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장. 소요표국 (23/62)

제23장. 소요표국

감숙성, 난주 소요파.

“오랜만이에요, 문주님!”

“수고하셨습니다.”

문파로 돌아오자, 사냥 가려고 준비 중이던 문도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다들 얼굴이 밝은 걸 보니, 그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낸 듯 보였다.

“아, 덕분에요. 수고랄 것도 없었죠. 그런데 무공은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건가요?”

낙양으로 가기 전에 경공하고 내공심법들을 등재하고 갔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무공을 새로 등록해놓고 가서 저렇게 다들 얼굴이 밝은 건가?

“네. 문도들 전부 다 배웠죠.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고급 무공을 배우게 됐네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이 말씀하신 그분인가 봐요?”

“네, 안녕하세요. 한동안 얹혀 지내게 됐습니다. 무당 현운자라고 합니다.”

현운자가 정중히 인사를 건네자, 질문을 던진 문도 역시 답례를 했다. 현운자를 빈객으로 모신다는 말은 내가 도착한다는 전서구 속에 같이 적어뒀었다.

연무장 주위에 있던 문도들과 대충 인사를 나누고 취의청 안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광우와 광견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근데 어쩐 일이냐, 날 기다리고?”

“줘요, 빨랑.”

광견이가 손을 내민다.

“뭘?”

“아, 거참. 우리 목숨 값!”

하하.

“그게 왜 너희 목숨 값이냐? 내 목숨 값이기도 하지. 근데 얼마 줄래?”

“엑?”

광견이 설마 내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얼마 줄 거냐고? 문주가 산타클로스는 아니잖냐. 내가 무슨 땅 파서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왔다 갔다 시간 썼지, 준비하느라 애썼지,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렇게 아이템도 들고 왔지. 니들 둘 합친 것보다 더 고생한 건 맞잖아? 얼마 줄 거야, 내 수고비?”

“끙…….”

하하.

“옜다, 이놈들아.”

하나씩 놈들에게 던져 줬다.

“칫. 결국 줄 거면서. 오장 뒤집어지는 소리는 빼먹질 않는구만.”

“시끄럽다. 그나저나 각룡이 형이랑 다른 간부들은 어디 갔냐?”

“몰라유. 우린 낙양서 죽은 후론 계속 문파에만 있었으니까. 정 궁금하면 전서구 날려 보든가!”

아, 저 망할 놈들.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확 뺏어버릴까 보다! 어라? 근데 저놈들 어딜 가는 거야?

“야! 니들 어디 가냐? 환생단 안 먹어?”

“먹으려면 준비를 해야잖수! 죽으러 갑니다!”

대체 뭔 소리야?

“이놈들아, 알아듣게 좀 말해봐!”

그러자 광우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내 앞에 와서는 설명을 해줬다.

“이거 체질만 무효화시키는 거 맞죠?”

“뭐… 그렇겠지? 내가 먹어봤어야 알지.”

“그럴 줄 알았어요. 하여간에 곰곰이 따져 보니까 그냥 먹어도 상관이야 없겠지만, 제대로 효과 보려면 그동안 배운 무공 다 없애는 게 나을 것 같더라구요. 그냥 그런 줄 아십쇼. 우린 바빠서 이만~”

광우 녀석은 달랑 그 말만 던지고는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녀석 말이 대체 뭐야? 무공을 다 없애버린다고? 애써 배운 무공을? 그 많은 무공들을?

잠시 생각해보니 녀석들이 왜 그런 짓을 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갔다.

‘아! 하하, 짜식들. 머리 좀 굴렸네?’

내가 복용할 게 아니라 별로 생각을 안 했는데, 잠깐 생각해보니 이광이 제대로 하는 거였다.

환생단에는 체질을 처음 상태로만 되돌려 준다고 나와 있다. 분명 악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많은 악명마저 0으로 돌린다면 그야말로 환생단은 사기 아이템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쟤들 망가진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거기다가 쟤들은 혈마지체인 상태에 정파 무공과 낭인 무공, 그리고 저급 마공을 마구잡이로 배워서 체질이 꼬인 상태다. 환생단을 복용해서 혈마지체가 사라진다 해도, 저렇게 무공이 난잡한 상태라면 복용하나 안 하나 결국 똑같은 상황이 돼버릴 것이다. 다른 속성의 무공들이 서로의 숙련도 상승을 방해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저렇게 피눈물 나는 바보짓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대성은커녕 대부분의 무공이 6성 정도에서 정체된 상태라는 게 다행일 따름이다. 덜 죽어도 될 테니까.

그럼 이제 문파 최고 레벨은 쟤들이 아니라 각룡이 형이 되는 건가? 쟤들 무공 싹 제거하려면 족히 3, 40레벨은 떨어질 텐데.

‘그래도 나랑 비슷하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

현운자가 어깨를 툭 치며 묻는다.

“하하. 아까 지나간 바보들 생각 좀 했어요. 그나저나 간부들한테 좀 소개하려고 했더니 다들 바쁜가 봅니다. 온다고 연락했는데도 완전히 찬밥 신세네요. 일단 문파 구경 좀 하고, 우리도 나가서 놀죠. 좋은 사냥터 구경시켜 드릴게요.”

현운자를 끌고 우리 총관과 문파 시설들을 잠시 구경시켜 줬다. 무당파의 크고 화려한 건물들에 비하면 볼품없는 시골 문파에 불과하겠지만, 현운자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현실이라면 여독이나 풀면서 쉬라고 말해야겠지만, 이쪽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이 바닥에서 시간은 금보다 더 귀하다.

사냥하러 가자는 말에 오히려 현운자가 더 좋아라 했다.

사냥터는 이미 생각해뒀다. 결과물이 짭짤한 데다 지금 우리 둘에게 딱 맞춤인 곳. 바로 고목문이었다.

건달바왕 잡으려고 환생단 작업할 때 현운자가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몬스터를 느리게 하는 그 완형(緩形)이라는 부적술이라면 굳이 피독단도 필요 없고, 훨씬 안전하게 작업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둘이서 작업이 가능하려나 모르겠네.’

* * *

고목문은 며칠 전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10명가량의 유저들이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서너 명은 우리 소요파 표식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 문파 표식은 소매와 가슴에 청학이 수놓인 모습이다.

“어? 조연 님! 소요파 사람들이네요? 같이 파티할까요?”

어허, 이 사람 보게. 그건 절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란 말이다.

“쉿~ 조용히 하세요. 한 명이라면 모를까, 세 명이나 받으면 골치 아프다고요. 재미로 잡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필요해서 잡는 거랍니다. 우리끼리만 해요.”

“고목 존자라는 놈이 세다면서요? 둘만으로 되겠어요?”

“일단 한번 해보고요, 정 안 되면 도망갔다가 그때 가서 파티해도 되죠.”

내가 얍삽한가? 별로 그런 생각은 안 든다. 둘만으로도 충분한 일을 문도들 주머니 채워주려고 억지로 파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명, 두 명 그렇게 챙겨 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다들 알아서 잘 먹고 잘살겠지. 누누이 말하지만, 난 우렁 각시도 산타클로스도 아니다.

작전은 간단했다. 현운자가 독강시를 끌고 도망 다니고, 그사이에 난 금강강시와 활강시, 그리고 고목 존자를 잡기로 했다.

셋 모두 절정급 몹이라서 얼핏 무리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동급의 몹들을 우습게 여길 만한 이유가 있었다. 권사 최강 병기 보리금강저라면 충분히 날 무모하게 만들고도 남았기에.

“현운자 님, 시작하죠.”

무림맹 무사를 소환하고 현운자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현운자에겐 독강시의 무서움을 충분히 설명했다. 독강시의 절정독을 해독할 아이템이 지금 우리에겐 없기 때문에 실수해서 중독된다면 얄짤없이 염라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현운자도 그걸 알기에 얼굴에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뒤 잘 부탁드려요.”

현운자도 잘해야 하지만, 나도 잘해야 한다.

탁-

현운자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자마자 활강시를 무림맹 무사의 공격 타깃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나도 재빨리 현운자의 뒤를 따라 튀어나갔다.

“완형!”

현운자가 독강시 앞에 이르자 부적을 날리면서 외쳤다.

그때, 3마리 강시와 고목 존자가 눈앞의 현운자를 인식하고는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몸놀림이 제일 빠른 활강시가 막 현운자에게 달라붙으려는 찰나, 때마침 무림맹 무사의 공격이 적중됐다.

퍽!

타격음이 들릴 때쯤에 현운자는 독강시에게 태극권을 먹이고 뒤돌아서 도망가기 시작했고, 나는 고목 존자와 금강강시에게 일권을 날릴 수 있었다.

퍽! 퍽!

다행이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서 둘 모두 날 인식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현운자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무림맹 무사는 이리저리 날뛰는 활강시를 상대로 방어만 하는 중이었다.

이제 제대로 내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다. 방어 기술들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시전, 사상검진! 시전, 일성소! 시전, 철포삼! 시전, 신안!”

[방어력이 1분간 20퍼센트 증가합니다. 재사용하려면 40분 남았습니다.]

[고양 상태가 되었습니다. 1분간 회피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재사용하려면 2시간 남았습니다.]

[외문기공이 발동되었습니다. 방어력이 17퍼센트 향상됩니다. 재사용하려면 30분 남았습니다.]

[신안이 발동됐습니다. 회피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공격 명중률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몸도 풀었겠다, 두 절정급 몹들을 상대로 보리금강저의 위력을 맘껏 뿜어내기 시작했다.

고목 존자 패거리들 잡는 거야 이젠 지겹도록 익숙해진 상태지만, 내가 직접 고목 존자를 쓰러뜨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난 매번 독강시를 달고 뛰기만 하는 역할이었다.

잡아본 적은 없다지만, 이미 놈의 공격 패턴이나 수준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일반 강시보다 조종하는 녀석들의 경지가 더 낮은 것처럼, 고목 존자도 활강시나 독강시에 비하면 강한 놈은 아니었다.

기이익- 서걱-

기를 가득 머금은 금강저가 고목 존자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웃겼다. 고목 존자나 금강강시나 자신들의 방어력을 너무 자신하고 있었다. 놈들은 방어 따윈 전혀 신경 안 쓰고 무작정 공격에만 집중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들 방어력을 믿고 무작정 공격만 하는 이 방식이 꽤 위협적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글쎄?

픽! 푸슉!

옆구리를 뚫리는 중상 따윈 아랑곳 않고 공격하던 고목 존자에게 다시 금강저가 연달아 큰 구멍 2개를 만들었다.

쾅!

이크, 큰일 날 뻔했다. 고목 존자를 꿰뚫는 재미에 잠깐 금강강시를 놓쳤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강시 놈의 주먹을 금강저로 막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보리금강저의 위력이 장난이 아니다. 듣기로는 고목 존자가 비록 금강강시보다 방어력이 떨어지고 활강시보다 민첩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이렇게 약한 놈은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공격이 적중돼도 급소에 맞지 않는 한 데미지 주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이건 뭐 아무렇게나 금강저를 휘둘러도 서걱서걱 잘도 베이고 뚫린다.

그렇게 한 1분간을 피하고 때리고 했나 보다. 고목 존자가 쓰러졌다. 싱거워도 너무 싱거운 전투.

조종술사인 놈이 죽자 당연히 강시들도 동작을 멈췄다.

고목 존자가 죽으면서 흘린 아이템을 수거하고, 활강시를 담당하던 무림맹 무사를 불러들였다.

고장 난 로봇처럼 가만히 서 있는 강시들은 경험치와 숙련치를 쌓는 데 가장 좋은 몹이었고, 경험치 역시 거저먹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선 멍하니 서 있는 금강강시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역시 이놈은 이름만큼이나 단단했다. 금강석을 때리는 것처럼 타격감이 여엉 시원찮았다.

탁- 탁-

한 백 대쯤이나 때렸을까? 현운자가 그때서야 돌아왔다. 다행히 별 탈은 없었나 보다.

“독강시는 잡았어요?”

“네.”

현운자가 금강강시에게 태극권을 날리면서 대답했다. 그리곤 깜짝 놀란 듯 다시 말을 잇는다.

“와우! 이놈 정말 단단하네요.”

현운자의 주먹에서는 나처럼 탁탁 소리도 안 난다. 데미지를 주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민망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톡- 톡-

“때리다 보면 죽겠죠. 지겨우면 그 해갑 부적이라도 좀 붙여 주든가요.”

“돈 아까워요. 그냥 때릴랍니다.”

고장난 기계 때려 부수는 건 꽤 재밌었다. 공짜로 경험치 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다.

그렇게 금강강시를 잡고, 활강시도 때려잡았다.

4시간마다 새로 생성되는 고목 존자 사냥을 일주일간 계속했다. 일반 몬스터를 한 장소에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사냥한다면 아마 지겨워서 진즉에 때려치웠을 것이다. 나야 목적이 있어 어쩔 수 없다지만, 현운자가 지겨워지면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이쪽은 손님이니까.

다행히 보스급 몬스터를 독식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레벨 업도 다른 곳보다 조금 빠른 편이어서 현운자도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니, 나보다 더 좋아했다고 할까?

고목 존자가 주는 아이템은 어느 것 하나 싸구려가 없었다. 환혼신단 같은 경우는 족히 1천만 냥의 값어치가 있었고, 그것도 한 번 사냥할 때마다 한두 개씩은 꼬박꼬박 떨어졌다. 정말로 둘이서 환혼신단 작업을 몇 달만 한다면 조그만 빌딩 한 채 올리는 건 일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다가 가끔 독강시가 주는 용독술 상급 비급도 꽤 가치가 높은 아이템이었다. 독술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명성이 깎이는 페널티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정제된 독이라는 소모성 아이템도 필요했다. 그 때문에 난 용독술을 배우고도 여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비급을 팔려고 마음먹는다면, 환혼신단만큼의 가격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다 해도 사실 이 두 아이템을 가지고 돈을 벌 순 없었다. 환혼신단은 만일을 대비해서 계속 비축해둬야 했고, 용독술은 제값 받고 팔려면 사천성으로 들어가 당문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거기다 금강강시가 주는 철포삼도 간부급 문도들에게 나눠주기로 마음먹은 상태라, 오히려 내겐 상점에 1천만 냥에 팔리는 금강조나 자잘한 골동품, 금괴 따위가 더 쓸모 있었다.

어쨌든 일주일간을 그렇게 죽치고 사냥하다 보니 수중에 들어온 돈은 거의 9억 냥에 육박했다. 현운자에게 절반을 떼어주고도 내 손엔 4억 5천만 냥이란 거금이 남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표국 건설 자금으로 말이다.

며칠간은 바빠질 것 같아서 현운자에겐 잠시만 혼자 사냥하고 있으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나 혼자서 문파로 돌아왔다.

문주 집무실로 들어가자 총관 녀석이 변함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나저나 어떻게 용케도 서서 졸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야, 총관! 그만 졸고 이리 와봐!”

“예예! 근데 언제 오셨어요, 문주님?”

총관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눈곱이 안 보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그러고 보니 평소엔 먼저 인사하던 놈이 이젠 내가 부르고 나서야 아는 척을 하고 있다. 설마 제 놈 자리가 철밥통이란 걸 알아차린 것인가.

“시끄럽고, 우리 표국 건설하자.”

“예? 지금 돈 없는데요? 문파에 표국 설치하려면 문파 등급이 사 레벨은 돼야 하고, 또 따로 부지 구입비로 일억이나 듭니다. 총 육억 냥이 필요한데, 지금 문파엔 삼억 삼천오백칠십일만 구천삼백사십이 냥밖에 없는데요?”

“시끄럽고, 이 돈이면 되겠지? 창고에 집어넣고 알아서 증축하고 부지 매입해.”

내가 쓸 1억만 남기고, 나머지 3억 5천만 냥을 내밀었다.

“헉!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돈을… 하여간 재주도 좋으십니다.”

총관이 비꼰다. 확 패버리고 싶다.

[문파 운영비가 685,719,342냥이 되었습니다.]

[소요파의 문파 레벨이 3에서 4로 상승했습니다. 증축 비용으로 은 5억 냥이 소모되었습니다.]

[문파 명성이 2만 소모되었습니다.]

[표국 부지 매입 비용으로 1억 냥이 소모되었습니다.]

[표국 설립 신고서가 사용되었습니다. 문파에 표국이 설립되었습니다.]

주르륵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런데 표국 이름을 입력하라는 말이 없었다.

총관에게 물어보니, 문파에서 세우는 표국은 자동으로 문파명을 따서 정해진다고 한다. 우리 표국 이름은 그래서 난주 소요표국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문주님!”

잠시 총관에게 문파 등급이 올라서 바뀐 내용을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문주 집무실로 들어왔다. 구레나룻을 멋있게 기른 데다 그럴싸한 비단 장포를 걸치고 있어 유저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보나마나 NPC였다.

놈은 무슨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는 총관 옆에 나란히 섰다. 생긴 건 멀쩡한데, 꽤 건방진 놈이었다.

“야, 총관아, 쟤 뭐냐? 설마 표국 관리하는 총관이냐?”

“그게… 관리인이 맞기는 한데, 총관은 아닙니다.”

“아니면?”

“국주입죠.”

‘끙… 미치겠네.’

“야! 왜 저 자식이 표국주야? 국주는 나지! 돈은 누가 냈고 표국 세운 건 누군데!”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뻗쳐서 애꿎은 총관한테 화풀이를 했다. 그러자 총관이 기가 죽어서는 간신히 알아들을 소리로 변명을 했다.

“그게요, 문주님이 아시다시피… 문파에서 세운 표국은 그 관계가요… 본파와 속가 문파의 개념인지라… 엄연히 다른 집단이라는, 그런 거라서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이게 게임이 아니라 무협 세상이라면 말이다. 근데 지금 장난해?

“그럼 뭐야? 저놈이 국주면, 저놈이 혼자 알아서 다 해 처먹는다는 소리야? 난 아무것도 손 못 대고?”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저 NPC라는 놈이 국주라는 직함을 꿰찬 상태라면, 놈이 뭔 짓을 벌여도 난 두 손 두 발 다 놓고 구경만 해야 할까 봐서다. 애써 세운 표국이 그따위로 돌아가는 거라면 아예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하는 짓은 관리인이죠. 다만, 저처럼 수동적으로 명령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국주가 된 거죠. 하여튼, 표국 일에 관련된 사항은 저 소요표국주한테 물어보시면 됩니다.”

휴, 다행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총관 말이 맞는 것 같다. 표국 일은 잔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매 출행(出行) 때마다 쟁자수나 표사 배치도 해야 하고, 다달이 임금도 줘야 한다. 또 외부에서 표물 의뢰를 받는 것도 그렇고, 어디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겠는가. 그걸 일일이 사람이 관리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괜히 열 냈네.’

“어이, 국주! 이리 좀 와봐.”

반말하는 게 즐겁다. 생긴 걸로 봐서는 나보다 20살은 더 들어 보인다. 하지만 어떠랴? 내가 대장이고 쟤들은 부하인데. 크하하!

“예. 하명 내려 주십시오, 문주님.”

얜 또 호탕하게 생긴 것답지 않게 웬 극존칭?

“어이, 총관아! 혹시 표국 없앨 수도 있냐?”

“그럼요. 장사가 안 되면 문 닫아야죠. 적자 나면 문파 창고에서 돈이 나가게 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냐, 아냐. 네가 알 건 없고.”

철밥통인 총관 놈과 달리 이 국주는 언제든 구조 정리를 당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걸 아니까 이렇게 미리부터 설설 기는 거였다. 아, 정말이지 강호 개발자 녀석들의 머릿속을 해부하고 싶어진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일단, 국주에게 표국 운영에 관해 자세히 물어봤다. 한참 강의를 받고서야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국주에게 명을 내리는 건 문주, 혹은 문주에게 위임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문파 창고와 마찬가지로 표국에도 창고가 따로 존재하는데, 창고 접근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문주뿐이었다.

그런데 문파 창고보다 표국 창고 기능이 더 나았다. 어떤 상황에서도(표국주가 죽더라도)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표물은 잠시 동안 표국 창고에 머무르게 되는데, 만약 문파대전으로 표물을 강탈당하면 일이 커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 미리 막아둔 셈이었다.

표국에서 일할 표사와 표두는 문파의 문도들을 빼서 사용했다. NPC가 아닌 유저들도 소속을 표국으로 돌린다면 표행에 참가할 수 있고, 표행 난이도에 따라 임무 완수 후 명성의 상승과 함께 약간의 보수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표행이 실패하면 명성이 상당히 많이 깎여 나간다. 거기다가 한번 표행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NPC가 아닌 유저들을 표국 일에 끌어들이기엔 힘든 면이 있었다.

단 하나 좋은 점이라면, 명성이 1천 미만인 문도들이 감숙성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 정도랄까?

표물 의뢰는 표국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많아지고 다양해지며, 초기에는 거의 의뢰가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서 표국을 열자마자 홍보비(뇌물)를 많이 뿌려야 했다.

그 외 자잘한 운영 노하우가 상당히 많았다. 거의 표국 시스템 하나만 가지고도 또 하나의 게임이라고 할 정도였다. 일종의 경영 시뮬레이션을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천하제일표국을 건설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잘 우려먹어서 소요파 전력이 향상되면 그만이다.

표국은 낙양에서 난주로 건너와 문파를 세울 때부터 계획한 것이었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이라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벌 방법이야 많다. 더 많이, 더 확실하게 말이다.

문파는 어쩔 수 없이 유저와 NPC가 공존해야 한다. 등급이 낮을 때는 유저들만 있어도 무방하지만, 점점 등급이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NPC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유저 문파들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이제 문파 등급이 4레벨이 된 우리 소요파의 최대 수용 인원은 5백 명으로 늘어났다. 나 혼자서 이 많은 인원들을 다 통제할 수 있을까?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지금도 겨우 2백밖에 안 되는 인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난 더 이상 유저들을 받을 생각이 없다. 내 그릇이 이 정도밖에 안 되기도 했고, 사람이 늘수록 분란도 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자리는 계속 비워두거나, 아니면 NPC들로 채워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NPC 문도들은 유저와 달리 한번 죽으면 다시 부활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처음 영입할 때 큰돈이 들어가고, 사망한 NPC의 빈자리를 채우려면 또 그만큼의 돈이 들어간다. 혹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달이 월급이 지급된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를 계속 비워둘 순 없다. 유저와 마찬가지로 NPC들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NPC들은 고용한다고 해서 알아서 커가는 건 아니었다. 처음 이놈들을 받은 지 거의 반년이나 지났건만, 놈들 중 최고수라는 녀석이 이제 겨우 3레벨 올랐다. 풀어서 키우는 게 아니라 일감을 맡겨서 키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문파 NPC가 진화한다는 사실을 흑점에서 알아낸 순간부터 내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NPC들의 실력을 높이려면 표국을 세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고, 여러모로 따져 볼 때 이곳 난주가 최적의 장소로 결정된 것이다.

지금 표국을 세운 건 늦은 감이 있었다. 원래 내 계획은 문파를 세우자마자 표국 사업도 병행하기로 한 건데, 알다시피 NPC 표사들이 익힐 문파 무공이 한 개도 없었다. 계획보다 한참이나 늦은 만큼 NPC들의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만 했다.

문파 등급 3레벨부터는 등급이 올라가더라도 영입 NPC들의 수준이 150레벨, 즉 이류 초입으로 일정하다. 만약 그렇지 않고 등급이 올라갈수록 NPC들의 수준이 점점 향상된다면, 돈으로 강호를 점령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략 문파 등급 12 정도가 되면 마교랑 맞짱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우선은 많은 인원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총관에게 일러 NPC를 50명만 받았다. 그리고 그 인원 모두 소요 표국으로 할당했다.

표국은 당분간 내가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국주를 수동으로 돌려놓고, 문파 창고에서 1억 냥을 빼 표국 창고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문파 창고에 있던 내 아이템들도 모두 표국 창고로 옮겼다. 이쪽 창고는 절대 분실 염려가 없으니 말이다.

“휴… 그럼 대충 상황 파악은 됐고, 신장개업을 했으니 이제 전단지를 뿌리러 가면 되는 건가?”

우선은 소요파가 자리 잡은 이곳 난주 성내의 상단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난주성엔 3개의 상단이 있었다. 황금산장의 난주분국과 백사연합, 그리고 금륜장.

그런데 황금산장은 원래 모든 표물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그러니 내가 갈 곳은 백사연합과 금륜장, 두 곳밖에 없었다. 우선 백사연합에 들렀다.

“오, 조 문주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로 귀한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백사연합 정문을 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상단주가 뛰어나왔다.

“일이 좀 있어서 말이죠. 단주님 도움이 조금 필요한 일이지요.”

“아니, 대소요파의 문주님이 어찌 저 같은 상인 나부랭이 따위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상단주의 자세가 상당히 낮다. 소요파가 난주를 통일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명성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가?

“소요파가 요새 재정 상태가 좀 안 좋아져서 말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표국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죠? 표물 의뢰를 받으러 온 거란 말이죠.”

“흠흠. 아, 그렇소? 상황이 그렇게 된 거구먼. 어쨌든 조 문주도 상계에 진출하게 된 걸 축하하네. 그런데 일감이 없는 걸 어떡하지? 지금 난주표국하고 일 년 독점 계약을 맺어서 말이야.”

이 자식… 그새 태도가 돌변하다니!

“많이는 필요 없고, 그저 경험 삼아 한 건만 맡겨 보시죠?”

“예끼, 조 문주! 어찌 경험 삼아 일을 맡긴단 말이오! 한번 표행에 차질을 빚으면 죽어나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늘……. 못 들은 걸로 하겠소! 일없으니 그만 가보시오.”

매정하다. 놈은 몸을 홱 돌려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하아… 이를 어쩐다? 여기만 이런 건 아닐 텐데…….’

이놈은 뇌물 받는 기능도 없어서 돈으로 꼬셔 볼 수도 없다. 별수 없이 그냥 꼬리를 내리고 백사연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금륜장에 들렀지만, 역시나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신생 업체 따위에겐 일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놔! 이 게임은 대체 왜 이리 초보들한테 잔인한 거냐!”

금륜장에서도 쫓겨 나오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난주의 지배력이 100퍼센트인 소요표국이 이런 대접밖에 못 받는다면, 신생 표국들은 다 망하라는 이야긴가?

역시 생각한 대로 현실은 맞춰주지 않는다.

‘별수 없지. 생각한 대로 안 된다면 반대로도 한번 해볼 수밖에.’

황금산장 난주분국은 앞의 두 산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분주했다. 위구르인, 서역인, 몽골인, 온갖 차림의 인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수없이 많은 수레가 들락거리고 있었다.

“허허, 역시 한가락 한다는 건가? 근데 여기선 반겨 주는 사람도 없네?”

분국주가 버선발로 반기길 원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총관이라도 뛰어와야 하는 거 아냐? 난주에선 내가 황제란 말이다!

잠깐 폼 잡고 기다려 봤지만, 역시나 아는 척해오는 놈이 없었다.

별수 없지. 알아서 찾아갈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건, 겨우 찾아낸 총관이란 놈이 아주 날 무시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조 문주님, 어서 오세요. 그래,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몇 번 거듭하다 보니 말장난하는 것도 시들해졌다. 바로 본론을 꺼냈다.

“표국을 하나 만들었는데, 표행 의뢰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아, 그래요? 일단 축하드립니다. 표행 의뢰는 후원에 가면 게시판이 있으니까 내용 확인하시고 적당한 표행을 고르시면 될 겁니다.”

‘엥? 뭐야!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살짝 의심이 가긴 했지만, 별수 있나? 가라는 데로 갈 수밖에.

총관이 말한 대로 후원에는 게시판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표행 의뢰 게시판

의뢰자:인수공방

목적지:감숙성 천수 황금산장 분국

표물:양가죽 2,000장(10수레)

기한:일주일

의뢰비:6,000냥

난이도:초급>

표행 의뢰 게시판엔 양가죽을 배달해달라는 표행 하나밖에 없었다. 살짝 어이없다.

“이거 참, 적당한 표행을 고르라고? 고르긴 뭘 골라? 이거 하나밖에 없구만.”

표국 명성이 보잘것없어서 그런가? 하여튼 의뢰비가 보잘것없었지만, 처음은 다 그런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의뢰를 수락한다니까 메시지가 하나 출력된다.

[선금으로 3,000냥을 받았습니다. 황금산장에 1,200냥을 수수료로 지불했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어쩐지, 의뢰자가 황금산장이 아니라 난생처음 보는 공방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마디로, 황금산장은 표물 중개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2할이나 착취하는!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첫 의뢰를 따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문파로 돌아왔다.

표국주에게 말을 걸어보자, 빈칸이었던 표행 의뢰 리스트에 양가죽 배달 표행이 추가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수레 10대면 쟁자수가 20명이 필요하다. 표사는 기본적으로 10명, 그리고 표행을 지휘하는 표두가 한 명 필요했다.

일단 그렇게 배치를 하고 나니 얼추 손익이 나왔다.

이번 의뢰에 성공하면, 적자가 1만 냥!

“흠… 역시나 결국 적자라는 소리네. 하기야 양가죽 팔아봤자 얼마나 번다고.”

앞으로 어떤 표행이 있을지 모른다. 잘하면 북경의 황제한테 바치는 조세 운반 표행을 딸 수도 있는 것이고. 우선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일단 표행이 어떻게 수행되는지 보려고 날 표두로 넣어보려 했지만, 문주는 표국에 배치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NPC들로만 구성해서 보내고 내가 그 뒤를 따르는 형태를 취하자니 그것도 불안하다. 표행 중에 표두가 어떤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별수 없다. 부려먹을 사람을 부를 수밖에.

광우와 광견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생단 효과 때문인지 녀석들 인상이 아주 조금은 괜찮아진 것도 같다. 역시나 악명은 그대로인 듯 눈도 빨갛고 여전히 마기가 흘러넘치는 면상이긴 했지만.

“아, 또 뭡니까! 지금 레벨 복구하느라 바빠 죽겠구만.”

미친개가 이빨을 드러낸다. 저걸 그냥 패 죽여서 국 끓여 먹어버려?

“뭔 일은 뭔 일이겠냐! 부려먹으려고 불렀지.”

“바빠 죽겠구만, 좀 나중에 부려먹으면 안 돼유? 우리 레벨 복구하면 부려먹어요, 제발!”

“안 돼. 니들 환생단 받아먹은 값은 해야지.”

이광에게 표국 설명을 해주고 녀석들을 표행에 배치시켰다. 처음엔 귀찮아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인지라 끝에 가서는 놈들도 꽤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좋아라 했다.

“그러니까, 그냥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 파악만 하면 된다는 거죠?”

“그래. 표행 중에 전투는 몇 번이나 치르는지, 표사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면 돼. 그리고 천수에 도착해서 표물 넘기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좀 알아봐. 그냥 빈손으로 문파로 복귀하는지, 아니면 다른 표물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지 말이야.”

“간단하네요. 그럼 시작해볼게요.”

과연 표행이라는 게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다. 짐작대로 NPC 상단 행렬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번 표행의 표두는 광우였다. 아마도 유저에게 선택권이 있는 듯 광우는 표국주와 몇 마디 말을 섞고는 양가죽 표행을 자신에게 할당했다. 그리고 표행을 시작하겠다고 국주에게 일렀다.

“엥? 왜 아무 일도 없죠?”

“야, 야, 그럼 여기서 수레가 출발하겠냐? 얼른 밖으로 나가봐!”

이광이 후다닥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연병장 옆의 창고 같은 건물에서 표행이 시작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쟁자수들이 창고에서 양가죽처럼 생긴 물건들을 꺼내서는 수레에다 바리바리 싣고 있었다.

작업은 금방 끝났다. 그렇게 물건을 다 싣고 나자 표사 몇은 수레에 탔고, 나머지 인원과 쟁자수들은 수레 좌우에 정렬했다.

“왜 안 가지?”

저절로 표행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한참 별의별 짓을 다 해봤다. 결국은 국주한테 물어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참 간단했다.

“출발!”

표두가 명을 내려야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투레질만 하던 말이 타박타박 소리를 내며 수레를 끌어가기 시작했다. 길게 꼬리를 물며 10대의 수레가 문파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소요표국의 첫 표행이 시작된 것이다.

“수고해라!”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요!”

망할 놈들. 내가 집 지키는 개냐?

표국에서 달랑 표대(驃隊) 하나만 운용할 리가 없다. 이광을 떠나보내고 다시 문주 집무실로 돌아와 국주와 대면했다.

이광이 끌고 간 양가죽 표행은 진행 중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대기 중이라는 표시가 된 표행이 있었는데, 이번 건도 양가죽 배달이었다. 아마도 이 양가죽 의뢰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상시적인 퀘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표행을 보내봤자 적자 볼 거라는 게 뻔했지만, 우선은 표국 명성치를 올리는 게 시급했다. 총관에게 일러 NPC 문도들을 더 충원한 뒤 전부 표국으로 돌렸다. 어차피 새로 의뢰가 들어올 상황도 아니라서, 그 인원 전부 양가죽 표행을 보냈다.

난주에서 천수는 멀지 않다. 지금 내가 경공을 써서 간다면 겨우 두세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짐수레를 끌고 가는 표행으론 그렇게 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표행이 끝나려면 적어도 하루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 * *

광우와 광견은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문파로 돌아왔다.

어제 출발할 때는 처음 해보는 표행 때문에 즐거운 얼굴이었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얼굴엔 피곤한 기색만 역력했다.

“재미없었냐?”

“다음부턴 시키지 마슈. 재미는 얼어 죽을.”

광견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툴툴거렸다.

녀석들한테 경과를 듣고 보니 충분히 그렇게 말할 만했다.

표행 도중에 겪은 일이라곤 조무래기 산적패 두 번 만난 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갈 때 한 번, 올 때 한 번. 그것도 표물을 털겠다는 놈들이 삼류무사도 못 되는 쓰레기급이었으니, 시종일관 지루함의 연속이었단다.

다행히 시킨 대로 일은 잘 처리했다. 이광에게 들은 바로, 표행 시스템은 지루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꽤 일리 있는 방식이었다. 피곤해서 로그아웃할 때는 소환무사의 경우처럼 표행도 잠시 멈추고, 다시 재접속할 때 표행을 계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천수 쪽 황금산장 분점에서도 의뢰를 따낼 수 있었는데, 난주에서 시작할 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여기서는 의뢰를 받고 표국주에게 말을 걸어 시작했지만, 천수에는 소요표국이 없다. 혹 분국이라도 낸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황금산장에서 그 일처리를 대신 해주고 있었다. 단, 의뢰비 중에서 5할이나 떼가 버린다는 것이 좀 문제였긴 하지만 말이다.

날도둑놈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그 정도라도 벌어들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어차피 NPC 문도들 경험치도 올려야 하는 걸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확실히 나았다. 표물도 없는 표행에 어느 도적놈들이 쳐들어오겠는가 말이다.

이광이 돌아오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자, 비슷한 시각에 떠나보냈던 표행이 하나 둘 돌아왔다. 표물은 오는 도중에 황금산장에 건네줘서인지 다들 빈 수레였다.

그런데 이광은 중간에 로그아웃하고 아침에 재접속해서 돌아왔다는데, 저 NPC들로만 구성된 표행이 왜 이광보다 늦게 되었을까?

국주한테 물어보니, NPC들로만 구성됐을 경우에는 유저가 포함된 표행보다 그 속도가 절반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대충 상황이 파악되었다. 괜히 이광을 더 붙잡아둘 이유가 없어서 풀어주었다. 녀석들은 악명 수치가 다 풀 때까지 자기들 찾지 말라는 협박을 하면서 사라져 갔다.

소요표국을 하루 동안 운영한 결과, 표국 명성이 140점 쌓였다. 하루 동안 표대 7개가 출행을 나가서 표행을 총 14개 완수한 셈이니, 초급 난이도 표행 한 번에 명성이 10씩 오른 셈이었다.

표국 명성이 올라 황금산장에서 새로운 의뢰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엔 천수까지 목화 배달이었다. 이 표행 난이도 역시 초급이었다.

의뢰를 받아 새로 등록하고, 소요표국을 수동에서 자동으로 전환시켰다. 이광 말로는 초급 난이도의 표행은 기껏해야 삼류무사도 못 되는 도적들만 나온다니, 그렇게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소요파의 NPC 문도들은 모두 150레벨로 이류 초입 수준은 되니 말이다.

소요표국이 문을 연 지 사흘이 지나자, 드디어 표국 명성이 1천을 넘어섰다. 같은 초급 표행이라도 목화 배달이 양가죽보다는 명성을 조금 더 줬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오른 셈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제대로 된 표국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진짜 표물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소요파 정보

소재지:감숙성 난주(난주 지배력 100%)

문파 등급:4레벨(총 수용 인원 500인)

문파 명성:4,000

문파 자금:8,571만 냥

운영비:수입:182만 7,800냥

운영비:지출:84만 3천 냥(게임 시간 한 달 기준)

문주:조연(Lv 335, 절정급, 불가 계열)

부문주:독각룡(Lv 352, 일류 상급, 도가 계열)

장로:은소소(Lv 341, 일류 중급, 도가)

장로:육소봉(Lv 312, 일류 중급, 도가)

장로:조자건(Lv 347, 일류 상급, 도가)

장로:조립산(Lv 311, 일류 중급, 도가)

장로:광우(Lv 327, 이류, ??)

장로:광견(Lv 327, 이류, ??)

일 대 제자:100명

이 대 제자:100명

NPC 문도:286명

그 외:문주 호위무사 4명

그 외:부문주 호위무사 2명

그 외:빈객 1명(무당도인 현운자)

{문파 무공}

공격 무공:육합권(진결)-장로급 이상

공격 무공:삼재검(진결)-장로급 이상

공격 무공:나한권법

공격 무공:분광검법

공격 무공:복마검법

공격 무공:매화검법

내공심법:나한기공

내공심법:소청심법

경신법:유운신법(경공)

경신법:비풍표(경공)

경신법:불영보(보법)

경신법:취보(보법)

잡기:없음

{소요파 산하 속가 문파}

소요표국(3급 표국)

인원:250인

명성: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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