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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이간계(離間計) (34/62)

제33장. 이간계(離間計)

낭왕을 잡고 나온 아이템은 한시적으로 내가 맡기로 했다. 어차피 낭왕혈은 계속 우리 차지가 될 것이고, 언젠간 모든 문도들이 이 아이템들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이틀이 지나자 낙양으로 심부름 보낸 문도가 사자후와 창룡음 무공서들을 몇 개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내가 없어도 낭왕의 공포 기술을 겁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낭왕은 사흘이 지나자 다시 출현했다.

이번엔 현운자가 굳이 만벽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조자건의 백호단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백호단은 시작부터 4개의 동혈을 틀어막는 일에 집중했다. 낭왕의 포효가 터져도 길을 틀어막은 문도들 때문에 늑대들은 광장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아무도 희생되지 않는 완벽한 작업장이 하나 생긴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사냥부터는 아이템 수준이 조금 떨어졌다. 낭왕을 세 번째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환혼신단은 겨우 두세 개 떨어졌고, 낭왕피의와 피독주, 조각상 같은 장비 아이템들은 딱 한 가지씩만 나왔다.

왠지 처음 레이드에 성공하면 플러스 효과가 붙는 것 같았다. 명성치나 경험치도 처음 사냥 때가 월등히 많았기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하여간 전 문도원에게 갑옷과 피독주를 안겨 주려고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엔 분배 방식이 참여한 문도들끼리 주사위를 굴려서 아이템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작업장이 하나 만들어졌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낭산은 문도원 전체를 수용하기엔 부족했다. 낭왕 잡을 때만 80명 인원이 필요했지, 안마당에서의 혈랑 사냥은 1개단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 솔직히 낭왕이 주는 아이템은 썩 좋은 편이 못 됐다.

한번 레이드 몹의 맛을 본 문도들이라 이젠 내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정찰을 다녔다. 각 단에서 차출된 인원들이 아직 못 가본 영하성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나와 현운자는 세 번째 사냥 이후로 낭산에서 내려왔다. 우리가 없어도 낭왕 사냥엔 무리가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려오면서 난 레이드 던전 발견 보상을 달라고 떼를 썼다. 거기에 몇 마디 말을 덧붙여서 피독주와 조각상을 강탈할 수 있었다. 욕심쟁이 문주라고 따지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파문시켜 버린다는 협박에 입이 쏙 들어갔다.

피독주를 가지고 바로 고목문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고목문엔 일반 유저들이 많았지만, 고목 존자 패거리를 잡는 팀은 없었다. 조만간 이 녀석들도 일반 유저들의 밥이 될 게 뻔했으니, 하루빨리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작업은 물론! 환혼신단 작업이었다.

고목문에서의 지루한 작업이 연일 계속됐다. 늘어나는 환혼신단과 각가지 비싼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때려치웠을 지루한 나날이었다.

피독주가 있어서 더 이상 현운자 없이 나 혼자서도 작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운자는 다른 데 가서 좀 쉬다 오라는 내 말을 무시했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왜 재미도 없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짭짤한 사냥물들을 나와 양분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붙어 지내면 닮아간다더니 현운자도 나처럼 욕심쟁이가 돼버린 모양이다.

지루한 사냥은 일주일 만에 깨졌다. 문파에서 표행을 준비 중이던 문도가 전서구를 보내온 것이다.

소요파에 공동파 사람들이 들어와 날 찾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취의청에는 10명의 공동파 도사들이 들어와 있었다. 도포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비싸 보이는 장로가 한 명이었고, 일대제자로 보이는 중년 도사가 셋, 나머지 여섯은 이대제자로 보이는 젊은 도사들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소요파 문주 조연입니다.”

“네. 험한 곳에서 강호 안위에 진력을 다 쏟고 있다는 이야기 잘 듣고 있었습니다.”

먼저 인사를 건네자 아이디가 무운인 공동파 장로가 검배를 해왔다.

그나저나 이곳 난주가 험한 곳이라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소요파만 남아서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인데 말이다. 혹시 사황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가?

“그런데 무슨 일로 진인께서 귀한 발걸음을 하셨는지요?”

“일전에 본파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있었잖습니까. 사황성에서 감숙 무림 문파에 획책을 걸고 있다고요.”

“네, 그랬었죠. 본파도 한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조 문주가 하산하시고 장문인께서 바로 제게 명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확실히 알아보라고요. 그동안 지금은 사라진 감숙맹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지요. 조 문주님 말씀 그대로더군요. 인상이 거친 흉한들이 감숙맹에 며칠 머물렀다는 증언도 있었고, 특히 포매향이라는 주루에서는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사황성이 난주에 들어와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

내심 기대를 가득 담아 공동파 장로에게 물었다.

“백로가 까마귀 사는 곳에 가면 안 되겠지만, 이번 일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웃으라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사황성에 직접 가보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위험하실 텐데도요?”

“그래야지요. 제가 해침을 당하면 일은 분명해질 테고, 그게 아니라면 적정을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하아… 나름대로 꽤 그럴싸한 논리다. 하지만 역시 강호가 게임 속이라 그런가? 현실이라면 제 목숨 아까워서 절대 이런 짓 할 생각은 못할 것이다. 설령 백로라 할지라도.

“흐음… 그럼 제가 직접 뫼시도록 하지요. 일을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세작(細作)을 넣어서 위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고래들 싸움 붙이는 일은 손수 해야 제 맛이다.

계획? 그런 건 없다. 상황 봐가면서 만들면 그만이다.

“허허, 중책을 맡고 계시는 문주님이 직접 나서실 필요까지야…….”

빼기는.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합시다.”

잠깐 먼 길 다녀온다고 문도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달랑 현운자만 데리고 사황성으로 향했다.

돈황은 어떤 곳일까? 생각대로 두 거대문파가 전쟁을 벌이게 될까?

설마하니 공동파와 사황성이 이런 단순한 이간계에 걸려들 줄은 몰랐다.

계략이 단순해서가 아니었다. 유저들의 행동에 NPC들이 현실적인 대응을 한다는 게 신기해서였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 일의 계획은 표국 일에서 비롯됐다.

난주 황금산장 분국에서 총관이 그렇게 말했다. 가욕관 이북에서 사황성 때문에 표물 운송에 차질이 생겼다고.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소요표국에 표행을 의뢰한다고 말이다.

우린 일을 성공리에 끝마쳤고, 덕분에 운송 마진이 센 정기적인 비단 표행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의 이면엔 보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유저들의 행동에 따라 NPC들의 대응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소요표국에서처럼 퀘스트가 발동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마디로 게임 시스템 내에서 유저와 인간들의 행위는 똑같이 취급된다는 말이었다.

항상 인공지능만이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줘야 하는가? 혹 반대로 유저들이 게임 시스템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반쯤 장난 섞인 내 이간계는 통했고, 이렇게 공동파는 내 주둥이 하나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물론 전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했다. 하지만 소모전만 되더라도 소요파 입장에선 나쁠 게 없었다.

무리를 이끌고 돈황으로 향하는 내내 강호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막상 이용해먹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오류가 있다는 느낌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공동파 문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표대를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였고, 로그아웃을 하면 사라졌다가 접속을 하면 다시 출현했다.

이틀이 지났을 때, 우린 드디어 가욕관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얌전히 지내던 내 장난기가 발동한 시점이기도 했다.

“현운자 님, 피곤하니까 오아시스에서 잠시 쉬다 가죠.”

현운자가 내 의도를 눈치 채고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꽤나 피로하네요. 길이 이렇게 험한 줄 알았다면 따라오지 않았을 겁니다.”

공동파 사람들이 다 듣고 있어서 우린 귓속말도 금하고 있었다. 전음이라도 있었다면 좋을 텐데.

‘전음술이라… 그러고 보니 여태 배웠다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네. 물어볼까?’

겸사겸사 뒤따르고 있던 무운 장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래도 이들은 표사들과 달리 대화하는 맛이 있었다.

“무운 장로님, 혹시 공동파에서는 전음입밀의 공부가 없나요?”

“허허, 조 문주!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거리낄 게 무에 있다고 그런 요사스런 공부를 한단 말입니까?”

“그럼 수도하지 않는 무인들은요? 전음술이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때론 독도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이잖습니까? 듣자 하니 낭인들에겐 그런 공부가 전수되고 있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소문에는 있는 것 같기도 하더랍니다만…….”

그걸로 됐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딱히 없어서 불편한 건 아니었다.

“장로님, 그나저나 그동안 쉬지도 못하고 강행군을 했습니다. 잠시 저기 오아시스에 들러서 피로를 좀 풀고 가도록 하지요.”

“큼! 그럽시다.”

우린 지금 표행을 하는 게 아니다. 관도에서 도적 떼 마주칠 일은 없었다. 더구나 이들은 구대문파 고수들. 그것도 땡전 한 푼 없는 도사들이다. 쳐들어오는 놈들이 있다면 눈먼 봉사들뿐일 것이다.

사황성에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이들의 힘을 빼도록 하는 게 내 의도였다. 그게 안 될지라도 이들의 전투력을 파악해두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난 여태 구대문파 NPC들의 힘을 견식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오아시스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역시나 놈들이 우리를 마중 나오는 기미가 보였다.

뿌우우-

멀리서 마적 떼가 뿔피리를 불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두두두두둥-

그리고 곧 말발굽 소리도 들려왔다.

“진인! 아무래도 마적 떼인 것 같습니다!”

“큼, 조 문주가 가서 잘 타일러 보시구려. 잘 모르고 그러는 것이겠지요.”

‘이런, 미친!’

말이야 그렇다 쳐도, 무운 장로 말이 어째 날 시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쩝, 그래보도록 하지요.”

시키는데 어쩌겠나? 어른이 말씀하시는데‘네!’ 하고 달려가 봐야지.

사실, 조금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말하면 정말로 저 녀석들이 멈추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유저가 아닌 나름 고급 NPC인 구대문파 장로가 한 소리니까.

그런데 이건 뭐! 역시나였다!

‘끙!’

말 붙여 볼 틈도 안 주고 놈들의 장도(長刀)가 단칼에 날 쪼개버릴 듯이 내리쳐진 것이다!

“사람 살려!”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원래 자리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마적단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마적단이 그대로 짓쳐 들어와 일행을 덮쳤고, 공동파 무인들은 분분히 검을 뽑아들고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쉬이익!

히이이잉~

퍽! 우당탕탕!

현운자와 난 각기 마적 한 놈씩을 맡고는 공동파 NPC들의 위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허! 저게 구대문파의 진짜 실력이라는 건가?’

아직 약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 도사들이 검기를 주욱주욱 뽑아내면서 싸우고 있었다. 이대제자들의 검기에 마적들은 칼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썩둑썩둑 베어져 나갔다. 겨우 이대제자일 뿐인데도 무림맹 절정무사의 경지를 초월한 모습이었다.

중년 도사들의 검에선 검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대제자들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검일살(一劍一殺)이 아니라 일검삼살, 사살이었다. 검강 한 번에 서너 명의 마적 떼들이 폭사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무운 장로의 위세!

마치 소림의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를 보는 것 같았다.

쭈욱 신형을 뽑아 올린 무운은 허공에서 몇 가닥 검기를 쏘아내고는, 마치 징검다리를 밟듯이 공중을 격하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 사기네.”

수가 1백이 넘어가는 마적단이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조차 버티지 못했다.

눈앞엔 사람 시체, 말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쩝, 얘들 힘 빼놓겠다는 계획은 포기해야겠구만.’

다음 날은 드디어 목표했던 돈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때는 왕조의 수도로 영화를 누리던 도시였지만, 우리 눈에 비친 돈황은 모진 사막 바람에 다 무너져 가는 폐허였다. 누리끼리한 벽돌 성곽이 간신히 형체만 유지한 채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 주고 있을 뿐이었다.

돈황성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완전히 버려진 도시 같았다.

‘하긴 그러니깐 사황성 같은 애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겠지.’

전에 새우가 일러준 대로 남쪽 성문으로 조심히 진입했다.

성문에도 파수병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았고, 성내로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새우한테 속았다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아무리 숨어 사는 문파라고 해도 그렇지, 수만 명이 생활하는 곳에 아무런 흔적도 없을 수가 있을까?

‘이러다가 허위 정보 알려 줬다고 된통 깨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미리 한번 정찰해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뭐 별수 있나? 이미 내친걸음이다.

“보자 보자, 여기서 직진하면 된다고 했던가?”

새우가 알려 줬던 길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자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큰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오른편으로 돌아 들어가니 토담이 무너져 쌓여 있는 곳이 있었고, 무너진 돌들 사이로 용케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보였다. 왠지 보물찾기라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구멍에 몸을 집어넣자 잘 다져진 돌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돌길을 따라 조금 나아가자 드디어 새우가 알려 준 사황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운 장로님, 도착했습니다.”

눈앞에는 천장이 폭삭 주저앉은 건물이 있었다. 용케도 천장을 받치고 있던 벽과 천장돌이 교차하면서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는 틈을 만들어놓았다.

내가 손가락으로 그 틈을 가리키자 무운 장로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곳이 진정 사황성의 근거지란 말이오?”

“저도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면 사황성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사황성이 이렇게 조용한 곳일 줄은 생각도 못한 터라… 멀리서 관찰하면 될 줄 알았더니만……. 허허!”

‘걍 들어가 봐라. 내가 망 봐줄 테니깐.’

“장로님, 어차피 귀파 장문인의 명이 확실히 알아보라는 것이었으니,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치상으론 누군가가 들어가서 적황을 살펴야 했다. 하지만 차마 내 입으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란 소리는 못하고 있는데, 현운자가 옆에서 도와주는 소리를 한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요. 그런데… 허허…….”

‘여기까지 와서야 목숨 아까운 줄 아는가 보네?’

노인네가 너무 빼는 것 같아 한 소리 해야겠다. 못 도망가게 말이다. 잘못하다간 다 된 밥에 코 떨어뜨리게 생겼다.

“퇴로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위험에 처하시면 신호를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허허! 허허…….”

무운은 연신 난감하다는 듯 헛웃음만 지었다. 하지만 결국엔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현운자에겐 입구를 지키고 있으라고 말해두고, 난 몰래 공동파 도사들의 뒤를 따랐다. 아마도 내가 자기들 뒤를 따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특별히 의심 살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사황성 내부는 무척이나 넓었다. 초라한 입구하곤 영 딴판이었다.

길게 일렬로 도열한 석주(石柱)들 뒤로 공동 도사들이 표홀한 신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명이 앞서 석주 뒤로 숨으면, 다음 사람이 그 뒤를 은밀하게 따랐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들 뒤를 따랐다. 물론 내가 그런 고절한 신법을 지니고 있을 리야 만무했으니, 보란 듯이 걸어갔다.

석주가 끝날 즈음에야 이곳이 사황성이라는 증거를 포착할 수 있었다. 작은 화톳불이 피워져 있고, 그 주위에 2명의 경계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보초들의 아이디는 선명한 붉은색. 사황성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흠, 어떻게 저길 통과하려나? 점혈을 할 건가, 아니면 미혼약을 뿌릴 건가?’

하지만 내 예상을 전부 빗나갔다.

탓-

쉬익- 쉭-

무운 장로가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가더니 단숨에 보초들의 목을 따버린 것이다!

‘저런 무식한!’

무식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보초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시 장로가 앞장서고, 그 뒤를 공동파 문인들이 따랐다. 물론 나도 따라갔다.

그 뒤로도 띄엄띄엄 경계병들이 있었지만, 모두 다 무운의 일검에 고혼이 되어버렸다.

‘이래서야 싸움이 벌어질 수가 없잖아.’

하지만 사황성의 중심부에 도달하자, 무운의 그런 신묘한 검술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통로 끝을 사방 두 장은 됨 직한 거대한 돌문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문을 열면 사황성 무인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게 분명했다.

‘흐음, 이번엔 어떻게 할까? 분명 들어가긴 해야 할 테고… 무턱대고 들어가자니 목숨이 아까울 텐데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내 착각. 난 저놈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놈들은 머리가 빈 것처럼 석문을 열더니 그대로 난입해버렸다!

‘끙, 대체 무슨 깡인 거야?’

어떻게 몰래 들어와 정탐하겠다는 놈들이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무협지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저놈들은 머리 나쁜 컴퓨터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는데도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픽! 스윽! 차악-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고, 살 베이는 소리만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그 희미한 소리마저도 들려오지 않았다.

살금살금 들어가 봤다.

석문 안쪽 석실에는 이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황성 무사들이 모조리 시체가 되어 있었고, 한바탕 도륙을 끝낸 공동파 도사들은 이미 석실을 벗어났는지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황성 애들이 너무 약한 거야, 쟤들이 너무 강한 거야?’

다음 석실에서 또 한 차례 살인 행각을 지켜보고서야 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사황성이 약한 게 아니라, 공동파 놈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이었다. 그것이 구대문파 본산제자인 탓인지, 아니면 이번에 하산한 놈들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수를 써야겠네.’

분명 이들이 좀 더 내부로 진입한다면 사황성 핵심 인물들과 맞부딪칠 것이다.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설령 싸움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들 실력이라면 무사히 후퇴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황성의 상황이 공동파 본산에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아마도 전쟁 준비 중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전해지겠지.’

어떻게 해서든 공동파 도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몰살을 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혹시라도 사황성 놈들이 공동파에 일러바칠 수도 있는 일이다. 소요파가 나쁜 놈들이라고 말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이왕 저지를 범죄라면 완벽하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깨끗이 청소가 끝난 길이라 경공을 써도 들킬 염려가 없었다.

현운자는 입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잠깐 구경만 하다 올 줄 알았더니만.”

현운자가 볼멘소리를 했다.

“바쁩니다. 얼른 따라오세요.”

달랑 그렇게만 말하고 몸을 돌렸다. 현운자가 뒤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지만, 내 몸은 이미 앞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공동파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되짚어갔다. 잠깐 다녀온 사이에 사황성 무사들이 대기 중이던 석실이 3개나 더 털려 버린 상태였다.

왠지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저들 10명이서 사황성 문 닫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황성의 문도는 거의 2만이나 되니까.

눈앞에서 몇 번이나 봤던 일대 참극이 재현되고 있었다. 일방적인 도살이라지만 보고 있자니 기분이 흐뭇하다.

그런데 이들이 대체 얼마나 더 진입할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나 소란을 피웠는데도 왜 사황성 핵심 전력이 출동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놈들 대응이 이렇게 한심하니, 결국 내가 직접 손을 쓰게 되는 것이다.

“현운자 님, 그거 도발 범위가 최대 어느 정도인지 아세요?”

“그거라뇨?”

“그거 있잖아요, 그거. 낭산에서 썼던 거. 만벽이라는 거.”

“글쎄요? 대략 백 보쯤?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줄자 가지고 재본 적이 없어놔서.”

백 보라면 조금 아쉬운 감이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써볼 만했다.

“조금 있다가 공동파 도사들이 석실 벗어나서 통로로 가면요, 저기 석실 입구에서 만벽 쓰세요. 위치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현운자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본다.

“일단 써보면 압니다. 저 믿죠?”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습니다만…….”

마침 방 안 청소를 다 끝낸 공동파 도사들이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금입니다! 제가 신호하면 시작하세요.”

재빨리 이동해서 석실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소환! 무림맹 절정무사!”

[무림맹 절정무사를 소환했습니다. 60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무림맹으로 복귀합니다.]

오랜만에 뽑아본다, 무림맹 무사.

무림맹 무사를 수비형으로 전환시키고 정확히 입구에 자리 잡게 했다. 석실 입구는 딱 두 사람이 통과할 너비밖에 되지 않았고, 그걸 나와 무림맹 무사가 틀어막은 상태였다.

현운자는 우리 바로 앞, 이미 정리가 끝난 석실 쪽에 서도록 했다.

“시작하세요!”

신호를 주자 현운자가 만벽을 시전했다.

현운자가 태극권 기수식을 펼치자 양손에서 검고 흰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기운은 꼬리를 물듯이 현운자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고, 이내 태극 문양이 새겨진 둥근 반투명 막이 현운자를 감싸 안았다. 만벽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그냥 눈 뜨고 구경만 하면 된다. 이다음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백 보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황성 무인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처음엔 가까운 석실에서, 그리고 그다음 석실에서. 그렇게 족히 20여 개가 넘는 석실에서 수백의 무리가 뛰쳐나와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황성 무인이 현운자를 공격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게 될 리 없었다. 우리가 길을 막고 있었으니까.

보통은 이렇게 공격 대상의 길을 막고 있으면, 내가 공격당하게 된다. 하지만 만벽은 그렇지 않았다. 낭산 낭인혈에서도 그랬다. 현운자를 공격할 수 있는 늑대들은 끽해야 8마리. 그 여덟을 제외한 나머지 몹들은 만벽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현운자만 인식했지, 다른 문도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만벽은 말 그대로 완벽한 방어 기술인 것이다.

통로 쪽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황성 무인들로 가득 메워진 상태였다. 그 속에서 공동파 무인들이 난데없이 튀어나온 적들을 향해 매서운 일검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지금까지와는 너무도 달랐다.

무공이 아무리 세다 한들, 신법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몸뚱이 움직일 공간도 없는데 제 실력이 온전히 나오겠는가? 그나마 공격당하지 않고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만벽의 시전 시간은 1분. 그 1분은 빨리도 지나갔다.

그리고 절로 내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만들어졌다. 이젠 정말로 구경할 차례였다.

간간이 날 공격하는 놈들의 공격만 막아내면서 공동파 도사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무운 장로의 가공할 신법도 좁은 통로 안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공동파 도사들은 빽빽한 공간에서 보법도 사용하지 못한 채 단순한 공격밖에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런 좁은 공간에선 검법의 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도사들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칼에 그나마 버틴 게 용했다.

이대제자 다음은 일대제자들이었다. 일검삼살의 막강한 검강을 발출하던 도사들의 내공도 시간이 지나자 바닥을 드러냈다. 내력이 다한 도사들 역시 앞서 죽은 젊은 도사들의 뒤를 따랐다.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서 고군분투하던 무운 장로도 결국은 최후를 맞았다. 무운 장로는 일당백의 고수는 될지언정, 일당천이 되기엔 아직 모자랐다.

공동파 도사들의 전멸을 확실히 확인한 후에, 바로 무림맹 무사를 소환 해제시켜 버렸다.

그때까지 나와 무림맹 무사는 방어만 하고 있었을 뿐, 단 한 번의 공격도 하지 않았다. 괜히 애들 건드려서 일이 커질까 봐서.

현운자는 우리가 길을 틀어막는 동안 운기 조식으로 내력을 회복시켜 놓은 상태였다.

일은 무사히 마쳤다. 더 이상 사황성에 볼일은 없었다.

“뜁시다!”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뒤에 수백의 사황성 무사들을 달고서.

“크하하하!”

내 사악한 웃음소리가 사황성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 *

난데없는 공동파 도사들의 사황성 난입이 벌어진 지 이틀 후.

흑룡 담경은 돈황 천불동에서 폐관수련을 하다 간만에 근거지로 돌아왔다. 한번 집 밖을 나서면 보통 일주일은 걸렸는데, 이번엔 사흘 만에 돌아온 것이다.

천불동에서 마면관음(魔面觀音)을 잡고 얻은 아이템을 창고에 들여놓은 담경은 총사가 집무를 보는 석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가 사냥 나간 지 사흘 만에 돌아온 이유는 총사 모원의 호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원은 여타 문파 총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NPC였다. 사황성의 규모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일반적인 문파에 있는 총관들보다 업그레이드된 지능과 다양한 명령을 판단할 수 있는 고급 NPC였다.

하지만 여태 이런 경우가 없었다. 언제나 명령을 받들기만 하는 총사였는데, 이번엔 그가 먼저 용건을 제시한 것이다.

공식적으론 서열 2위인 총사라지만, 사황성의 소공자인 자신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존재. 더구나 지금은 대공자보다 자신이 차기 성주 자리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담경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자신을 부를 정도라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아! 오셨군요, 소공자.”

“무슨 일 때문에 불렀지?”

담경은 바쁜 몸. 겉치레는 제쳐 두고 바로 용건부터 물었다.

“거칠 것 없는 성정은 여전하시군요. 아무래도 소공자께서 신경 써주셔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

잠시 말을 끊고 담경이 반문하길 기다리는 모원이다. 하지만 담경은 NPC의 말장난에 맞장구쳐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묵묵부답에 결국 총사가 포기하고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그게… 오늘 성내 분위기가 어떻든가요? 좀 어수선해 보이지 않던가요?”

“모르겠는걸. 길게 말고 짧게 들었으면 좋겠는데?”

NPC 따위가 자꾸 인간인 척 행세하는 게 담경은 맘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말투에 잔뜩 짜증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자기를 이렇게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총사. 결국 담경 말대로 본론만 이야기한다.

“일주일 전에(게임 속 시간으로) 성내에 적도들이 침입했습니다. 정체가 공동파 도사들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만, 당최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연유를 알고 싶어도 사로잡지 못하고 모두 죽여 버려서 말입니다.”

그제야 담경이 흥미가 돋나 보다.

“이런 경우가 처음 있는 일인가?”

“예. 중원에서 쫓겨 와 돈황에 자리 잡고는 처음 있는 일이죠.”

“피해가 어느 정도인데?”

“얼마 되지 않습니다. 놈들은 열이 죽고, 우린 외단 소속의 무인 이백 정도가 죽었을 뿐이죠. 인원은 바로 보충을 시켰습니다.”

‘이백을 잃고 열을 잡았는데 별거 아니라니…….’

아무리 사황성의 소공자라지만 담경은 자신들의 실력도, 구대문파의 정확한 실력도 알고 있지 못했다. 이번 총사의 말이 어느 정도 서로의 수준을 가늠할 계제가 되었다.

“그런데 할 말이라는 게 겨우 그거인가? 침입자가 들어와서 전부 잡아 죽였다는 게 날 불러들일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던가?”

“중요한 일이죠.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소공자! 도사 놈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족속들입니다. 특히 구대문파 놈들은 독종들이죠. 제가 보고를 조금만 일찍 받았어도, 놈들을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을 겁니다. 사로잡아서 돌려보냈겠죠. 연유야 어찌 됐든, 말코 도사 놈들은 이번 일을 이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복수 운운하면서 전쟁 불사를 외칠 수도 있는 노릇이죠.”

총사의 말을 듣고서야 상황이 파악됐다. 의도하지도 않은 전쟁에 발을 담그게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방도는 없어? 모두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조금은 침통한 어조로 담경이 물었다.

“사로잡은 자가 없다는 소리였지, 모두 잡아 죽인 건 아닙니다. 둘을 놓쳤습니다. 그 둘은 무공을 사용하지 않아서 사문도 파악 못했습니다만, 정황상 공동의 문인들이라고 봐야겠죠.”

정말로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인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담경이었다. 아직 사황성은 전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역시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란 건가…….’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래서 총사의 생각은 뭐지? 전쟁 준비를 하라는 것인가?”

“그런 결정을 제가 함부로 할 수는 없지요. 성주께서는 본성의 존폐에 대한 일이 아닌 한 폐관을 풀지 않으실 테고… 아무래도 대공자보다는 성주님의 신임이 두터우신 소공자께서 결정하셔야 될 문제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럼 공동파와 싸우게 되면 승산은 있는 건가?”

“지금으로선 우리가 무조건 이기겠지요. 하지만 씨를 마르게 하진 못할 겁니다. 공동이 무너지면 다른 무림맹 문파들이 총출동하게 될 테니까요.”

이래저래 외통수에 걸린 입장. 담경은 강호 생활 처음으로 사황성을 선택한 게 자신의 판단 착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이런 위험 부담은 시작부터 안고 있었던 문제야.’

“알았어. 내가 조치를 취해보지. 총사는 전쟁 준비를 서둘러줘. 하지만 전쟁이 벌어져도 가욕관을 넘는 일은 없을 거야. 총사도 그건 확실히 해두라고. 그리고 병력 운용을 마음대로 해선 안 돼.”

“지당한 말씀이죠. 그럼 소공자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모원이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소공자에 대한 믿음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담경은 사황성 소속 유저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래봤자 오십도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그들의 무력에 대한 믿음은 대단했다. 그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아무래도 이번엔 살을 내주는 게 낫겠지. 아직 시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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