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4장. 흑룡의 전서(傳書) (35/62)

제34장. 흑룡의 전서(傳書)

“하악… 조연 님! 이제 그만! 그만요! 이제 안 따라와요! 에고, 힘들어 죽겠네. 헥헥.”

현운자가 앓는 소리를 했다.

뒤돌아보니 새까맣게 몰려오던 놈들이 정말 한 놈도 안 보였다.

“에고, 정말 징그러운 놈들이네!”

사황성을 벗어나, 돈황성을 벗어나, 이름 모를 사막을 2시간째 질주했다. 놈들은 찰거머리처럼 도무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아이고! 어서 빨리 천리종무영을 배우든가 해야지. 유운신법 구려서 못해먹겠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했다. 사황성의 하급 무사인 놈들의 경공술이 나보다 뛰어났다. 그나마 나보다 빠른 현운자가 적절히 부적술로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아마 난 살아서 사황성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경공술 때문에 이렇게 애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으하하하!”

저 사람이 갑자기 미쳤나 보다. 장장 두 시간을 달리다 보니 머리가 헤까닥 돌았나 보다.

현운자가 갑자기 관도에 주저앉더니 뒹굴뒹굴 구르면서 광소를 터뜨렸다.

“어이, 아저씨! 갈 길 바쁜데 뭐 해요? 얼른 일어나요!”

“크크큭! 하하하!”

‘이 양반 왜 이러는 거야?’

한참을 세상이 떠나갈세라 웃어젖히던 현운자가 겨우겨우 정신을 추슬렀다.

“정말이지… 크큭, 조연 님은 초절정 사기꾼에 사악 대마왕이에요.”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순간에 그런 꼼수 부릴 생각을 한데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조연 님은.”

“다 연륜입니다, 연륜.”

“피!”

연륜 맞다니까는 그러네. 게임 연륜이지만.

“바쁩니다. 얼른 가자구요. 도화선에 불 땡겨 놨으니, 한동안 바빠질 겁니다.”

“알았어요!”

문파로 돌아가진 않았다. 우린 죄송스런 마음을 가득 담아 공동산에 올랐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조 문주!”

무운 장로의 죽음을 알리자 공동파 장문인 해광은 크게 놀랐다.

“송구스럽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그때 무운 장로님을 막았어야 하는 건데…….”

“허허, 허허! 무운이 그렇게 어리석었던가! 어찌 공명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지에 몸을 담글 생각을 했을꼬!”

해광 진인이 비통한 표정으로 사제의 죽음을 애석해했다.

장문인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장로 하나가 성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형! 아무리 적대하는 세력이라지만, 놈들의 처사는 너무 잔인합니다. 산중 도인들을 일고의 망설임 없이 해치다니요!”

‘니들이 더 잔인했어, 인마! 정탐만 하면 될 걸, 완전 목불인견(目不忍見)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장로의 말에 해광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 꺼냈다가 손해 보기 싫은 우리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왜 아무 말도 없다냐? 그냥 돌아가란 소린가?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기엔 뭔가 남기고 가는 느낌이고…….’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어찌하면 좋을지 물어보려는데, 해광이 그때서야 입을 연다.

“그런데 조 문주께서는 어찌 몸 성히 나오셨소?”

실컷 연습해뒀던 예상 질문이다. 물론 준비된 답안이 있었다.

“제 실력이 미천한 관계로 무운 장로께서 뒤에 세우셨습니다. 앞장서던 공동 문인들이 죽음을 당하는 걸 보고, 어떻게든 손을 써보려고 했는데…….”

“그래서요?”

“죄송합니다. 누군가가 일을 알리긴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래도 제 목숨이 아까웠던 것 같습니다.”

“음…….”

내 목숨이 아깝긴 아깝지.

실망스런 내 대답에 노도사들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만다.

“어쩔 수 없지요. 누군들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죄가 아닙니다. 너무 자학하지 마시구려, 조 문주.”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대충 그 문제는 넘어간 듯싶어서 물었다.

“숨길 게 없었다면 무운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겠죠. 조 문주 말대로 사황성의 침공이 임박했나 봅니다. 장문령을 내릴 생각입니다.”

그런데 혼잣말하듯 나직이 말하던 해광이 갑자기 날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조 문주, 감숙 무림계는 언제나 새외 변방의 침공에 함께 뭉쳐 대항해왔습니다. 조 문주도 그만한 준비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마땅히 도움을 드려야겠지요. 그런데 진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아직은 저희 소요파가 사황성을 상대할 정도의 역량은 못 된답니다. 한 문파의 수장으로서 아직 피지도 못한 문도들의 목숨을 쉽게 포기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흠… 조 문주 말도 일리가 있긴 합니다만, 어찌할까요? 공동의 힘으론 저 사황성의 전력을 받아낼 수 없으니 말입니다.”

“진인,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선 강호 법도가 아니겠죠. 진인께서 노여워하시지 않는다면, 다른 쪽으로 힘을 보태볼까 합니다. 미천한 살림살이지만, 이런 겁난에 돈을 아끼지는 않겠습니다.”

내 말에 손익 계산을 해보는 듯 해광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결론이 난 듯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 그렇게 하지요. 돈 없이 전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휴, 드디어 완성됐다. 고래들 싸움 붙이고 난 한발 물러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얼마나 소모될지 모르겠지만, 돈으로 양패구상을 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후로도 대화는 한동안 계속됐고, 난 그 속에서 공동파의 계획을 엿들을 수 있었다. 선발대가 하산하는 날짜는 앞으로 세 달 후, 즉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 후로 잡혔다.

그리고 해광은 소요파에 현실 시간으로 한 달에 1억 냥씩을 요구했고, 난 선선히 응했다.

무림맹에 내는 세금보다 많았지만, 지금의 소요파 자금력으론 크게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문파 등급에 맞춰서 요구했음이 분명했고, 난 문파 등급을 올리지 않을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바야흐로 감숙 땅에 전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 * *

IGM 옵저버 No.4 팀.

“크큭.”

이 대리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모니터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있던 강 팀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이 대리 쪽으로 다가갔다.

“뭔데 그래? 뭐가 그렇게 재밌어?”

이 대리가 맡고 있는 주 임무는 강호 메인 프로세서의 체크. 그런데 요새 이 대리는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지금 강호를 담당하는 메인 프로세서는 오래전에 백업해둔 강호였다. 그런데 강 팀장이 며칠 전 사장과 면담한 이후로 인공지능이 바뀐 것이다. 아무 이상이 없던 그 시절의 강호로 돌아가 있었다.

도무지 논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였던 터라, 무식하게 포맷하고 새로 깔아버린 개발팀이었다. 때문에 세계관이나 패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이월 받았지만, 종합 추론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

하여간 지금 강호는 폐관수련 중이었다. 학습 기능을 기본적으로 탑재한 이 놀라운 인공지능은 개발팀이 선별해준 데이터를 열심히 분석하고 있었다. 개발팀은 강호의 오류가 무분별한 데이터를 학습해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물론 지금 고급 NPC와 심결 퀘스트를 담당하는 건 이 미숙한 강호였다. 선별된 데이터 분석이 끝나고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하게 될 때에야 다시 이 대리와 강 팀장에게 할 일이 생기는 것이다.

“네?”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이 대리가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웃는 거냐고?”

“아, 심심해서 유저 시점 훔쳐보고 있었는데 너무 웃기네요.”

유저 시점을 훔쳐보는 건 엄연히 불법이었지만, IGM 옵저버 팀에겐 공공연한 놀이로 취급받고 있었다.

“누군데 그래?”

강 팀장은 정말 궁금했다. 그렇게 재밌으면 자기도 같이 웃고 싶었다.

“조연이라고 아시죠?”

“조연? 알지. 소요파 문주잖아. 요주의 인물이기도 하고.”

“네. 언제 한번 플레이 모습을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일이 없어서 보게 됐어요.”

미리 핑계를 깔고 보는 이 대리.

“이 사람 플레이 스타일이 정말 재밌네요. 지금 사황성하고 공동파하고 전쟁 나게 생겼는걸요?”

“전쟁? 사황성 침공은 에피소드 3에서나 계획 잡힌 거 아냐?”

무슨 소리냐고 강 팀장이 물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황성이 침공하는 게 아니라 공동파가 하게 생겼거든요.”

“뭐? 전력도 달리는 공동파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해?”

이 대리 말이 선뜻 이해 안 되는 강 팀장.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죠. 정말 골 때리는 사람이에요, 이 조연이라는 사람.”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고, 화면 속의 조연은 소요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리플레이 화면이 있을 리 만무했고, 로그 파일을 봐봤자 대화 기록만 있다. 그거 보고 재미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이 대리는 강 팀장에게 자신이 본 내용을 전부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 무료하기 그지없는 옵저버 No. 4팀이었다.

“재밌어. 정말 머리 하난 좋은 유저네. 강호에 적응을 잘한 사람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면 인공지능 돌아가는 걸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요주의 인물인 건 확실하구만. 그런데 말이야, 이 대리.”

“네?”

“조연이야 잔머리로 그렇다 치고, 지금 심결 8단계까지 통과한 사람이 있나?”

“잠시만요, 체크 좀 해보고요.”

탁탁탁탁-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던 이 대리가 강 팀장을 보고 말했다.

“아직까진 현운자라는 유저밖에 없는데요. 7단계는 2명, 6단계는 49명입니다. 총 퀘스트 통과자는 3,219명이구요.”

“자넨 이게 정상적이라고 보는가?”

“네?”

이 대리는 이 눈치 좋은 상사가 또 무얼 발견했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강 팀장이란 사람은 별 능력도 없는데 문제점 잡아내는 건 마치 선수 같았다. 자신은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발견하지 못한 강호의 논리적 오류를 집어낼 때는 헛것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 강호 동시 접속자가 100만이야. 일주일에 1번 이상 접속하는 사람이 300만이고 말이야. 300만 명 중에서 특정인 둘이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4억 5천이야. 지금 자넨 4억 5천만분의 1의 확률을 보고도 이상한 감이 없단 말인가?”

“아!”

절로 탄성이 나오는 이 대리.

“하지만 꼭 그런 확률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아닌가요? 계산상으론 그렇지만, 원래 강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이 대리 말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강 팀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대리, 의심이라는 건 말이야… 안 하면 안 하는 거고, 한번 갖게 되면 계속되는 거야. 강호를 너무 우습게보지 말라구. 이건 진정한 학습 능력을 최초로 탑재한 시스템이라고. 단순히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보일 것도 안 보이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해.”

강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사라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하는 편이 낫겠지. 나도 확실히는 모르고 있으니 말이야.’

“이왕 노는 거면 확실하게 놀아봐. 현운자라는 저 친구도 잘 살펴보란 말이야. 난 아무래도 저 친구가 마음에 걸려.”

유저들을 살피는 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었지만, 강 팀장은 이 대리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세상 사는 요령은 있어서, 명령이 아니라 놀라는 말로 대신했지만 말이다.

* * *

한동안 자리를 비워둔 문파는 별 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표국은 순조롭게 크고 있었고, NPC 문도들은 모두 200레벨을 돌파했다. 거기에 표국의 누적 순이익이 1억을 돌파한 상태였다.

또 그동안 쌓인 표국 명성이 드디어 5만 점을 넘었다. 예상을 훨씬 추월한 속도였다. 옥문관행 비단 표행을 따내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표국 명성이 5만점이 넘으면 표국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지체 없이 표국주에게 증축하라고 명을 내렸다.

1억 냥을 소모하여 3급 표국이 2급 표국이 되었다. 싸게 들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표국주와 대화를 나누곤 그 생각을 철회해야 했다.

2급 표국이 돼서 바뀐 건 3가지였다.

첫 번째는, 개인 표행 의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난주의 유저가 북경의 친구에게 돈이나 아이템을 보낼 때 소요표국이 우편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요금이 비싸서 아직은 일반 유저가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먼 훗날에 강호에 돈이 넘쳐나게 되면 자주 사용될 가능성은 있었지만.

두 번째는, 난이도 높은 표행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이다. 물론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던 바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 나로선 흡족할 따름이었다.

마지막은, 드디어 타 지역에 분국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분국이 설치되면, 지금처럼 천수로 표행을 나갔을 때 황금산장의 중개를 받지 않아도 된다. 난주로 돌아오는 표행을 분국에서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수익률이 한층 좋아진다는 말이었고, 얌체 같은 황금산장에 세금을 내지 않게 돼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제약이 있었는데, 분국이 설치 가능한 지역은 감숙성과 감숙성에 접하는 지역으로 국한된다는 점이었다. 중원 전 지역에 분국을 설치하려면 1등급 표국이 되어야만 했다.

분국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았다. 얼핏 돈을 더 많이 벌게 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내겐 다른 꼼수를 생각하게 했다.

현재 소요표국은 돈 벌기보다는 NPC들 레벨 업 시킨다는 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지금이야 달리 방도가 없어서 위험한 사황성 영역으로 표행을 다니고 있지만, 상황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 분국을 설치하면 이 위험 부담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소요표국의 1호 분국은 영하성 성도(省都)인 은천(銀川)에 세워졌다.

은천을 오가려면 육반 산맥을 넘어야 하고, 일반 지역이 아니다 보니 산적들의 수준도 가욕관 바깥 놈들과 엇비슷했다. 아니, 약간 더 셌다. 돈은 좀 덜 벌겠지만, NPC들 레벨 업시키는 데는 한결 나은 곳이었다.

거기에다 거리도 짧았다. 난주에서 은천까지의 거리는 옥문관까지 거리의 3분지 1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 표행을 맡게 된 문도들이 제일 좋아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분국 하나 세우는 데 또 1억 냥이 들었다. 왜 2등급 표국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비용이 쌌는지 이해가 갔다. 감숙과 영하성의 모든 도시에 분국을 설치한다면 10억 냥은 가뿐히 사라질 것이다.

모든 일은 소요파에 앉아서 명령만 내리는 걸로 진행이 됐다. 굳이 내가 은천까지 가서 그쪽 지부대인에게 땅을 임대받을 필요도 없었고, 무슨 신고서를 제출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일은 표국주가 알아서 처리했다.

바쁘게 표국 일을 처리하고, 난 현운자와 다시 고목문으로 돌아갔다.

공동파와 사황성은 그네들끼리 실컷 치고 박고 싸우라 하고, 난 사냥이나 할 생각이었다.

한 닷새는 그렇게 작업을 했나 보다. 그사이에 레벨은 400 언저리에 이르렀다. 아이템도 짭짤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작업장 독식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고, 오히려 생각보다 늦은 감이 있었다.

고목문의 일반 강시들 레벨은 250 정도 된다. 거기에 가끔 마당에 출몰하는 중간 보스급을 처리하려면 300레벨이 넘는 3명 이상의 파티 사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필수 사항이지, 강호의 극심한 사망 페널티를 고려하면 330레벨 이상은 돼야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했다.

고목문은 오래전부터 유저들에게 알려진 곳이었고, 감숙 제일의 도시인 난주와도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고목문에 그동안 일반 유저들은 잘 들르지 않았다. 레벨이 낮은 탓도 있었지만, 유저들 입장에서 강시는 쓸데없이 체력만 강하고 아이템은 보잘것없는 쓰레기 몹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강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서 언감생심 고목 존자를 잡을 생각은 못했고, 그래서 고목 존자 패밀리가 얼마나 짭짤한 놈들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또한 충분히 레벨이 되는 유저들은 이미 근거지를 난주에서 가욕관으로 바꾼 상태였다. 고급 사냥터인 막고굴 던전이나 명사산 등지가 그들의 주된 사냥터였다.

하여간 비축해둔 환혼신단이 100개가 넘어갈 즈음에, 드디어 내 텃밭에 이방인이 끼어들었다.

녀석들은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평소 고목문 마당에서 강시를 잡으면서 안면을 익혀 둔 일반 유저들이 아니었다.

“흠… 이건 또 무슨 징조랍니까?”

갑자기 현운자가 고목문 정문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뒤를 돌아보니 3명의 이방인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2시간 전에 고목 존자 패밀리를 때려잡고, 지금은 앞마당에서 강시들을 잡고 있었다. 다음 보스 탐까지는 아직 2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녀석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빨간 아이디의 흉한들이었다. 3명 모두 말이다.

그러니 현운자가 그렇게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감숙에서 사황성 애들을 제외하고 그런 카오틱 유저들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놈들의 복장은 평범한 낭인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장검을 소지한 녀석들의 복장은 현운자와 비슷했다. 도관을 쓰고 도포 자락을 걸친 모습이‘나 도사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들의 소매에는 매화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화산파…….’

“화산파 같네요.”

현운자도 매화 표식을 알아보고 한마디 했다.

“흠, 화산파 척살단이라……. 누구 잡으러 온 건가?”

전에 낙양에서 개방과 소림의 척살단을 본 적이 있었다. 놈들은 자신들 사업을 방해하는 일반 유저들을 죽이는 게 주 임무인 녀석들이었다. 당시에 참 못 볼 꼴 많이 봤다.

보스급 몬스터 탐에 꼽사리 껴서 칼질한다고 가차 없이 썰어버리기도 하고, 몹 스틸 때문에 분쟁이 생기면 척살단 호출해서 이유 불문하고 죽여 버리기도 했다. 하남의 대문파는 조폭이나 다름없었고, 척살단은 행동 부대였다.

‘그런 자식들이 여긴 왜?’

“무시하고 사냥이나 해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놈들이다.

척살단 놈들은 구대문파의 비전인 살인검을 배우고 있었다. 강호 세계에 긴장을 야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대문파만의 살인 기술. 비록 최고의 경지엔 오르지 못하겠지만, 문파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제 실력보다 더 설치는 족속들.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는 놈들이 아니다.

“여어! 이거 이런 산골에서 무당 사람을 보게 되네요?”

짜증이 인다. 무시하려고 했는데 놈들이 현운자 옷에 새겨진 태극 문양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 네.”

현운자가 마지못해 대답을 해줬다.

“그런데 여기 꽤 짭짤한가 봐요? 그 먼 호북에서 여까지 온 걸 보니.”

놈이 뭔가를 얻어내려고 통박을 굴린다. 하지만 놈의 질문에 현운자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자리 옮깁시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옆으로 조금 이동하자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보인다.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안 탓인지 녀석은 그 이후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가 있던 곳에 자리를 폈고, 우린 놈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조금 더 떨어져서 사냥을 계속했다.

“심심한데 저놈들이나 잡아버릴까?”

이 자리는 아까 그 자리보다 안 좋은 자리다. 몹 생성 속도가 아까 그곳이 월등히 빨랐다. 쉬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내 발로 포기하긴 했지만,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까요? 쟤들 잡으면 명성치 꽤나 오를걸요?”

현운자가 비꼬는 소리를 한다. 절대 내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고목문엔 놈들과 우리 외에도 사냥 중인 파티가 3군데나 더 있었다. 모두 일반 낭인들 파티였다.

놈들의 사냥법은 정말 비매너 그 자체였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만 사냥해도 몹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데,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옆 파티 자리에서 몹을 끌어가곤 했다.

‘저러다 일 나지.’

짐작대로 사단이 났다. 열 받은 낭인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놈들에게 따진 것이다.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그쪽 몹도 넘쳐흐르는데 왜 남의 자리에서 스틸해가는 겁니까!”

“스틸? 지금 스틸이라고 했어? 내가 당신이 때리고 있는 몹 가져갔어? 그냥 놀고 있는 놈 가져갔잖아! 아놔, 열 받네!”

가관이다. 똥 싼 놈이 큰소리치고 있었다.

“뭐라고? 엄연히 우리 파티 자리에서 나온 몹이니까 당연히 우리 거지! 그게 스틸이 아니면 뭐야? 그리고 처음 보면서 왜 반말이야!”

낭인도 성깔이 있는 듯 반말로 역공세를 취했다.

“내가 더 나이 많아 보이니까 반말하지. 그리고 말이야, 나 이런 경우 처음이야. 거지 같은 동네다 보니 별별 자식이 다 엉겨 쌌네.”

“뭐? 야, 이 X팔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화산파 놈의 욕설에 낭인이 살짝 맛이 갔다.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뻗쳐서 화산파 놈에게 선공을 날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패싸움이 벌어졌다.

먼저 검을 날린 건 낭인이었지만, 그가 가장 먼저 죽음을 당했다. 화산파 척살단 3인의 합격에 순식간에 썰리고 만 것이다.

“보고만 있을 거예요?”

남은 낭인 파티원 둘도 위험에 처했다. 놈들의 공격에 겨우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수는 없지. 동네 시끄러우면 이장이 나설 수밖에.”

농담으로 한 소린데, 미치겠다.

“이장님 납시오!”

“끙.”

또 무슨 소리 하기 전에 빨리 저놈들을 제압해야겠다 싶어 땅을 박차고 몸을 띄웠다.

꽝!

‘이 자식들, 왜 이리 싱거워?’

[명성이 1,802 상승했습니다.]

충자 결에 검기를 입힌 금강저. 이 공격을 뒤통수에 제대로 맞고도 살아난다면 그놈 대가리는 오리하르콘일 것이다.

“어?”

놈이 갑자기 픽, 죽어버리자 나머지 화산파 놈들이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뭘 봐?”

다른 놈을 목표로 다시 충자 결을 시전했다.

팍!

이번엔 제법이다. 용케도 검으로 금강저를 막아낸다.

‘그럼 이건 어떠냐?’

놈에게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검이 내리쳐졌다.

점자 결은 재밌다. 금나수처럼 확률이 아니라 100퍼센트 공격을 묶어버리는 요결이다. 유자 결이나 충자 결이 아닌 한 상당히 막기 힘들다.

점자 결을 시전하니, 내려오던 검의 기세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내 12성의 금나수가 펼쳐졌다. 12성 대성한 금나수는 멈춰 있는 대상이라면 100퍼센트 성공이었다.

검을 쥔 녀석의 오른쪽 맥문이 딱 잡혔다.

‘겁 좀 줘야지.’

사람들은 말한다. 일단 패기로 맘먹었으면 다시 개길 생각 못하게 패라고.

타탁- 탁!

퍼퍽! 퍽!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살살 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살살인데 놈은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대, 한 대 녀석의 몸을 쓰다듬어줄 때마다 놈의 몸뚱이가 들썩들썩했다.

“죽어버렸네?”

얼마 때리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축 늘어졌다.

낭인 둘을 상대하면서 눈치를 보던 마지막 녀석이, 동료가 모두 죽어버리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은 채 몇 걸음 가지도 못했다. 현운자가 놈의 앞길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딜 가려고?”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녀석이 잔뜩 겁에 질려서 말했다.

“아까 못 들었어? 나 이장이야. 이 동네 이장.”

“그, 그게 대체 무, 무슨…….”

“닥치고, 일단 맞고 시작하자.”

난 신안이 정말 맘에 든다. 오러를 볼 수 있는 이 기능이 맘에 든다. 상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너무 맘에 든다.

퍼퍽! 퍽! 퍽!

구타가 진행될수록 놈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갔다.

“나, 나 화산파요! 가만두지… 후, 후회할 겁니다!”

“그랬어? 화산파였어?”

퍼퍽! 퍽! 퍽!

“으… 윽!”

그만 때려야겠다. 한 대만 더 때리면 얘 죽을 것 같다.

“야, 인마, 건달도 딴 동네 가면 일단 머리 숙이고 들어가는 거야. 대체 무슨 깡으로 남의 동네 와서 행패를 부리냐?”

“님, 님… 대체 정체가… 뭡니까?”

“왜? 알면 복수하려고? 나 조연이야, 조연. 알지? 모르면 니네 장문인한테 물어봐.”

“황… 황금충!”

“아네? 복수하려면 실컷 해. 대신 니네 화산파 멸문시킬 각오하고.”

“아, 아닙니다! 절대! 다시는! 여기 안 오겠습니다!”

녀석이 그제야 기합이 바짝 든다.

“그래? 그럼 고맙고. 야, 근데 말이야, 아까 들어보니깐 나이 운운하던데, 솔직히 너 몇 살이냐?”

“열세 살입니다!”

이런 초딩 색히. 어쩐지 개념이 없더라니.

“그래, 나이도 어린데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이 많다. 그럼 그만 문파로 보내주마.”

“네? 네, 감사합니다!”

퍽!

[명성이 1,674 상승했습니다.]

이 게임은 죽으면 문파로 돌아간다.

“별별 바보들이 와서 다 설치는구만.”

이제 다시 평화로운 사냥터가 됐다.

“조연 님, 정말 감사합니다!”

위기를 모면한 두 낭인들이 고맙다며 인사를 해왔다.

“아뇨, 뭐 감사랄 것까지야. 그런데 거참, 아무리 지역 간 이동이 풀렸다고 해도 저런 카오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정도로 감숙이 만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놈들에게 빼앗겼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낭인이 날 불러 세웠다.

“저기 조연 님, 혹시 홈페이지 못 보셨나 봐요?”

웬 홈페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새벽에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떴거든요. 사황성의 흑룡 님이 올리신 글이요. 이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고, 직접 한번 보세요. 아까 그 자식들하고도 상관이 있을 것 같네요.”

홈페이지야 매일 들어가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밤에나 잠깐씩 들락거릴 뿐이기에, 새벽에 올라온 글을 내가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나저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사황성의 흑룡하고 화산파 척살단하고 무슨 관계라고? 놈이 화산파에 선전 포고라도 했단 말인가?

사황성의 움직임은 내겐 최고의 관심사다. 일반 유저들도 알 정도라면 그가 올린 글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사냥을 잠시 중단하고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흑룡의 글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월드 게시판은 흑룡이 올린 글에 대한 의견으로 도배된 상태였다.

<번호:4,191,991 작성자:담경 등록일자:XX.05.07

제목:사황성 흑룡이 강호의 모든 카오틱 유저에게 한 말씀 올립니다.

시간이 무르익은 것 같아서 글 올립니다.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사황성은 감숙성에 있습니다. 감숙성으로 찾아오시길 권하는 바입니다. 감숙성 돈황으로 오시면 사황성에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황성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정파처럼 기본 체질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설령 정파의 내공을 배운 상태라 하더라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단, 가입 조건은 레벨 300 이상, 악명 1만 이상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왜 사황성으로 오시라고 하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 많은 카오틱 유저들의 상태는 혈마지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중원의 문파에선 이 혈마지체를 달리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사황성에선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사황성에 가입하시면, 혈마지체에서 그다음 단계의 체질로 상승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한 노력과 시간을 들이셔야 합니다.

또한 가입을 하시면 마공과 정공을 섞어 배워서 무공이 정체된 상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단, 정파 무공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걸 안타까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더 좋은, 더 상급의 마공을 배우게 해드리겠습니다.

덧붙여, 마도 문파에 가입하시면 카오틱 상태라서 부당하게 적용되던 페널티도 정파인과 똑같은 적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황성에 오시면, 수입 면에서도 월등히 좋습니다.

돈황 인근은 중원과 서역에서 오가는 상단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던전에서 힘들게 사냥해 아이템과 무공서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단을 약탈해서 돈을 모아 사면 됩니다. 남들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약탈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갖고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심해도 됩니다. 이곳 감숙성 북부 지역은 상단 약탈을 하거나 NPC를 살해해도 후환이 없습니다.

이곳은 강호 시스템이 규정해놓은 합법적인 프리 PK 지역입니다. 완전한 자유 지대이며, 전투를 좋아하고 진정한 강호 생활을 꿈꾸는 분에게 이곳은 지상 낙원입니다.

강호의 카오 유저님들, 사황성에서 새로운 삶을 꿈꿔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언제까지 중원에서 룰 따위에 얽매여 팍팍한 게임을 하시렵니까?

진정한 강호를 꿈꾸며 재밌는 전투를 원하시면 지금 당장 사황성으로 달려오십시오.

P.S:혹시나 사황성에 가입할 의도가 아니라 약탈만 생각하고 오시려는 분은 마음을 고쳐먹기 바랍니다. 이곳은 프리 PK 지역입니다.>

흑룡이 올린 글을 읽고 난 느낌은…

‘이 자식도 나 같은 사기꾼이네?’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무공과 체질에 대해서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니까 넘어가고, 오고 가는 상단이 넘쳐난다? 넘쳐나긴 개뿔이!

지금 가욕관 이북은 오가는 상단이 거의 없다.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일단 그 동네에 가면 거의 털리고 마는 게 기정사실인데 어느 누가 상단을 꾸리겠는가? 그나마 가끔 소요표국의 표행이 지나다닐 뿐이었다.

서역에서 출발한 상단의 종착지는 옥문관이다. 거긴 직접 가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옥문관까지 비단 표행을 다녀온 문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쪽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한다.

아무리 가뭄이 들어 배가 고파도, 파종할 씨는 남겨 두는 게 기본 상식이다. 사황성 놈들은 그런 상식도 없는 놈들이다. 옛날이야 좋았지, 지금은 별로 돈벌이가 안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뭐? 진정한 강호 생활? 프리 PK 존이라서 맘껏 싸움을 할 수 있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싸움은 뭐 혼자 하나?

그쪽엔 변변한 문파도 없다. 그럼 같은 문파 사람들끼리 싸움하란 소린가? 뭐, 낭인들이 있긴 하지만 무분별하게 살인할 수는 없다. 더구나 사황성 놈들이 해코지한다면 낭인들은 그냥 딴 데 가면 그만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니었다. 흑룡의 게시물엔 나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수백의 리플을 달아놓고 있었다. 개중엔 그쪽에서 사냥하는 감숙 낭인들의 글도 여럿 됐다.

그 사람들의 요지는 속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네들 입장에선 사황성의 세력이 커지면 편안히 사냥하는 데 지장을 받게 되니까 당연히 할 소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속지 말라는 리플을 달아놓고 있긴 했지만, 이미 돌은 구르고 있었다. 벌써 세 놈이나 봤지 않은가?

“흐음… 드디어 흑룡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셈이군. 그런데 공동파가 그렇게 무서웠던가?”

흑룡이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냈다.

그렇게 녀석이 일을 벌인 통에 나도 신경 쓸 일이 몇 가지 생겼다.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문도들에게 홈페이지 글을 읽어보라고 통지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옥문관행 비단 표행은 하지 말라고도 일렀다.

공동파와 전쟁을 앞둔 사황성이 소요파와의 불가침 조약을 파기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갑자기 몰려드는 그 많은 카오틱 유저들을 흑룡이 다 통제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마침 시의 적절하게도 비단 표행을 대체할 방법이 있었다. 수익성은 좀 낮았지만, 영하성 은천 분국을 오가는 표행으로도 NPC들 레벨 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역시 사업하는 사람은 구멍을 많이 파둬야 한다.

감숙성은 갑자기 인기 지역이 되었다. 중원 각지에서 시뻘건 놈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감숙성으로 미어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목문엔 나한테 맞아 죽은 화산파 놈들처럼 아이디 빨간 놈들이 가끔 들렀다 가곤 했다. 목표는 저 북쪽일 텐데, 괜히 이 동네에서 거드름 피우고 싶어 하는 한심한 녀석들이었다.

매번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이 정의의 이장님이 출동해서 행패 부리는 양아치 놈들을 문파로 고이 돌려보내주었다.

한 사흘 그렇게 때려잡으니까 명성도 오르고 레벨도 쑥쑥 올라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은 일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나쁜 놈이 홈페이지에다 난주에서는 행패 부리지 말라는 글을 올려 버린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건의 여파가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말 골 때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일반 유저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중원의 대문파에 들어갈 방도는 없다. 접수 마감은 강호 오픈 초창기에 끝났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낭인으로 살든가, 아니면 문파를 세우든가 해야 했다. 하지만 유저 문파를 세운다고 해서 즐거운 강호 생활이 되진 않는다. 대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쌍한 신세가 되는 것이다.

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문파 건설에 들어간 돈 때문에 차마 떠나지도 못한다. 결국은 현실에 타협하고 대문파의 수족이 될 수밖에 없다. 생돈 투입해서 남의 종노릇하는 식이었다.

상황이 그러니 차라리 떠돌이 낭인 생활이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런 면에서 소요파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다. 다 문주가 잘나서였다.

어쨌든 그들에게 있어 사황성은 유일한 희망이요, 떠오르는 태양이 된 것이다. 가입 제한은 그저 레벨과 악명 수치뿐이고, 인원 제한 없이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사황성. 정파면 어떻고 사파면 어떠랴! 어차피 게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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