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장. 술사단(術士團)
다음 날.
사망한 척살단원들이 석취산 천사교로 돌아왔다.
난 일단 사냥을 중지시키고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어때요? 여러분 실력만으로 이 자리를 독식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광견이 뭐라 말을 하려다 광우의 제지에 입을 다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광견이 넌 자신 있나 보지? 천사교 장문인을 혼자 잡을 수 있겠어? 아니면, 하다못해 호법이나 호교신장들은 잡을 수 있겠어?”
“끙, 그래도… 요 앞의 놈들이라면 잡을 수 있단 말입니다!”
녀석이 그래도 인정하지 않고 반항을 해온다.
“어차피 여긴 몹들이 좋은 아이템을 주는 건 아닙니다. 특별히 부적술에 관심 있는 사람 말고는 무공서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좋은 점이라면 레벨 올리기에는 최적지라는 거지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백호, 청룡을 제외한 주작, 현무단을 들였으면 합니다.”
“싫어!”
“저도 싫습니다!”
“우리가 고생 고생하면서 발견했단 말입니다!”
이거 참, 다들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하긴, 열 받기도 하겠군.’
죽도록 고생해가면서 겨우 던전 탐색까지 끝내놨는데, 다른 단은 차려 놓은 밥을 거저먹게 되는 식이었다.
“일단 유예 시간을 주는 게 낫겠는데요.”
가만히 지켜보던 현운자가 조용히 조언을 해왔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니, 그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딱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동안은 척살단이 여기 독점하세요.”
“싫어! 겨우 일주일이 뭐야? 두 달은 줘야지!”
누님이 강력 반대를 해왔다.
“그 일주일이 남들의 두 달 정도가 되게 해드리겠습니다. 저도 당분간은 여기서 사냥할 생각이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분들은 상청궁 바깥에서 레벨 올리는 데 열중하세요. 저하고 현운자 님은 상청궁 안에서 생활할 겁니다. 아마 일주일이면, 모두에게 화양어린갑하고 강기성형 정도는 돌아갈 겁니다.”
“강기성형? 그게 뭐야? 검기성형 위 단계야?”
어제 사냥에서 강기성형을 3개 얻었다. 그중 호교신장에게서 나온 건 내가 날름 배워버렸고, 호법들에게서 나온 강기성형 2개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현재 문도원들 대부분은 검기성형은 배워둔 상태였다. 예전 파신묘에서 원귀들을 잡으면서 대량으로 먹어둔 걸 나눠줬기 때문이다. 다만 이대제자들 중 몇몇은 따로 사냥하면서 구해야만 했지만.
“맞아요. 강기를 뿜어낼 수 있는 무공이죠. 검기의 업그레이드형이라고 봐도 되구요. 하여간, 지금 그거 배운 사람은 공갈대사랑 여기 현운자 님,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밖에 없습니다. 엄청나게 귀한 아이템이죠.”
그러자 척살단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쑥덕공론을 하기 시작한다.
“좋아! 그 정도라면 괜찮지. 그런데 설마 그 강기성형을 다른 문도들한테도 주는 건 아니겠지?”
좋은 물건이 널리 퍼지면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법. 소소 누님이 선제공격을 날렸다.
“우선은 단주와 부단주급 간부들에게만 뿌릴 겁니다. 일반 문도들은 상황 봐가면서 뿌리고요. 너무 욕심 부리지 마세요. 문파가 세지면 여러분에게도 이득입니다.”
그러자 또 척살단원들이 쑥덕거리면서 의견을 나눈다. 그리고 결국은 승낙했다. 당연했다. 내가 아니면 그들은 호교신장들 때문에 상청궁 문턱도 넘지 못할 테니까.
“좋습니다.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습니다.”
“아, 왜 또!”
“누님, 저 싫습니까?”
“아니, 사랑해.”
“그럼 좀 들어주세요.”
“알았어.”
다시 사람들이 집중을 하자, 마음에 품어뒀던 계획을 꺼내놓았다.
“일전에 부적술사 키우겠다는 말했었는데, 기억들 하죠?”
“네.”
“제가 알기론, 여기 천사교는 현재 강호에서 유일하게 부적술 비급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부적술의 위력이야 여기 현운자 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까 따로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일단, 이 자리에서 부적술을 배워보겠다는 사람을 뽑아야겠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최우선으로 뒤를 봐주겠습니다. 단, 전문 부적술사가 될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무공과 부적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이 중에 하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모두들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었다. 부적술이 좋다는 거야 충분히 알고 있지만, 무공을 포기할 정도로 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신청하는 사람한테 술사단의 단주를 시켜 주겠습니다. 단원도 임의로 타 단에서 차출할 수 있도록 해주겠습니다.”
그러자 권력욕 많은 한 척살단원이 손을 들고 물어왔다.
“문주님! 부적술 배우려면 지능 스탯이 높아야 하지 않나요? 술사를 하고 싶어도 막상 배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죠. 어제 알아보니 최고급 부적술을 구사하려면 지능 300이 필요하더군요. 보통 300레벨쯤이면 지능이 50 정도인 걸로 아는데, 그렇다면 550레벨까지 쭉 지능을 찍어야 되니까 아무래도 힘들겠죠? 하지만 단주가 될 정도라면 그 정도 각오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쩝, 전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550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네요.”
질문을 던졌던 이대제자는 지레 포기해버렸다.
다른 이들도 내 말에 기가 죽어선 한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없습니까? 술사단이 구성되면, 각 단에 다섯 정도 술사들을 배치시킬 건데 말입니다. 이렇게 호응이 없다면 척살단에 술사를 배치하는 걸 고려해봐야겠습니다.”
고위 술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지금 척살단 전력으로도 상청궁 입구의 호교신장쯤은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술사의 위력은 집단전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문주님, 제가 한번 해볼게요.”
드디어 지원자가 출현했다. 그런데 지원자라고 나선 놈이 고현이라는 놈이다. 일대제자 중 가장 약한 녀석.
“정말 할 거야? 550까지 지능만 찍을 자신 있어?”
난 녀석이 제발 철회하기를 바랐다. 이 녀석을 단주로 삼기엔 영 부담이 됐다. 이광이랑 합세해서 맨날 날 갈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550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구요, 하여간 하겠습니다. 저도 이제 고참인데 밑에 쫄따구 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더욱 미덥지 않다. 다시 한 번 하겠냐고 물어봤지만, 놈의 결심은 복지부동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승낙하고 말았다.
맘에 들진 않았지만, 녀석을 어서 빨리 최고급 부적술사로 만들어야 했다. 녀석이 바로 서야 그 밑의 전문 부적술사들을 제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시 사냥이 재개됐다. 이때만큼은 나도 레벨 업 욕심이 생겼다.
천사교 마당의 일반 제자들은 400레벨의 고급 몬스터였다. 그보다 센 상청궁 2층의 노도사들은 족히 450은 되어 보였다.
내가 여태 고목문에서 작업을 한 이유는 400레벨에 도달한 내게 걸맞은 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낭산의 늑대들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이미 문도들에게 개방한 상태. 문주 체면에 몹 가지고 경쟁을 하기는 싫었다.
현운자도 도사들 때려잡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천사도와의 우호도가 계속 내려가고 있었지만, 우린 레벨 올라가는 재미에 점점 무신경해져 갔다.
그리고 사냥을 재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소소 누님에게서 전서구가 날아왔다. 마당의 일반 도사를 잡고 중급 부적술 비급을 입수했다는 것이다.
이제 초급 부적술 비급만 구하면 일사천리로 고위 술사 한 명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더 이상의 새로운 아이템 수확이 없었다. 북종주 천도는 만으로 하루가 지났는데도 리젠되지 않았고, 강기성형 비급을 드롭하던 호법들과 호교신장도 리젠되지 않았다.
2층의 일대제자, 3층의 호교무인들만 줄창 도살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수천 명의 도사들을 학살했는데도 초급 비급은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한나절 동안을 사냥했는데도 초급 비급은 꼬랑지조차 내밀지 않았다.
“쩝, 별수 없겠네요. 상식적으로 봐도 이런 늙은이들이 초급을 줄 리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사냥을 한다면야 이렇게 맥이 빠지진 않을 것이다. 분명 원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게 나오지 않으니 속이 탔다.
“현운자 님은 내려오시지 말고 여기서 사냥하고 계세요. 저 혼자 업보를 뒤집어쓰겠습니다.”
난 1층의 어린 도사들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평소 도사스러움을 자주 드러내던 현운자를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어린 소년 도사들은 함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운자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생각에 찬성을 표했다. 그리고 내 말대로 2층에서 사냥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 홀로 1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소도사들은 똑같은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모르겠네. 흐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 방법밖에는 없으니까.”
몇 성, 몇 성 하는 경지가 없는 부적술은 타인에게 전수할 방법이 없다. 오로지 사냥해서 얻은 비급으로만 배울 수 있었다. 현운자도 무당파의 특수 퀘스트를 통해 부적술과 강신법을 배웠다고 한다. 문파에선 비급을 통해 전해주는 게 아니라, 바로 기술을 전수해주는 식이었다. 내가 신안을 배운 것처럼.
어린 도사들이 비급을 줄지 안 줄지는 모르겠지만, 부적술사들의 숫자만큼 초급 비급을 얻어야 한다.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 더 이상의 고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천천히 내 앞의 소도사들에게 다가갔다. 녀석들은 내가 지척까지 다가가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통 없이 죽여 주마.”
당연했다. 한 방에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1천 명의 소도사를 언제 다 정리하겠는가?
뒤돌아 앉은 무방비 상태의 소도사의 머리를 금강저로 냅다 후려갈겼다.
퍽!
소도사는 단번에 죽어버렸고, 그렇게 시작됐다. 1천 명의 어린 도사들을 학살하는 일대 참극이…….
[천사교와의 우호도가 -12,172가 됐습니다.]
[천사교와의 우호도가 -12,182가 됐습니다.]
[천사교와의 우호도가 -12,192가 됐습니다.]
교주를 제외한 다른 도사들을 잡으면 우호도가 1씩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어린 도사들은 약한 몹이면서도 10이나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히 우려했던 명성치 하락은 없었다.
난 완전히 소도사들에게 포위됐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아니, 무서울 리가 없었다.
녀석들의 부적술은 금강저의 항마력으로 인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더구나 이 녀석들은 무공도 쓸 줄 몰랐다. 검법은커녕 권장지술조차 아직 배우지 못한 애송이들이었다. 1천 명의 어린 소도사를 학살하는 동안, 단 1의 데미지조차 받지 않은 것이다.
처음엔 그저 한 방에 한 마리 몹이 죽어나가는 재미로 사냥을 시작했는데, 점점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약한 몹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호교신장을 뚫고 들어올 정도의 고수들을 상대로 왜 1층엔 이 녀석들만 존재하는 거지?’
마치 헤어나지 못할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예감이 엄습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우호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밖에 없었고, 그거야 어차피 계속 사냥하다 보면 마찬가지이기에 그 자체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확인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천사교와의 우호도가 -22,305가 됐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소도사가 죽었다. 겨우 30분 남짓에 1천 명이나 죽어버린 일대 학살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천사교와의 적대도는 2배로 껑충 뛰었다.
“찝찝한 건 그만 잊자. 일이 생기면 해결하면 되는 거구. 그래봤자 겨우 게임일 뿐인데 너무 신경 쓰는 것도 바보밖에 안 되지.”
억지로 스스로에게 되뇌어주었다.
“다행히 주긴 주는구만.”
바닥엔 각종 비급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재초과의총록(齋醋科儀總錄)
도교의 제사에 관한 기본 법식을 모아놓은 총서. 천사도 북종 고유의 부록주 교과서다. 부적술 초급의 경지를 이룬다.
수련 제한:도가 체질
수련 제한:지능 20]
그토록 원했던 초급 부적술이었다. 재초과의총록은 50권이나 됐고, 그밖에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실전 부적술인 벽이나 격, 만 따위의 비급도 상당히 많았다.
떨어진 아이템을 전부 쓸어 담고, 일단 현운자에게 상황 보고를 하러 2층 계단으로 향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저놈은 왜 달려들지 않았지?”
계단을 향해 가다 보니, 1층 강당에 아직 정리가 안 된 몹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소도사를 가르치던 선생 도사였다. 노도사는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단 위에 좌정한 채 내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1층에 있는 몹이기에 센 녀석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소도사들을 제외하면 단 하나뿐인 유니크 몹이라서 호기심이 동했다. 놈의 면상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노도사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 돌아가는 걸 보니, 정확히 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도사 앞으로 다가가자 그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그대가 저지른 만행은 분명 대가를 받게 될 것이오.”
폐가 좋지 않은지, 쉰 목소리가 꾸부정 도사 입에서 새어나왔다.
“제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말이 통할 것 같은 NPC를 만나자 또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린 도사를 죽여서인지, 아니면 천사교와의 우호도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지 알고 싶었다.
“죄를 행하고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니… 네놈은 마군이로구나!”
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도사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런데 그렇게 화를 내고서도 공격을 해오진 않았다. 그렇다면 평범한 NPC가 아니라는 소리. 어쩐지 이 노도사에게선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그저 일개 무부에 불과합니다. 이곳이 얼마나 청정한 도량인지는 모릅니다. 그건 제 관심 밖입니다. 전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부적술을 배울 수 있는 비급을 얻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부적술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행히 이곳을 발견했고, 전 그저 부적술을 얻기 위해 도사들을 죽인 것뿐입니다. 노인장께서 절 마군이라고 칭하시니, 마군이라고 여기십시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게 있군요. 제가 마군이긴 하지만, 상대가 안 되는 어린애들을 죽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어린애들을 이용해 절 핍박하는 겁니까?”
내가 말을 끝내고 노도사를 바라보자, 그는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분노 섞인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자네는 거짓말쟁이에다 예의도 없는 마군이군. 저 어린아이들이 자네를 핍박한 적이 있던가? 입이 달렸다면 말해보게. 저 어린아이들은 친구가 죽자 자네에게 달려들었을 뿐이야! 그리고 자네의 생각은 전적으로 오해네. 이곳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이고, 모두 내게 황정경과 도덕경을 배우고 있었을 뿐이라네. 그들은 살생하고는 거리가 먼 아이들일 뿐이었어. 그런데 자네가 그 아이들을 무참하게 살해했지. 아무것도 모르고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그리고 이어지는 노도사의 말은 날 충격으로 밀어 넣었다.
“이곳 천사교는 자네 생각처럼 사교 집단이 아니야. 장강 이북의 출가 도인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곳이지. 비급이 필요했다면 약간의 노력과 시주만 하면 얻었을 것을, 왜 그런 패악을 저질렀나? 무엇이 그대를 그렇게 성급하게 만들었나?”
둔기로 머리를 강타당한 기분이었다. 이곳이 돈만 주면 비급을 주는 곳이었다니!
‘이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야!’
머릿속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데 노도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오해가 어디서 빚어졌는지는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 그리고 실수로 저지른 죄라도 마땅히 죄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야.”
“…….”
“교단에서 사람이 찾아갈 걸세.”
노도사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눈을 감아버렸다.
넓은 강당에 숨 쉬고 있는 자는 오직 나 하나뿐.
아예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어차피 천사교와 싸울 거라면 듣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텐데.
“제길. 대체 일이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 처음 일주문에서 봤을 때부터 보초 놈들이 먼저 달려들었잖아? 그래놓고 이제 와서 왜 죽였냐고?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재수 없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듣는 게 나았다. 불안감은 지울 수 있었으니까. 이젠 노인네가 말한 교단, 즉 천사교 총단의 도발만 대비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식의 도발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운자는 2층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하라고 일렀더니만, 그냥 퍼질러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에게 내가 들었던 그 황당한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줬다.
“그럼 그 선생 도사는 그대로 뒀어요?”
“아니, 절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 듣고서 그 도사 잡을 생각은 못하죠. 더구나 공격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몹이 아니라 NPC 같았단 말입니다.”
“그래도 약간의 양심은 있었군요. 다시 봤어요, 조연 님.”
현운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놀려 왔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아요? 지들이 먼저 공격해왔으면서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전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요?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여길 발견한 게 아니잖아요. 척살단이 찾은 곳이라는 걸 잊어버린 거예요?”
순간, 현운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우리가 먼저 찾은 게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보다 먼저 찾은 사람… 그리고 척살단……!!’
“컥!”
순간,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이 망할 이광이 새끼들!”
그랬다. 이광 이놈의 자식들 소행이다.
아무리 몹처럼 생겼어도 일단 하고 다니는 꼴이 이상하면 의심을 해야 했다. 강호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곳이다.
그런데 이 자식들은! 다짜고짜 천사교 사람들을 잡아버렸던 것이다!
모든 일이 그놈들의 첫 공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놈들이 살인을 저지르자 문파 문도원의 우호도가 전부 하락했고, 그다음은 천사교의 선제공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자식들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아무래도 안 되겠어. 또 무슨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파문을 시켜 버리든가 해야지!”
놈들이 벌인 짓으로 천사교라는 거대 집단을 상대하게 생겼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농담이시죠? 그래도 장로들인데 파문이 어디 쉽겠어요? 그리고 상황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할 순 없는걸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노도사 말은 여기서 부적술을 판다는 건데, 자기네 문도도 아닌 사람들에게 고급 부적술을 팔겠어요? 기껏해야 중급 정도겠죠. 첫 단추를 잘못 꿰긴 했지만, 그 덕분에 쓸 만한 비급을 많이 얻었잖아요. 세상일이 다 그렇죠. 한쪽이 잘되면, 다른 쪽은 안 되고.”
그러고 보니 그 말도 맞네? 적대 세력이 아니었다면, 천도라는 놈 얼굴이나 볼 수 있었을까? 그놈 잡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노도사 말대로 돈으로 거래를 시작했다면, 결코 최고급 부적술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 안전하게 보통 수준으로 남느냐, 아니면 위험하지만 최고가 되느냐 이걸 선택하는 문제였군.’
현운자의 말이 내 시야를 넓혀 줬다. 어차피 이젠 소요파와 천사교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넘어버린 관계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우호도 걱정일랑 나중에 하고 렙 업이나 합시다!”
천도와 호법, 그리고 호교신장은 사흘이 지나서야 다시 출현했다. 게임 속 시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셈이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녀석들이라 처음에 비해선 한결 수월하게 천도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천도는 분신술을 사용했고, 역시나 모든 천도를 없앴을 때에야 놈이 쓰러졌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역시 천도는 본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놈의 기술은 분신술이 아니라 복제술이라고 불러야 옳을 정도였다.
두 번째 북종주를 잡고서 그동안 얻은 비급을 일차로 나눠주었다. 이광과 누님, 그리고 고현에게 강기성형이 돌아갔다. 고현은 전문 부적술사로 진로를 잡아서 강기성형을 굳이 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단주급이라 녀석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그리고 강기성형을 받고 희희낙락거리는 녀석을 따로 불러냈다.
“그럼 오늘부터 시작하자.”
다른 단원들은 모두 사냥하러 갔고, 현운자와 고현만 남았다.
“뭘요? 부적술요?”
녀석이 드디어 때가 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스트레이트로 최고급까지 배우자.”
“예? 저 아직 지능 300 찍으려면 한참 남았는데요? 이제 겨우 102밖에 안 돼요!”
고현의 현재 레벨은 320. 거기에 지능을 100이 넘게 찍은 녀석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지능을 많이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높은 지능 때문에 놈은 술사단 단주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이거 먹어라. 지능 300 찍고, 나머진 다 체질로 찍어.”
내가 내민 것은 황제구정신단이었다.
황제구정신단은 환골탈태를 가능하게 해주는 절세 영단이다. 단, 강호의 환골탈태라는 것이 흔히 무협지에서 말하는 무슨 경천동지할 내공, 체질의 변화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단약엔 스탯의 재분배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녀석이 구정신단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런 기능이 있는 아이템은 처음 봤다는 표정이다.
“어째 많이 미안해지는걸요.”
“일단 먹기나 해.”
구정신단.
만박자의 말이 아니라도 현재 나온 단약 중에선 분명 최고의 단약이다. 1회 사망 페널티를 되돌리는 혼천귀원단보다 더 가치가 높았다. 가격으로 따지면 1억 냥이 될지, 10억 냥이 될지 아무도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한 아이템.
난 그걸 별로 미덥지도 않은 고현이라는 녀석에게 공짜로 먹이고 있는 것이다.
고현은 좌정을 하고 구정신단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운기가 시작되자 고현의 몸이 투명해져 갔다. 그리고 환골탈태가 시작되었다.
뿌드득- 뿌득-
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골격이 다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머리털과 손톱 발톱이 빠지고 다시 나기 시작했다.
환골탈태는 몇 분간 지속됐다. 그동안 여러 차례 놈의 얼굴이 변했다. 기괴하게 뒤틀린 고현의 얼굴은 한때는 야수처럼 보이다가 금세 미공자의 얼굴로 변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변한 얼굴은 아주 아주 평범한, 강호를 갓 시작하는 초보 유저들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고현이 스탯을 찍어가자 드디어 놈이 제법 술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휴! 다 찍었어요.”
지능이 300이나 되면 저렇게 생겨 먹게 되는 건가? 놈은 영락없이 서생 나부랭이와 똑같았다. 쥐꼬리 같은 가느다란 수염에다 이마는 짱구 머리다. 그나마 눈은 똘똘해 보인다.
‘나중에 거울 보고 놀라 자빠지겠군.’
저렇게 생긴 일반 유저는 아무도 없다. 다른 유저들은 고현을 보고 자신들과 같은 유저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디만 감추면 영락없이 NPC였다.
고현은 일사천리로 최고급 부적술까지 배워나갔다. 그러자 조금 모양새가 나온다.
쥐꼬리 같던 수염은 풍성한 백염으로 바뀌었고, 눈썹도 하얗게 변했다. 이젠 더욱 NPC 같아졌다. 완전 산신령이 따로 없었다.
“이젠 현운자 님이 설명을 해주세요. 어떻게 사냥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요. 전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내가 한발 물러서자, 선배 술사의 조언이 시작됐다.
“고현 님, 저도 최고급은 모릅니다. 고급까지밖에 모릅니다. 제 말이 그대로 다 맞는다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쨌든 제가 알고 있는 것만 이야기해드릴게요. 우선, 부적술엔 각 기술마다 숙련치가 존재합니다. 그건 부적의 성공률하고 밀접하고, 또 공격계와 방어계 같은 경우엔 최대 효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숙련치는 무공과 마찬가지로 몹을 죽여서 경험치를 얻는 게 아니라, 자주 사용할수록 오릅니다. 그런데 아마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부적 값이 싸지 않거든요.”
“네? 보통 얼마나 하는데요?”
고현이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잡화점에서 사면, 초급 부적이 한 장에 열 냥입니다. 중급은 백 냥, 고급은 천 냥이지요. 전 아직 못 써봤지만, 최고급은 이만 냥이라고 합니다.”
고현은 기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이 길로 들어섰다고 후회하는 기색마저 보이는 것 같다.
“아, 저 같은 경우엔 무당파에서 그 반값에 구입해서 쓰고 있습니다.”
현운자가 거기에 염장까지 지른다.
“야, 고현! 돈 문제는 신경 쓰지 마. 일단 어느 정도 틀이 잡힐 때까진 문파에서 지원해주마.”
내가 생각해도 부적 값이 너무 셌다. 최고급 부적 한 장이 2만 냥이라면, 연신부, 추혼부 같은 술법 한 번 시전하는 데 무려 10만 냥이나 나간다는 소리였다. 문파대전 중에 문도원에게 한 번씩만 걸어줘도 간단히 1천만 냥이 소모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적술엔 단축 버튼 같은 건 전혀 안 먹힙니다. 무조건 음성 명령으로 시전해야 합니다. 정확한 발음으로 빠르게 말하는 연습을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상황에 맞춰서 적절한 부적술을 선택하는 거야 직접 겪으면서 알아보시면 되는 거고… 더 이상은 해드릴 말이 없는 것 같네요.”
고현은 그제야 자신이 더 이상 무인이 아니라 술사라는 걸 자각하는 듯했다.
모든 명령을 말로 풀어내야 하는 술사. 사람은 말보단 손이 더 빠르다. 몸은 숙달될 수 있지만, 말은 숙달되기 어렵다.
내가 고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자금 지원밖에 없었다. 고현은 내게 사냥터에서 나온 잡스런 아이템(1억 냥쯤은 됐을 거다)을 선물로 받고, 부적을 사러 가장 가까운 도시인 은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현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은천에서 돌아온 고현은 부적을 수천 장이나 들고 왔다. 욕심일지 집념일지 모르겠지만, 녀석이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놈의 고집은 대단했다. 목이 아플 텐데도 쉬지 않고 부적술 연마에 힘을 다했다.
고현은 사냥 틈틈이 비무도 자주 했다. 몹뿐만 아니라 대인전의 요령도 스스로 터득해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땐, 어느새 이광과 맞붙어도 쉽게 지지 않을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척살단과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미리 말했던 대로 조립산과 소봉이의 주작, 현무단을 천사교로 불러들였다.
80여 명의 새로운 문도들이 가세했지만, 몹은 부족하지 않았다. 천사교는 넓었고, 몹은 많았다.
고현의 가세로 이젠 내가 아니어도 호교신장 정도는 뚫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일반 문도들도 2층의 도사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현이 술사단을 창설했다. 인원 차출에 대해선 그에게 전적으로 일임해둔 상태였다. 녀석은 4개단에서 5명의 인원을 차출해 총 스물의 술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 술사들이 모두 전문 술사는 아니었다. 전문 술사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들 전부를 먹일 구정신단도 없었다. 고현을 제외하고 넷이 전문술사를 지원했고, 그들은 추후 각 단에 배치되어 술사조 조장을 맞게 될 것이었다. 나머지 술사들은 각자의 지능에 따라서 부적술을 배워갔다.
그렇게 천사교에 들어온 지 2주일이 지났다. 전문 술사들은 모두 환골탈태를 마쳤고, 약속했던 대로 척살단 모두에게 화양어린갑과 강기성형을 안겨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