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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파신묘(2) (20/62)

제20장. 파신묘(2)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기에 이렇게 피곤한 연출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은열쇠를 집어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저기요, 거기 두 분!”

3층에서 같이 사냥하던 그 두 유저가 우릴 불러 세웠다.

“왜 그러시는데요?”

“은령 사자 잡으셨죠?”

그걸 왜 묻는 거지?

“왜 그러시는데요?”

내 말 속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렸는지, 사내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는 마시구요, 같이 좀 내려갔으면 해서요.”

이 양반들, 묻어가는 인생이었나?

내 맘대로 결정할 일은 아니어서 현운자를 바라보았다. 현운자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뭐 어때요? 같이 갑시다. 그런데 이 아래층 상황을 좀 아시나 봐요? 은령 사자가 열쇠 주는 걸 아시는 거 보니까.”

흐흐. 역시 현운자도 바보는 아니었나 보다. 주는 게 있으면 콩 한 쪽이라도 받을 걸 기대하는 게 사람의 마음. 너무 간단히 동행을 허락하는가 싶더니, 이 사람들한테 정보를 좀 얻을 요량이었나 보다.

“삼 층에서 저희보다 더 수월하게 사냥하시는 걸 보니, 랭커 분들이신 것 같은데, 뭐 감출 것도 없지요. 일단 저희랑 함께 가야 무사히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죽을 확률이 반은 되죠.”

아랫동네가 대체 얼마나 살벌한 동네이기에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는 걸까? 호언장담 같긴 하지만 우린 이 바닥에서 이방인의 입장이고, 저 사람들은 터줏대감이라는 건 인정해야만 했다.

그들과 동행하기로 결정하고, 파티 의뢰를 걸었다.

[파도 님이 파티에 들어왔습니다.]

[일협 님이 파티에 들어왔습니다.]

“헉!”

“컥!”

4명이 동시에 놀랐다. 걔들은 우리 아이디를 보고 놀랐고, 우리 역시 걔들 아이디를 보고 놀랐다. 파도와 일협은 10위 안에 드는 랭커였던 것이다. 더구나 파도라는 캐릭은 내 벽력수를 사간 적도 있어 낯설지 않았다.

“어이쿠,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셨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방금 전 저희가 한 말이 우스갯소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파도가 먼저 사과를 해왔다.

“아니에요. 오히려 일협 님하고 파도 님을 만나게 돼서 기쁘기만 하네요. 그리고 제 생각에도 아랫동네가 만만할 것 같지는 않고요. 그럼 일단 내려가 보죠.”

이 두 사람이 랭커라는 걸 알게 돼서 그런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랭커 2위와 7, 8, 9위가 모인 이 파티라면 강호 역사상 최강의 파티가 아닐까? 드래곤만 아니라면 겁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3층을 내려올 때의 그 계단과 달리 이번 층 계단에는 이상한 기호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안내자를 자처하며 앞으로 나선 파도가 기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아마 결계일 겁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지만요.”

그 소리는 진을 구성하는 결계 문자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지만. 왜 결계가 있어야만 할까? 한번 들어가면 맘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곳이란 말인가?

계단은 곧 끝이 났고, 의문은 잠시 접어둬야만 했다. 우리 앞에는 쇠고리가 달린 거대한 석문이 하나 가로막고 있었다.

“긴장하세요. 시작입니다. 일단 두 분하고 일협이는 여기서 대기하고 계세요. 절대 이 석문 안으로 들어오지 말아야 합니다.”

파도가 주의를 주고는 석문을 열어젖혔다.

인간의 힘으론 절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석문이 그르릉,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난 4층의 구조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4층은 더 이상 희미한 등잔불에 의지한 지하 광장이 아니었다. 비록 바닥은 여전히 돌이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배치돼 있어 여느 문파의 대전(大殿) 안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도 보이고, 화톳불이 곳곳에 켜져 있어 바깥과 다름없이 밝았다.

파도는 석문이 열리자 그 안으로 바로 몸을 던졌고, 그러자 일협이 우릴 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구석으로 들어가죠.”

일협이 말한 구석은 석문의 안 귀퉁이와 계단 벽이 만든 좁은 공간이었다.

일협이 먼저 앞장을 서서 두 면이 막힌 그 좁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현운자와 나도 일협을 따라 한 자리씩 맡았다. 분명 대량의 몹을 상대하기 위한 포진이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마자 파도가 돌아왔다. 뒤에 몹을 3마리 달고 말이다.

“일점 집중하세요!”

파도가 우리가 자리 잡은 곳으로 오더니 외쳤다.

일점 집중하는 게 맞긴 하지. 하지만 생각 없이 파도가 공격하는 놈만 같이 때린다면 우린 랭커가 아니다.

나와 일협이 파도가 달고 온 몹들 중 한 마리씩을 맡아 파도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었다. 공격은 파도와 현운자가 치고 있는 그놈에게 집중하고.

4층의 몹들은 3층과는 확실히 달랐다. 3층의 몹이 지옥의 야차와 나찰이라서 4층은 그보다 더한 악귀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2층과 같은 복색의 인간형 몬스터였다. 다만 그놈들의 한심한 주술보다 위력이 훨씬 셌다.

[나태함에 걸렸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퍼센트 하락합니다.]

광역 주술인 듯 일협을 공격하던 녀석이 진법을 완성하자 우리 모두 나태함이라는 주술에 걸려 버렸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니었다.

[개념상실에 걸렸습니다.]

이건 또 뭐냐?

개발자의 장난에 잠깐 웃음이 나왔지만, 곧바로 정말 개념 상실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갑자기 몹을 향해 뻗어가던 내 주먹이 옆에 서 있는 일협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퍼퍼퍽!

거리가 가까워서 연계기가 주르륵 이어졌고, 깜짝 놀란 난 급히 공격을 멈추었다.

“개념상실에 걸리면 풀릴 때까지 쉬세요. 일 분이면 풀립니다.”

다행히도 공격을 받은 일협이 상황을 안다는 듯이 설명해주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쉴 수만은 없었다. 한창 전투 중에 1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개념상실은 타깃 지정이 안 되고 주위 동료들을 공격하는 말도 안 되는 주술이지만, 잠깐 생각을 달리하니 요령이 생겼다. 어차피 몹 중에 하나는 날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계단 쪽으로 몸을 뺐다. 그러자 날 공격하던 놈이 바로 따라왔다. 한번 공격을 해보자,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다. 주위에 때릴 아군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나태함이란 주술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말이 3할의 능력치 하락이지, 사실 레벨이 3백에서 2백으로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공격력은 형편없었고, 회피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회피마저 불안하다 보니 결국 공격을 포기하고 그저 방어에만 신경을 써야 했다. 왜 일협이 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수비에만 치중하면서 1분이 지나자 나태함도 풀리고 개념상실도 풀렸다. 그때쯤에 다른 파티원들은 처음 맡았던 몹을 눕히고 다른 녀석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난 이 녀석이 새로운 주술을 걸기 전에 빨리 끝내기로 마음먹고는 금나수를 시전했다. 놈은 주술용 제검(祭劍)을 들고 괴상한 검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내 오른손이 놈의 그 화려하게 치장된 무기를 집어갔다. 절정의 경지라 그런지, 아니면 놈의 회피가 낮아서인지는 몰라도 단번에 손가락이 검신을 잡아챌 수 있었다.

체력이 조금씩 떨어져 가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서 놈이 빠져나가기 전에 최대한 타격을 입히는 게 중요했다.

권기를 가득 담은 육합권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놈에게 연속으로 작렬했다. 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꾸 도망치려고 했지만, 빠져나오려고 폼만 잡으면 난 일격기로 녀석의 맥을 끊었다.

금나수가 대단한 건지 내가 대단한 건지, 혹은 저 녀석이 너무 약한 건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놈을 잡는 데 걸린 시간이 겨우 30초밖에 안 됐다는 것이다.

녀석의 공격이 완전히 봉쇄된 터라 방어 따윈 전혀 없는 완전히 공격 일변도의 공격이기도 했고, 거리가 가까워서 공격 횟수가 많기도 했다. 더구나 그 모든 공격들이 권기를 가득 담은 상태였다. 아마 그 짧은 시간 놈에게 쏟아진 내 공격은 족히 1백 번은 됐을 것이다.

그나저나 권기가 담긴 내 진결육합권에 1백 번이나 맞고 죽는 놈이라면, 체력이 거의 철갑 야차와 버금갈 놈이었다.

그때쯤에 저쪽 상황도 막 정리가 되었다.

“휴우, 겁나는구먼.”

“이 정도는 약과죠. 전에 저희 둘만 왔을 때는 얼마나 황당한 꼴을 겪었는데요. 서로 개념상실에 걸려서, 완전 난장판이었죠.”

깊이 생각 안 해도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다. 아예 혼자 왔다면 모를까, 2명이 왔다면 몹은 내버려 두고 서로 난타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 잡으면 뭐 좋은 것 좀 주나요? 아까 삼 층에서는 아이템 하나도 안 주던데.”

“음, 지금 잡는 놈들은 별거 안 줘요. 그리고 삼 층에선 가끔 야차공이라고 내공심법이 떨어져요. 근데 별 효용이 없죠. 마인들이나 배우는 거라서요. 수준도 절정은 아니고 일급 중간급 정도밖에 안 되고요. 팔리지도 않아서 저흰 그냥 상점에다 넘겨 버려요. 근데 일반 야차나 나찰녀가 주는 야차공보다 대단한 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강기성형(剛氣成形)이라는 잡기 무공이요.”

기성형의 강화판인가? 그럼 그걸 배우면 강기 발출의 경지?

“그럼 그걸 철갑 야차가 주는 거였나요?”

현운자가 강기성형이란 비급엔 호기심이 생기는지 파도에게 물었다.

“듣기에는요. 공갈대사 님이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거기서 그거 먹고 나왔다고. 그 말만 믿고 열심히 잡고 있기는 한데, 벌써 몇 날 며칠째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무당파에서도 강기성형 안 가르쳐 주나요?”

“없어요. 배우지 못하는 무공이라도 리스트엔 출력이 되는데, 강기는 못 봤네요. 듣기로는 다른 대문파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공갈대사 님도 대단하시네요. 벌써 강기 발출을 하실 수 있다니.”

강호엔 정말 기인이사들이 많다고 하더니만 영락없다. 부적술을 쓰는 현운자도 그렇고, 강기무공을 쓸 수 있는 공갈대사도 그렇고. 과연 랭커들은 다들 한가락씩 하는 건가?

근데 난 뭐 제대로 하는 게 있나? 남들 안 가진 거라면 반야신공하고 신안뿐인데, 하나는 실제 전투엔 필요 없는 심법일 뿐이고, 다른 하나는 효과가 기대한 만큼 대단하지 않다.

“아직 안에 몹들이 꽤 있으니까 일단 정리부터 하죠. 얘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간혹 마인들이 쓰는 잡기 비급을 주긴 하는데, 그것도 자주 나오는 건 아니고요. 진짜는 여기 정리하고 안으로 더 들어가야 시작됩니다. 그럼 다시 갔다 오겠습니다.”

파도가 다시 들어가서 몹을 몇 마리 데리고 왔고, 우린 또 아까처럼 포진해서 몹들을 잡았다. 몇 번 하다 보니 개념상실에 걸릴 때를 빼고는 특별히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만만하다고 한 건 어디까지나 이렇게 몹을 유인해서 잡고 있어서이지, 무턱대고 안으로 난입했다간 낭패를 볼 게 뻔했다. 수많은 몹에 둘러싸여 모든 파티원들이 연속적으로 개념상실과 나태에 빠진다면, 완전 아수라장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몹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지 예닐곱 번을 그렇게 반복 작업을 하자, 파도가 이제 앞으로 전진해도 된다고 말을 해줬다.

“와우!”

“멋지네요.”

파신묘 4층 내부는 밖에서 얼핏 본 거완 확실히 달랐다. 화려한 색조의 장식물들과 적절한 곳에 배치된 화톳불은 실내를 환상적으로 연출하고 있었다. 특히 왼쪽에 있는 방문 근처엔 명공이 그린 듯 멋들어진 벽화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벽화 중앙엔 금강야차일지 수미산의 수문장들인 사천왕인지 모를 누군가가 그려져 있었고, 그 주위론 야차들이 그 위엄에 놀라 부복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아, 조연 님. 거긴 아직 들어갈 수 없어요. 거기가 파신교 교주 방입니다.”

역시 평범하지 않더라니만. 그럼 여기가 파신묘의 최종, 보스 방이란 소리네.

“일단 여기 간부 방부터 쓸어야 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4층엔 방이 두 곳 있었다. 주변 벽면이 화려한 벽화로 치장된 교주 방과 그냥 평범한 일반적인 형태의 문이 닫혀 있는 방. 그 방이 파도가 말했던 간부들이 대기하는 방이었다.

“일단 준비들 단단히 하세요. 소환하실 분들은 소환하시고요. 조연 님하고 현운자 님, 아쉽겠지만 우리 실력으로는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할 겁니다. 교주나 간다르바는 장난이 아니거든요.”

간다르바? 건달바왕을 말하는 건가? 불교 수호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왜 나오지?

“그러니까 여력 남기지 말고 여기서 다 푸세요.”

이 안에 있는 애들은 모두 넷. 하지만 모두 절정이 넘는 애들이라고 한다. 무공은 절정인 데다 온갖 광역 주술까지 사용하니, 상당히 대적하기 까다롭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전체 랭킹 7, 8위 둘이서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랭커 2명과 4명은 엄연히 다르다.

어쨌든 준비를 하라기에 난 무림맹 무사를 소환했다. 그리고 역시나 짐작대로 파도와 일협도 무림맹 절정무사를 소환했다.

한때는 얘네들만으로 밥 먹고 살 만했는데, 이젠 시간 벌기용 허수아비로 전락한 느낌이다. 랭커들이라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뺏긴 기분도 든다.

현운자는 무림맹과는 거리가 먼 호북성 출신이라 그런지, 무사를 소환하지 못했다.

“부적술에 소환하는 건 없어요?”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음… 소환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강신법(降神法)이라고 신을 잠깐 제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건 있어요. 근데 제약도 심하고 지금 제 실력으론 별로 도움 될 만한 신을 부를 수 없네요. 그냥 부적이나 열심히 날릴게요.”

거참, 무당파 부적술 정말 탐나네. 신을 제 몸으로 부르는 개념이라… 그럼 나중엔 나타태자나 제천대성, 잘하면 태상노군도 부르겠네?

“시작할게요.”

파도가 우리를 한 번 쓰윽 쳐다보더니 조심히 문을 열고 간부실로 들어갔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냐!”

고함 소리와 진언을 외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파도가 그새 제자리로 돌아왔다.

“준비하세요. 제가 먼저 한 마리 묶을 테니 그 다음은 일협이가, 다음은 조연 님이 맡아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파신교 간부 4명이 한꺼번에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놈들이 보이자마자 파도는 그중 제일 앞에 서 있던 녀석에게 무림맹 무사를 붙여 광장 중앙으로 끌어가버렸다. 일협도 무사를 붙여 다른 간부를 끌어냈고, 나도 똑같이 했다. 녀석들의 주술이 광역이라기에 소환무사를 붙여서 멀찍이 떨어뜨린 것이다.

이제 한 마리 남은 녀석을 향해 현운자는 부적을 날렸고, 난 금나수를 전개했다. 파도는 강맹한 권법을 쏟아 부었고, 일협은 정신없이 비산하는 쾌도를 구사했다.

무영신투가 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긴 하지만, 어쨌든 초절정 경공고수도 걸렸던 6성의 금나수다. 놈이 설령 최절정이더라도, 이렇게 연수합격인 상황에선 금나수를 회피할 능력은 없었다.

취익!

금나수가 놈의 동작을 집요하게 파고들더니 끝내는 검을 잡아챘다. 절정의 경지라서 그런지 확실히 검을 그러쥔 내 체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컸지만, 무시하고 온몸을 놈에게 던져 육합권을 펼쳤다.

쉬쉬쉬쉭-

퍼퍼퍼펑-

쾅! 펑! 펑!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때리나 시합하는 것 같았다. 옴짝달싹 못하는 파신교 녀석에게 전보다 족히 3배는 빠른 공격이 퍼부어졌다.

“다음 놈은 제가 데리고 올게요!”

빠르게 한 놈을 해치우고 우린 파도의 소환무사가 데리고 온 녀석을 맞아들였다. 그런데 이놈은 아까 놈과는 달리 아이디를 달고 있었다. 상강월이라고.

“조심하세요. 이놈은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합니다.”

파도가 공격을 하면서 한마디 했다.

이 녀석에게 아까와 마찬가지로 금나수를 펼쳐 보려 했는데, 번번이 빗나갔다. 아이디가 있어 그런지 아까 그놈과는 차원이 다른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고 나니 금나수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본신 무공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결국 상강월에게 진언을 욀 시간을 줄 수밖에 없었다.

놈이 입을 우물우물하더니 우리를 향해 피를 뿜으며 소리쳤다.

“귀원암태(歸原暗態)!”

[암흑 상태에 걸렸습니다.]

[개념상실에 걸렸습니다.]

“아! 미치겠네. 움직이지 마시고 회피만 하세요!”

암흑이라는 말 그대로 4명 모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파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난 ‘개념‘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동작을 멈춘 상태였다.

‘혹시?’

신안을 켜 봤다. 보인다. 상강월은 얼핏 보라색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융화되지 못한 붉은색 오러와 파란 오러가 따로 존재한 상태였다.

개념상실만 아니라면 혼자서라도 공격을 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행히 놈은 우리 중에서 가장 회피력이 나아 보이는 현운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현운자의 오러는 소요파의 일반 문도들보다 더 옅은 파란색이었다. 에메랄드색이라고 하면 맞을까? 녹색이 섞인 옅은 푸른빛이었다. 아름답고 청량감을 주는 색이었다.

파도는 나와 같은 불가 계열의 무공을 배웠는지 노란색 오러였고, 일협은 낭인 무공인 듯 백색 오러였다.

손놓고 구경만 하던 시간이 지나고, 갑갑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메시지가 떴다.

[개념상실 상태에서 풀려났습니다.]

아직 암흑은 풀리지 않았지만, 공격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운자를 공격하던 녀석을 향해 권을 날렸다.

쾅!

너무 강했던 탓인가? 녀석이 현운자를 버리고 날 바라봤다. 그렇게 일대일이 시작되었다.

몇 번 손속을 주고받으니 대충 녀석의 경지가 짐작이 갔다. 무림맹 무사들보단 확실히 뛰어나지만, 감히 정추산에 비할 수는 없는 수준. 딱 느려진 무영신투 수준이라고 할 만했다.

겁이 날 정도는 아니니 재미가 생긴다. 공격이 적중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녀석이 내 공격을 회피할 정도로 빠르지도 않았다.

오른손을 뻗으면 놈은 왼손을 들어 막고, 무릎을 쳐 올리면 손바닥을 겹쳐 충격을 완화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공격을 회피하기엔 동작이 조금씩 느려서 어쩔 수 없이 방어를 해야만 했다.

서로 유효타를 먹이지는 않았지만, 호각지세의 공박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십 합이 진행됐다.

회피하지 못하는 이런 공박은 사실 내게 불리한 일. 방어를 해도 체력은 깎여 나가니 당연히 몬스터인 상강월이 유리했다. 그렇다고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린 4명이니깐.

“수고 많으셨습니다.”

현운자가 씨익 웃으며 우리 싸움에 끼어들었다.

“에이, 한참 재밌었는데.”

그런 현운자를 보고 실없는 농담을 한마디 던졌다.

촤라락!

그때, 일협이 광풍이 일듯 빠른 쾌도를 연속으로 휘두르면서 끼어들었다. 그리고 파도도 한마디 던지며 합류했다.

“조심하세요. 무림맹 무사들 죽을 때 됐습니다.”

아, 그랬지. 그렇다면 지금은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닌 셈이다. 아까 파도가 그랬던가? 이놈은 죽고 나서도 부활한다고. 일반적으론 이런 식으로 부활이나 각성하는 놈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변해서 살아난다.

4명의 연수합격으로 상강월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파도의 언질이 있었던 터라 현운자와 난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저쪽 몹들이 붙으면 저하고 일협이가 한 마리씩 맡아서 흩어질게요. 얼른 이놈 정리하고 도와주러 오셔야 합니다.”

파도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으악!

역시 들었던 대로 상강월의 시체에서 부활하려는 조짐이 보였다. 괴성을 지르면서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이 완전히 부활하기도 전에, 다른 두 놈을 맡고 있던 무림맹 무사가 강제 소환을 당해버렸다.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파도와 일협은 무사들이 죽자마자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직 파도의 무림맹 무사가 하나 남은 상태였지만, 파도가 맡은 놈은 호락호락한 놈이 아닌 듯 소환무사도 같이 끌고 갔다.

그리고 드디어 상강월의 부활이 끝났다. 갑자기 치켜뜬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하고,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이 영락없는 야차의 모습이었다.

“누가 감히 내 집을 해치려 하느냐!”

벌떡 일어난 야차 상강월이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부웅!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센 권풍이 내게 날아왔다. 충분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잠깐 스쳐간 권풍에 체력이 꽤 깎여 나갔다.

“제마(制魔)!”

현운자가 상강월에게 부적을 날렸다.

“이따위 잡술로 날 어찌해볼 생각이었더냐! 광사풍(狂沙風)!”

상강월은 좀 전과는 달리 단숨에 진언을 외웠다. 미처 막을 새가 없었다.

쐐애액!

광사풍이란 주술은 상태이상을 불러일으키진 않았지만, 아주 강력했다. 모래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용권풍이 나와 현운자를 에워쌌다. 그러자 모래 때문에 시야는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흐려지고 체력과 내공이 점점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조연 님! 그놈에게 말할 틈을 주지 마세요. 그냥 죽자 사자 패다 보면 죽습니다.”

멀리서 일협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죽자고 패고 싶어도 도저히 가까이 붙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붕! 붕!

정말로 보법이 저절로 피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상강월의 저 주먹 한 방에 죽어버릴 것만 같다.

“조연 님, 제가 먼저 붙을게요. 뒤에서 공략해주세요!”

정신없이 놈의 공세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데, 현운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내게 향하던 권풍이 사라진 걸 알 수 있었다.

일협의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됐지만, 어쨌든 믿을 건 그것뿐이었다. 상강월에게 바짝 몸을 붙이고 무공을 펼쳐 갔다.

타탁! 탁!

분명 적중이 되는데 어째 타격감이 영 시원찮다. 마치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기분이다. 반면, 수비를 하는 와중에도 가끔씩 가해지는 현운자의 공격엔 놈이 움찔움찔거리면서 반응을 보였다.

“조연 님! 권기를 주입해서 쳐 보세요!”

아, 놈이 야차처럼 변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니. 이 정도의 방어력이라면 상강월의 몸에 철갑 야차가 강신(降神)이라도 한 것 같았다.

현운자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난 그제야 나다운 싸움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단 방어의 부담이 줄어서 육합권을 펼치면서 신안으로 야차의 몸을 한 번 훑어봤다.

3층의 야차는 몸 전체에 약점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분명 야차가 사람 몸에 들어간 상태. 정상적인 상태일 리가 없다. 과연 내 짐작은 맞았다.

붉은색으로 뒤덮인 오러는 색의 선명함은 일정했지만, 단전 부근의 오러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춰 있는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모든 유저와 NPC가 단전의 오러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것에 비하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해는 나중에 해도 되고, 일단은 저 부위가 약점 같다.

타격점을 단전으로 잡고, 육합권 틈틈이 선인지로를 구사했다. 일점 집중의 단순한 공격으로는 선인지로보다 더 좋은 무공은 없다. 육합권의 초식이 되돌아올 때쯤에 내 선인지로가 그 간극을 최대한 줄이면서 정신없이 놈의 단전을 두들겼다.

“크아아악!”

상강월이 비명을 지르면서 이젠 나를 본다. 역시 짐작이 맞았나 보다.

“현운자 님, 단전이 약점입니다. 거기만 집중 공격하세요!”

이번엔 내가 수비를 맡고 현운자가 내 말대로 단전에만 집중적으로 무당의 침투경을 구사했다. 신안을 통해 푸른 기 덩어리가 현운자의 장심(掌心)을 통해 상강월의 단전으로 발출되는 게 보였다.

그렇게 한쪽이 수비를 맡고 다른 쪽이 놈의 약점을 공략하니 전투가 한결 쉬워졌다. 부담이 사라지고, 동작에 여유가 생길 때쯤 야차로 변신한 상강월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일협 님이 맡고 있는 녀석부터 쓸어버립시다.”

아직 파도 쪽은 무림맹 무사도 살아 있어 괜찮아 보였다. 우린 일협에게 합세했다.

이쪽은 처음 잡은 그 간부처럼 별로 세지 않았다. 몇 번 투덕거리니 금방 쓰러져 버렸고, 우린 다 같이 파도에게 합세했다.

파도가 맡은 쪽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정향이라는 이놈은 상강월만큼이나 셌다.

무공은 특별할 게 없었지만 주술을 진언도 외지 않고 쉼 없이 난발했다. 나태함이나 개념상실은 기본이고 혼란, 현혹 등 온갖 상태이상 주술을 쏟아냈다. 만약 상강월을 잡을 때 이놈이 옆에 있었다면, 우린 분명 몰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놈이 거는 주술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아무 행동도 못하고 엎드리고 있어야 하는 혼란이었고, 현혹이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 현혹에 걸리면, 놈이 선녀처럼 보인다. 정말이다. 앵두 같은 입술, 이슬에 젖은 듯 촉촉한 그 눈길을 보고 있자면, 차마 그 몸에 손댈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다.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효과! 귀에 옥구슬이 쟁반 굴러가듯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워요. 왜 이제 오신 거예요?”

이 정돈 약과고,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오라버니, 저 오늘 집에 안 들어가도 돼요.”

현혹이 얼마나 무섭냐면, 분명 놈이 공격하는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놈의 무공에 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뭐 바보도 아니고, 아까 그놈이 이 요녀라는 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알긴 알지만, 정말 이런 미녀한텐 손대기가 쉽지 않다.

퍽퍽!

한 대씩 그 가녀린 몸에 주먹이 틀어박힐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현혹 상태에서 풀려났습니다.]

대략 1분쯤 지나자 상태이상이 풀렸다. 살짝 아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 맘껏 때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향의 무공이 비록 대단하진 않았지만, 상태이상을 자주 걸어서 쓰러뜨리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걸핏하면 혼란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고 개념상실로 쉬어야 하는 데다, 나태함 때문에 공격력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국 죽을 놈은 죽게 되어 있다.

“끄르륵… 비사문천이시여!”

지겹게 버티던 정향이 결국은 돌바닥에 철퍼덕 엎어지며 죽었다.

그런데 비사문천이면, 불법의 사천왕이 아닌가? 얘가 왜 비사문천을 들먹이고 죽는 거지?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하나 둘 집으면서 파도에게 물었다.

“파도 님, 쟤가 지금 한 말이 뭐예요? 아까 건달바왕 이야기도 하시던데. 대체 파신교의 정체가 뭐예요?”

마찬가지로 아이템을 수거하던 파도가 내 말에 동작을 멈추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다만, 대충 짐작 가는 건 있어요. 제 짐작이라도 들어보시겠어요?”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들어두면 손해는 안 본다. 현운자와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파도는 파신교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아마 파신교는 사천왕 중 우두머리인 북방 비사문천을 섬기는 교단일 겁니다. 그건 방금 죽은 정향의 말이나 교주방의 벽화에 비사문천을 상징하는 석탑이 든 아라한이 있는 걸로 봐서 확실한 것 같고요. 두 분도 봐서 알겠지만, 사이비 교파인 것도 확실하죠. 그리고 이건 제 추리지만, 여기 파신교랑 삼 층에 나오는 야차들이랑 사이가 좋은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뭐랄까? 야차를 노예처럼 부리기엔 사 층의 몹들 수준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요. 겪어봐서 알겠지만, 주술 빼고는 사 층이나 삼 층의 철갑 야차나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잖아요? 물론 간부들은 제외지만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기 교주 방에 들어가면, 거의 의문이 풀릴 겁니다.”

“교주 방은 지금 실력으론 못 들어간다면서요?”

“하하. 그걸 제가 어찌 알고 있겠어요. 한번 들어가서 겪어봤으니까 하는 소리죠. 저 말고도 저 방에 공갈대사 님하고 개방의 이룡 님이 같이 들어가신 적이 있다던데, 그때는 우리랑 또 상황이 달랐다고 하더라고요. 일종의 랜덤 퀘스트라고 생각하시면 될 텐데, 알아본 바로는 상황이 두 가지입니다. 파신교 교주랑 싸우거나, 건달바왕이랑 싸우거나…….”

파도는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어떨 땐 교주만 혼자 우릴 맞을 때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건달바왕과 교주가 싸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할 때도 있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건달바왕의 대화부터 시작을 하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단다.

교주가 불법을 사칭하여 비사문천에게 어떤 작업을 건 듯하다. 그래서 비사문천을 구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교주를 응징하기 위해서인지 건달바왕이 직접 내려왔다는 것이다. 건달바왕과 교주의 싸움은 한참 계속되다가 결국은 건달바왕에게 파신교 교주가 제압을 당하고, 들어간 사람들은 그 건달바왕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주는 공갈대사와 개방의 이룡이라는 두 사람만으로도 잡을 수 있는데, 건달바왕은 그들도 결국 잡지 못하고 오히려 전멸했단다. 처음부터 건달바왕을 만난 파도와 일협 일행도 전멸해버렸고 말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교주나 건달바왕을 잡아야만 방문이 열린다니 도망도 못 간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방에 들어가면 교주가 나와서 살거나, 재수 없게 건달바왕에 걸려서 죽거나 반반의 확률이라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도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무식하진 않았다. 내심 교주까지 잡을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건달바왕을 지금 잡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어 보였다.

파티 사냥은 끝난 셈이어서 일단 그 자리에서 파신교 간부들을 잡고 나온 아이템을 분배하기로 했다. 간부들이 준 아이템은 교주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금열쇠 한 개와 사마외도들이나 쓸 법한 주술용 비급 4개였다. 간부 한 마리당 비급 한 개씩을 준 셈이었다.

“비급도 상점에다 팔면 천만 냥은 받을 수 있으니 싼 게 아니지만, 오늘은 영 수입이 별로네요. 일협이가 들고 있는 게 백야라는 칼인데, 저게 여기서 먹은 거거든요. 아마 족히 일억은 할 겁니다. 뭐, 어쨌든 이걸로 만족해야죠. 우리 둘이 잡을 때는 한 마리 잡고 도망가고 그런 식으로 고달프게 했는데, 두 분 덕택에 너무 쉽게 해결했습니다.”

이제 곧 헤어질 것처럼 파도가 아쉬움 섞인 말을 한다. 그런데 아이템 이야기를 하니,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런데 공갈대사 님이 교주 잡아서 뭐 드셨다고는 안 하시던가요?”

“음… 그때 뭐라더라? 혈정이라는 아이템하고, 최절정급 비급 하나랑, 또 뭐더라… 아! 환생단이라고, 체질을 처음으로 돌리는 환단 하나를 줬다고 합니다.”

혈정이라는 아이템은 뭔가 사악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두 아이템은 대단했다. 그리고 최절정비급보다 오히려 환생단의 가치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체질이 처음 상태로 돌아온다면 마공을 배운 사람도 무공을 잃지 않고, 정파의 무공을 다시 배울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얼굴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말이다. 체질이 꼬이면 캐릭터를 삭제할 수밖에 없는 강호에서 유일한 해결 수단인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광한테도 최고의 환단인 건가? 녀석들은 순 살인만 하고 잡다한 무공을 배워버리는 바람에 체질이 완전히 꼬여 버린 상태다. 지금이야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계속 강호를 하다 보면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난 잠시 생각을 해봤다. 건달바왕을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무리해서 잡았을 때의 이득을 말이다.

세 사람은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서 생각을 하자, 잠시 서서 기다려 주었다. 열심히 온갖 꼼수의 조합을 거듭하던 난 결국 한 가지 가능성을 찾아냈다.

“세 분, 건달바왕 한번 잡아보죠. 지금 당장은 아니고, 삼 일 후라면 해볼 만하겠네요.”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하게 바라보는 세 사람에게 나는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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