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귀향(歸鄕)
문파대전이 끝나고 난 더욱 바빠졌다. 하루라도 빨리 반야신공을 배우고 싶어,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강호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반야신공을 얻었을 때의 레벨은 275로, 수련 제한인 3백 레벨까지는 겨우 25레벨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2백일 때의 25와 275에서 25레벨은 그 차이를 비교할 수 없었다. 갈수록 레벨 업 속도가 더뎌졌기 때문에 3백에 도달하기까지는 비급을 얻고 나서도 2주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3백 레벨을 달성했다!
딱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사냥할 마음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고목문은 지겹고 또 지겨웠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이 자리에서 반야신공을 배우고 싶지만, 지금은 비급을 들고 있지 않았다. 사냥 중에 혹시라도 죽어서 흘리게 될까 봐 난주성의 전장에 맡겨 둔 상태였다. 문파 창고도 믿음이 안 갔기 때문이다.
“어여어여 가자꾸나!”
부리나케 난주성을 향해 달려갔다. 유운신법이 극성에 도달한 지 한참 됐기에, 몸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쏘아져 갔다.
바로 황금전장 난주분점에 들러 반야신공을 찾았다. 겨우 2주일 보관료로 무려 12만 냥이나 들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요파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문주 집무실로 뛰어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책을 펼쳤다.
[반야신공(般若神功)을 배우시겠습니까?]
“네!”
[3분간 운기 행공 상태에 들어갑니다. 공격을 당하면 주화입마에 빠집니다.]
절정의 무공은 역시 시작부터 뭔가 달랐다. 이건 분명 용이었다!
앞에 펼쳐진 비급에서 조그만 황금색 용이 튀어나오더니, 꿈틀꿈틀거리면서 조금씩 몸을 불려 갔다. 그 크기가 거의 3장은 될 정도로 거대해지자, 용은 마치 승천을 하듯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갑자기 용을 받치듯 하얀 구름이 흘러나왔고, 용의 몸뚱이에서 황금색 광채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황홀한 금빛 광채가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했다.
눈 아픈 빛을 발산하면서 녀석은 가부좌를 하고 있는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장난이라도 하는 듯 때론 입을 벌려 내 머리통을 베어 먹는 모습을 취하기도 하고, 꼬리를 살랑대며 그 거대한 몸으로 방 안을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신기루였던 것처럼 용이 픽, 하고 사라지며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반야신공을 배웠습니다.]
[체질이 천무지체로 변했습니다.]
[내공이 1,028 증가했습니다.]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지금 운기 행공을 하시겠습니까?]
‘어? 이건 또 뭐지? 절정의 경지가 무공 수준이 아니라 따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네!”
[10분간 운기 행공에 들어갑니다. 공격을 당하면 주화입마에 빠집니다.]
‘아니, 얼마나 대단하기에 십 분이나 움직이지 말라는 거냐!’
운기 행공에 걸리는 시간이 무려 10분이나 됐지만, 이번엔 아까와 같이 현란한 효과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눈에 좋다고 다 먹기 좋은 건 아니지.’
[축하합니다. 임독이맥이 타통됐습니다.]
[내공이 2배로 증가했습니다.]
컥! 2배? 2천도 아니고 2만도 아니고 2배!
내공 수치에 영향을 주는 지능 스탯에 꽤 많은 투자를 한 데다, 진결육합권과 그 전에 대성한 나한권은 원래 내공 증진 효과가 큰 무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내공에 그걸 2배로 뻥튀기해버렸으니… 갑자기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저리 가라 신세가 돼버린 건가?
“차라리 체력을 두 배로 뻥튀기해줬으면 좋았을걸. 여태 내공 달려서 특별히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고만. 뭐 하려고 그걸 올려 준다냐.”
뭐, 까짓 것 지금은 쓸모없겠지만 혹시 아나? 검강이나 이기어검술이라도 나오면 내공이 큰 위력을 발휘할지. 아니지, 나한텐 권강(拳쾝)이겠네. 그럼 이기어검술은 이기어권술인가? 그럼 주먹을 손목에서 분리해야 하잖아. 내가 무슨 태권브이도 아니고…….
닥치고, 대체 얼마나 바뀌었는지 봐야겠다.
“캐릭터창 오픈!”
[조연
신분:문주
호칭:없음
레벨:300
상태:정상
힘:92
지능:70(+5)
체질:91
근성:50
추가 능력:0
체력:16,734/16,734
내공:264,800/26,4800
명성:18,132]
“허, 내공이 이십육만이라… 무림맹 무사가 십만이던데, 이십육만이면 최절정급 수준하고 맞먹겠네.”
별 필요 없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많으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럼 체질은 또 어떻게 바뀌었나 봐야지? 무공 상태창 오픈!”
[무공 상태
-병기 숙련
권:12성 0.00% 검:2성 3.27%
-무공 숙련
육합권(진결):12성(現)
나한권:12성
삼재검:4성
내공심법:나한기공 12성(現)
내공심법:반야신공 1성
경공법:유운신법 12성(現)
보법:불영보 12성(現)
잡기:금나수 6성
잡기:철포삼 8성
잡기:지청술
잡기:진법(中), 사상검진 10
잡기:음공(中), 일성소
일격기:독사출동 5성
일격기:비룡재천 2성
일격기:팔방풍우 5성
일격기:태산압정 3성
일격기:선인지로 6성
일격기:원앙각 4성
일격기:이어타정 3성
일격기:이어번신 2성
일격기:나려타곤 2성
일격기:궁신탄형 4성
체질:천무지체(天武之體)
체질:불가(佛家), 양강지체(陽强)]
천무지체로 변했다고 하기에, 이전 체질이 사라진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일단 하늘이 내려 준 무골(武骨)이라는 뜻이니, 사냥하다 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겠지.
“그럼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건가?”
지금 소요파의 문파 레벨은 3. 난주의 지배력은 백 퍼센트다.
난주를 완전히 장악하고 나서 무위나 천수 같은 감숙성의 다른 도시를 공략할 생각도 했지만, 아직은 무리였다. 도시 자체는 난주보다 작지만, 캐릭터 첫 생성지인 난주보다는 그곳의 문파 레벨이 일반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그 도시들의 최강 문파 레벨은 6. 5레벨인 금사방에 그토록 고전했으니, 아무래도 6레벨 문파를 상대하는 건 지금은 불가능해 보였다.
문파 증축비는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었다. 난주의 문파들을 하나씩 멸문할 때마다 그쪽 문파 창고의 돈이 고스란히 소요파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냥을 하는 녀석들이 아니다 보니 겨우 세금 정도만 쌓아둔 수준으로 보였다.
하지만 금사방의 경우, 다른 문파들과의 레벨 차이를 넘어선 거액을 얻을 수 있었다. 무려 3억이었다. 다른 문파들의 경우 겨우 1, 2천 수준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해 안 될 정도로 큰 액수였다.
돈의 액수도 그렇고, 금사방이 먼저 선전포고를 하고 타 문파들과 연합으로 쳐들어왔던 걸로 봤을 때, 금사방이 난주 문파 연합의 우두머리였다는 인상이 짙었다.
소속된 작은 문파들이 금사방에게 세금을 갖다 바쳤다는 가정이 얼토당토만은 않으리라. 거느린 식구들이 두 번이나 당하니 대형 격인 금사방 입장에서 먼저 나선 형국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가정은 소요파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줬다. 정말로 지역 문파 연합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가 무위에 쳐들어갔을 때 일개 문파가 아닌, 그쪽 지역 무림계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식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림맹에 반드시 들러야 할 이유가 생겼다.
어쨌든 이제 내 고향 낙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문파 레벨 상승에 따라 생긴 1백 개나 되는 빈자리는 이미 다 주인을 찾아갔고, 문도들 간의 다툼은 알아서 간부들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미리 언질을 주었기에 별 탈 없을 것이다.
막 집무실을 나가려는 찰나, 잊고 있던 일 하나가 생각났다.
“아차차! 이제 절정무인이니까 무공 좀 풀기로 했었지!”
지금 문파 무공은 내가 등재한 나한권과 간부들이 등록한 매화검, 분광검, 복마검 이렇게 4개뿐이었다. 모두 공격 무공 일색이고, 경신법이나 내공심법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소소 누님과 각룡이 형은 소청심법을 대성한 상태고, 철대광이 주는 경공법인 비풍표를 대성한 문도들도 많았다. 보법도 소봉이가 개방의 취보를 대성한 상태이고 말이다.
하지만 문파 무공 등재는 좀 미뤄둔 상태였다. 일반 문도들과 간부진들이 최고 무공을 공유하는 건 문파 체계를 흩트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좋은 고급 무공을 간부진이 입수하기 전에는 12성 대성할 경우라도 무공을 풀지 말라고 했는데, 그 고급 무공을 어느 세월에 얻을지 점점 확신이 없어졌다.
강호가 서비스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 반년간 소요파 사람들 손에 들어온 절정무공은 이제야 2개. 예전 고목 존자를 잡고 백무가 가져간 금종조까지 합치면 확인된 절정무공은 겨우 3개였다. 더구나 고목 존자는 피독단이 없는 지금 상황에선 더 이상 잡을 수도 없고, 정추산도 마찬가지이니 다른 절정무공을 입수한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언제까지 시간을 끌면서 문도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할 순 없었고, 결국 합의를 봐야 했다. 내가 반야신공을 배우는 시점에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무공을 풀기로.
“총관! 이리 와봐!”
이제 월봉 20만 냥이나 되는 염소수염 총관이 잽싸게 뛰어왔다.
‘돈 많이 받을수록 동작이 빨라지나?’
“무공 등재 시작할게.”
“네. 어느 걸로 하시게요, 문주님?”
“잘 들어. 먼저 유운신법, 불영보, 나한기공 등재하고, 조건은 일 대 제자 이상으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호에서 무공을 배우는 방법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급을 구해서 익히는 것. 두 번째는 문파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문파가 아닌 사부를 모시는 법이다.
사부가 무공을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가진 무공을 12성 대성하면 그 무공이 비급의 형태로 행낭에 들어온다. 그건 사부가 배운 비급과 똑같은 무공이고, 그 비급을 제자 될 사람에게 주면 되는 형식이다. 그냥 줘도 되고 사승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데, 사승 관계를 맺으면 무공 증진 속도는 빨라지지만 사부가 가르쳐 준 무공만 배울 수 있었다. 먼 훗날 강호를 그때서야 시작하는 유저들이 먼저 시작한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문파에 무공 등록을 하기 위해선 12성 대성한 사람이 해당 비급을 문파에 제출해야 한다.
내가 3가지 비급을 건네자 총관이 날름 가져갔다.
[유운신법이 문파 무공으로 등록됐습니다(조건:일 대 제자).]
[불영보가 문파 무공으로 등록됐습니다(조건:일 대 제자).]
[나한기공이 문파 무공으로 등록됐습니다(조건:일 대 제자).]
“육합권 진결은 장로급 이상으로.”
“네.”
[육합권(진결)이 문파 무공으로 등록됐습니다(조건:장로).]
“그리고 일 대 제자 이상으로 해둔 나한권법, 분광검법은 이 대 제자로 수련 조건 바꾸고, 매화검법하고 복마검법은 그대로 일 대 제자로 유지.”
[나한권법의 수련 조건이 변경됐습니다(조건:이 대 제자).]
[분광검법의 수련 조건이 변경됐습니다(조건:이 대 제자).]
등재된 무공 수준은 사실 그만그만했지만, 일부러 차등을 두었다.
문파를 증축하면서 받아들인 신입 문도들은 이 대 제자로 하고 기존의 선배 문도들은 일 대 제자로 등급을 차별화시켰는데, 배우는 무공이 똑같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적어도 2달 정도는 이렇게 묶어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진결육합권은 내가 알고 있는 무공 중 가장 강하니 장로급으로 묶어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진결육합권을 수련한다고 해서 내가 쓰듯이 위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지금 등록한 나한기공을 배워서 불가 체질로 바꿔야 하는데, 그것도 이미 다른 계열의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다면 체질 변환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도들이 2백 레벨이 넘은 상황인데, 그 레벨이 되도록 양생도인술 같은 하급 내공심법만 익히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때문에 위력은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익혀 두면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끝이야. 그리고 돈 좀 인출해줘.”
“얼마나 찾으시려고요?”
‘음… 내 돈이라곤 이천오백만밖에 안 되고… 흑점 가는데 아무래도 요걸로는 부족하겠지? 어차피 문파에 쓸 일이니 조금 빼가도 상관없을 거야.’
“오천만 냥 인출해줘.”
[문파 창고에서 5천만 냥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정말로 채워놓을 거다! 물론 그 아이템 받은 사람들한테 돈 받아서 말이다.
한번 뒤처리를 시작하다 보니 해야 할 일 몇 가지가 더 생각났다.
간부들에게 무공 등재하라는 연락과 함께 2주 후에 전체 회합을 가지자고 전서구를 날렸다. 그동안 되도록 사냥만 하지 말고 감숙성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명령도 내리고 말이다.
난주 포청에도 들렀다. 현상 수배자 리스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현상 수배 게시판을 처음 봤을 땐, 나하곤 인연이 없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시했었다. 수배된 놈들을 잡으려면 사방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략 어느 성의 어느 지역이라고만 나오지, 특정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한마디로 운적인 요소가 많은 게 이 현상 수배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동안은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혹시 아는가? 가는 길에 노잣돈 보태줄 녀석을 만나게 될지. 강호 홈페이지에 운 좋게 몇백만 냥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글도 종종 올라오곤 했으니, 나도 한 번쯤은 그런 운이 찾아오길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다.
“흠… 좀 비싼 놈 없나? 어째 죄다 피라미들뿐이냐.”
유저들이 PK를 당하고 올려놓은 수배자 명단이나 NPC 상단에서 물건을 털어먹은 녀석들의 이름을 올려놓은 건 죄다 자잘한 금액들뿐이었다.
현상 수배 게시판은 중원 전역에 존재하는 관부에서 담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단 한 개의 게시판만으로도 강호 전체에서 등록되는 의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든 같은 정보를 본다는 건 이치상으론 좋은 일이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좋은 의뢰를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금액보다는 일단 감숙, 섬서, 하남성의 의뢰만 훑어보는 게 낫겠다.”
낙양까지는 이렇게 단 3개의 성만 지나가면 되니 그게 나았다.
수배범 의뢰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지만, 무턱대고 다 받을 수는 없었다. 10개의 등록만 받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내가 이 짓으로 밥 벌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냥 이 세 성(省)에서 제일 액수 많은 놈들만 다 끌어가야겠다. 그것도 NPC로만!’
현상 수배에 들어가 있다고 유저들을 마구 잡을 수는 없다. 내가 문파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낭인이라면 모를까, 대문파 사람을 잡았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유저들에 비하면 NPC가 상대적으로 액수가 많기도 했다. 의뢰자가 무슨 지부 대인에다가 거대상단의 상주, 심지어 왕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놈처럼.
[의뢰자:금릉왕 주오덕
수배자:무영신투
수배 내용:금릉왕부에 침입해 보물 창고 약탈.
수배 내용:황금산장 정주 지부, 오호대상단도 동일한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음.
수배 내용:정주, 장사, 무창 등지에서 부호와 관아를 약탈하고 다니는 극악한 도둑.
출몰지:중원 전 지역
난이도:특급 중간
보수:은자 1억 냥]
중원 전 지역이 출몰지라니 잘하면 만날 가능성도 있겠다. 난이도가 맘에 걸리긴 하지만, 만나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설정한 것 같으니 그리 문제 될 것 같지는 않고… 일단 이놈 낙찰!
그렇게 대충 눈에 띄는 NPC들 중에서 맘에 드는 이름으로 10명을 다 채웠다. 무슨 오마독수니 혈수색광이니 하는 애들로.
준비 완료다! 그럼 이제 신나게 달려 볼까!
“시전! 유운신법!”
슝-
* * *
처음 낙양에서 난주까지 왔을 땐 사흘이나 걸렸지만, 유운신법이 대성한 지금은 겨우 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가용 운전하고 온 기분이랄까?
반년 만에 찾은 고향이건만, 내 기억 속의 낙양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온 것처럼 생경함만이 가득했다.
“금창약 팝니다! 화타고 팔아요. 소량 대량 팝니다!”
“뇌격검 팝니다. 혈조 팔아요!”
“천잠보의 구합니다. 천잠보의 액수만 불러주세요! 일억이든 십억이든 무조건 삽니다!”
이 동네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일반 유저가 1억, 10억을 저리 쉽게 외치는 걸까? 그리고 천잠보의라면 흔히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최강의 방어구 아닌가? 저렇게 구한다고 외치는 걸 보니, 그런 절정기보가 벌써 풀렸단 말인가?
“각종 무공서 팝니다! 흑점보다 더 싸게 팝니다! 일단 와서 구경하세요!”
허허,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흑점은 더 이상 신비 단체도 아니네. 일단 저 상인의 물품이나 봐야겠다.
[금전표 님의 노점
매화장법:1백만 냥
오행권법:1백2십만 냥
분광검법:5백만 냥
삼재검(진결):1천5백만 냥
오호단문도법:4백만 냥]
엄청난 가격을 보니 말이 안 나온다. 대충 보아하니 매화장과 오행권은 이류쯤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각파의 독문무공이었다.
그런데 진결삼재검을 노점에서 판다? 흑점보다 싸다는 말은 흑점에서 나온 아이템이 아니란 말인데……. 그렇다면 무식하게 조자건처럼 삼재검을 12성 대성한 사람이 비급을 팔았단 소리인가?
그리고 오호단문도법이라면 하북팽가의 독문무공이고 분광검법이라면 점창의 독문무공인데, 그걸 어떻게 구했을까? 분명 강호에서 독문무공은 몹 잡아서 나오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내가 얻은 반야신공도 소림의 비전절기이기는 하지만, 그건 성격이 다르다. 정추산은 몹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목문이라는 문파가 사냥터의 성격이라면, 금사방은 뭐랄까? 일종의 소림의 속가문파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소림의 속가제자 정추산이 반야신공을 준다 해도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꼭 속가제자가 아니라 소림의 반도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더구나 이제 정추산은 강호에 더 이상 출현하지 못하는 NPC.
아니지, 아니야! 꼭 몹을 잡아서 저 비급들을 구했다고 생각할 순 없다. 모든 무공은 12성 대성하면 수련자에겐 바로 똑같은 무공이 비급 형태로 행낭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점창의 제자가, 그리고 하북팽가의 제자가 돈 때문에 저 비급을 팔았다면 말이 된다.
“저기, 금전표 님!”
“네! 말씀하세요.”
“진결삼재검이 좀 비싼 게 아닌가 해서요.”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요즘 없어서 못 파는 게 진결삼재검인 줄 아시는 분이. 이 밑으론 팔 생각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시죠!”
살짝 찔러봤는데 꿈쩍도 안 한다. 이 사람 말투로 봐서는 정말 인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 한 번만 더 찔러보고 가야겠다.
“근데 진결육합권은 구할 수 없나요? 그거라면 어떻게 돈이 될 것도 같은데.”
“허허, 이 사람 아주 시세에 깡통이구만? 육합권은 삼재검 시세보다 무조건 알파 오백 더 줘야 돼요.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참.”
“에고… 그동안 사냥만 해서 겨우 고급 무공 살 돈을 만들어왔는데, 너무 많이 부족하네요. 제가 배운 게 권법이라서 진결육합권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무리 그래봤자 삼재검 살 돈도 안 되는데 육합권을 구하실 순 없을 겁니다. 그냥 열심히 더 사냥해서 액수 맞춰 구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뭐 그래봤자 그땐 시세가 또 올라가 있을 게 뻔하지만.”
“금전표 님, 제가 듣기론 삼재검이나 육합권이나 무공 수준은 비슷한 걸로 들었는데, 왜 그리 차이가 나는 건가요?”
노점 주인은 자꾸 물어보는 날 짜증난다는 듯이 째려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자넨 고전 경제학의 기본도 모르나? 없으면 비싸고, 많으면 싸지는 게 당연하지! 벽력권 배운 사람은 넘쳐나고, 육합권 대성하는 사람은 없으니 당연한 거 아냐? 소림에서 육합권을 가르친다 해도, 그걸 누가 계속 배우고 있겠어? 좀 배우다가 나한권 배우고, 금강권으로 넘어가지. 더구나 육합권 한 번 대성하는 시간이면 나한권 대성을 세 번이나 이루고도 남을 텐데 말이야. 삼재검이 물론 육합권보다야 못하지 않지. 하지만 하남에서 검법을 배운 사람이 권사들 절반도 안 되니 어쩌겠나? 황금충 조연이가 서버 초기에 벽력권만 안 풀었어도 이런 불균형은 없었을 텐데. 실컷 돈만 벌어먹고 사태를 이렇게 만들어놓다니. 욕먹어도 싼 놈이야.”
어허! 잘나가다가 왜 내 이름을 들먹거리는 건지. 벽력권에 혹해서 얼씨구나 권법만 배운 놈들 잘못을 왜 내 탓으로 돌리는 겨?
어쨌든 까탈스러운 노점 주인 덕택에 대충이나마 분위기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사람도 저렇게 비싼 아이템을 팔고 있다면 상당한 부자겠는걸? 말하는 투로 봐서는 장사꾼 같은데, 아무래도 오픈 초기부터 장사로 먹고산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낙양 분위기는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흑점부터 찾아갔다.
간신히 옛 기억을 더듬어 월향루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 흑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지, 월향루엔 유저들 몇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이, 형씨! 처음 보는데 어디서 왔소?”
뭐지?
갑자기 웬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그건 왜요? 그리고 형씨가 뭡니까? 초면에 그렇게 불러도 되나요?”
“아!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고. 근데 어디서 왔소?”
“그게 댁하고 무슨 상관이죠? 흑점에 볼일이 있어서 왔소만!”
“바로 주방으로 가는 거 보니까 누구한테 정보 입수해서 온 것 같은데… 흑점 처음 와보는 거 아닌가?”
이 자식이 자꾸 왜 이래? 말하는 것도 싸가지 없고.
상대할 가치도 없어서 녀석을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두 녀석이 흑점으로 가는 주방 뒷문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아이, X팔! 짜증나는구먼. 너희들 뭐야? 나 초짜 아니니까 본론만 얘기해봐.”
슬슬 짜증나던 참이라 놈들의 양아치 짓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놈들은 갑작스런 내 욕에 살짝 안색이 변했다.
‘제발 먼저 공격해라. 실컷 밟아주게.’
어차피 놈들을 죽여 봤자 카오도 되지 않고, 관병한테 쫓기지도 않는다. 또 그까짓 명성 조금 떨어진다고 움츠릴 정도로 바보도 아니다. 다만, 남의 동네 와서 사고쳐선 안 된다는 현실 속의 경험이 날 제약했다.
“쩝. 왠지 잘못 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말해주죠. 흑점은 소림과 개방에서 공동 관리합니다. 보아하니 예전에 몇 번 출입하신 거 같은데, 그사이에 규칙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협조 좀 해주시죠? 우리가 알아들을 정도로만 밝혀 주시면 출입시켜 드리겠지만, 아니라면 강호 이대문파 전체와 싸우셔야 할 겁니다.”
놈이 전과는 사뭇 다른 어조로 입을 놀렸다.
‘참 나, 기가 막히는구먼. 이 자식들부터 일단 다 죽여 놓고 시작해?’
지금이야 아이디를 숨긴 상태지만, 사망자는 자기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디가 밝혀진다고 해서 후환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애들 몇 잡았다고, 설마하니 감숙성까지 쳐들어오겠는가? 내가 문주라서 알고 있는데 보통은 피곤해서 그 짓 안 한다.
하지만 짜증난 기분과 달리 머리는 귀찮음을 피하려고 했나 보다.
“나 조연이야. 황금룡 조연. 그럼 됐나?”
“윽!”
일단 신분을 밝히긴 했지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당분간 낙양에서 머물러야 할 텐데 어떤 귀찮음이 찾아들지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낙양에 있는 강호 유저들 중에서 날 모르면 간첩이나 다름없다. 녀석들도 내 이름은 들어봤는지 막던 길을 열고 선선히 물러났다.
난 두 녀석이 길을 열자마자 흑점으로 가는 통로인 주방 뒷문을 열어젖혔다. 낯익은 좁다란 골목길이 쭉 뻗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조연 님.”
간만에 찾은 흑점의 지배인은 마치 이전부터 날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인사를 건넸다.
설마 아직도 강호 인공지능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어라? 아직도 당빈 님이 맡고 계신가요?”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강호 인공지능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은 GM 역할로 있는 것뿐입니다. 여기 낙양하고 사천의 성도 두 곳의 흑점에만 GM이 상주하고 있는 상황이죠. 유저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일종의 GM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참 오랜만입니다.”
“용케도 아직 절 기억하고 계시네요. 기억력이 대단하세요.”
“첫 손님을 기억 못하면 안 되죠. 조연 님 가시고 나서 두 번째 손님이 얼마 만에 찾아왔는지 아십니까? 무려 넉 달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가 없는 일이죠.”
“네. 그때 제가 좀 빠르긴 했죠. 여기 찾는 것도 운이 좀 있었구요. 하여간 오늘은 잠깐 구경 온 거니까 신경 써주실 필요 없어요. 좀 이따가 정보 의뢰할 게 몇 개 있으니, 그때 다시 봅시다.”
“네, 그럼 천천히 둘러보세요.”
건조한 NPC를 상대할 것 같았는데, 안면이 있는 사람이 아직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사려고 마음먹은 물품은 미리 결정해두었다. 흑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무공 서적은 어차피 그게 그거였기에, 한눈팔지 않고 필요한 물품을 검색해가기 시작했다.
처음 흑점을 찾았을 때 들었던 대로, 물가 인상률에 따라 가격이 많이 상승한 상태였다.
3백만이던 진결육합권이 9백만이나 됐고, 다른 대문파의 기본 무공도 그 정도 가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2백만이던 장백설삼이 6백만인 걸로 봐서, 모든 아이템이 얼추 3배쯤 상승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진결육합권이 9백만이라는 건 아까 노점 주인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잖아? 분명 그 사람은 흑점보다 싼 가격이라고 광고하면서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말해준 육합권의 시세는 2천만 냥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에 내 앞을 막았던 녀석들 패거리가 무려 1천1백만 냥이나 되는 시세 차익을 꿀꺽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정말 어딜 가나 담합과 독점이 횡행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흑점을 통제하는 놈들과 마찰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 주머니 사정이 급하다. 그저 몇 가지 아이템만 구입하려던 생각을 접고, 잠깐 용돈이나마 벌어볼까 싶어 진결육합권 5권을 구입했다.
놈들 눈에 안 띄게 몰래 팔아먹으면 별일 없겠지.
그러고 나니 겨우 5백만 냥이 남았다. 이것도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흑점 낙양 분타주인 당빈과의 정보 의뢰에 얼마나 들어갈지는 모를 일이었다.
정보를 파는 방은 전과 다름없이 달랑 탁자 하나에 의자 2개뿐인 그 상태 그대로였다.
돈 좀 벌었으면 인테리어에 신경 좀 쓰지.
“용건은 다 보셨나요?”
의자에 앉자마자 당빈이 맞은편 의자에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네, 덕분에요. 그런데 새 물건이 없네요? 다 예전에 봤던 물건들뿐이고.”
“흑점에서 모든 물품을 취급할 수는 없으니까요. 본점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긴 아마 갱신되고 있을 겁니다. 다루는 물품이 몇 개 안 된다고 들었으니까요.”
“본점 위치를 알려 주실 순 없겠죠?”
“저도 거기가 어딘지는 모릅니다.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의뢰할 내용이 무엇인가요?”
사실 그만그만한 아이템을 파는 분점이 아닌, 절세기보들을 판다는 흑점 본점의 존재 이유도 모르겠다. 게임의 밸런스를 파괴할 것이 분명한데, 도대체 왜 만들어졌을까? 단순히 아이템을 파는 상점의 개념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런 식의 질문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먼저 하남과 사천의 무림 정세를 알고 싶습니다.”
“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세력 구도를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천과 하남의 대강의 유저 수, 그리고 랭킹 십 위 안에 들어 있는 사천당문과 무당파, 소림의 랭킹 포인트 정도면 되겠네요. 그리고 랭킹 포인트를 알려 주실 수 있다면, 사황성과 마교 것도 함께요.”
“유저 수는 별로 어려운 게 아니네요. 그건 강호 팬 사이트에만 가도 유저들이 조사한 걸 볼 수 있으니까요. 그 건은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그냥 알려 드리죠. 강호 전체 저녁 시간대 평균 동시 접속자 수는 구십사만 명이고, 그중 하남이 삼십이만 명, 사천은 이십오만 명 정도 됩니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의 동시 접속자 수는 겨우 50만 명 정도였는데, 그 사이에 배나 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강호 유저들이 어떻게 그 통계를 냈을까? 다른 게임들과 달리 강호는 접속자를 알 수 있는 명령어가 없는데 말이다. 설마 일일이 다 세고 다녔을 리는 없고… 아니지, 한국 게이머들이라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지.
“타 문파의 랭킹 산출은 흑점과 개방의 고유 권한입니다. 다만 강호 랭킹 게시판의 기준은 개방 기준이고, 흑점은 좀 다른 방식으로 적용을 합니다만, 어떤 방식으로 듣길 원하나요?”
“그 차이가 뭔가요?”
“흑점이 좀 더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죠. 개방은 단순히 각 캐릭터들의 등급을 더한 수준이고, 흑점에선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를 가정해 시뮬레이션 결과를 알려 드립니다. 포인트가 아니라 상대적인 승률을 알려 드린다는 말입니다. 조연 님이니깐 말씀드리는데, 개방식의 결과를 원하시면 개방 사람을 만나서 듣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그 거지 놈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건 머리에 총 맞은 이후일 것이다. 더구나 그런 무의미한 숫자 따위를 알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었다.
“흑점식으로 말씀해주세요. 기준은 소요파로 잡지요.”
“그렇게 하지요. 당문, 무당파, 소림파, 사황성, 마교였죠? 의뢰비는 한 문파당 백만 냥입니다. 이것도 조연 님이니 싸게 해드리는 겁니다.”
당빈은 그렇게 말하고 한쪽 눈을 살짝 찡긋했다. 마치 내가 5백만 냥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직접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는 듯, 당빈은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 때, 드디어 결과가 나온 듯 당빈이 날 돌아보며 말했다.
“다 나왔습니다. 보고서는 행낭으로 넣어드리지요.”
[당빈 님으로부터 ‘흑점 보고서 #0000A7’을 받았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기준:소요파(3,219점)
대상:당문(98,887점) 1:58
대상:무당파(138,125점) 1:61
대상:소림파(112,413점) 1:60
대상:마교(995,312점) 1:664
대상:사황성(382,775점) 1:97]
문파 옆에 적인 점수는 문파 랭킹 게시판의 순위를 결정하는 포인트 같았고, 그 옆에 적힌 숫자는 소요파와 상대 문파의 전력 차를 나타내는 비율 같았다.
당빈이 기다리건 말건 난 꼼꼼히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마교는 기본 점수보다 거의 2배 이상의 전력 차를 나타냈고, 사황성은 정반대였다. 소림파가 무당파보다 못한 것도 그렇고, 당문은 상대적으로 소요파에게 힘든 상대로 나왔다.
어쨌든 2가지는 확실했다. 마교는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것과 사황성이 그렇게 무서운 상대는 아니라는 것.
“결과가 마음에 드시나요?”
가만히 있기가 심심했던지 당빈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맘에 들고 말고가 있나요. 그냥 재미로 뽑아본 건데요. 그런데 보아하니 가중치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상식적인 수준의 가중치라고 생각하세요. 각 문파 무공의 상성, 문주의 능력 비교, 뭐 그런 정도죠. 그럼 다른 의뢰가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빈은 내가 더 이상 의뢰할 돈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나가려고 했다.
“당빈 님! 잠깐만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당빈이 뒤돌아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의뢰는 아니고, 다음에 의뢰비를 준비해야 할지 물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네, 그 정도라면 상관없습니다. 물어볼 게 뭔가요?”
“제가 육합권 진결을 십이 성 대성한 상태거든요. 그리고 육합권 심결을 얻었는데, 도무지 수련 조건을 알 수가 없네요. 어디 마땅히 물어볼 만한 데가 없어서 그러는데, 혹시 흑점에서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사실, 이게 내가 낙양에 돌아온 이유고, 흑점을 찾아온 이유였다. 절정무공인 반야신공도 수련 제한 조건이 표시돼 있는데, 이놈의 심결육합권은 도무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흠… 그건 돈 안 받고 알려 드릴게요. 사실, 설명 드리기가 애매하고 복잡합니다. 원래는 퀘스트 형식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적용 시기가 아직은 빠르다고 판단해서 봉인된 상태구요. 알다시피 진결이 일반적인 일류보다 강력하고, 심결도 일반 절정무공보다 강하잖습니까. 밸런스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해서 아직은 묶어든 상태인 거죠. 지금 절정무공이 몇 개 풀린 상태인 걸로 아는데, 개발팀에서는 백 명 정도를 봉인의 마지노선으로 잡아둔 상태입니다. 뭐 조만간 풀리겠네요. 아마 지금 유저들의 속도라면 한두 달 안에 심결 무공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더 물어볼 게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지요, 조연 님.”
당빈은 뭐가 그리 바쁜지 황급히 사라졌다.
어쨌든 지금 배울 수는 없지만, 가닥이 잡혀서 한시름 놓게 됐다.
그나저나 당빈 말대로라면, 혼자 강해져 봤자 개발진한테 미움만 받는단 소리인가?
수중에 돈이라곤 은자 몇 냥뿐이니, 더 눌러앉아 있어봤자 내 꼴만 비참해질 뿐이다. 나는 바로 흑점을 나왔다.
그렇게 좁은 골목길을 다시 통과해 월향루에 들어설 때였다. 아까 날 제지했던 녀석들이 소매에 태극 문양이 선명히 찍힌 무당파 도사를 협박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