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용문객잔의 정체
험난했던 용문객잔 퀘스트가 끝났다는 표시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기뻐할 기력도 없었다. 강호 컨트롤러에 잔뜩 묻은 땀 닦을 여력도 없이 긴장이 풀리자 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 버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엎어져 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건 30분이나 지나서였다.
객잔은 이미 말끔히 치워진 상태였다. 금양옥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 많던 시체들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하나도 안 보였다.
점소이는 언제 다시 살아났는지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주루 곳곳에는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떠들고 있었다.
마치 나 혼자 다른 차원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체력, 내공은 거의 회복된 상태였다.
일단, 막 전투가 끝났을 땐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확인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호출했다.
명성과 레벨이 크게 상승한 게 눈에 띈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 메시지가 제일 좋았다.
‘역시…….’
퀘스트로 인해 레벨과 명성이 대폭 오르긴 했지만, 난이도를 생각하자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레벨 올리려고 이 정도 위험을 감수하느니 그냥 작업장 하나 잡아서 죽치고 사냥하는 게 나을 것이다.
퀘스트를 성공했다고는 하나 색다른 스킬을 얻지도 못했고, 보물급 아이템을 보상받지도 못했다. 전투 중 동창 간부들이나 최종 보스 앵도한테서도 아이템이 드롭되지 않았다. 연위갑은 퀘스트 보상이라기보단 운 좋게 얻은 것일 뿐이니 논외였다.
‘그러고 보니 동창 애들 잡을 때 명성치도 안 깎였잖아?’
아이템도 안 나오고 살인을 했는데도 명성치가 안 깎였다면, 동창과의 관계도 이번 퀘스트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이번 퀘스트에 나온 인물들은 한마디로 강호의 실제 플레이와는 상관없는 허구라는 소리. 사실, 말도 안 되게 강한 지존급 강자들이 나온 것 자체가 개발자의 장난이 뻔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눈으로 보이는 퀘스트 보상이 없다고 해도 난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양옥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방을 찾아갔다.
이미 퀘스트가 끝난 마당에 저번처럼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속곳 차림을 하고 있다면, 그거야 나한텐 좋은 일일 뿐.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히자, 금양옥이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별일 없을 땐 이런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듯싶었다.
“양옥아!”
친밀도를 믿고 반말을 한번 해봤다. 다행히 반말에 성깔 부리진 않았다.
“아! 연 오라버니 오셨어요?”
‘얼씨구? 오라버니 소리, 그거 나쁘지 않네.’
정말로 반기는 듯 크게 미소를 지으며 금양옥이 화답했다. 더 가관인 건, 지가 알아서 팔짱까지 낀다는 것.
불과 한 시간 전에 그녀의 찌질함에 짜증났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왠지 팔뚝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그러고 보니 얘 키가 이렇게 작았나?’
찰싹 붙어 있는 금양옥의 키는 겨우 내 어깨 어림밖에 안 됐다. 어쩐지 내 키가 조금 커버린 것도 같다. 아마도 명성치나 레벨 상승이 이런 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라버니, 그런데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오신 거예요?”
금양옥이 그 큰 눈으로 날 바라보면서 물어왔다.
‘그렇지, 먼 곳이 맞지. 걸어오는 데 십 초나 걸렸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지!”
“그게 뭔데요?”
정말 궁금하다는 듯 금양옥이 말똥말똥 날 바라봤다.
“흑점에 좀 가자.”
“쳇! 난 또 나 보러 오신 줄 알았더니, 흑점 때문에 오신 거였어요? 알았어요! 따라오세요.”
용문객잔 퀘스트를 시작할 때 받은 광우의 전서구에, 이곳은 사람 고기를 파는 객잔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이곳이 흑점 본점이 아닐까 의심했다.
거기에 별로 올 일도 없는 이곳에 상시 출입이 가능해졌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의혹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흑점(黑店).
보통은 흔히 보기 힘든 물건을 취급하는 장물아비 집단, 혹은 어둠의 상인 집단을 말한다. 하지만 원래 뜻은 조금 다르다. 지나가는 손님을 미혼약 따위로 잠재워서 재물은 강탈, 그리고 시체는 만두 속 고기로 바꿔 팔아먹는 곳을 말한다. 수호지에서 모야차 손이랑이 십자파에 차린 주점이 그랬고, 양산박의 한지홀율 주귀의 주점 또한 흑점이었다.
한마디로, 사람 고기 파는 곳이 흑점인 곳이다. 그리고 영화 속 용문객잔 역시도 흑점이었다.
강호에 흑점 본점이 있다면 이 용문객잔보다 더 어울릴 만한 곳이 있을까? 더구나 예전 흑점 낙양분점에서 당빈이 뭐라고 했는가?
‘저도 거기가 어딘지는 모릅니다.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용문객잔에서 내가 겪은 일이라면 ‘아주 특별한 인연’ 정도는 되고도 남을 것이다.
분명 그냥 퀘스트를 성공한 정도로는 흑점 본점에 출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밖에 안 된다면 조금의 시간만 지나도 흑점 본점에 출입할 사람들은 많다. 그런 정도로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관건은 금양옥과의 우호도를 높인 상태에서 앵도라는 환관을 해치울 때까지 금양옥이 살아 있어야만 가능한, 그런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운이 좋았다. 현운자가 연위갑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퀘스트 클리어란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 오라버니, 여기로 들어가시면 돼요.”
금양옥이 날 데려간 곳은 주방이었다. 어째 낙양분점서도 그렇더니만, 흑점 가는 길은 전부 주방하고 관련이 있다.
그런데 갈수록 가관이었다.
금양옥이 가리킨 곳은, 주방에서 제일 큰 솥단지 안이었다. 게다가 그 안에선 부글부글 물이 끓고 있었다.
‘이것들이 정녕 날 삶아먹으려고 작정했구나!’
달리 흑점이겠냐고 씨부렁거리면서 솥단지 안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뜨겁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곧 솥뚜껑이 덮였고, 난 완벽한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곧 다른 장소로 이동되는 줄 알았는데, 어떤 징조도 없었다. 별수 없이 난 그렇게 어둠 속에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긴 숨 한 번 쉴 동안 솥단지 안에 있었나 보다.
‘완전히 삶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
하지만 뜨거움도 못 느끼는 게임에서 그럴 리야 없을 테고.
그때였다.
“들어왔으면 이쪽으로 오시지 않고 뭐 하시는 겁니까?”
내 뒤쪽에서 어떤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푸른 비단옷을 걸친 사내가 보였다. 아이디는 없었다.
사실은 솥뚜껑이 닫힌 순간 난 이미 흑점에 들어온 상태였다. 마침 그때 위치가 흑점의 구석인, 가장 어두운 곳이어서 한심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른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웃음이 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어서 오라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본 사내가 등을 돌리고 앞장섰다.
사위가 매우 어두워서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물인지 알 수 없었다. 사내를 따라 몇 걸음 가자 곧 어둠은 희미해지고 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빛은 야명주가 빚어내고 있었다.
‘역시 부자들 사는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복도 천장엔 가히 야명주의 바다라고 할 만큼 무수히 많은 광점들이 박혀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건 벽면의 재질. 금강석이 그 야명주가 뿜어내는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돈 냄새 물씬 풍기는 빛이 복도를 은은하게 비췄다.
그 럭셔리한 분위기에 잔뜩 취해서 사내의 뒤를 쫓길 1분이나 됐을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통째로 옥으로 만들어진 문이 우릴 가로막고 있었다.
사내는 아무 언질도 없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복도엔 그 방을 제외하곤 다른 방이라곤 없었다. 나도 문을 열고 뒤따라 들어갔다.
방 안의 모습을 본 나는 의아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심 흑점 본점이라면 고급스런 가구에 천하의 기진이보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나 혼자만의 착각이 돼버렸다.
넓디넓은 방 안에 있는 거라고는 낡은 탁자 하나와 그에 걸맞은 낡은 의자 2개뿐, 서화 한 점, 병장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지나오면서 본 복도의 화려함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뭐, 보이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
권하지도 않았지만 난 의자에 털썩 앉았다. 2개인 걸로 봐서 그러라고 있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자 사내가 빙긋 웃고는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한동안 사내는 아무 말도 없이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눈싸움이라면 지고 싶지 않다. 나도 사내를 향해 맞대응했다.
결국 내가 이겼고, 사내가 입을 열었다.
“캐릭터명 조연. 본명 김현성. 나이 스물아홉. 플레이 시간 십 개월 이십일 일. 현재 사 등급 문파인 감숙성 난주 소요파 문주. 주력 무공, 진결육합권. 특수 기술, 신안. 특이 사항, 현상 수배 무영신투 퀘스트 완료. 특수 퀘스트 용문객잔 완료. 사라와 접촉한 팔 인 중 일인. 지금까지 현금화한 게임머니 삼억 냥, 현금화 추정액으론 일억 원. 흠… 다행히 현금 거래는 상용화 초기 그때뿐이군요.”
“…….”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맞지요?”
“…….”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네가 강호구나.”
“네, 맞습니다. 제가 강호죠. 어떻게 금방 알아맞히시네요.”
놈이 웃는다고 입을 움직였지만, 기분 나쁜 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너 같은 바보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방금 네가 말한 건 범법 행위거든.”
“뭐,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조연 님도 범법자인 건 맞잖아요?”
“내가? 무슨 근거로? 내가 길바닥에 담배꽁초 버린 거라도 봤나? 노상 방뇨하는 거라도 봤어?”
“게임머니 현금화가 합법이 되긴 했지만, 조연 님이 상용화 초기에 거래한 강호 게임머니는 부당 이득이라는 걸 아실라나 모르겠네요. 유통 시장 혼란을 초래하고 거기서 큰 이득을 본 거니까요. 거기다 현금화 과정 후에 소득세 신고도 안 했으니 탈세까지 하신 셈이죠.”
“훗, 글쎄? 아직 온라인 게임 속에서 시장을 교란시켰다고 법적 제재 받은 사람은 없는 걸로 아는데? 관련법도 없고 말이야. 네 말대로 범법자가 되려면 족히 수십 년은 지나야 가능한 일일 뿐이야.”
“그 말씀, 똑같이 되돌려 드리죠. 제가 조연 님의 개인 정보를 훑어본 건 범법이 맞죠. 계좌 추적도 범법이 맞겠죠. 그런데 어쩌죠? 전 사람이 아니거든요. 법 집행 대상이 아니란 말이죠.”
후후. 웃음이 새나온다. 역시… 녀석이 날 반갑게 맞아줄 때부터 이상하더니, 이제야 감이 잡혔다. 인간하고 농담 따먹기하고 싶은 컴퓨터라니. 크큭.
녀석은 심심했던 것이다. 놈이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어떻게 반응하나 짐짓 화난 척해봤더니, 주체 못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래도 보이는 반응이 강호에서 본 여타 NPC들보단 확실히 나았다. 호기심도 엿보이고, 성깔도 있어 보이니 말이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아! 반말한다고 기분 나쁘진 않지? 아무리 그래도 네 나이가 스물아홉보다 많을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 정도야 이해하죠. 하여간 만나서 반가워요. 이 방을 만들고 나서 처음으로 대하는 사람이네요.”
우리 둘 다 겨우 그 정도 말하고 다시 입을 닫고 말았다. 나로선 대체 어떻게 해야 이놈을 잘 요리할까 고민하고 있었고, 놈도 아마 날 상대로 뭔가 계획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잠시 머리를 굴려 본 내가 먼저 말문을 텄다.
“아, 강호 씨, 그런데 흑점 본점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된 게 아이템이 하나도 없지? 분점에서 듣기론 본점엔 기진이보가 널려 있다고 하던데, 듣던 거하곤 전혀 딴판이잖아?”
“아니, 누가 그래요? 제가 다루는 애들 중엔 그런 말할 녀석이 없을 텐데……. NPC가 아니라 GM이 그랬겠죠? 음… 어쨌든 누가 말을 했든지 간에 그렇게 듣고 왔다니까 보여 줘야 할 것도 같긴 한데…….”
“왜, 못 보여 줄 이유라도 있나? 여기 들어오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빡센 퀘스트를 완료했는데 보상 아이템 하나 없다는 것도 웃기지 않아?”
감정을 모르는 컴퓨터. 난 놈의 논리 구조에 계속 태클을 걸었다. 그런데 내 말에 넘어갈 것 같던 강호 녀석은 배신을 때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그동안 조연 님 행적을 더듬어보니까 너무 위험한 분이라고 판단이 돼서 말입니다. 원래 예상보다 삼 개월 일찍 흑점 분점을 발견하셨고, 진결 무공, 문파대전, 표국 건설, 거기에 이번 퀘스트 통과까지. 전부 개발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절대 보여 드릴 수 없겠어요.”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여만 달라는 것도 안 된다?”
“네, 안 됩니다. 조연 님은 별로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죠.”
‘빌어먹을 자식. 일개 컴퓨터 주제에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나저나 미치겠다. 전에 공지 글에 강호 인공지능이 알아서 게임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더구나 당빈이 전에 분명 흑점 본점은 강호 인공지능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지 않은가.
강호 이놈은 날 위험인물이라고 판단, 게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당연히 해줘야 할 보상을 안 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졸라도 아이템 뜯어내긴 힘들 것 같아서 다른 쪽으로 방향을 맞춰보기로 했다. 사실은 보여 달라고만 하고 다음에 돈 들고 와서 팔라고 떼써볼 생각이었는데…….
“강호 씨, 그럼 이렇게 합시다. 물건 보여 달란 소리는 안 할 테니, 정보라도 좀 삽시다.”
“……?”
놈이 무슨 계략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상당히 기분 나쁜 표정.
“흠… 좋습니다. 대신 정보비는 좀 다르게 하지요.”
“어떤?”
“질문 한 개에 질문 한 개.”
“그게 무슨 말이지?”
“조연 님이 한 번 질문하면, 제가 한 번 질문하겠다는 뜻이죠.”
‘무슨 소리야? 네까짓 게 궁금한 게 뭐가 있다고!’
별 고민 없이 바로 그러자며 승낙했다. 얘한테 숨길 비밀이란 것도 없으니 말이다.
첫 질문은 내가 먼저 하기로 했다.
“지금 감숙에서 내 레벨에 가장 좋은 사냥터가 어디지?”
“그건 답변 못 드리겠네요. 다른 질문을 해주세요.”
“아까 동방불패가 이기어검술을 쓰더군. 정확히는 어침술이겠지만. 어검술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역시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조연 님, 그런 강호 시스템의 밸런스를 해치는 질문은 삼가주세요. 그런 식이라면 아무런 답도 얻으실 수 없을 겁니다.”
‘사실, 네가 대답해줄 거라고 기대도 안 한 질문이었다, 이놈아. 여기까진 떡밥일 뿐이야.’
“끙.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라… 이번에도 대답 안 해주면 그냥 없던 일로 해버리는 게 낫겠구만. 그럼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지금 내 상태로 능파미보가 나을까, 아니면 금강부동보가 나을까? 이 정도 질문은 괜찮겠지?”
강호는 내 질문의 저의가 대체 무언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비급을 어디서 구하는지도 묻지 않고, 겨우 어느 게 낫냐는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답이 나올까? 네놈이 내 생각을 읽으면 널 제갈량의 현신이라고 생각해주마. 크크큭.’
능파미보는 천룡팔부에 나오는 천산 소요파의 보법 무공이다. 능파선자의 몸놀림을 따온 무공이라고 하는데 가히 천하제일의 보법이라고 할 만한 무공으로, 감히 견줄 수 있는 보법이 없다고 할 정도의 초절정무공이다.
금강부동보는 보통 소림파 최고의 보법 무공으로 표현된다. 부동명왕하곤 전혀 연관이 없는 무공으로, 무공명의 부동(不動)이란 말이 무공의 특성을 보여 준다.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히는 보법이다. 축지성촌에 이형환위의 묘를 합친 최고의 보법 무공이랄까?
요즘 무공을 펼치면서 가장 부족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보법이었다. 내공이야 반야신공이 있고, 공격 무공은 심결육합권을 배우면 된다. 경공은 한참 나중에나 배울 수 있다지만 초절정인 천리종무영이 있고 말이다. 지금의 유운신법도 움직이는 데 그렇게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무인에게 보법은 공격기만큼이나 중요하다. 오히려 내공심법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보법 구하기는 너무 힘들다. 지금 광견에게 있는 절정급 보법 팔괘보는 아직도 녀석의 지능이 달려 배우지 못한 상태다. 그런 상황이니 언제 녀석이 12성 대성해서 문파에 뿌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 그리고 놈이 12성 대성할 때쯤엔 아마 절정급 보법도 지금처럼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할 게 뻔하다. 적어도 최절정급은 돼야 할 것이다.
이왕 새로운 보법을 배우기로 했다면, 최고의 무공을 배우는 게 나을 터. 그렇다고 비급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어봤자 강호 녀석은 절대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최소한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강호에 두 절세무공들이 풀렸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 풀리더라도 한참 후가 될 것이다.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공들이지만, 내 직감으론 반드시 존재할 것 같았다. 너무도 유명한 무공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강호 개발자의 안목을 믿고 뻥을 치고 있는 중이다.
“어렵군요. 왜 그런 질문을 하신 건지 잘 모르겠지만, 특별히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 같아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 상태의 조연 님에겐 금강부동보가 더 낫습니다.”
후후. 녀석은 꼬투리 잡히지 않겠다는 심사로 최소한의 대답만 했을 뿐이지만, 난 벌써 그 짧은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파악했다.
비교가 가능하다는 말은 짐작처럼 강호에 능파미보와 금강부동보가 실재(實在)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낫다는 말은 내가 다음 단계에 들어서면 능파미보가 더 낫다는 뜻이고, 그 말은 곧 지금 단계를 넘어선 단계, 즉 최절정 혹은 초절정이라는 단계가 있다는 말이 되는 셈이었다.
잠깐 생각을 해보니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지금 내 체질은 불가 체질. 일반적으로 금강부동보보다 더 세다고 알려진 능파미보가 지금의 내 상태에 더 적합해야 하는 게 아닐까? 금강부동보는 불가 무공이고, 능파미보는 도가 무공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체질이 더욱 특화될 다음 단계에서 오히려 능파미보가 적합하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제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조연 님의 능력치를 보니 신안이라는 특수 스킬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지금 강호에서 안법을 배울 수 있는 퀘스트가 있긴 하지만, 시작부터 신안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무안에서 심안, 그리고 최종 단계인 신안까지 가려면 적어도 삼 년은 흘러야 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조연 님은 무안을 배운 흔적이 아예 없더군요. 제 생각으론… 역시 신안은 그때 사라에게서 배운 게 맞겠죠?”
강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신안이라면 진진이 준 기술인데, 왜 그녀를 사라라고 부르지? 그리고 강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이 녀석이 왜 그때 기록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고 사라가 진진이냐고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말릴 가능성이 있었기에.
“사라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걸?”
“잘 생각해보세요. 구 개월 전에 감숙성 무위 평안객잔에서 그녀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녀를 따라가 퀘스트를 수행하고 열흘 후에 다시 무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왠지 녀석의 무미건조한 말에 다급함이 엿보인다.
그런데 왜 이 녀석은 진진에게 집착하는 걸까? 그리고 그녀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기에 강호 전체를 관장하는 이 녀석마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녀가 구축한 퀘스트 공간의 일들은 기록에 남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니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맞아, 사라한테 얻었지.”
“그런데 왜? 왜 조연 님만 신안을 얻은 거죠? 다른 칠룡들은 무안, 심안밖에 얻지 못했는데, 왜 그녀가 당신에게만 신안을 줬나요?”
“질문 한 개는 끝났는걸?”
“…그럼 조연 님이 다시 질문 하나 해주세요.”
“아니, 됐어. 난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 뭐 물어보려고 해도 밸런스가 어쩌고 그러면서 제대로 대답도 안 해주고 해서, 그냥 안 물어볼 거야.”
“…….”
강호 녀석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에게 호기심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 녀석도 대단하고, 그때 만난 진진도 다시 생각해볼수록 대단하다. 인공지능이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역시 같은 인공지능이라도 사내놈보다는 여자를 상대하는 게 더 재밌는 것 같군. 하하.
“조연 님, 그럼 제가 조금 양보할게요. 아까 적당한 사냥터 알고 싶다고 하셨죠? 그거 알려 드릴 테니 제 질문에 답해주세요.”
“아니, 됐어. 방금 전까진 궁금했는데 지금은 별로 그렇지도 않네? 했던 질문 또 하는 것도 재미없고 말이야.”
“그럼 어떤?”
이 녀석, 왜 이렇게 안달이 난 거지?
“혹시 말이야, 초절정무공들은 전부 퀘스트로만 얻을 수 있나?”
“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거의 퀘스트라고 할 수 있죠. 그럼 이제 제 질문에 답해주세요.”
“질문이 왜 나만 신안을 얻었냐는 거였지? 이유야 간단해. 퀘스트가 성적순이었거든. 내가 일등 먹었고, 딴 놈들은 나보다 성적이 좋지 못했지. 그냥 그렇게 된 거야.”
강호 녀석은 아마 나와 진진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거나,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진진의 일을 궁금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답한 건 사실이었고, 강호의 의문을 풀어주기엔 부족한 답변이었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군요.”
왠지 안심했다는 듯한 말투.
“그렇지. 아무 일도 없었지. 그런데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지 나도 알 수 있을까?”
“아뇨. 조연 님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 네 말대로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그런데 왠지 신경이 쓰이는걸?’
혹시 이 녀석, 몰래 진진을 짝사랑하는 건 아닐까?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 가질 만한 일이 그거 말고 또 있을까?
‘흐음, 인공지능의 사랑이라… 영화 한 편 나오겠군.’
강호는 더 이상 내게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 자세.
나도 용건은 끝났다. 능파미보의 위치를 녀석이 알려 줄 일은 없을 것이고, 어차피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 형식이라니… 아무래도 준비를 단단히 하고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용건은 용건이고, 퀘스트 보상은 보상이다. 강호의 태도를 봐서는 다시 여기 와봤자 얻어갈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이었다. 정보 거래도 응해주지 않을 게 뻔하고.
“강호 씨,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자꾸 밸런스 파괴한다고 날 핍박하는데, 이것 역시 밸런스 파괴라고. 분명 용문객잔 퀘스트를 통과하면 흑점에 출입해서 아이템을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내 전력이 좀 의심스럽다고 해서 그 기회를 깡그리 없애버리는 건 너무 불공평한 처사야. 하지만! 내가 십분 양보하지.”
“……?”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보는 강호.
“아이템 하나만 줘. 강호에 이미 풀린 아이템일뿐더러, 밸런스 파괴도 안 하는 아이템으로. 물론 공짜로 줘야 할 거야. 난 다시는 여기 안 올 테니까 말이야. 미래의 기회마저도 몽땅 저당 잡힌 거래니까 그 정도는 해줘야겠어.”
“뭘 원하시는 건데요?”
좀 세게 부르기로 했다.
“연위갑!”
“안 돼요.”
“왜?
“그건 강호에 한 개밖에 없도록 설정된 거라서 안 돼요.”
끙. 그럼 어쩔 수 없지. 원래 계획대로 말하는 수밖에.
“그럼 천잠보의라도 줘.”
“흠, 그 정도라면 적당하겠네요. 행낭에 넣어드렸어요.”
결정과 동시에 단숨에 해결해준다. 역시 메인 시스템의 위력은 대단하다.
[천잠보의(天蠶寶衣)
천산의 설잠실로 짠 방어구. 가볍고 질기다. 무림 최고의 방어구.
계열:갑옷
방어력:5,000]
행낭에서 꺼내본 천잠보의의 방어력은 연위갑과 같았다. 다만, 연위갑처럼 별다른 부가 옵션은 없었다.
‘그래도 말 몇 마디로 얻은 아이템치곤 괜찮은 편이지. 크크큭.’
말 몇 마디로 절세기보를 얻어서 기분이 좋긴 했지만, 원칙적으론 손해를 본 거였다. 저 망할 놈이 말이 통하는 인간이었다면 난 절대 이 정도로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흑점은 계속 강호 메인 컴퓨터가 담당할 게 뻔했으니 그냥 돌아서는 것일 뿐.
“그럼 용건은 끝나신 거죠?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난 이곳에 오기 전에 왔던 그 자리로 되돌려졌다. 용문객잔 주방의 솥단지 안으로.
* * *
IGM Observer No.4 팀.
강호의 개발사이자 퍼블리싱을 하고 있는 IGM엔 다른 게임사와 달리 옵저버라는 부서가 있다. 옵저버들은 GM과 달리 게임 속 운영에 대해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강호 시스템의 재화의 흐름을 추적하거나 메인 컴퓨터의 인공지능 오작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서비스 개시 거의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의 강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는 옵저버 팀원들의 노력과 강호 인공지능이 함께 이룬 결과였다.
IGM 4개의 옵저버 팀들 중 Observer No.4 팀은 다른 팀들과 달리 강호 인공지능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팀장님, 일 났는데요!”
PC 앞에서 열심히 지뢰찾기를 하고 있던 강 팀장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이 대리를 올려다봤다.
“셸터에 유저가 들어갔는데요.”
“무슨 소리야? 셸터에 어떻게 유저가 들어가?”
“그건 로그 기록 살펴봐야겠지만, 방금 전에 유저가 들어갔다가 빠져나왔습니다.”
그제야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강 팀장이 이 대리를 밀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화 기록 다 뽑아와! 들어간 유저 정보도 몽땅!”
이 대리가 강호 로그 기록과 유저들 개인 정보가 저장된 서버실에 올라간 사이, 강 팀장은 이 대리가 앉아 있던 컴퓨터에 엉덩이를 붙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 대리가 켜 놓은 모니터엔 을씨년스러운 빈방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강 팀장은 강호 메인 컴퓨터의 시점을 훔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움직임도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그새 몸뚱이 버리고 숨어버렸군.”
강 팀장이 복도에서 담배 한 대를 다 피웠을 쯤에야 이 대리가 자료를 가지고 뛰어왔다.
“헉헉! 팀장님, 받으세요.”
“음, 읽어보진 않았겠지?”
“네, 그럼요.”
이 대리는 강호 인공지능의 이상 행동을 관찰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관심은 갖지 못하도록 교육받고 있었다.
한참 자료를 읽어 내려가던 강 팀장은 이 대리를 부서로 돌아가게 한 뒤 급히 뛰기 시작했다.
‘미치겠구만. 이놈의 컴퓨터가 갑자기 돌았나!’
강 팀장은 자료를 들고 직속상관인 정지훈을 찾았다. 정지훈은 강호의 메인 게임 디렉터이자 IGM의 사장이었다.
“그래서… 강 팀장 생각에는 이게 이상 징조라는 건가요?”
급히 달려온 강 팀장은 너무도 평안한 정 사장의 말에 자기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용문객잔 퀘스트 보상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래요. 원래는 인공지능 판단으로 각 캐릭터에 걸맞은 기보급 아이템을 주기로 설정되어 있었죠. 그런데요?”
그런데도 정 사장은 대체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강 팀장은 사장이 자기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솔직히 제 판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 처음에 강호는 조연을 셸터에 초대할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흑점 본점은 순전히 알고리즘만 있을 뿐 장소도, 활동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니까요. 다시 말해, 용문객잔 퀘스트 클리어가 흑점으로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강호는 유저의 판단에 응답했습니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른 상태였다면 분명 유저의 판단대로 용문객잔이 흑점 본점이라는 설정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강호는 준비가 안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대화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강호가 조연이라는 유저를 초대한 이유는 단순히 그 유저에 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순전히 사라에 대한 호기심,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라에 대한 강호의 호기심,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고 위험한 일입니다.”
“강 팀장은 사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잘은 모릅니다. 다만…….”
강 팀장은 짐작하고 있는 부분까지 다 말해버릴까 하다 망설였다.
“다만?”
“다만, 강호가 통제하지 못하는 인공지능 코드라고만…….”
“훗! 감출 것 없어요. 아마 어수룩한 이 대리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게 뻔하니까요.”
강 팀장은 사장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대리는 옵저버 팀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 된 초짜였다. 강호와 사라를 살펴본 지 벌써 1년이 넘은 자기하고는 급수가 전혀 달랐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강 팀장. 애들은 사고도 치고 잘못도 하면서 자라는 거니까요. 아직 강호는 완성품이 아니라고요.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죠. 그래서 옵저버 팀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강호의 밸런스는 아주 훌륭하잖습니까. 그럼 이만 내려가 보세요. 다음에 또 같은 일이 생기면 보고하러 와주시고요.”
등 떠밀리다시피 사장실에서 나온 강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개 컴퓨터가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인간을 이용하는 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