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8장. 걔들이 싸우는 동안 (39/62)

제38장. 걔들이 싸우는 동안

조연이 한창 천사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사황성과 공동파는 생사 결전을 앞에 두고 있었다.

흑룡 이름으로 올라간 게시문의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흑룡 자신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대량의 유저들이 감숙의 변방, 돈황으로 미어져 들어온 것이다.

“형님! 갈치도 더 이상은 못 받겠다고 합니다. 지금 그쪽도 오백 명을 돌파했답니다!”

사황성의 이인자인 상어와 흑룡 담경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쟁에 쓸 소모품으로 유저들을 끌어들이긴 했는데, 소모품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통제가 안 되는 인간들은 소모품으로도 쓸 수 없다.

“담경 형님!”

흑룡의 집무실에 다른 이가 출현했다.

“넌 또 왜!”

상어가 새로 들어온 인물, 잉어를 보고 소리쳤다. 잉어가 움찔하더니 간신히 말을 꺼냈다.

“저기, 저도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지금 애들이 칠백을 넘어섰습니다. 그나마 선임들이 좀 많아서 용케 버티긴 하는데, 언제 이것들이 저 잡아먹으려고 할지 모른단 말입니다. 벌써 기어오르려는 놈들도 생겼습니다.”

“야, 이 자식아! 그래, 그깟 놈들 하나 제어를 못해? 기어오르면 밟아주면 되잖아! 명색이 단주라는 놈이 그 정도도 통제 못해서 어쩌자는 거야!”

상어가 잉어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상어야.”

흑룡이 조용히 상어를 불렀다.

“네, 형님.”

“시끄럽다. 조용히 좀 말해라. 머리 아프다.”

“…네.”

상어가 고개를 숙이자, 흑룡이 나지막이 묻는다.

“지금 가입자가 총 몇 명이나 되지?”

“오천칠백 명쯤 됩니다.”

“오천칠백이라… 정말 많아도 너무 많구만. 그럼 이렇게 하지.”

“네?”

상어의 안색이 조금 환해진다. 두목이 해결 방안을 제시해줄 거라는 기대가 어려 있는 얼굴이었다.

“조직을 좀 바꾸자. 니들은 단주로 올라가고, 밑에 선임들을 대주로 만들면 되겠다. 선임 애들은 지금처럼 겉만 간부급 취급하지 말고, 공식적인 간부로 삼자는 말이야. 대주들은 실질적인 명령권도 갖게 하고.”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선임 애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우리 라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위험 부담 없이 무슨 일을 하겠어? 지금은 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유저들을 되돌려 보낼 수도 없고 말이야.”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애들한테도 말해놓겠습니다. 그런데 그 건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그 구대문파 자식들 위세가 보통이 아닌데 말입니다.”

“걔네 지금도 신강에서 상단 약탈하고 다녀?”

“네. 감숙은 수지가 안 맞으니 신강에서 자리 잡을 폼입니다. 공동파만 아니라면 바로 쓸어버리는 건데, 그렇다고 병력을 그쪽으로 돌릴 수도 없고…….”

“야, 잉어야.”

상어를 상대로 논의하던 흑룡이 뻘쭘하게 서 있는 잉어를 불렀다.

“네, 형님.”

“네가 가서 쓸어라. 단원 숫자도 네가 제일 많으니까 그냥 가서 다 쓸어버려.”

“그게 가능할까요? 밑의 놈들하고 그놈들하고 원래 한솥밥 먹던 놈들인데요. 그리고 공동파와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잖습니까.”

“한솥밥이든 뭐든 이미 밥그릇 바꿨으면 우리를 따라야지.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추방시켜 버리면 되고. 그냥 충성 테스트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공동파는 별로 신경 쓸 것 없어. 오히려 우리 쪽 숫자가 적을수록 좋은 거야. 어때, 할 수 있겠냐?”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만 가봐. 깨끗이 청소해라. 집 안에 바퀴벌레들이 돌아다니면 남들이 욕한다.”

“네, 형님. 깨끗이 청소하겠습니다.”

잉어가 물러가고, 흑룡은 상어와 세부 조직 구조 개편안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흑룡의 집무실에 사황성 총관이 들어왔다.

“소공자! 공동파 도사 놈들이 본성 백 리 앞에까지 도달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숫자는?”

“공동 본산의 고수들이 천 명, 속가에서 오천 명가량이 모였다고 합니다.”

“많이도 끌어 모았구만.”

“알았어. 해결해볼 테니깐 총관은 작전 통제권이나 넘겨줘. 성주님한테 이야기는 들었지? 전쟁 벌어지면 무사들 관리는 내게 맡기겠다고 말이야.”

“네, 지금 당장 옮겨 드리겠습니다.”

[사황성 무사 관리 기능이 담경 님에게 이양되었습니다.]

“좋아, 확실하게 넘어왔군. 그럼 총관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난 이 친구하고 더 이야기할 게 있거든.”

총관이 인사를 하고 사라지자, 상어와 흑룡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드디어 사황성주의 자리에 앉으셨군요.”

“뭘, 아직 성주는 아니지. 하지만 성주라고 할 수도 있겠군.”

담경은 소공자가 되면서 사황성 병력의 5분지 1을 거느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성주가 폐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에게서 인사권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드디어 사황성의 모든 NPC 문도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통제령까지 획득했다. 사황성주가 폐관에 들어선 이상, 이젠 담경이 사황성주라고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 녀석들 마중이나 나가볼까?”

돈황성 동문.

공동파의 총 병력은 6천이었다. 그중에 진정한 고수라고 불릴 수 있는 건 본산제자 1천뿐. 하지만 본산제자 하나하나가 예전 조연과 함께 사황성 정찰을 나섰던 인물들에 버금가는 실력이었으니, 1천이란 숫자를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맞선 사황성의 병력은 1만. 본래 사황성이 동원할 수 있는 총 NPC의 숫자는 5만이나 됐으나, 담경은 무슨 생각인지 이번에 겨우 7천의 NPC만 동원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3천은 이제 갓 사황성에 들어온 일반 유저였다.

양 진영의 주력은 유저가 아니라 NPC. 더구나 이들은 무림 문파였지 진형을 갖추어 싸우는 군대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혼전이었다.

공동파의 선봉은 본산에서 직접 내려온 절정고수들. 그들은 명문대파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주었다. 공동의 복마검이 한 번 그어질 때마다 사황성 무사들의 목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사황성 외단 무사들의 실력으론 그들의 기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사황성 진영 중단을 돌파한 그들은 부챗살처럼 퍼졌다. 이젠 정말로 난전이 되었다.

“상어야, 시작하자! 저기 오른쪽 속가 놈들부터 쓸어라!”

“네!”

밖의 사황성 무사들은 미끼였다. 사황성의 진짜 전력은 돈황성 안에서 대기 중이었다.

안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인원은 총 5백. 흑룡과 십이 전사들을 제외하면 모두 NPC였다. 군대의 장수들이나 걸치고 있을 법한 용린갑을 차려입고,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새빨간 혈도를 들고 있는 이들.

그들은 바로 사황성의 최고 무력 단체인 사혈단과 폭마단이었다. 여태 단 한 번도 그 진정한 위용을 선뵈지 않았던 사황성의 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상어가 사혈단 소속의 2백 마인을 거느리고 성을 빠져나갔다.

“가물치!”

사혈단이 빠져나가자, 담경이 이번엔 사황성 유저 서열 3위인 가물치를 부른다.

“네, 형님!”

“넌 왼쪽 쓸어! 가급적 공동 도사들은 건들지 말고!”

“네!”

가물치도 폭마단 마인 2백을 거느리고 성을 빠져나갔다.

아무리 난전이라지만, 그래도 도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 주변엔 속가무인들이 없었고, 속가무인들이 맡고 있는 전장의 양옆엔 공동 도사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덕분에 공동파는 전장의 좌우에서 밀어닥치는 사황성 마인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새우야, 이제 우리도 가자! 조심하고. 뒤에서 부적만 날려라.”

“응.”

성공적으로 사혈단과 폭마단의 진입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흑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그가 움직일 차례였다.

흑룡은 그때까지 전장에 투입되지 않고 대기 중이던 1백의 친위대를 바라보았다. 개개인이 모두 최절정급의 마인으로만 구성된 강호 최강의 무력 집단, 사황대를 말이다.

“몽계야! 애들 잘 거느리고 잘 따라와라. 내 앞으로 나서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소공자, 명 받들겠습니다.”

사황대주 몽계가 절도 있게 무릎을 꿇어 명을 받는다.

사황대는 최절정으로만 이루어진 탓에 여타 NPC들과 달랐다. 모두 말이 먹히는 존재였다.

그때 전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혼전 상태는 벗어나 있었다. 실력이 처졌던 공동파 속가무인들은 순식간에 사황성의 절정마인들에게 쓸려 버렸고, 사황성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외단 소속의 7천 무사 중에 살아남은 이가 2천도 안 되었다. 사황성 소속의 유저들도 상당한 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그 짧은 순간에 양 진형에서 도합 1만의 목숨이 검하고혼(劍下孤魂)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수가 줄자 서서히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공동파 진영의 생존자 1천가량이 사황성에 밀려서 저절로 방진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방진은 단단했다. 진형이 짜인 덕에 공동파는 수적 열세에도 사황성 무사들과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었다.

전투에 취해 겁도 없이 도사들에게 다가간 사황성 유저들은 일순간에 방심의 대가를 치러야 했고, 사혈단과 폭마단은 도사들을 감당할 수준은 됐지만, 그들을 물리칠 실력은 못 되었다. 서로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담경이 이끄는 무리는 전장과 백 보쯤 되는 거리에 멈춰 섰고, 새우는 담경과 1백 사황대에게 부적술을 걸어주었다.

부적이 한 장, 한 장 사황대의 갑주에 달라붙을 때마다 사황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한층 강렬해졌다.

“시작한다!”

가볍게 외친 담경이 바닥을 차고 뛰었다. 그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보의 거리를 줄여 버렸다.

츠앗-

일검에 공동 도사의 목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절정급 무인을 단칼에 베어버린 담경이었다.

그리고 담경의 뒤를 따라 사황대가 전장에 들이닥쳤다. 그렇게 학살이 시작됐다.

제아무리 단단한 제방도 조그만 구멍에 무너지고 만다. 더구나 사황대는 공동파의 장로들과 버금가는 무위의 소유자들. 그런 마인들이 무려 1백이나 됐다. 공동파의 스물 남짓한 장로들로선 결코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방진은 금세 와해되었고, 한 번 무너진 둑은 다시 세울 수 없었다.

“으악!”

스팟! 서걱!

슥- 슥-

곳곳에서 살이 베이는 소리, 비명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새우의 부적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대단한지 몰라도 사황대에서는 단 한 명의 이탈자도 나오지 않았다. 사혈단과 폭마단이 적잖게 피해를 입은 것에 비하면 정말 대단한 실력들이었다.

사황대가 들이닥친 지 채 5분도 안 돼서 전장은 말끔히 정리됐다. 공동파 선발대가 전멸한 것이다. 사막은 시체로 산을 이루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는 시체에 비해 너무 적었다.

목숨을 부지한 1천가량의 유저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은 NPC 무인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수거하기 위해서 말이다. 막상 전투 중엔 위험해서 다가가지 못하다가 이제야 용기를 되찾은 것이다.

담경은 재물에 눈이 먼 유저들을 못 본 척했다. 자신에게는 필요도 없는 아이템이었고, 저들을 앞으로도 계속 전쟁에 끌어들이려면 이 정도 미끼는 필요했다.

“새우야, 붕어하고 메기보고 이리 오라고 좀 전해라.”

“응, 알았어.”

조금 지나자 새우가 붕어와 메기를 데려왔고, 담경은 그들을 데리고 전장을 조금 벗어났다.

“형님,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어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이르자, 붕어가 담경에게 먼저 물었다.

“그래, 너희들이 수고 좀 해줘야겠다.”

잠시 말을 끊고 둘을 쳐다보던 담경이 조용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상황이 별로 안 좋다는 건 느끼고 있겠지? 전에도 말했지만, 공동파하고 우리 사황성하고는 같이 가야 돼. 지금은 절대 어느 한쪽이 무너져선 안 되는 상황이지. 일부러 우리 쪽 피해를 키우긴 했지만, 어쨌든 저쪽은 전멸했다. 다음번엔 분명 오늘보다 더 대규모로 인원을 보낼 게 뻔해. 그렇다면 그걸 우리가 막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럼 피해가 막중한 공동은 반드시 무림맹에 지원 요청을 하겠지. 자기들만으론 힘들다고 판단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사황성은 문을 닫게 될 거다. 그리고 그걸 막아야 하는 게 너희들이 해줘야 할 임무다.”

흑룡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아니, 확실했다. 누구나 당연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고, 분명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흑룡은 뻔히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을 미연에 막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해는 하겠는데요,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몇 명 데리고 가서 아래쪽에 가서 교란 좀 해라. 게릴라전을 하라는 소리야. 공동 본산에 쳐들어가서 분탕질을 하든가, 아니면 속가를 돌면서 자주 얼굴을 비치든가. 방법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고 말이다.”

“아하! 그럼 배후가 시끄러워져서 공동파 놈들은 섣불리 대규모로 인원을 파견하지 못하게 되겠군요!”

“맞아. 놈들이 섣불리 병력을 이쪽으로 돌리지 못하겠지. 임시방편이지만, 잘만 하면 시간을 상당히 벌 수 있게 될 거다. 우리가 충분히 무림맹을 상대로 일전을 벌일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알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충분히 알겠습니다.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가 아니라, 무조건 해줘야 돼. 실패하면 우린 보따리 싸들고 이 바닥 뜰 수밖에 없다.”

“네! 무조건 하겠습니다!”

붕어와 메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먼 길을 가야 해서 준비할 것이 많았다. 그들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자신들도 몰랐다. 마인들이다 보니 그쪽에선 상점도 이용할 수 없었다. 때문에 만두와 육포 따위의 식량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렇게 붕어와 메기, 그리고 오래전에 가입한 8명의 사황성 선임 유저들이 공동산의 골칫거리 게릴라가 되었다.

* * *

천사교에서 2주일 동안 문도원들의 뒤를 봐주고 난 다시 난주로 돌아왔다. 표국 상태도 알아봐야 했고, 그동안 쌓인 물품들 정리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금방 오겠다고 말을 해둬서 현운자는 천사교에 남아서 사냥을 하기로 했다.

상점에 들러 필요 없는 부적술 비급을 죄다 팔아버리고 나니 수중에 5억 냥이란 돈이 들어왔다. 겨우 2주일 사냥한 것치고는 엄청난 액수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액수로는 고목문보다 못했다. 물론 구정신단이나 최고급 부적술 같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아이템을 정리하지는 않았다. 그걸 합치면 고목문 따위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상점에 들렀다 나오는데 광장의 랭킹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니까 언제 랭킹을 확인해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동안은 랭킹 시스템의 허점 때문에 별로 검색할 생각을 않고 있었다.

“흠, 내 랭킹이야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문파 랭킹은 한번 알아보는 게 낫겠군. 요새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데 말이야.”

[개인 순위

1위. 현운자(하남, 무당파)

2위. 공갈대사(하남, 소림파)

3위. 조연(감숙, 소요파)

4위. 담경(감숙, 사황성)

5위. 강호제일(사천, 당문)

6위. 무룡(섬서, 화산파)

7위. 백두산호랑이(요동, 장백파)

8위. 일협(하남, 무소속)

9위. 파도(하남, 무소속)

10위. 백발마녀(사천, 당문)]

개인 순위를 보다 난 깜짝 놀랐다. 현운자가 1등이라니? 그리고 내가 3등이라니? 물론 그동안에 폭렙을 하긴 했다. 명성도 엄청나게 올렸다. 하지만 삽질한 시간도 그만큼 많았다. 잘해야 5, 6위 정도일 줄 알았는데 3위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상세 보기를 눌렀다.

[조연

현재 별호:일수경천

레벨(39위) 무공(31위) 명성(1위)

비무(21,911위) 문파대전 기여도(1위)

문파 가중치(+2,190포인트)

특수 기술 가중치(+30,000포인트)

종합:3위]

명성과 문파대전 기여도는 역시나 부동의 1위였다. 레벨 순위도 이제야 고수다운 숫자로 표시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무공 순위는 예전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확실히 요새 좋은 무공을 배우진 못했다. 심결육합권이야 다른 이들도 배운 사람이 수두룩할 테고. 그나마 저 정도 순위라도 유지할 수 있는 건, 남들보다 빨리 익힌 절정 내공심법 반야신공 덕택일 것이다.

“역시 심결 요결 때문인 건가? 특수 기술 가중치가 이만이나 올랐네. 그럼 무진이 신안보다 두 배나 더 좋은 고급 기술이라는 식인가?”

가장 큰 변화라면 특수 기술이 2만 포인트나 더 증가된 것이었다. 7가지 요결이야 특별할 게 없었으니, 아마도 그 2만 포인트는 무진의 효과가 분명했다.

10위까지의 문파 랭킹 순위는 별다를 게 없었다. 개인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에 비하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리고 소요파의 순위는 껑충 뛰어올라 49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예전엔 1천 위가 넘어간 등수였는데 엄청나게 가파른 상승세였다. 그렇다고 감히 구대문파 오대세가를 넘보기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랐다.

랭킹이 올라서 기분 좋은 상태로 문파에 돌아온 나는 묘한 상황에 직면했다.

간만에 표국 운영이 어떻게 돼가고 있나 확인해봤더니, 표행 리스트가 이상해졌다.

“어라? 이거 갑자기 왜 이러냐?”

표행 리스트엔 임시 출행과 상시 출행 2가지의 표행이 표시된다. 그런데 상시 출행의 수가 많이 줄어 있었다. 표국 등급이 오르면서 받을 수 있는 표행의 수나 종류가 무척 많아졌는데 그 수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 것이다. 그중엔 가장 비싼 운송료를 주던 황금산장의 비단 표행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 황금산장의 의뢰가 하나도 없네? 그 회사 망했나?”

황금산장의 의뢰가 사라지긴 했지만, 표국을 운영하는 데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소요표국은 모두 은천을 오가는 표행만 수행하고 있었고, 그건 황금산장이 아니라 다른 상단들의 의뢰였다.

“미리 은천 쪽에 분국 설치 안 해놨다면 애먹을 뻔했네.”

문파에 대기 중인 표대는 없었다. 총 10개의 표대가 모두 표물 운송 중이었다. 문도들이 약속을 잘 지켜 주고 있었다.

NPC들의 레벨은 그사이에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옥문관보다는 은천 쪽이 돈은 얼마 안 되어도 레벨 올리는 데엔 나은 것 같았다. NPC 문도들의 레벨은 모두 210을 넘었고, 250을 넘어선 특출 난 녀석들도 눈에 띄었다.

“210이라… 이 정도면 관도의 산적들을 잡는 건 문제가 안 되려나?”

계획이 있어서 문파에 들른 것이다. 아직 안정이 되진 않았지만, 한 단계를 완전히 다진 후에 다음 단계를 시작하려면 이미 늦을지도 모른다. 약간의 무리수는 끌어안고 가야 했다.

표행 중인 한 문도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문도에게서 결과 보고서 한 장이 날아왔다.

<수신자:조연

이탈자 없이 가능했습니다. 단, 전투 끝나고 나서 쉬는 시간이 상당하네요. 몇 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발신자:익명의 일반 문도>

다시 그 친구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이번 표행은 끝까지 관찰만 하라고 말이다.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전서구가 도착했다. 내용은 만족스러웠다. 표행 진행 속도가 꽤 느려지긴 했지만, 사망하는 NPC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문도들을 표국 일에 투입하지 않아도 되겠어.”

이제 NPC 키우기 2단계로 진입해야 했다.

NPC 문도를 더 고용하기 위해선 문파 등급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문파 레벨을 5등급으로 올리기 위해선 문파 명성 5만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 소요파의 문파 명성은 겨우 4천밖에 안 되는 상황.

지금 알려진 바로는, 문파 명성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파대전에서 승리하는 길뿐. 문파대전을 준비해야 했다.

사황성과 공동파가 박 터지게 싸우는 동안, 우리 소요파도 세력 확장을 결정했다.

시작은 거창했다. 문어발식 확장 경영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주었다.

감숙에서 가욕관 이남에 문파가 존재하는 대도시는 무위, 천수, 무도, 장액, 농서 이렇게 다섯 곳이다. 이들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문파에 한꺼번에 문파대전을 신청했다.

그중 가장 큰 도시인 천수에는 각룡이 형의 청룡단이 출진했다.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무위에는 조자건의 백호단이 출진했다. 그리고 무도와 장액은 조립산의 주작단과 소봉이의 현무단이 맡았다. 달랑 3개 문파만 있는 농서는 척살단이 담당했다.

술사단은 5명씩 조를 편성해 각 단에 배치되었다.

NPC 문도들은 표행을 멈추고 문파 내에서 대기했다. 전쟁에 동원되지도 않았다. 아직 전투에 내보내기엔 레벨이 부족했고,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레벨 올리는 작업을 해야 했으니까. 난 이 NPC 문도들과 함께 문파 수비를 담당했다.

현운자는 우리 문파 소속이 아니었지만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청룡단을 따라 천수로 갔다.

그날 하루는 아마 감숙성에서 가장 시끄러운 날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겨우 한 단에 40 남짓의 문도들이 정신없이 옮겨 다니며 상대 문파를 공략해갔다.

그 와중에 상당수의 문도들이 죽어서 문파로 강제 귀환을 당하기도 했으며, 날이 넘어가기 전에 간신히 승리를 한 전투도 있었다.

특히 유일한 6레벨 문파였던 천수의 무령방과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다.

문파 등급 6레벨이면 문도 수만 2천에 달한다. 거기에 문주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난주의 금사방이 5레벨이었는데 금사방주는 최절정에 육박하는 고수였다. 꼭 문파 등급과 문주의 무위가 비례하진 않겠지만, 굳이 부딪쳐 보지 않아도 무령방주의 무위가 최절정은 될 것이라고 예상해야 했다.

각룡이 형은 아직 절정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레벨도 나를 제외하면 문파 제일이고, 매화검법을 12성 대성한 데다 이젠 강기성형까지 부릴 줄 알았지만, 최절정의 무인을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현운자를 청룡단에 딸려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만벽을 사용해서 방어만 한다면, 현운자의 명성치가 하락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만벽을 사용하기 위해선 무령방주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무령방은 좁지 않았고, 무령방주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면 무령방 정문을 뚫어야 했다. 청룡단원 50인이 줄기차게 문을 두드렸지만, 쉽사리 뚫을 수는 없었다. 무려 2천이나 되는 NPC를 50명으로 뚫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농서와 천수의 거리가 겨우 30분 남짓밖에 안 된 게 천만 다행이었다. 소소 누님의 척살단은 농서의 3개 문파와의 전쟁을 마무리하고 청룡단을 도와주러 바삐 이동했다. 그리고 겨우 문파대전 종료 30분 남았을 때 소요파가 드디어 무령방 안마당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간단했다. 문주의 위치를 확인한 현운자가 만벽을 사용했고, 바보가 된 무령방주를 잡으면서 문파대전은 끝이 났다.

문파대전이 종료되면, NPC들은 공격을 멈추고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그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내공이 사라진 현운자가 몸성히 돌아오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날 하루 동안 쌓인 문파 경험치만 무려 7만 4천. 부수입으로는 2억 냥의 은자와 각종 보물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람들이 목말라 했던 절정급 무공들을 다수 확보하게 되었다.

각룡이 형은 무령방주에게서 곤륜진기공(崑崙眞氣功)이라는 곤륜의 절정급 내공심법까지 얻어서 진정한 부문주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소요파는 문파 등급 5레벨이 되었다. 이젠 1천의 문도를 거느리는 중견 문파가 된 것이다.

NPC 문도 5백 명을 증원시켰고, 표대를 새로 구성했다.

신규 NPC들의 실력은 은천까지 오가는 표행을 스스로 감당하기엔 부족한 수준. 200레벨이 넘는 선배 NPC들과 새로 뽑은 신규 NPC들을 적절히 섞었다. 분명 표행 중에 신규 NPC들은 수시로 죽어나가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어쨌든 더 이상 유저 문도들의 시간을 뺐지 않게 되어 내 심적 부담이 크게 줄었다.

그리고 총인원 1천의 문파가 되어서 문파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게 하나 있었다. 그동안은 NPC 문도들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문파대전 중이라도 녀석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문파 수비용으로밖에 쓸 수 없었다. 하지만 5등급 문파가 되면서 이 NPC들을 제어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바로 단(團)을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각 단엔 문파 총관처럼 단주의 명령을 총괄해주는 고급 NPC가 하나씩 배치됐다. 그 NPC에게 명령을 내리면 자세한 행동 지침을 내릴 수 있는 방식이었다.

임의로 정해놓은 소요파의 4개단은 공식적인 조직으로 재구성됐다. 하지만 당장은 NPC 문도를 배치하지 않았다. 모두 표국으로 돌려서 레벨 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한번 칼을 뽑아든 이상 멈출 수는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문파대전이 시작되었다.

무령방의 문파 등급이 내려간 상태라, 이번엔 전 주에 비해 크게 고생하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두 번의 전쟁을 통해 소요파의 진정한 힘이 드러나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정말이지 강호 시스템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연락은 총관에게서 왔다. 총관에게서 전서구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급히 석취산의 천사교 작업장에서 난주까지 달려갔다.

“문주님, 오셨군요.”

“조 문주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문파 내의 취의청에 들어서자, 총관과 난생처음 보는 NPC가 인사를 해왔다.

“네, 그런데 누구신가요?”

NPC는 고급스런 비단옷을 차려입은 중년인이었다. 생김새로 봐서는 어느 방파의 지체 높은 사람으로 보였다.

“네, 소개 올리겠습니다. 저는 농서의 조그만 문파인 서원문을 책임지고 있는 금오동이라고 합니다. 조 문주님은 말씀 낮추시지요. 감당키 어렵습니다.”

‘서원문이라… 문파 이름은 낯이 익긴 한데, 지금은 일등급짜리 문파였던가?’

“좋아, 그럼 말 낮추지. 그런데 금 문주가 어쩐 일로 날 다 찾아왔지?”

“휴…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간단히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시늉을 하던 금오동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 농서 서원문은 난주 소요파 밑으로 들어오길 원합니다.”

“……!”

전혀 상상도 못했던 말을 금오동이 내뱉었다. 당황한 내가 이게 무슨 소리냐며 총관을 쳐다보자, 총관이 설명을 했다.

“항상 힘으로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금 문주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말을 바꿔 타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말입니다.”

이런 일을 제멋대로 결정하다니. 문파 등급이 올라가서 총관의 머리가 더 똑똑해진 것도 같다.

하여간, 금오동의 말은 신중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총관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더 던져서 제안의 이득을 따져 봤다.

알아본 결과, 단기적으로는 복속보다 점령해버리는 게 이득이 더 많았다. 복속을 해도 문파 명성이 오르긴 하지만 점령보다는 적었고, 상대 문파를 해산시키면 일순간 큰돈을 만질 수 있기도 했다. 또 충성 서약을 받게 되면 지속적인 세금을 받아낼 수 있긴 하지만,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걔네들도 얼마간 뜯어먹고 살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복속의 단 한 가지 이점이 그 모든 문제를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바로, 자 문파가 아니더라도 그쪽 문파에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명령권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총관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그쪽 행동을 유도할 순 있었다. 즉, 현재 1천의 문도 외에도 그 이상의 수하를 부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좋아, 허락하겠어.”

금오동의 제안을 승낙하자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농서 서원문과 난주 소요파가 결맹하였습니다. 서원문은 소요파의 하부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으로도 상납금 비율 같은 자잘한 문제를 결정했다. 서원문이 다음 문파대전에 협조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원문의 그 약속은 지켜질 수가 없었다.

농서의 남은 두 군데 문파에서도 사절을 파견해온 것이다. 우리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말이다. 농서를 앉아서 간단히 따먹게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게 되자, 소문이 퍼진 탓인지 다른 지역의 문파에서도 접촉을 시도해왔다. 며칠을 그렇게 사냥도 못 가고 손님들을 접대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번엔 전혀 다른 용건을 가진 손님이 찾아왔다.

“조 문주님,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천수 가단회의 충성 서약을 막 받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취의청으로 들어온 노도사가 말을 걸어왔다.

공동파 도사였다. 아이디가 해운(海雲)이라는 공동의 장로급 NPC였다.

‘갑자기 웬일이지? 또 군자금을 달라고 찾아왔나?’

“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해운 진인께서 무슨 일로 본파에 왕림하셨는지요?”

“허허, 어째 별로 반갑지 않으신가 봅니다. 오자마자 용건부터 찾으십니다그려. 허허.”

해운이 처음부터 까칠하게 나온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요즘 격무에 시달리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봅니다. 제 실수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어이, 총관! 진인께서 오셨는데 냉큼 차를 내오지 않고 뭐 하는 건가!”

짐짓 화난 척 총관에게 명을 내리자, 녀석이 쪼르르 밖으로 나간다. 정말로 차를 내오려는 듯.

“그런데 진인, 전황은 어찌 돼가고 있는 겁니까?”

“그렇잖아도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혹시 일이 잘 안 풀리는 겁니까?”

공동과 사황성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건 총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간단히 첫 전투가 사황성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자세한 전황은 알 수 없었다.

해운이 이마를 살짝 찌푸리더니 대답한다.

“조 문주, 일이 어렵게 되었소. 출진한 선발대가 전멸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부족함이 있긴 했지만, 전멸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아무래도 사황성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싶소이다.”

“허허, 어떻게 그런 일이! 사황성의 힘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입니까? 어찌 대(大)공동이 일개 마인들의 집단에 무릎을 꿇게 됐단 말입니까? 진인, 자세히 좀 들려주세요.”

“조 문주, 어째 말이 좀 거시기하게 들립니다? 우린 아직 무릎을 꿇지 않았소! 문주 말대로 사황성의 힘이 비록 위협적이긴 하나, 공동이 절대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것이오!”

‘이 자식이 어째 계속 까칠하게 나오네? 그리고 솔직히 사황성이 공동파보다 센 건 당연하지. 곧 무릎 꿇게 되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야.’

하지만 난 공동파가 좀 더 선전하길 기원해야 했다. 망하긴 망하되, 좀 더 시간을 끌어줘야 했다. 최대한 사황성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여 줬으면 했다.

곧 총관이 차를 가져왔고, 드디어 까칠했던 해운 장로의 용건을 알 수 있었다.

“…일은 그렇게 되었소. 사실, 돈황 결전이 공동의 패배로 끝이 나긴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암담하진 않았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린 나름대로 선전한 거란 말이오. 죽은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적도를 베어 넘겼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의당 그렇게 생각해야지요. 놈들은 아직 공동의 힘을 제대로 느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흠흠, 조 문주의 이번 말은 꽤 좋게 들리는군. 그런데 조 문주 말대로 놈들에게 대공동의 위력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지금 정황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요.”

“네?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가요?”

“혹시 들어보셨소? 최근 사황성이 공동산에 들어와 분탕질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사황성이 가욕관을 넘어 쳐들어왔다는 소린가?

“금시초문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흠, 조 문주는 다 좋은데 귀를 닫고 산다는 문제가 있어요. 큰일을 하는 사람은 항상 귀를 열어두고 다녀야지요.”

‘이 자식이 뭐라고 하는 거야? 그런 이야기를 내가 얻어들을 수 있는 곳이 너네 공동파밖에 없는데, 이제야 알려 주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놈들의 숫자는 파악된 바로는 십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소. 문제는 이놈들이 약삭빠르기가 여우 같다는 거요. 지금 해를 입은 도우들의 숫자가 벌써 백 명을 넘어섰소. 지금은 돈황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공동의 모든 전력을 집중해야 할 땐데, 난데없이 나타난 이놈들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오. 숫자는 열밖에 되지 않는 놈들 때문에 몇천의 인원이 진군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오?”

“허허, 어떻게 놈들을 제압할 방도가 없습니까? 그런 우환거리를 남겨 두고 결전에 임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입니다.”

“흠… 안타깝게도 우리 공동의 힘만으론 방도가 없다오. 솔직히 문중의 도우들은 수행만 하던 사람들이라 그런 마인들의 잔꾀에는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이 든다오. 결국 장로회에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오. 이번 일은 아무래도 속세 사정에 밝은 소요파에서 담당해줬으면 하고 말이오. 지금도 소요파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조 문주! 공동이 무너지면 감숙의 모든 문파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될 거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부디 공동의 결정에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제안을 하는 게 아니라, 따라달라고 한다. 역시 대문파의 NPC는 이렇게나 건방졌다.

‘흠, 그 게릴라들은 분명 흑룡이 시킨 일이겠지? 아직 불가침 조약은 깨지지 않은 상태라 대놓고 싸움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못한다는 소리를 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것 같고……. 이거 참, 하긴 해야 할 텐데 생각나는 방법이 없네.’

“조 문주! 이번 일만 잘 해결해주면, 장문 사형께서 큰 보답을 해드리겠다고 했소!”

내가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자, 해운이 미끼를 던진다.

어차피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어떻게든 양쪽의 피해를 최대화하는 게 내 본래 의도였다. 그런데 지금처럼 공동에 발이 묶여 버리면 양 진영의 격돌이 언제까지 미루어질지 모른다.

“소요파가 지금은 정신없이 바쁘긴 합니다. 하지만 사안이 중요한 만큼 이번엔 공동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지요.”

그러자 해운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탕하게 웃어젖힌다.

“하하, 당연히 수락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조 문주가 나선다면 그 미꾸라지 놈들은 금방 제압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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