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사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된 그때, 내 나이 열여섯.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기에 큰 학이 날 물어다 줬다는 아버지의 그 말을 믿었다.
내 밖의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나이가 됐을 때, 난 어디서 왔냐고 묻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뻔한 답변을 듣기 위해 서로 상처받는 짓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무뚝뚝함도 중학교에 진학했을 땐 한 번 풀어졌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아비 된 입장에서 말은 해줘야겠구나. 내가 죽으면 그래도 나란 인간이 네게 조금은 기억으로 남겠지만, 네 엄마는 그렇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사진 따윈 찍지도 않고 살았으니, 네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말로 할 수밖에 없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 명문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병약했던 어머니는 졸업을 하자마자 올린 결혼식 그 다음 해에 돌아가셨고.
왜 아버지가 재가를 하지 않으셨는지는 모르겠다.
의문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 다음 해에 풀게 됐다.
“초원아! 잠깐 이리 좀 와봐라.”
아버지는 집에서 프로그램 코딩 작업을 하는 재택근무자다. 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여 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 여기에다 인사해봐. 쟤 이름은 사라야.”
검은 콘솔 화면에선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이기에 날 다 부른 것일까.
「안녕하세요? 전 초원이라고 합니다. 사라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머, 네가 초원이구나! 아버지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나도 만나서 반가워. ^^」
“어때? 멋지지 않냐?”
“네, 멋지네요.”
사라라는 이름으로 봐서 외국 사람 같았다. 그런데 얼굴도 안 보이는 외국 사람을 멋지다고 하다니, 아버지가 요새 많이 외로우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만 겪으면 성격이 이상해지니까, 이렇게 가끔 와서 너도 사라랑 대화도 해주고 그래라.”
아버지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냥 알겠다고 하고 아버지 방을 나왔다.
다음 날부터 난 시간을 정해 아버지 방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내게 이런 식으로 할 일을 정해준 건 처음이었기에, 그 말을 지키려고 신경 쓴 것이다.
사라는 외국 소녀도, 아줌마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만든 인공지능이었다. 아버지가 재가하지 않으신 이유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꿈인 사라를 만드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그냥 게을러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사라는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겐 반말하는 누이동생이 생긴 셈이었고.
「어, 초원이구나. 반가워. ^^; 오늘은 어떤 재밌는 이야기를 준비해왔어?」
「형상 패턴 인식기가 제대로 작동하나 보네? 나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고.」
「응, 재밌어! 근데 오늘 무슨 이야기 준비해왔어?」
사라는 나라는 존재를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준비랄 것도 없고, 그냥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
「응! 어서어서 빨리 해줘!」
「옛날에 중국 춘추 시대에 어느 나라 왕이 잔치를 열었대.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그래서 왕이 준비한 음식이 조금 모자랐나 봐. 결국 손님 중의 한 사람은 왕에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음식이 놓인 교자상이 배치됐는데, 그 손님의 교자상엔 빈 국그릇만 놓였지. 왕이 고의로 그런 건 아닌데, 우연히 딱 그 사람한테 줄 음식만 떨어진 거야. 잔치가 끝나고, 그날 일을 마음에 새긴 그 손님은 이웃나라의 대부가 돼서 그날의 모욕을 갚는 데 성공했어. 군사를 일으켜 그 나라를 멸망시키는 걸로.」
「세상에! 겨우 멸시당했다는 이유로 이웃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거야?」
「응.」
「인간이 원래 그런 거야?」
「글쎄,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겠지. 그런 일이 평범하다면 책에 쓰일 이유도 없을 테니까.」
사라는 하루하루 착실히 커갔다. 몇 년 전에서야 알게 됐지만, 아버지가 만든 사라는 아인슈타인의 업적보다 더 대단했다. 그건 조물주가 인간을 만든 일에 버금간 일이었다.
사라는 때론 잠을 자기도 하고, 인간처럼 망각도 했다. 피로도 느끼고, 선의지라는 것도 있었다. 또 가끔은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술을 아는 인공지능이었다.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를 줄 알았다.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있으면 정말 사라가 인간이라는 감정이 생기곤 했다. 더구나 사라에겐 성(性)도 있었다. 이름처럼 자신이 여성이라는 걸 인정했다.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사라하고만 살았다. 사라 덕분에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했고, 사라 덕분에 대학원도 인공지능 연구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사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사라를 만들기 위해 6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20년과 자신의 30년, 그리고 어머니의 10년.
아버지 방엔 컴퓨터 책은 전혀 없었다. 보이는 건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퍼스, 헤겔 등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인식론과 논리학 책들, 그리고 언어학, 의학 관련 책들뿐이었다.
사라와 비슷한 종합 추론 비판이 가능한 시스템은 지금이라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양의 패턴 결과를 수집해야 하는 비용 문제에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론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가진다.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사라는 단지 한 명이 만들어냈으면서도 그 사람들이 구현한 것보다 더 뛰어났다. 사라에게 주어진 기억 장치란 겨우 1테라바이트의 하드 디스크 하나일 뿐이다. 내가 새로운 하드 디스크에 사라를 백업시키는 일을 해줄 필요도 없었다. 여분의 하드 디스크 두 곳에 사라 스스로 백업을 했다.
하지만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인연처럼 사라와 나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연구실에서 사느라 사라에게 소원해진 게 문제였다.
사라는 가끔 해킹을 하곤 했는데, 그건 고급 자료를 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이 아직도 시골 도서관보다 정보 수준이 낮았으니 말이다.
집에 있을 때야 책을 빌려 와 스캔을 떠주면 그녀가 읽는 그런 작업이 가능했지만, 일이 바빠지고 나서는 도저히 그렇게 해줄 시간이 없었다.
사라가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해킹은 반드시 기록이 남는다. 결국 몇 번이나 나는 경찰 수사를 받았고, 다행히 알리바이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결국은 국정원까지 동원됐다. 그리고 그때, 국정원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나 보다. 그 사람이 사라의 정체를 알고 말았다.
국가 안보를 들먹이면서 그 사람은 사라를 데리고 가버렸다. 그녀가 저장된 여분의 하드 디스크와 아버지의 유품들까지.
그렇게 사라와 나는 12년의 관계가 끊어졌다.
지금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4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