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6장. 천도 (37/62)

제36장. 천도

상청궁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호교신장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상청궁은 밖의 천사교 외단과는 다른가 보다. 제 집을 지키던 수문장이 쓰러졌는데도 다른 도사들이 튀어나오는 기색이 없었다.

‘미심쩍은걸? 혹시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상청궁 안엔 신기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을 섰다. 입구를 지키는 보초들이 저런 고수들이었는데, 절정의 경지에도 아직 오르지 못한 소소 누님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모두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상청궁 1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호교신장이 서 있던 복도를 지나치자 상청궁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히야, 멋지구만.”

다들 감탄사를 토해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말도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광장이었다. 우리 소요파 연무장보다도 넓었다. 일개 건물 안에 이렇게나 큰 공간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고작 방이 넓다고 해서 놀란 게 아니었다. 우릴 감탄시킨 건, 그 광장을 사람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족히 1천 명은 되는 듯한 도사들이 좌정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침입자가 쳐들어왔는데도 그 도사들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 모습만을 보자면 절대무심(絶代無心)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들 같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그 도사들이 나이 어린 소년 도사들이라는 것이다. 기껏해야 나이가 열 서넛이나 됨직한 어린 도사들 1천 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은 감탄이었지만, 난 곧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이게 대체 뭐야!”

NPC에 불과했지만, 천 명이란 대인원이다. 그들이 달려들어도 문제지만, 오히려 그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써 들어왔는데 어린애들만 기다리고 있다니!

‘그럼 아까 그 호교신장은 이 아이들을 지키려고?’

“연이 형! 이제 어떻게 해요? 다 쓸어버릴까요? 어린놈들뿐이라서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무개념 광견이 미친 소리를 해온다. 저놈이 정말 생각은 하면서 사는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녀석을 매섭게 째려보자, 놈이 찔끔하면서 한 걸음 물러선다.

“조연 님, 아마도 공부 중인 학인(學人)들 같은데요?”

그래, 그나마 명문 도파에서 수학한 현운자라면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좀 제대로 설명을 해주세요.”

“무당파에도 이렇게 어린 도사들 데려다놓고 공부하는 곳이 있거든요. 황정경이니, 주역참동계니 하는 그런 도교 경서를 가르치는 곳이죠. 어린 도사들이 대규모로 운집해 있을 만한 이유가 그것밖에는 생각나지 않네요.”

생각해보니 현운자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세히 NPC들을 훑어보자니 그 말이 정말 맞았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 광장 끝에 책상다리를 하고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이 소도사들을 가르치는 선생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 꼬맹이 도사들을 잡아도 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문제는 그거였다. 이 녀석들이 어디 몹으로 보이느냐, 이 말이다. 맹수나 마귀라면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무슨 상관일까마는 얘들은 사람이지 않은가.

하물며 이놈의 사냥터엔 무슨 우호도니 뭐니 하는 요상한 시스템마저 있었다. 왠지 잘못 건들면 큰 고생 치를 것 같다는 기분이 팍팍 들었다.

“그거야 저도 모르죠. 결정은 조연 님이 하시는 거니까요.”

현운자가 발을 뺐다. 하긴, 괜히 현운자에게 짐을 지우려고 한 내가 잘못이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일단 여기 일 층이 상청궁의 전부가 아니니깐, 일단 다른 곳부터 다 돌아보고 결정하죠. 그리고 혹시나 저 꼬맹이들이 달려들면 죽이지는 말고 일단은 도망치세요. 다들 알았죠?”

“아무리 봐도 그냥 잡몹이구만 뭘 그리 겁내는 건지, 원.”

“알았습니다!”

광견이 놈은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하냐며 투덜댔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말 없이 내 의견에 따라주었다.

외부에서 볼 때 상청궁은 3층 전각이었다. 어딘가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을 것이다.

소도사들과 거리를 두고 조심히 좌우를 살폈다. 역시나 기둥 뒤로 광장 좌우편에 계단이 보인다.

다행히 계단과 광장의 소도사들 간의 거리는 꽤 먼 편이어서 녀석들이 우릴 인식하고 달려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린 조심스럽게 상청궁 2층으로 올라갔다.

상청궁 2층은 1층과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였다. 계단을 다 올라오자 우리 앞엔 폭이 넓은 복도가 길게 나 있었고, 복도 양옆으론 많은 방들이 서로 마주 보고 배치되어 있었다.

“주의하세요! 저보다 앞서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모든 방을 순서대로 수색하겠습니다!”

주의를 단단히 주고 방을 하나씩 열어젖혔다. 이런 식의 구조는 사황성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방이 아니라 석실이었다는 게 다르지만, 분명 여기 2층 방 안에도 다수의 몹이 대기 중일 것이 틀림없었다.

첫 번째 방은 빈방이었고, 두 번째 방은 창고였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을 열고서야 우린 제대로 된 천사교 도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방 안엔 노도사 스물 가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내가 문을 열자마자 부적술과 검법을 병행하면서 공격해왔다.

“조심들 하세요!”

[현혹에 걸렸습니다.]

[해갑에 걸렸습니다. 1분간 방어력이 1천 하락합니다.]

[나태함에 걸렸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얼른 뒤로 몸을 빼면서 외쳤다. 내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온갖 부적이 내 몸에 달라붙더니 저주가 걸렸다.

노도사들은 천사교 입구 근처의 도사들보다는 나은 수준이었지만, 상청궁을 지키던 호교신장보단 못했다. 이들의 부적술은 감히 주조의 술법에 견줄 정도는 못 됐고, 검법은 호교신장들의 실력 반에도 못 미쳤다.

난 공격을 받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노도사들이 통로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런데 상황이 또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세 번째 방에서 노도사들이 뛰쳐나오자, 근처의 다른 방에서도 도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도사들의 숫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아무리 호교신장보다 실력이 못하다 해도, 이 정도 숫자라면 충분한 위협이었다.

“벽 쌓아요!”

난 위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아직 저들의 실력을 확실히 알 순 없지만, 문도들에겐 충분히 위협적임에 틀림없었다.

복도는 폭이 넓었다. 8명의 문도가 일자로 늘어서 통로를 봉쇄했다. 그 뒤로는 피해를 입은 문도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예비 인원이 대기했다.

최대한 자리를 지켜 내야 했다. 어디 한 군데라도 뚫린다면 자칫 전멸할 수도 있었다.

“이 자식들 완전 마검사네!”

고현이라는 놈이 기가 막혀 소리쳤다.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놈들은 검법도 그리 대단하지 못했고, 부적술도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강력한 수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부족한 두 가지 능력이 합해지니 일반 문도들이 상대하기엔 꽤나 까다로운 몬스터가 된 것이다.

거기에다 이놈들은 마치 유저들처럼 움직였다. 전투의 요령을 아는 놈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몹이라는 걸 망각하고 체력 안배까지 했다. 체력이 어느 정도 이하로 떨어지면, 부적을 난발해 우리 동작을 잠깐 묶고는 안전하게 뒤로 빠져나갔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봤다는 식이었다.

‘그래도 우주전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몇 번 그렇게 손속을 나누던 도사가 도망치자 나도 오기가 동했다.

내 앞에서 가소롭게 칼을 놀리던 놈을 점자 결과 금나수를 이용해 잡아끌었다. 왼손으론 검을 잡아 쥐고, 금강저를 쥔 오른손으론 권강에 충자 결까지 실어서 놈의 머리통을 냅다 후려갈겼다.

녀석이 막 품에서 부적을 꺼내들었지만, 내 공격이 조금 빨랐다.

빠악!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노도사는 그 한 방에 유명을 달리했다.

“다들! 시간 보다가 체력이 떨어진 놈한테 일제히 공격 먹이세요! 일점사만 똑바로 하면 까다로운 놈들 아닙니다!”

이 녀석들은 몹이라기보다는 문파대전 중인 일반 유저라고 생각해야 했다. 잠깐의 틈만 보여도 내빼는 녀석들을 잡는 데엔 역시 불의의 일격이 최고다.

내가 녀석들 잡는 요령을 가르쳐 주자, 눈치 좋은 유저들이 먼저 따라 하기 시작했다.

착! 착! 서걱!

“윽, 꾸르륵…….”

부적술 때문에 공격력도, 방어력도, 회피력도 무엇 하나 제 능력을 발휘할 순 없었지만, 우린 차근차근 놈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마침내 통로를 가득 메웠던 천사교 노도사들을 정리했다.

“좀 쉬었다가 갑시다.”

우린 겨우 2층의 4분지 1밖에 탐색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곳을 다 정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문도들이 운기 조식을 취하는 사이에 난 도사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수거했다. 은자나 쓰레기 잡템을 제외하면 모두 서적이었다.

“……!”

처음으로 살펴본 아이템은 날 조금은 흥분시켰다.

[팽조진적(彭祖眞籍)

은나라 대부이자 신선인 팽조의 심득이 담겨 있다는 진본. 부적술이 고급의 경지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수련 제한:부적술(중급)

수련 제한:지능:100]

드디어 부적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본 비급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럼 초급과 중급 비급만 구하면 되는 거네?’

대부분의 잡기 비급은 초급, 중급에 비해 고급은 구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나 같은 경우에도 아직 진법이나 음공이 중급밖에 안 됐다. 때문에 그 귀한 고급 비급을 구한 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팽조진적은 달랑 한 권밖에 없었고, 나머지 비급들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고급 부적술:벽(壁)

고급 부적술 벽을 구사할 수 있다. 사용 시 고급 부적 1장이 소모된다.

수련 제한:부적술(고급)]

벽이라면 예전 표행을 할 때 현운자가 보여 준 술법이었다. 허공의 일정 공간에 방어벽을 생성시키는 기술이 바로 벽이었다. 그 외에도 원거리 공격 술법인 격(隔)도 있었고, 공격 속도를 올려 주는 속(速)도 있었다.

‘그럼 이제 초급과 중급 비급만 얻으면 바로 부적술사를 양성할 수 있는 거네?’

금방이라도 문파에 술사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지능 100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들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전진을 계속했다.

2층은 아마도 노도사들의 기숙사인 것 같았다. 숫자가 너무 많은 걸로 봐서 장로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고, 그들이 바로 천사교 북종의 일대제자인 것 같았다. 밖에서 마주친 젊은 도사들은 이대제자고 말이다. 그럼 소년 도사들은 삼대제자가 되는 셈이었다.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렀고, 그제야 2층을 한 바퀴 다 돌 수 있었다. 하지만 2층엔 특별한 몹이라고는 없었다. 모두 천사교 일대제자들뿐이었다.

한 바퀴 도는 데 장장 2시간이나 걸렸다. 그사이에 처음 쓸었던 장소엔 다시 일대제자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1년 365일 쉬지 않고 사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몹이 많다면, 내가 알고 있던 그 어떤 사냥터보다 레벨 올리기엔 최고의 장소 아닌가?’

비록 한 녀석 잡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적술을 제외한 좋은 아이템 비급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레벨 업만이라면 최상급인 곳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그런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의 목적은 천사교 탐색이었지, 사냥이 아니었다.

우린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냈고, 계속 탐험을 진행해갔다.

3층의 구조는 2층과는 또 달랐다. 마치 동심원과 같은 구조였다. 외각은 긴 복도가 테두리처럼 안쪽을 둘러싸고 있고, 그 안은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서 고리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외곽의 방은 작지만 개수가 많았고, 그 안쪽으론 적은 수의 큰 방이 배치된 구조였다. 그렇다면 3층의 중심부엔 이번 탐색의 최종 목표가 도사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가장 외곽, 그 조그만 방들에 숨어 있었던 건 천사교의 호교무인들이었다.

호교무인들은 일대제자들처럼 부적술과 검법을 같이 사용하는 데다 진법까지 사용할 줄 알았다.

무슨 북두칠성검진이니 어쩌니 하면서 달려드는 놈들은 노도사들보다 더한 찰거머리들이었다. 게다가 몹 주제에 우릴 공격하려는 마음보다 자기들 안전에 더 힘을 쏟았다.

‘뭐 이런 놈들이 호교무인이야! 명색이 호교(頀敎)라면 우릴 제압하려고 방방 뛰어야 하잖아!’

녀석들은 겨우 한 녀석만이 공격을 담당했고, 나머지 여섯은 그 한 명의 안전에만 신경을 썼다. 아무리 내가 충자 결로 강한 데미지를 먹이려 해도 여섯 놈이 합세해 내 데미지를 분산시켜 버리는 것이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좀 죽어라, 이 자식들아!”

“징그럽다, 징그러워!”

우린 7개의 칠성검진을 상대하고 있었다. 총 49명의 호교무인들이 우릴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 차이도 있었지만, 망할 검진 때문에 녀석들 중의 이탈자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에 다들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통로가 조금만 더 넓었어도 놈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2층과는 역으로 이번엔 우리가 좁은 통로를 한탄해야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은 호교무인들과의 전투도 결국은 끝나게 되었다.

어이없게도 녀석들을 제압한 건 그놈들 스스로였다.

합격진을 구사하려면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걸 이용하자고 한 사람은 현운자였다. 현운자는 아직 돌아보지 않은 호교무인들이 거처하는 방을 다 뒤져서는 몹을 잔뜩 달고 돌아왔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검진의 혼란이 발생했다. 녀석들의 칠성(七星)검진은 십성(十星)검진도 아니고, 백성(百星)검진도 아니었다. 자기 검진 외부의 동료들에겐 신경 써주지도 못하면서 괜한 길 막기로 동료의 피해를 초래했다.

한마디로 자멸한 것이다.

진법 때문에 한 녀석을 잡는 데 걸리는 사냥 시간은 아래층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현운자가 막판에 한꺼번에 호교무인들을 달고 왔기 때문에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지 않았다.

녀석들을 정리하고 우린 중심부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마주친 적들은 호법들이었다.

호법이라면 보통은 장로보다 더 강력한 존재들로 나온다. 난 녀석들의 아이디 옆에 달린 그 글자를 보자마자 잔뜩 경계를 했다. 천사교 같은 대문파의 호법이라면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말이다.

총 12명의 이 절정급 도인들은 한 명, 한 명이 상청궁 입구를 지키던 호교신장만큼이나 강력했다.

이 녀석들도 진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들이 구사하는 진법은 단순히 물리적인 면을 보강한 진법이 아니라 부적을 이용해 환술진의 효용까지 보태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호법들의 우두머리인 것처럼 보이는 놈이 붉은 부적 한 장을 땅에 던지자, 난데없이 장내에 회오리바람 하나가 생겨났다. 그것도 단순한 회오리바람이 아니라 모래를 가득 머금은 사막의 용권풍(龍圈風)이었다.

[광사풍의 영역에 들어갔습니다. 진이 파훼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체력이 감소합니다.]

“어? 이, 이게 뭐야!”

난데없이 나타난 광사풍(狂沙風)에 체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갔고, 순간 당황한 척살단원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일단 장로들 빼고는 뒤로 빠지세요!”

진이 파훼되려면 호법의 우두머리를 잡아야 했다. 뒤로 문도들을 돌린다 해도 그들의 체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면에 내세울 수도 없었다. 그들의 실력으로 광사풍에다 직접 공격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광과 누님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뒤로 물러났고, 우리 다섯과 놈들 간의 혈전이 벌어졌다.

현운자의 만벽을 사용하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 이놈들 외에 또 어떤 놈들이 달라붙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본신의 실력만으로 놈들을 제압해야 했다.

열두 호법의 합격진은 빈틈을 찾기 힘들었다. 동료가 허점을 드러내면 다른 놈이 공격을 막아주었다. 더구나 손발이 모자란 우리로선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호교무인들보다 더 완벽한 진법이었다.

“제가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 신경 쓰지 말고 어떻게든 한 놈이라도 잡아주세요!”

구석에 몰려 방어만 하고 있는데 갑자기 현운자가 돌격하겠다고 소리쳤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들 현운자의 행동만을 기다렸다.

곧 박자를 세던 현운자가 진법의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여태까지 놈들의 공격 방식은 앞쪽의 여섯이 공격을 하면, 뒤와 옆에 있던 여섯이 방어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현운자가 뛰어든 자리는 12명 호법들의 정중앙이었다. 이내 12개의 검이 일제히 현운자의 요혈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쉭! 쉬익!

츠츠측!

날카로운 파공성이 연이어졌다. 현운자가 금세라도 놈들의 검에 꿰뚫릴 것 같았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현운자는 만벽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강신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심결 요결 유자 결뿐이었다. 그는 유자 결만을 사용해 놈들의 공격을 흘려보내는 데 집중했다.

‘어쩌자고 저런 위험한 짓을 하는 거야?’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한 번 실수가 바로 사망으로 이어지고 마는 유자 결보다는 현천상제 강신법이 더 적절한 수인데 말이다.

현운자가 아직까진 제법 잘 버티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실수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고, 그렇다고 애써 만들어놓은 기회를 저버릴 수도 없었다.

“한 놈씩 끌어와요!”

나는 이때다 싶어 소리쳤다.

지금 놈들은 수비하는 놈 없이 모두 공격 일변도였다. 현운자가 놈들의 공격을 모두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쉭- 탓!

‘됐어!’

그동안은 놈들의 합격진 때문에 실패만 하던 금나수가 이번엔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놈들이 현운자를 공격하는 데만 신경 쓰느라 동료의 위험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광과 소소 누님도 금나수를 배워둔 터라 각기 한 놈씩을 끌어낼 수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몇 번의 문파대전을 거쳐서 이젠 금나수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호법들의 방어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난 그 호교신장들을 상대하던 때보다 강해졌다. 권강 때문에 말이다. 충자 결, 심결육합권에 권강까지 주입한 보리금강저. 세상에 이보다 더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무공이 있을까 싶다.

픽-

꽝! 꽝! 꽝!

제법 실력이 뛰어났던 녀석이 내 금강저에 권법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맞부딪친 놈의 주먹은 속절없이 튕겨 나버렸다. 그리고 연달아 안면에 3대의 권강이 틀어박혔다.

“으… 윽… 이… 놈… 들…….”

‘한 놈 잡았다!’

누님과 이광은 호법들을 금나수로 끌어오긴 했지만, 오히려 수세에 몰려 있었다.

내 몫을 해결하자, 그 세 사람을 핍박하는 놈들의 배후를 쳤다.

“지겨운 놈들! 이제 그만 가라!”

원래 사람은 뒤통수에 눈이 없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핍박하던 앞사람에만 신경 쓰다가 막상 내겐 반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전부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열둘 중에서 겨우 넷을 제압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진법은 열둘이 전부 있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진. 이미 진법은 와해됐다.

현운자는 용케도 그때까지 잘 버티고 있었다.

진법이 와해된 덕분에 현운자를 공격하는 놈들의 위력도 눈에 띄게 약해진 상태였다. 현운자는 한결 편하게 놈들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었고, 우린 차곡차곡 놈들을 제압해갔다.

그리고 끝내 천사교의 열두 호법들을 전멸시켜 버리고야 말았다.

“휴! 이번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진법 파훼의 일등 공신인 현운자가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현운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화가 났다.

“아니, 대체 무슨 깡으로 뛰어든 거예요? 난 또 강신법이라도 쓸 줄 알았더니만!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됐단 말입니다. 제발 다음부턴 그런 위험한 행동하지 마세요.”

그 때문에 용케 빨리 정리하긴 했지만,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나름 화를 내본다고 냈는데도 현운자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알았으니깐 너무 그러지 말아요. 유자 결 테스트 한 번만 더 했다가는 아주 경을 치겠어요.”

‘허, 그 와중에 요결 테스트를 해?’

어이가 없었다.

“연아, 현운자 님 고생하신 거 잘 알면서 그런 소릴 하면 어떡해? 그만 하고 빨리 아이템이나 정리해서 다음 코스로 이동하자.”

쩝. 누님이 현운자 님을 편들어주니까 어째 기분이 묘했다. 현운자는 누님보다 나랑 더 친한 사인데…….

어쨌든 떨어진 아이템을 살펴보자 고위 간부라서 그런지 요 녀석들이 꽤 짭짤한 아이템을 흘렸다. 그 귀한 강기성형이 2개나 나온 데다 새로운 개념의 진법 비급도 있었다.

[천사연환진(天師連環陣)

천사교 비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진법술. 초대 천사 장릉이 고안했다는 설이 있다. 사용 시 3장의 고급 부적이 소모된다.

발동 조건:4인 이상 20인 이하의 동행

수련 제한:부적술(고급)

수련 제한:지능 150]

진법이긴 한데, 부적으로 발동되는 진법이었다.

진법은 문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반기는 무공이다. 거기에 최대 20인까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입을 귓가에 걸리게 했다.

당장이라도 발동 효과를 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수련 제한이 문제였다.

고급 부적술이야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역시 지능 스탯이 문제였다. 지능을 무식하게(?) 150이나 찍은 문도가 과연 있을까? 나름대로 많이 찍었다는 나도 겨우 100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 방으로 갑시다!”

아이템도 수거했고, 운기 조식도 끝냈다.

우린 3층의 마지막 방, 상청궁 3층의 최중심부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천사교 북종의 최종 보스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천사교 일주문을 통과한 지 장장 4시간 만이었다.

천도라는 녀석이 방 안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쟤가 장문인인가 보네?”

소소 누님이 녀석을 보고 한마디 했다. 놈의 이름자 왼편엔 북종사(北宗師)라는 호칭이 달려 있었다.

천도라는 녀석은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몸엔 금의를 걸친 노도사였다. 검소한 복장을 하고 있던 다른 도사들과는 거리가 먼 차림새였다. 마치 황제나 다름없는 복장이었다.

“다들 준비들 하세요. 혼자 있는 거 보니깐 실력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알아서 도망들 가시고요. 그럼 준비되셨나요?”

“네! 얼른 시작해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녀석은 우리가 다가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호통부터 쳐 왔다.

“네 이놈들! 어떤 종자들이기에 경건한 도궁에 함부로 난입을 하느냐!”

삿대질까지 해오는 모습이 정말 화가 난 듯했다.

“내 직접 네놈들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녀석은 우릴 처단하겠다는 말과 동시에 품에서 부적을 꺼냈고, 우리도 일제히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놈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게 실수였다. 녀석의 손가락 틈에 끼인 황지 몇 장이 푸른 불꽃을 내며 타들어갔다. 아직 놈의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한 상태인데, 부적술이 이미 발동해버린 것이다.

놈은 자기가 손오공이라도 된 것처럼 20마리의 분신을 만들어냈다. 분신술이 완성되자 천도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체를 찾을 수 없게 머리를 굴린 것이다. 신안으로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똑같은 놈들이었다. 방법은 직접 맞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한 마리씩 지워나가세요! 그래봐야 환영입니다!”

하지만 내 말은 틀렸다. 천도의 분신들은 환영 따위가 아니었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던 놈들 중 눈앞에서 알짱거리던 천도에게 공격을 가했다. 정확히 타격이 들어가는 것에 소리쳤다.

“이놈이 진짜야!”

그런데 다른 척살단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외치기 시작했다.

“여기 있어요!”

“제가 맡은 놈이 진짜예요!”

“빨리 좀 도와주세요. 이놈이 진짜 천도예요!”

난감했다. 천도는 분명 천사교에서 만난 가장 강한 녀석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의 기준일 뿐, 나와 현운자에겐 그렇게 부담되는 녀석이 아니었다. 문제는, 녀석의 분신과 본체의 차이가 없다면, 본체를 찾아 없애기 전에 문도들의 피해가 막심할 거라는 점이었다.

“다들 모이세요! 뒤로 물러섭니다!”

각개 격파당할 소지가 있어서 문도들을 집결시켰다. 이젠 오히려 적의 숫자가 많아져 버려서 뒤로 몸을 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와 현운자가 위기에 처한 문도들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척살단은 전멸할 뻔했다.

채채채챙- 차차창-

20개의 검날이 요사스런 뱀처럼 춤을 추며 다가왔다. 겨우겨우 방진을 구축한 우린 정신없이 놈의 검날을 막아내기에 바빴다.

“다들 괜찮아?”

옆의 문도를 노리고 들어오던 검을 쳐내면서 소리쳤다.

“힘들어요! 저 체력 얼마 안 남았어요!”

“저도 다 돼갑니다! 어떻게 좀 해주세요!”

아직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도 전인데, 문도들의 아우성이 이어졌다.

천도는 절대고수도 아니었고, 낭왕이나 건달바왕처럼 무지막지한 광역 기술을 쓰지도 않았다. 다만, 스물이나 되는 분신들마저 부적을 날리는 데다 기본 레벨이 우리들보다 높은 관계로 상당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매 일검마다 검강의 기운까지 서려 있었으니, 척살단으로선 감당키 어려운 상대였다.

‘본체만 찾으면 간단한 일인데, 미치겠구만.’

오히려 나와 현운자 둘만 있었다면 상황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문도들을 대기시켜 놓을 걸 괜히 끌고 들어왔다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연이 형! 빨리 방법을 찾아보세요! 이대로 가다간 전멸입니다!”

이젠 광우마저도 그런 소릴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만벽을 쓸 수도 없고. 어휴!’

만벽을 썼다간 더 암당한 상황이 야기된다. 2층, 3층의 몹까지 다 몰려올 테니 말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게 될 것이다.

“조연 님! 제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배후를 쳐 주세요!”

현운자가 다급히 외쳤다.

“가능하겠어요?”

“가능이고 뭐고, 지금은 그 수밖에 없잖아요!”

현운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힘들겠지만,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대로 가다간 자칫 전멸이다.

현운자가 벽자 부적술을 구사해 틈을 만들어주자, 나는 그 틈으로 재빨리 몸을 띄웠다. 대여섯 자루의 검이 날 노리고 따라왔지만, 유자 결로 흘려버릴 수 있었다.

방자진을 벗어나 나 홀로 놈들의 뒤를 덮쳐 갔다. 다섯의 천도가 등을 돌려 날 상대했다.

뒤에서 보니 아군의 형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현운자는 부적과 태극권을 정신없이 써가며 문도들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척살단은 겨우 이광과 소소 누님 정도만이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였고, 나머지 단원들은 다른 이들의 짐밖에 되지 않았다.

콰콰콰쾅!

다섯 천도 놈들의 검강과 내 권강이 충돌을 거듭했다.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놈들 다섯의 합격을 방어하자니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저쪽은 잊자. 일단 이놈들부터 없애야 돼!’

하지만 도무지 공격의 틈을 찾기가 힘들었다. 검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칫 요혈에 적중된다면 아무리 나라도 일격에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게 검강이었다. 거기에 살을 주고 뼈를 깎을 요량으로 한 놈을 노리고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놈은 지능형 NPC답게 뒤로 물러나 오히려 날 포위진 안으로 끌어들였다.

‘시간! 시간이 필요해! 잠깐이라도 놈들을 지체시키기만 한다면!’

만약 놈들이 셋뿐이었다면 금세 와해시킬 자신이 있었지만, 다섯은 지금 내 실력으론 무리. 두 녀석의 공격을 1초라도 막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와! 매난국죽!”

어떻게 소환했는지도 모르겠다. 검강을 막아가는 와중에 용케 소환이 성공했고, 눈에 보이는 대로 호위무사들을 천도들에게 갖다 붙였다. 그리고 나도 호위무사들과 함께 몸을 날렸다.

파캉! 퍽! 촤악!

일검에 매난국죽은 비명횡사하고 말았지만, 그 덕에 난 1초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매를 죽이고 검을 회수하는 녀석의 기해혈에 권강을 작렬시킨 것이다.

놈이 급소에 맞고 허리를 굽혔다. 아직 죽지 않았다. 다른 놈들의 검강이 날 향해 쏘아져 왔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엔 아까웠다. 다시 머리통을 향해 권강을 쏘고선 뒤늦게 검강들에 맞섰다.

“꾸르륵…….”

꽝! 꽝! 퍽!

두 번째 권강에 결국 놈을 죽일 수 있었지만, 나도 검강 두 방을 허용하고 말았다. 정통으로 맞은 탓에 몸이 크게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환혼신단을 얼른 하나 꺼내 먹고 이번엔 무림맹 절정무사를 소환했다. 그리고 좀 전의 방법을 사용해 또 한 명의 천도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을 제거하자 운신의 폭이 넓어졌고, 내 보법도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파쾅!

마지막까지 남은 녀석이 금강저에 복부를 꿰뚫리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일단 위기를 벗어난 나는 척살단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이런! 일반 문도들은 어느새 전멸하고 겨우 이광과 소소 누님, 현운자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네 사람의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겨우 1분이면 운기 조식을 마칠 수 있는 나였지만, 그 시간도 아까웠다. 서둘러 나머지 천도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다행히 놈들은 뒤에서 내가 다가서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녀석을 상대로 주먹을 날렸고, 놈들 중 몇몇이 날 바라봤을 때엔 그 녀석을 발아래 눕힐 수 있었다.

내가 다섯을 없애는 동안, 이쪽도 3명의 천도를 없앤 상태였다. 거기에 내가 하나를 또 보탰다. 이제 남은 천도는 열하나. 그중 셋이 날 향해 돌아섰다.

녀석들 나름대로는 인원 배분을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면의 넷을 여덟이 맡고, 내게 셋을 보낸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셋과 넷은 다르다. 내게 셋은 임계점 이하다. 더군다나 일곱이라면 현운자 혼자서도 다 막아낼 수 있었다. 극강 방어력의 현운자라면 일곱이 아니라 열이라도 혼자서 감당할 실력이 됐으니까.

상황은 이제 우리 쪽으로 돌아섰고, 난 마음 놓고 천도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을 애먹였던 천도들은 하나 둘씩 지워져 갔다. 마지막 남은 천도마저도 결국 쓰러뜨리고 말았다.

[레벨이 399에서 400으로 상승했습니다.]

[명성이 2,108 상승했습니다.]

[천사교와의 우호도가 -4,398이 됐습니다.]

“헉… 헉… 지겨운 자식들.”

“수고들… 하셨습니다……. 에고, 힘들어.”

다들 얼마나 정신을 쏟았던지 그 자리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솔직히 나는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 천도가 조금 싱거운 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고생했던 적이 없었던 소소 누님과 이광, 현운자는 상당히 지쳐 버리고 말았다.

모두들 말없이 쉬고 있는 동안, 난 아이템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레이드 몹은 아니었나 보다. 떨어진 아이템은 3개뿐이었다.

[황제구정신단(黃帝九鼎神丹)

초대 천사 장릉의 구정단법 비결대로 제조한 단약. 만박자는 세상 모든 단약 중에 최고는 이 구정단이라고 말했다. 환골탈태를 가능케 해준다.

사용 효과:능력치 수정 가능

사용 제한:도가 체질 계열]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은 이 태평경을 기반으로 태평도를 일으켰다. 천사교 북종 교주의 비전서. 부적술이 최고급의 경지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수련 제한:부적술(고급)

수련 제한:지능 300]

[영보령교제도금서(靈寶領敎濟度金書)

신비한 부록들이 실려 있는 위진 시대의 부록 총서. 연신부(煉神符), 추혼부(追魂符), 집원부(輯原符)를 부릴 수 있다. 각각의 부적은 최고급 부적 5장이 소모된다.

수련 제한:부적술(최고급)]

3가지 아이템 모두 도교 문파에서 나올 만한 아이템이었다. 단약이나 부적 비급이나 쉬이 여길 만한 건 없었다.

“연아! 어때, 쓸 만한 것 좀 나왔어?”

다 쉬었는지 소소 누님이 옆에 다가와서 물었다.

“아뇨, 별로네요. 그냥 잡기 부적술 비급들뿐이에요. 다 쉬었으면 이만 내려가죠. 죽은 문도원들도 기다려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 모두 절대 쓸모없는 아이템이 나오진 않았을 거라고, 한 번만 보여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일단 숨겼다.

3층은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지만, 2층은 다시 생성된 노도사들로 바글거렸다. 몰래 통로를 빠져나가려는데, 용케 알아챈 놈들이 방에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덕분에 우린 한 시간이나 걸려서야 2층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이 형! 저 애기 도사들 어떻게 해요? 그냥 가요?”

1층에 이르자 광우가 날 불러 세웠다.

“일단은… 무시하자. 아무래도 불안하단 말이야. 어쩌면 명성치 팍팍 깎일 것도 같고 말이야. 한 녀석만 죽여도 분명 천 명이 달려들 게 눈에 보이는데, 그런 무리를 할 순 없지.”

다행히 입구를 지키던 호교신장들은 리젠되지 않은 상태였고, 우린 일반 도사들의 공격을 뚫고 일주문에 이를 수 있었다.

그렇게 천사교와의 첫 전투가 끝이 났다.

작가 註

용어 설명

도교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본문의 짧은 설명만으론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주석을 답니다.

부록파:부(符)는 부적을 가리키고, 록(?)은 비단에 선계나 천상의 관직 이름을 기록한 것입니다. 주(呪)는 주술입니다. 부록은 천신과 교통하고 요괴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는 걸로 믿어졌고, 이를 중시한 도교의 일파를 부록파라고 부릅니다. 본문에 나오는 천사도가 이 부록파입니다.

외단파:외단이란 수은, 비상 등의 광물을 이용해 제조하는 단약입니다. 이 단약을 흡수해 신선이 되겠다는 도교 일파를 외단학파라고 부릅니다.

내단파:부록파, 외단파에 반대되는 의미의 도교 일파입니다. 심신 수련을 통해 몸에 내단을 만들어 신선이 되겠다는 학파입니다. 내단파의 근원은 동한 시대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를 지은 위백양, 포박자내편(抱朴子內篇)을 지은 갈홍 등의 단정파(丹鼎派)입니다.

천사도:초기 도교는 장각의 황건태평도와 장릉의 오두미도, 이렇게 둘로 나뉘고 장각의 태평도가 몰락하자 많은 태평도를 신봉하던 사람들은 오두미도에 흡수됩니다. 도교도들은 이 장릉을 천사(天師)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후로 이 일파를 천사도라고 부르게 됩니다.

오두미도와 태평도에 뿌리를 둔 천사도는 청나라 시대까지 이어지고, 후에 위세가 퇴락하긴 했지만 천사가 되면 황제를 마음대로 알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고 합니다.

무협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모산파가 이 천사도의 가장 큰 세력이라고 할 수 있고, 무당파도 천사도의 한 갈래입니다. 모산파는 당시 가장 큰 도교 일파였다고 합니다.

북천사도:북위(北魏)의 도사 구겸지(寇謙之)는 자주 농민 봉기에 이용되는 천사도를 개혁했습니다. 유교적 형식과 불교의 교리를 끌어안아 북위에서 국교로 지정되게 됩니다. 구겸지는 장릉을 대신하는 천사가 되었고, 이를 도교사에서 북천사도라고 부릅니다. 소설 속의 천사교 북종의 모티브입니다.

남천사도:남조(南朝) 송대에 여산(廬山)의 도사 육수정(陸修靜)이 오두미도를 개조합니다. 부록파와 단정파를 융합시키고, 봉건 시대의 사상과 제도, 그리고 불교의 수행 의식을 흡수해 도교의 의식을 완성합니다. 이를 남천사도라고 합니다.

전진도:왕중양(王重陽)이 세운 도교 일파입니다. 왕중양은 천사도와 달리 내단 기법을 중시하였습니다. 전진도의 세력이 커지자 남북 천사도는 원대에 이르러 상청파, 영보파, 정명파 등을 합류시켜 천사정일파로 통일됩니다. 이후로는 보통 정일파라고 불리게 됩니다.

원대 이후로 도교의 맥은 전진파와 정일파 두 파벌로 나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협 속의 도가 문파들은 이 전진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들은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혼인도 치르지 않습니다. 도관에 거주하면서 수행을 하는 출가 도사들입니다.

반면, 천사정일파는 술도 먹고, 고기도 먹고, 결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진도는 아무래도 민중과 교류하기 힘든 특성상 천사도에 비해 위세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 도파들은 명청대 이후로 활발한 교류를 합니다. 전진파 도사가 모산에서 수행을 하거나 정일파 도사가 전진파 도사가 되기도 합니다. 후대에 갈수록 이런 차이는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참고 문헌:《내단(심신 수련의 역사)》, 이원국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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