고 있던 금검수를 합심해서 없애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 공동 무리가 우리를 보고 달려들기 시작한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공동의 최절정급 무사 셋의 이름이 강호에서 지워졌다.

“고현! 애들 데리고 봉황령으로 달려라!”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더 이상 녀석들과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흔이 넘게 남은 도사들이라 제압하려고 마음먹으면 금검수를 없애는 데 걸린 시간보다 더 짧게 정리가 가능했지만, 그 시간조차 감당키 어려웠다. 지금 공동산 전역엔 우리가 펼친 천라지망만큼이나 수많은 공동 문도들이 횡행하고 있을 터. 잠시라도 지체하면 이 좁은 산길에 오도 가도 못한 상태로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먼저 경공이 가장 처지는 고현이 부적 몇 장을 집어던지고는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그러자 우리 뒤를 받치던 문도들이 고현을 호위하며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시간을 헤아리던 나와 이광, 그때까지 뒤에서 대기 중이던 현운자가 일제히 파상공격을 퍼붓고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그러자 우리 뒤로 살기등등한 공동 도사 수십이 검을 치켜세우고 쫓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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