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5장. 천사교(天師敎) (36/62)

제35장. 천사교(天師敎)

이간계를 성공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흑룡이 올린 글 때문에 며칠간 정신 사나운 일이 많았지만, 그것도 어제부터는 진정되는 분위기였다. 여전히 흑룡의 격문에 혹한 카오틱 유저나 일반 유저들이 꾸준히 몰려오고 있었지만, 난주에선 난동 부리지 말라는 그 글 때문에 문파 부근에서는 사건 사고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흥미로운 사건이 추가됐다. 몰려드는 이방인들에 대항해 감숙의 일반 유저들끼리 단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문파는 다를지라도 같은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마음이 그들을 뭉치게 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앞으론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감숙 남부의 치안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고목문.

또 한 차례 보스 탐을 독식해먹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돈을 받아먹었으면 일을 해야지, 왜 이렇게 감감무소식이야?”

1억이나 되는 거금을 입금시킨 지 일주일이 됐다.

내 혼잣말에 현운자가 말을 받는다.

“뭐가 그리 급해요? 출진이 일주일 후였지, 전쟁 개시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요.”

“저도 압니다, 알아요. 갑갑해서 한 소리구만, 그걸 가지고 따지시나?”

“저도 압니다, 알아요. 심심해서 한 소리구만, 그걸 가지고 따지시나?”

말을 말아야지. 따라쟁이 같으니.

“그나저나 상황이 어째 정사대전처럼 흘러가는데 이거 실수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불안했다. 난 쌍방의 전력을 감소시킬 의도뿐이었는데 일 돌아가는 꼴이 내가 손댈 수 없는 곳까지 가버렸다.

카오틱 유저들이야 언젠간 감숙성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일반 유저들까지 몰려들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사황성의 전력이 몇 배나 커져 버린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반 유저들이 지금 와서 악명 수치 1만 만들기는 쉽지 않을걸요? 지금은 그쪽서 상단 보기가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경쟁은 치열하고 NPC는 없고… 악명 쌓기가 쉽진 않을 거예요.”

현운자가 괜한 걱정을 한다며 위안을 해준다. 하긴, 그럴 것도 같다. 1만의 악명. 쉽지 않을 것이다. 이광이가 예전에 악명 10만 달성하는데도 석 달이나 걸렸다니 말이다. 더구나 그땐 상단이 주체 못할 정도로 많은 상태였다.

이제 노가리는 그만 하고 다시 사냥이나 해야겠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누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 혀- 엉!”

“저놈들이 무슨 일이지? 아쉬울 게 없으면 직접 찾아올 일 없는 놈들인데.”

광우와 광견이었다.

“역시! 여기 있을 줄 알았다니깐!”

“돈은 많이 벌었수?”

이놈들은 간만에 봤는데 인사도 안 한다.

“뭔데? 왜 왔어?”

“시간 있어요? 시간 좀 빌려 줘요.”

녀석들은 무슨 일인지 설명도 안 하고 무턱대고 질문부터 던졌다.

“나 바뻐. 귀찮은 일 맡기려면 딴 데 가보고.”

“아따, 거참! 비싸게 구시네!”

“이제 알았냐? 나 비싸. 나 하루에 천만 냥씩 벌거든. 돈 있어? 특별히 싸게 빌려 줄게. 한 시간에 백만 냥 정도면 없는 시간 한번 만들어보고.”

그러자 놈들이 잠깐 물러선다. 그리곤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이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거지?’

놈들이 합의를 끝냈는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좋습니다. 단, 후불로 드릴게요. 기한은 일주일 안에!”

흠, 솔직히 손해 보는 건데 놈들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무슨 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궁금하기는 하군. 알았다, 이놈들아!”

“오케이!”

녀석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라 한다. 왠지 말린 기분이…….

“연이 형!”

광견이 다시 날 불렀다.

“아, 왜 또 불러! 어서 니들 계략 꾸미는 데로 안내나 해!”

“아뇨, 가기 전에 확답을 받아야겠습니다.”

확답? 이미 간다고 했잖아!

“말해봐.”

“작업장 먼저 발견한 단이 선점권 가지는 거죠? 지금 청룡단이 그렇잖아요.”

발견이야 걔들이 한 게 아니라 내가 한 건데.

하여간 광견의 질문 속엔 자기들이 사냥터 하나 발견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냥터기에 일당 천만 냥짜리 문주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뭐, 그거야 일단은 그렇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냥터를 발견했는지 몰라도 니들이 먹을 만하면 인정해주고, 아니다 싶으면 달리 방도를 취할 거다. 확답은 못해.”

“그 정도면 됐어요. 갑시다!”

옆에서 대화만 듣고 있던 현운자는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덤으로 따라붙었다.

이광이 데려간 곳은 영하성이었다. 멀었다. 게다가 영하성에서도 북쪽이었다. 장장 8시간을 달려서야 우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하성 성도인 은천에서 한 시간 거리인 이곳은 하란 산맥(賀蘭山脈)에 속하는 석취산(石嘴山)이라는 평범한 산이었다.

“여기예요.”

석취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등산길이 보인다.

“여기에 천사교가 있다는 거지?”

놈들이 오면서 설명해준 천사교(天師敎)는 사교 문파였다. 유저들이 가입할 수 있는 그런 문파가 아니라 고목문과 같은 사냥터 개념의 문파였다.

“정확히 합시다, 정확히. 말했잖아요. 천사교가 아니라 천사교 북종(北宗)이라고.”

엎어치나 메치나.

산길을 따라 걷자니, 봉우리 마다마다에 암자, 도관 따위가 자리 잡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게 다 천사교냐?”

“네. 그리고 천사교가 아니라 천사교 북종이라니까요!”

천사교의 위세는 장난이 아니었다. 공동산의 공동파도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다. 암자, 도관, 도궁이 곳곳에 숨어 있는 모습이 어쩐지 호랑이 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설마, 구대문파보다 더 센 놈들 아냐?’

대충 세었는데도 20개가 넘는 건물들을 지나쳤다. 깊이 들어갈수록 뒷골이 당겨 오고 있었다.

이광은 이미 와본 곳이라 맘 편히 발걸음을 놀리고 있었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광을 따라 산 중턱까지 가자, 기다리고 있던 척살단의 다른 사람들이 반겨 왔다. 이광은 심부름꾼일 뿐이었다.

“왔어?”

척살단주 소소 누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아, 예.”

대답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척살단 전원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이곳을 자기들만의 작업장으로 삼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겨우 열셋이 먹기에 여긴 너무 넓다. 넓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 거기에 척살단원들의 면면을 보라. 이게 어디 제대로 된 단이란 말인가.

광풍단 때 꽤 잘해준 탓에 전적으로 단 구성을 맡겼더니만… 저 아낙들은 대체 뭐란 말이야!

월향이, 매월이, 금란이, 채란이, 그리고 향단이. 한때 누님의 호위무사였던 그 처자들이 죄다 척살단 소속이었던 것이다. 문파 최정예 특수 부대인 척살단에 말이다.

‘하긴, 어쩔 수 없지. 그때 호위무사 삼는 것도 못 말렸는데. 그런데 저놈은 왜 여기 있는 거야?’

걸핏하면 내게 태클을 걸던 고현이라는 녀석도 있었다. 일대제자 중에서 최하의 실력을 가진 문도. 거기에다 나머지 문도들은 죄다 이대제자들뿐이었다.

‘미치겠군. 잘할 거 같아서 신경을 안 썼더니만, 이렇게 개념 없이 편성할 줄이야.’

척살단의 임무는 막중하다. 설마 이렇게 아무나 막 받아들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반드시 해산시켜 버리고 내가 직접 단을 구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차마 대놓고 해산하자고 말하기도 껄끄럽고, 이거 문제다. 그렇잖아도 뒷골이 당겼는데 이젠 두통마저 생기는 것 같다.

“연아! 그럼 시작하자.”

누님의 말에 자리에 앉아서 놀고 있던 척살단이 모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오는 동안 어떤 몹들이 나오는지 전혀 설명도 듣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난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부딪혀 보면 알 게 될 테니 말이다.

척살단이 대기하고 있던 곳은 바로 천사교 북종의 중추였다. 바로 앞 일주문에 ‘천사교 북종’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자리에 여타 문파와 마찬가지로 접객을 담당하는 도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럼 긴장들 하고 다시 시작해보자. 연이가 왔으니까 이번엔 보스까지 잡아보자고! 아자!”

“아자자!!”

누님이 선창하자 단원들이 따라 했다. 참 가지가지 한다.

그 모습을 보고 현운자가 내게 한마디 한다.

“재밌는 문파예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 아저씨는 또 왜 이러시나? 남은 복장 터지겠구만.

척살단은 일주문 앞의 접객 도사들을 때려잡으러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요.”

이번엔 농담이 아닌 듯, 현운자가 진지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팍! 차창-

“야, 야! 살살 가란 말이야! 아까처럼 고생하고 싶어서 그래?”

입구 앞의 도사들은 금세 전멸했다. 재빠르게 이동한 척살단이 이번엔 안에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뭐가요?”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현운자에게 반문했다.

“천사교라면 사교가 아니거든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 눈엔 분명히 몹으로 보이는구만.

“끊지 말고 제대로 좀 설명해주세요.”

“불교에 여러 종파가 있는 건 아시죠? 태고종, 법상종, 조계종, 천태종 등등 많잖아요? 도교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와서는 단 두 개의 문파만 있지만요. 정일파(正一派)하고 전진파(全眞派)요.”

“그게 천사교랑 무슨 상관인데요?”

“정일파가 천사교예요. 정식 명칭은 천사정일파(天師正一派)고요. 거슬러 올라가면 장도릉의 오두미교, 장각의 태평도가 뿌리일 정도로 오래된 문파죠.”

“그러니까 사교 맞잖아요? 엥? 그럼 황건적이 좋은 놈들이라는 말이에요?”

“후후, 글쎄요? 간단히 설명해드릴게요. 무당파도 천사교라고 할 수 있답니다.”

“컥!”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럼! 이미 천사교인들을 살인한 마당이니 무당파와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리가 아닌가!

혼비백산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미 늦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문도들을 뒤로 물려야 했다.

“야! 스톱, 스톱! 전원 스토오- 옵!!”

장내는 무슨 야시장에 온 것처럼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가까운 건물에서 도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문도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들을 사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찌나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크게 지른 고함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턱.

‘응?’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문도들을 제지하려는데, 현운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어왔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무, 무슨 말이요!”

“보아하니 얘들은 몹이 맞는 것 같네요. 너무 놀라지 말고 차근차근 더 들어보세요.”

일단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기는 한데, 놀란 가슴은 여전히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무당파와 전쟁이 벌어지면, 무림맹과도 적이 된다. 소요파는 그날로 폐업 신고해야 하는 것이다.

“도교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어요. 부적과 주술로 민간 신앙으로 숭배받는 부록파와 심신 수련을 해서 신선이 되겠다는 내단파,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되지요. 무당은 전자고, 다른 구대문파의 도가 문파들은 후자에 속하죠. 천사교도 부록파예요. 하지만 그런 구분도 별로 의미가 없어요. 내단파에서 부적을 팔기도 하고, 부록파에서 내공 수련을 하기도 하니까요.”

현운자의 말을 들어보니, 얼추 이해가 가긴 한다. 그런데 무협지를 수없이 본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지? 정말로 현직 도사인가?

“아니! 그럼 사람 간 떨어지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필요도 없는 이야기구만! 몹 맞다면서요!”

난 빽, 소리치고 말았다.

“하하! 많이 놀라셨나 봐요? 하하. 그런데 쓸모없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 말은 천사교가 사교가 아니라는 거죠. 주술 쓴다고 사교 취급할 수 있을까요? 대체 어느 사교 단체가 이렇게 보란 듯이 도관을 짓고 영업을 할까요?”

현운자 말도 맞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마도 부적술 때문에 그렇게 설정해둔 게 아닐까요? 일반 유저들이 부적술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말이에요.”

내 말에 현운자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그렇게 곱씹어보더니 대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이상한 건 이상한 겁니다.”

“그럼 그렇다고 칩시다.”

아직 척살단은 일주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천사교의 도사들은 주로 검과 부적을 사용해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 부적술은 이미 현운자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야, 야! 너무 많다! 일단 뒤로 다 빠져!”

제일 앞에서 기세 좋게 도사들을 도살하던 소소 누님이 크게 외쳤다. 내가 봐도 너무 많았다. 한 백 명은 몰려온 것 같았다.

“이제 우리가 힘 좀 써보죠.”

“네.”

누님의 명령에 척살단원들이 적들을 마주 보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꽤 의외다.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던 다섯 아가씨들이 꽤 잘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호흡도 잘 맞아 보이고, 다른 문도들을 배려해주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나?’

모든 단원이 일주문 바깥으로 물러서자, 나와 현운자가 일주문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우릴 믿겠다는 듯 체력이 떨어진 문도들이 뒤에서 운기 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해갑에 걸렸습니다. 1분간 방어력이 500 하락합니다.]

[만봉에 걸렸습니다. 1분간 공격력이 500 하락합니다.]

놈들은 시작부터 부적으로 인사를 해왔다. 해갑이나 만봉은 현운자와 대련하면서 이미 겪어본 부적술이다.

그런데 현운자의 부적술보다 놈들의 주술이 더 약했다. 주술의 급이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적술사들은 2진에서 저주형 스킬과 원거리 데미지 공격을 가하고(그래봤자 공격 거리는 짧다), 검을 든 도사들이 직접 우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파캉!

‘제법!’

공격 거리가 되자 바로 충자 결로 급소를 때렸는데, 녀석이 용케 잘 막는다.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다시 충자 결 육합권을 펼쳤다. 이번엔 권기까지 주입해서 말이다.

파캉! 파캉! 파캉!

퍽! 퍼퍽!

몇 번은 잘 막아내던 녀석이 결국은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약간의 틈을 만들었고, 그 사이를 금강저가 놓치지 않고 박혀 들어갔다.

‘이 정도면 대략 400레벨은 되겠는걸?’

일반 몹인 주제에 충자 결을 네 번 연속으로 막아낸 것도 대단했고, 급소를 5대나 때려야 죽는 것이 체력도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천사교와의 우호도가 -311이 됐습니다.]

놈을 잡는 데만 신경 쓰다가 늦게야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된 걸 확인했다.

그런데 일반 몹 주제에 우호도라니?

“야, 이광! 이거 뭐야? 무슨 우호도가 떨어진다는데?”

천사교 도사의 공격을 막으면서 재빨리 뒤돌아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몸을 틀어 도사의 검을 막아냈다.

“아! 그거요? 신경 쓰지 말아요. 별로 상관없을 거예요.”

‘미친! 별일 아니면 이런 게 왜 있겠어!’

찜찜했지만, 달리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강은 건넜다.

대략 주위 건물에서 나올 놈은 다 나온 것 같았다. 더 이상 추가되는 몹은 없었고, 우린 착실히 녀석들을 쓸기 시작했다.

검을 사용하는 녀석들은 나보다 레벨이 더 높아 보였지만, 그리 큰 위협이 되진 못했다. 놈들의 검법은 별로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다. 레벨만 높지 그 경지가 끽해야 일류 상급 수준. 절정검수라고 칭하기엔 부족했다.

게다가 부적술사들의 공격력은 더욱 우스웠다. 저주 기술을 건 다음은 원거리 타격을 주는 부적을 던졌는데, 그 대부분이 내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물에 젖은 듯이 축,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발동된 부적도 극히 미미한 데미지를 안겨 줄 뿐이었다.

금강저의 항마력 수치 +10,000 효과가 이제야 선을 보이는 것 같았다.

‘역시! 사교 맞다니까는 그러네!’

이놈들이 정파 집단이라면 항마력 수치가 발동되진 않을 터, 내 판단이 옳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연이 형! 그만 앞으로 좀 가요! 우리도 렙 업 좀 하게!”

우리 덕택에 편안히 뒤에서 체력을 회복한 광견이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날 갈군다.

“니 눈은 해태 눈깔이냐? 어떻게 앞으로 가냐, 이눔아! 다들 뒤로 물러서!”

빽빽이 앞에 포진한 녀석들을 뚫고 전진할 수는 없는 노릇. 척살단원들이 뒤로 물러서 반원 진을 만들었다.

진형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봇물 터지듯이 녀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간단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거친 공세를 퍼붓던 도사들도 시간이 지나자 깨끗이 청소되고 말았다.

“와우! 대단하세요, 문주 오빠!”

예쁜 향단이가 날 칭찬해줬다. 그래, 난 칭찬받아 마땅했다. 혼자서 30마리는 잡은 것 같으니까.

“대단하긴, 내가 무공만 잃지 않았어도 그 정돈 한다!”

이놈은 왜 또 초를 치고 지랄이야, 지랄은.

“광견아.”

“왜요!”

“너 향단이 좋아하냐?”

“…….”

말이 없다. 크크큭. 농담으로 한 소린데 이놈 정말로 흑심을 품고 있었나?

“맞군. 그럼 널 이제부터 방자로 불러주마. 별호가 방자라… 그럼 방자 광견이 되는군. 아니다. 줄이면 방광이니 오줌보라고 불러주마.”

“재미없어요. 얼른 사냥이나 합시다.”

짜식, 말 돌리기는.

그나저나 아까 도사들 때려잡다가 궁금한 게 있었는데, 뭐였더라… 아!

“현운자 님! 무슨 우호도 떨어졌다는 메시지 못 봤어요?”

그러자 현운자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저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미치겠어요. 이거 나중에 무슨 일 생길지…….”

“그럼 지금부턴 그냥 구경만 하세요. 굳이 잡지는 마시고요.”

“아닙니다. 부담될 것 같다고 저만 쏙 빠지면 안 되죠.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천사교와의 우호도는 개인이 아닌 문도원 개개인의 총합으로 표시되고 있었다(만약 내가 일반 낭인이라면 개인으로 표시됐을 것이다). 그 말은 곧, 지금 사냥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4개 단의 문도들도 똑같은 피해를 입는다는 걸 의미했다.

그걸 알면서도 난 천사교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사냥터로 규정된 곳에서 그렇게 심한 페널티를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훗날 어떤 페널티를 줄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으로선 부적술에 대한 욕심이 더 컸다.

“자, 자! 그럼 이제 그놈들 있는 데로 가보자구!”

천사교 일주문을 통과해 중앙 마당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레벨이 높은 녀석들이라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크게 애를 먹진 않았다.

그런데 그놈들이라니?

모두들 누님을 따라 전진했다. 정면을 가로막고 있던 건물을 돌아가니 그 앞에 엄청나게 큰 건물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허허, 정말 세력이 큰 집단이긴 한가 보네. 이렇게 큰 건물은 처음 보는걸?’

천사교 상청궁이었다.

문파의 중심 건물답게 엄청나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높이는 3층밖에 안 됐지만, 그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어른 둘이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정도의 아름드리나무 3개가 묶여 하나의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천사교 상청궁의 무게를 버티는 데 그런 기둥 수백 개가 필요할 정도였다.

무림맹의 오룡각도, 낙양의 중원제일루도 이보단 크지 않았다. 단일 건물로는 아마 황궁을 제외하곤 가장 큰 건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봐서는 던전은 아닐 텐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진을 치고 있을라나?’

더 이상 몹은 나오지 않고 있었고, 이미 한번 여기까진 와봤던 것인지 모두들 거침없이 상청궁 앞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 끝에 이르자 궁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 앞엔 5명의 인물들이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청궁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 인물들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모두 갑주를 착용한 무인들이었다. 천사교에 들어온 이후, 도사가 아닌 사람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호교신장이라, 그럼 천사교 최고수들이란 말인데…….’

녀석들은 이름 앞에 호교신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었다. 서불, 한당, 노생, 소군, 그리고 주조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몸집은 보통의 인간형 몬스터와 다를 바 없었지만, 마치 건달바왕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천계의 신장(神將)과 흡사했다.

“연이 형! 이제 형 차례예요.”

광우가 날 보고 소리쳤다. 다른 척살단원들도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뭘 어쩌라고? 나 혼자 쟤들 다섯을 다 없애란 말이야?”

“밥값은 해야죠!”

밥값이라… 하긴 시간당 100만 냥을 받기로 했는데 아직까진 밥값을 못하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척살단원만으로도 충분히 왔을 테니 말이다.

신안을 통해 확인한 호교신장들은 모두 절정의 경지를 돌파한 녀석들이었다. 성향은 앞의 넷은 도가 계열이 확실한데, 뒤의 주조라는 녀석만 달랐다. 천사교 부적술사와 마찬가지로 보라색 오러였다. 넷은 절정검수, 그리고 한 명은 부적술사였던 것이다.

‘우선 실력부터 파악해보자.’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몸을 띄웠다.

호교신장들은 짓쳐 들어오는 날 보고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붙박이처럼 상청궁 입구를 틀어막고 있을 뿐이었다.

파캉!

경쾌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제일 앞의 호교신장 한당이 간단히 검으로 내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데미지는 먹지 않았어!’

무기로 공격을 막는다 하더라도 서로의 실력에 큰 차이가 있다면 약간의 데미지라도 입는다. 하지만 체력 게이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포박에 걸렸습니다. 회피력이 조금 하락합니다.]

[해갑에 걸렸습니다. 1분간 방어력이 1천 하락합니다.]

[만봉에 걸렸습니다. 1분간 공격력이 1천 하락합니다.]

[수전증에 걸렸습니다. 집중력이 하락합니다.]

부적 4개가 한꺼번에 달라붙더니 주르륵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렇게 저주란 저주는 다 걸린 채로 호교신장들과 나의 한판 투닥거림이 시작됐다.

챙! 츳-

팍! 펑!

녀석들은 무슨 검진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둘이 내 금강저 공격을 봉쇄하는 동안 다른 둘은 내 요혈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한 녀석의 검을 피할라 치면, 그 자리엔 이미 다른 녀석의 검이 대기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가장 큰 문제는 수전증이라는 망할 저주 스킬이었다. 마치 중풍 걸린 사람마냥 손이 계속 흔들렸다. 공격할라 치면 요혈은 빗나가기 일쑤였고, 방어할라 치면 놈들의 검이 금강저를 미끄러져 내 몸을 찔러왔다. 큰 데미지를 입진 않았지만, 도무지 해결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피해를 준 것보다 내 체력이 더 많이 소모되고 나서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뒤로 빠졌다. 호교신장들은 승기를 잡았는데도 날 따라오지 않았다. 놈들은 여전히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주조라는 녀석은 그런 호교신장들을 향해 뭔지 모를 주술을 읊어주고 있었다.

안전한 위치까지 오고 나서야 난 운기 조식으로 체력을 회복했다.

“힘들어요? 도와드릴까요?”

현운자가 물어왔다.

“네, 그래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기 주조라는 녀석의 부적만 막으면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상대의 부적술을 와해시키는 방도가 있나요?”

“아쉽게도 없어요. 전 무공과 주술 양쪽을 배운 상태라서, 전문 부적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절로 이마가 찡그려졌다. 호교신장들의 합벽진은 꽤 쓸 만했지만, 놈들은 별로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주조라는 부적술사가 문제였다.

“어쩔 수 없네요. 그걸 쓸 수밖에요.”

현운자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척살단원들은 대체 ‘그것’이 뭐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님!”

“응!”

“단원들 데리고 일주문 밖으로 나가주세요. 저놈들 다 때려잡고 부르겠습니다.”

“아니, 왜? 우리 여기 있으면 안 돼?”

“안 돼요. 현운자 님이 배운 스킬은 남들이 보면 안 되거든요.”

만약 내 기술을 안 보여 주려고 그런다면, 절대 이 양반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난 현운자를 팔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소소 누님은 단원을 이끌고 일주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시작해보죠. 얼른 끝내고 아이템 쓸 만한 거 나오면 우리끼리 쓱싹합시다.”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내가 은밀하게 말했다.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존경스럽네요.”

현운자도 내 의견에 동의해왔다.

적당한 거리를 잡자, 현운자가 예의 그 만벽이라는 사기 기술을 시전했다.

곧 현운자는 반투명 막 안에 들어갔고…

“어라? 뭐야? 왜 안 달려들어?”

백 보 안에 존재하는 모든 몹의 어그로를 당겨 온다는 만벽인데도 놈들은 터럭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황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내공을 날려 버린 현운자는 1분 동안 무안한 자세로 있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설정이 그런 것 같은데요? 아까 보니까 조연 님이 물러서는데도 달려들지 않았잖아요. 쟤들은 딱 저 자리만 지키라고 있는 수문장 역할인 것 같아요.”

내공을 다 회복한 현운자가 자기 생각을 말해왔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렇게 자리를 지키는 거지? 저 안에 꿀단지라도 숨겨 놓은 건가?’

만벽을 쓸 순 없지만, 이 자리엔 내가 있었다. 무진을 구사할 줄 아는 초절정고수, 일수경천 조연이 말이다.

“혹시나 모르니깐, 저 잘 지켜 주셔야 합니다.”

붙박이라는 걸 알고 무진을 사용할 용기가 났지만, 솔직히 조금 불안하긴 했다. 만에 하나라도 이탈했을 때 놈들이 움직인다는 설정이라면, 내공이 깡그리 사라진 난 약간의 시간조차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호교신장 한당을 노리고 무진을 시전했다. 오른발이 뒤로 살짝 이동하고, 금강저를 쥔 손에 기가 집중됐다.

기이잉- 기잉-

팟! 팟!

50만에 육박하는 막강한 내공이 내 주먹에 몰려오자 스파크가 튀면서 진동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쑤웅-

어깨가 휘둘러짐과 동시에 강기 덩어리가 빛살처럼 한당을 향해 쏘아져 갔다.

꽈앙!

초신성이 폭발한 것처럼 강렬한 빛이 상청궁을 집어삼켰다.

‘참, 이펙트 하나는 맘에 든단 말이야.’

이제 내 할 일은 다 끝났다. 놈들이 달려든다면 그냥 목을 내어주는 수밖에 없다. 자리에 앉아 운기 조식을 시작했다.

운기를 하는 와중에 강렬했던 빛은 금세 걷혔고, 난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안심할 수 있었다. 한당은 쓰러져 있었고, 다른 호교신장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마음 놓고 무진을 발출할 수 있었다.

다섯의 호교신장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녀석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몹이었다면 이렇게 간단히 무진으로 와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직함이 스스로를 망친 격이었다.

“자, 자, 가봅시다. 애들 오기 전에요.”

호교신장 다섯에게서 나온 아이템은 달랑 3개뿐이었다. 그중엔 아마 부적술사였던 주조가 준 것 같은 부적술 비급도 하나 끼어 있었다.

[교수전서(攪手傳書)

상대에게 수전증을 유발시킨다. 사용 시 고급 부적 1장이 소모된다.

수련 제한:부적술(고급)]

나머지 둘은 화양어린갑이라는 갑옷과 강기성형이었다.

‘이거 예상치 못한 수확이네?’

속으로 웃음이 배어져 나온다. 장난삼아 이야기한 건데, 정말로 쓸 만한 비급을 하나 건지게 된 것이다.

강기성형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비급이다. 그리고 얻기도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걸 배운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 내 옆의 현운자와 건달바왕을 잡을 때 파도가 이야기해준 공갈대사라는 사람. 강호 랭킹 1, 2위만 배운 상당히 귀한 비급인 것이다.

갑옷과 부적술은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강기성형을 배워버렸다.

[강기성형을 배웠습니다.]

“참 나쁜 문주입니다. 순진한 문도들이 너무 불쌍해요.”

가만히 보고 있던 현운자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물론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없었다면 저 어린갑과 부적술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저 두 아이템이 천만 냥의 가치도 없겠는가? 엄연히 난 손해 보는 장사를 한 셈이란 말이다!

범죄 흔적도 지웠겠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척살단원들을 불렀다.

다들 내가 어떻게 이 녀석들을 물리쳤는지 노골적으로 물어왔지만, 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현운자가 잡았다고 말이다.

척살단원들은 갑옷과 부적술을 보고 희희낙락했지만, 글쎄? 그들에게 건네기 전에 이미 살펴본 나로서는 그저 쓸 만한 정도이지 무림기보급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양어린갑의 방어력은 낭왕피의보다도 낮은 2천밖에 안 되는 데다, 거기에 공격 속도 1할 감소라는 페널티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교수전서는 그것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부적술 기술을 배우려면 검진이나 음공, 독공에서처럼 기본 부적술을 배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요파엔 중급은커녕 초급 부적술 비급도 얻은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수전증 비급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럼 또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