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장. 결전 초야 (10/62)

제10장. 결전 초야

[SARAH CATCHED. IN HANG ZHOU]

“드디어 잡혔네요.”

“돌려 봐.”

탁탁탁-

“기루에서 잡담하는데요? 그런데 그새 또 이미지가 바뀌었네요.”

“휴! 정말이지 저놈 때문에 신경 쓰여서 못해먹겠네. 열흘이나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와선 기루에서 놀아? 허허.”

“정말 이대로 계속 둬도 될까요? 이렇게 풀린 상태가 아니라 블록된 상태라면 블록만 깔끔하게 지워버리면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잖습니까. 왜 상부에서 보고만 있으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자넨 신경 끄고 계속 지켜나 봐. 우리 눈엔 충분해 보여도 상부에선 아직 맘에 안 드나 보지.”

* * *

난주와 무위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 경공을 써서 달리니 대략 4시간 만에 올 수 있었다.

난주 소요파.

소요장 정문에 들어서자 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저 NPC 문도들은 왜 있는 거야?

“문주님이다!”

“아! 안녕하세요, 문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워요, 문주님!”

낯익은 문도들이 나를 알아보고는 두서없이 인사들을 했다. 순식간에 문도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문파의 대장이 오셨는데도 저기 구석에서 잡담하는 여자들은 모냐.

가볍게 째려보고 있자니 여자들이 움찔하는 게 보인다. 무시하는 척하면서도 주시하고 있었나 보다.

자세히 보니 그중 한 명이 낯익었다.

“은소소 씨~ 잠깐 이리 와보시죠!”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줘야 할 사람이 머무적대면서 마지못해 온다. 죄졌나?

“어! 연이 왔어? 오랜만이네? 반가워! 헤헤~”

약 먹었나?

“누님, 갑자기 왜 그래? 아깐 무시하려고 애쓰더니만 이제 와서 반가운 척을 하고 난리야?”

“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래! 얘들아, 이리 와봐!”

은소소가 문주를 보고도 모른 체하던 여인네들을 불렀다. 하나, 둘… 다섯이나 되네.

“인사들 해. 소요파 문주님이셔.”

여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소소 누님은 이렇게 인사할 거면서 아까는 왜 모른 척했지? 아이고, 이 정신 사나운 아줌마한텐 신경 끄자.

“일단 다들 안으로 들어갑시다.”

소요장에는 큰 건물이 세 곳 있었는데, 좌우의 건물은 아직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았고, 우리가 들어간 정면의 가장 큰 건물이 소요파의 취의청(聚議廳)이었다.

취의청 안에도 일단의 무리들이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에 부문주인 각룡이 형의 모습도 보였다.

스물 남짓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일제히 고함을 지르듯이 인사를 해오는데, 왠지 바깥에서 인사 받은 느낌과는 달랐다. 조폭의 보스가 된 기분이랄까?

이쪽 사람들은 낯익은 얼굴보다 낯선 얼굴이 월등히 많았다. 각룡이 형을 통해 가입한 문도들 같았다.

“왔냐? 급히 소집하느라 힘들었다. 아직 도착 못한 사람도 몇 있고. 그나저나 도대체 어디에 있었기에 전서구도 못 받은 거야?”

듬직한 각룡이 형을 보니 반갑다. 아직 문도들이 서먹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된 건 형의 역량이 뛰어나서겠지.

“그 얘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아직 못 온 사람이 몇이나 돼요?”

“음, 보자……. 한 대여섯쯤 되네. 아직 소봉이도 도착 못했고.”

소봉이라… 이 녀석 나 없이도 잘 크고 있었을라나?

얼굴 못 본 지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얼마나 컸을지 궁금해진다.

“지금 어디래요?”

“육반산에서 사냥하다가 출발했으니 곧 올 거야.”

“연이 형! 보고 싶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육소봉이 취의청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호랑이처럼은 안 보이는데…….

“어, 그래. 오랜만이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 올 사람들은 다 왔으니 회의를 시작하자.”

일단 간부진들을 내 앞으로 오게 해 소개를 하고, 모두 자기소개를 갖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문도의 소개가 끝나고 바로 각룡이 형이 먼저 발제를 시작했다.

“부문주입니다. 사냥하느라 바쁠 텐데 모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곳 감숙의 최대 단체는 광풍단입니다. 백무 님이 단주를 맞고 계시죠. 그런데 사흘 전에 광풍단이 해체를 하고, 감숙맹이라고 문파를 만들었습니다.”

한숨이 새나온다. 감숙맹이라……. 이름부터 너무 오만하다. 한 산에 호랑이 둘은 필요 없다는 식이었다.

형이 계속 말을 이었다.

“광풍단이 설립한 문파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와의 충돌은 뻔히 예상됩니다. 전쟁이 언제부터 돌입될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최근에 광풍단의 움직임을 볼 때 길어야 열흘 안에 시작될 것 같습니다.”

문파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리에 주위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지금 우리 소요파의 문파 레벨이 이 단계이고, 아마 감숙맹은 일 단계일 겁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일 단계에선 NPC 문도 포함 쉰 명이 최대 인원이고, 우리는 백 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이 차이가 의미가 없겠죠. 아직 우리는 쉰 명도 채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백 명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상황은 현재 이렇습니다. 지금부턴 문주님이 말을 하시지요.”

잘 설명해주고는 월권을 행사 안 하려 배려해주는 각룡이 형이 더욱 미더워진다.

그나저나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낙양에서 경매하던 때가 생각나네. 흐흐흐.

“에… 소요파에 가입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파가 설립됐다고 해서 바로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지금 광풍단, 전 감숙맹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소요파에선 광풍단의 문파명을 부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광풍단에서 과연 우리 소요파만큼의 고급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기껏해야 사파 무공인 혈랑검법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광풍단의 숫자는 백 명, 혹은 그 이상일 겁니다. 광풍 단주는 문파 인원수 제한 따위는 무시하고도 남을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숫자상으론 그렇다고 해도, 전력은 우리가 훨씬 더 뛰어납니다. 광풍 단주나 간부급은 우리 소요파의 장로 이상 간부들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또한 오랜 낭인 세월로 전투 감각을 익힌 우리 문도들이라면 잦은 사망으로 능력치가 망가진 광풍 단원쯤이야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적의 전력은 낮추고 아군의 전력은 높이는 게 지휘관의 능력이지. 크큭.

“그러나! 다만, 우리에게 부족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집단 전투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훈련을 앞으로 사흘 동안 가지게 될 겁니다. 미리 마음가짐을 철저히 하시고, 낙오자가 없었으면 합니다. 싸움 없이 천하제일 문파가 될 순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문도원들을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로 회의를 마쳤다.

“현재 문파 전쟁은 일주일에 단 하루, 일요일에만 허용됩니다. 사흘 후, 이번 일요일, 광풍단과의 전쟁에 돌입하겠습니다.”

상의도 없이 멋대로 날짜를 잡긴 했지만, 전쟁 수행에선 지휘관의 판단이 중요하다. 문파 운영이라면 조언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일반 문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간부진만 취의청 내의 문주 집무실로 들어갔다.

간만에 보는 총관이 인사를 건네왔다. 가볍게 무시해주고 옛 멤버들끼리 미처 못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 임의로 날짜 정한 거에 대해 불만이 있으신가요?”

간부들끼리 의견 통합이 안 되면 이후 차질이 생긴다.

각룡이 형은 전혀 불만이 없다고 힘을 실어주었고, 소봉이와 소소 누님은 역시나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럼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훈련 장소는 어디쯤이 좋을까요? 혈랑 곡주는 지금 우리가 잡기엔 너무 수준이 떨어지니 비풍단주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어때요?”

예전 등격리 사막 주변에서 레벨 업을 하면서 잡던 비풍단들의 우두머리 위치는 이미 감숙 무림계에 공개된 상태였다.

“흠… 좀 버겁긴 하겠지만, 그 정도가 적당할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좀 힘들어야 실전 감각도 생기겠지. 난 찬성이다.”

“그럼 또 달리 말씀하실 거 있나요?”

“아, 연아! 네가 꼭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광풍단 숫자가 백이십이 조금 안 되는 정도로 알고 있거든. 그런데 살펴보니까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유저들이 안 보여. 게임을 그만둔 건지, 아니면 광풍단에서 벗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오십이나 되는 인원들이 광풍단에 가입도 못한 상태인데도 그쪽에 계속 있는 걸로 봐서는 조만간 문파 등급도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오늘내일 그럴 수도 있고.”

“후우…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돈을 얻었는지 궁금하네요. 보스 몬스터 사냥한 걸로는 도저히 충당할 수 없을 테고, 예전 제가 돈 벌 때처럼 무공서 시세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여간 일단 적의 숫자가 최대 백이십 정도라고 생각해두는 편이 좋겠네요. 거기다가 백무라면 그 이상도 동원할 수 있을지 모르죠. 일단 모자란 인원은 급한 대로 NPC로 채워야겠습니다.”

모두들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한참 동안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회의를 마쳤다.

“형! 잠깐만요.”

회의가 끝나 집무실을 나가려는 각룡이 형을 급히 불러 세웠다.

“왜?”

“소소 누님 왜 저래요? 왠지 절 피하는 눈치던데요. 꼭 죄라도 지은 것처럼 굴더라구요. 뭐 아는 거 없어요?”

“크크큭! 하하하!”

“아니, 왜 웃어요?”

형이 한참을 정신없이 웃다가 간신히 웃음을 참고는 대답해주었다.

“야야, 크큭… 이거 아까 말해줬어야 하는데 깜빡했네. 너도 봤지? 여자 다섯 명.”

“네. 그 사람들도 좀 이상하대요.”

“그 사람들 소요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네? 무슨 소리예요?”

“누님이 자기도 호위 무사가 필요하다고, 전부터 알던 애들 억지로 끌고 온 거야. 처음엔 좀 도망가려던 눈치였는데, 고급 무공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지금 완전히 눌러앉은 상태다. 그래도 자기들끼리만 놀지 다른 사람들하곤 잘 얘기도 못해. 누님이 호위 무사는 말이 없어야 한다고 한참 세뇌시켰다니깐. 크큭.”

“참 나. 아니, 뭔 호위 무사? 그게 왜 필요해요! 그리고 누님은 문파원 가입도 못 받는데. 형이 말렸어야지, 거기에 동참해버리면 어떡해요! 대충 보니깐 레벨도 한참 낮은 것 같던데.”

“야! 말 마라. 얼마나 들들 볶아대던지. 그리고 나도 부문주 되고 보니 호위 무사라고 두 명 할당시켜 주데? 써보니깐 재밌더라. 하하하. 누님이 그거 보더니만 눈 뒤집혀서 달려드는데 어떡하냐. 너도 알잖아. 말 안 통하는 아줌마란 거.”

미치겠네, 정말. 아까 인사도 안 하는 걸로 봐서는 문주인 내 말보다 자기 말이 우선이라고 세뇌 작업도 다 끝낸 것 같다. 무공은 문파 무공을 거저 배우고, 레벨은 평균에서 한참 처지고. 거기다가 그 사람들 받느라 다른 사람 5명 받을 기회도 뺏긴 거잖아. 그렇다고 이미 문파로 들어온 사람을 쫓아 보낼 수도 없고. 에고, 머리야.

그나저나 이 정도로 끝나면 좋겠는데, 또 무슨 분란을 만들는지 걱정된다. 그래도 시커먼 사내들만 있는 곳에 여자들 몇이라도 있는 게 나은 건가?

다음 날.

비풍단주는 청랑채의 철대광보다 더 센 걸로 알려져 있었다. 세기는 더 센데, 주는 아이템은 보잘것없다. 돈이 좀 될 것 같은 보석류와 중급의 경공이나 보법을 주는데, 그것도 낭인 무공서라 효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숙에서 경신 무공서를 얻는다는 건 정말 힘들어서, 최근에는 유저들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 가끔씩 사냥을 하곤 했다.

난주에서 5시간이나 걸려 전 문도원들이 비풍단주의 소굴, 이곳 육반산과 등격리 사막이 만나는 지역에 모였다.

주위엔 사냥터도 마을도 없어서, 소요파 외에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각 조 교대!”

“벌려!”

“창수(槍手)!”

“막아!”

지금 우린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냥에 앞서 연습 중이다. 대강의 요령은 어제 부문주인 각룡이 형과 상의했고, 형이 지금 문도들을 조련 중이었다.

아직 정돈되지 못한 움직임이지만, 다들 파티 사냥엔 도가 튼 낭인들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움직여 줬다.

나는 이번 사냥을 함께할 생각이 없다. 실제 광풍단과의 싸움에서도 내가 전면에서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 문주가 죽으면 문파대전은 바로 종료되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사흘간의 훈련이나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빠질 생각도 없다. 현실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 이제 신안(神眼) 수련이나 해볼까?”

소요파에 도착하기 전에 신안을 시전해봤지만, 회피력과 공격 명중률이 조금 상승한 것 빼고는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이름으로 봐서는 최절정급 스킬 같은데 말이다.

“시전! 신안!”

[신안이 발동됐습니다. 회피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공격 명중률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신안은 작용 시간도 없고, 재사용 대기 시간도 없다. 내공 소모도 극히 미미한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다. 이렇게 효과가 좋은 스킬인데도 난 이걸 계속 꺼둔 채로 있었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이 신안을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들도 항상 켜 두는 미친 짓은 하지 않으리라.

신안이 발동되면 타인이 이상하게 보인다. 뭉그러져 보이는 사람도 있고, 키가 조금 커 보이거나 작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색깔의 오러 같은 걸로 덧씌워진다. 파란색, 빨간색, 흰색 등등. 그 정도만 돼도 참을 수 있는데, 이 오러가 불꽃처럼 살아서 날름거리는 것이다. 오색찬란한 원색의 불꽃들이 사방에서 춤을 춰댄다. 눈 아프고 정신이 멍해진다.

골 때리는 스킬이긴 하지만, 중요한 결전을 앞에 두고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분명 이 현상엔 어떤 비밀이 있을 테니까. 괴로워도 어서 빨리 스킬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 그럼 연습은 그만 하고,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각룡이 형이 외치자 문도들이 비풍단주 앞으로 이동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갔다. 미리 정해둔 대로 소환무사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댈 곳이 있다는 생각은 훈련을 나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안을 통해 본 비풍단주는 커다란 붉은색의 오러를 뿜어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호위 10명의 오러 크기가 일반 문도들 수준인 데 반해, 거의 절반 이상은 더 커 보였다. 아마도 오러의 크기가 무공의 수준을 말해주는 듯했다.

사실 그만그만한 실력의 유저들만 모여 있는 소요파에서 오러의 크기로 무공 수준을 가늠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비풍단주 덕에 신안의 비밀 하나는 알아낸 건가? 흐흐. 그러고 보니 저 누님 호위들의 오러는 참… 보기 안쓰럽네.

“시작한다! 준비된 대로만 하자고! 하나, 둘, 셋!”

계획된 대로 잘돼야 할 텐데.

각룡이 경공을 발휘해서 순식간에 뛰쳐나갔다. 10명의 문도들이 약속대로 그 뒤를 따랐다. 그 시간차는 거의 칼 한 번 휘두를 정도로 극히 짧았다.

팍!

엄청난 소리가 진동을 했다. 형이 비풍단주를 맡는 사이, 10명의 문도가 제각각 정해둔 타깃을 차례대로 가격했다.

스팟! 콱! 챙!

소봉이와 누님도 제각각 호위 한 명씩을 맡은 게 보였다.

10여 초 정도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나머지 문도들이 일제히 호위들에게 달려들었다.

사실, 비풍단주 호위들의 수준은 일반 문도보다 약간 나은 상태로, 소봉이와 비슷한 실력이었다. 그런 마당에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칼질을 해대니 순식간에 호위들은 깨끗이 청소가 됐다.

첫 일격을 먹이고 각룡이 형은 연신 보법만 사용하면서 회피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 넣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 보법인데도 벌써 저렇게 능숙하게 사용할 정도로 수련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막 사람들이 비풍단주를 둘러싸려고 하는데, 갑자기 신안을 통해 본 비풍단주의 붉은색 오러가 커지기 시작했다. 우웅, 소리 같은 환청마저 들리는 듯하다.

파파팟!

“막아!”

비풍단주의 손이 품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뇌전 같은 속도로 엽전을 뿌렸다. 필살기 투심전(投深錢)이다. 비풍단주가 뿌린 엽전에 맞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뒤로 빠지고, 다른 사람들이 진퇴를 못하게 길을 막았다.

우리가 준비한 게 이 진형이었다. 강한 공격력을 가진 사람들이 3명씩 순서대로 어그로를 먹고 투심전에 맞아준다. 문도들의 무공 수준은 비슷하지만, 공격력과 체력이 강한 사람이 있는 반면, 회피와 변화가 좋은 사람들이 있다. 무공의 성질이 이처럼 다르기에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체력이 낮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이류 상급의 무공 실력이라 하더라도, 투심전 한 방에 바로 아웃이다.

또 다른 3명이 강력한 공격을 먹이고 어그로를 뺏어오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공격을 했다.

그때, 비풍단주의 오러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투심전입니다! 준비하세요!”

아까의 경험이 있어서 내가 미리 소리쳐 주었다. 말을 끝내자마자 투심전이 전개되었고, 격중된 3명은 후위로 빠졌다.

이후로도 3번의 투심전을 이런 식으로 막아내니 비풍단주의 오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조금씩 약해져 가는 게 보였다. 오러의 크기는 변동이 없었지만 살아 숨 쉴 듯 꿈틀대던 활력이 사라져 간다고 할까? 결국 불꽃이 더 이상 태울 것 없다는 듯 완전히 멈추자, 비풍단주가 뭐라고 중얼거리고선 쓰러졌다.

“야호!”

“우아!”

너무 손쉽게 보스급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듯 곳곳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낭인들의 파티라 해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비풍단주지만, 눈치 보기와 몸 사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젠 왜 문파에 들어야 하는지, 그것도 유저들이 세운 문파가 얼마나 강한 위력이 있는지 확실히 이해가 될 것이다.

비풍단주가 떨군 아이템은 소문대로 보잘것없었다. 비풍표(飛風飄)라는 경공과 취옥(翠玉)이라는 보석이 전부였다.

비풍단주가 다시 출현하는 4시간 동안 비무를 하도록 시켰다. 이곳은 사냥감도 없는 곳이었고, 그렇다고 접속을 끊는 것보단 비무라도 해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였다.

강호에서는 일대일 비무뿐만 아니라 다대다 비무도 지원하고 있었다. 다대다 비무의 경우는 특별한 유흥거리가 없는 강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놀이였다.

집단전의 관건은 일점집중(一點執中)에 달려 있다. 한시라도 빨리 적을 아웃시켜야 숫자의 우위를 계속 지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일점집중 식의 싸움만 한다면 문파대전에서 피해가 너무 커진다. 한쪽이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상대방도 똑같은 대응을 할 것이고, 비무와는 달리 사망 페널티가 적용되는 문파대전에서 이런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싸움은 서로 망하는 길이다. 때문에 방어진을 구축해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운기를 할 수 있는 공간과 퇴로를 확보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

지시한 대로 문도들이 20명씩 짝을 지어 비무를 시작했다. 각룡이 형이 한쪽 대장을 하고 다른 한쪽은 소소 누님이 맡았다.

처음엔 작전이고 뭐고 필요 없는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매번 전투가 끝날 때마다 조언을 해주었더니 곧 집단 전투의 요령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바로 전장에서 이탈하세요! 항상 동료의 퇴로 확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포위되면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도망가는 적을 쫓지 마세요! 개별 행동은 절대 금지입니다! 공격은 항상 주위 사람과 같이 하세요. 공격받는 사람은 방어에만 신경 쓰세요. 그렇게 묶어두면 공격은 동료들이 해줍니다!”

고래고래 요령을 외치지만, 꼭 몇몇 사람이 튀는 행동을 한다.

“거기 날보라 님하고 가을무렵 님, 동료하고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개별 행동해서 포위당하면, 님들만 손해가 아니라 소요파 전체의 손해입니다. 절정 고수도 이류 무사들한테 포위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안 좋은 소리는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할 소리는 해야지.

두어 시간이 지나자 잠시 휴식을 가졌다.

다들 피곤해서 널브러져 있는데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몇몇은 만만한 상대를 골라 일대일 비무를 하고 있었다.

비무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각룡이 형과 한판 붙고 싶어졌다.

비무 신청을 하러 형 쪽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문도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아! 저게 삼재검이라니!”

“자건 님 최고다! 삼재검으로. 하하하하!”

조자건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문도가 삼재검으로 혈랑검법을 사용하는 소소 누님을 압박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무위에서 받은 그 사람이었다.

삼재검의 투로는 몇 개 되지도 않고 그나마 있는 초식도 단순, 투박하기 그지없는 삼류 무공이었다. 어떻게 보면 육합권보다 더 수준이 떨어지는 무공이다. 그런 무공으로 그럭저럭 고급 무공 소리를 듣는 혈랑검법을 저렇게 파훼할 수 있다니, 신기함을 넘어서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눈이 아파서 조련할 때 꺼두었던 신안을 다시 발동시켰다.

신안을 통해 본 조자건과 은소소의 모습은 전과는 달랐다. 소소 누님이 매화검을 배우고 난 이후로는 약간 푸른색의 오러를 띄었는데, 지금은 붉은색의 오러로 바뀐 상태였다. 조자건의 오러도 여태 문도들에게 볼 수 없었던 짙은 푸른색의 오러였다. 짙은 푸른색이라면 소요파의 장로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도가의 고급 무공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누님이 매화검을 사용할 때와 지금 혈랑검법을 시전할 때 오러의 색이 바뀐 건 왜 그럴까? 체질이 아니라 그때그때 무공에 따라서 오러의 색깔이 바뀐다는 건가?

결국 비무는 조자건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만약 소소 누님이 12대성한 매화검을 사용했다면 반대의 결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깡패 누님이 다시 조자건에게 재비무를 신청했고, 선선히 응한 조자건을 처절하게 밟아버렸다. 저 성깔을 어이할꼬.

비무를 끝낸 조자건을 조용히 불렀다.

“자건 님, 비무 재밌게 봤습니다. 대단하시던데요.”

“대단하기는요. 은소소 님이 더 대단하시죠.”

“소소 누님이야 운 좋게 좋은 무공서를 먼저 배웠을 뿐이죠. 그리고 그 매화검도 이젠 모든 문도들이 다 배울 수 있게 됐으니까, 금방 따라잡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매화검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혹시 좀 전에 자건 님이 사용하신 무공이 삼재검 진결이 아닌가요?”

조자건을 부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낙양의 흑점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공서, 삼재검 진결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말이다.

“역시 문주님 안목이 대단하시네요. 진결삼재검이 맞습니다.”

“실례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익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제가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냐면, 제가 육합권 진결을 배워봤기 때문이에요. 뭐랄까… 같은 문파에서 이런 희귀한 무공을 지닌 사람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너무 반가워서 그럽니다.”

“아! 육합권에도 진결이 존재했군요. 하하. 저도 저랑 비슷한 길을 문주님이 가고 계시다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배우게 된 거야 특별할 것도 없어요. 줄창 삼재검만 쓰니까 저절로 진결 비급이 들어오더라구요. 좀 한심하긴 했죠. 남들은 고급은 아니어도 그래도 쓸 만한 낭인 무공을 배우는데, 전 삼류도 못 되는 무공을 붙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전에 무위에서 문주님께 참응도법을 배웠다고 한 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배우긴 했죠. 일 성짜리 무공이라서 문제지. 하하.”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조자건이 맘에 들었다.

“아닙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삼재검 배운다고 말 못하는 자건 님 처지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나저나, 진결삼재검이라면 매화검보다 더 좋은 무공일 텐데……. 자건 님, 혹시 그 삼재검을 문파 무공으로 등록시킬 생각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진결삼재검이 소요파에 도움이 될까요? 도움이 된다면야 그러고 싶습니다만, 지금 겨우 삼 성밖에 안 되거든요. 위력이 갈수록 나아진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무공 숙련치 올리는 게 너무 더뎌서요. 이거 십이 성 대성할 때쯤이면 더 좋은 무공들이 차고 넘칠 것 같은데요.”

다행이다.

“아, 그건 심각하게 생각 안 하셔도 돼요. 삼재검이 원래 무당파 무공이니까 무당파 심법을 배우시면 훨씬 빨리 대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따가 문파로 돌아가면 무당의 태청심법을 제가 드릴게요. 자건 님은 다른 무공은 굳이 배우실 필요 없이 진결삼재검만 수련하세요.”

태청심법도 별로 중요하지 않고, 솔직히 진결삼재검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한 사람의 문도가 소요파와 끈끈한 관계를 이루어가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조자건에게 이후로 스탯을 어떻게 찍고, 어떤 무공들을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물론 진결의 끝에는 심결이라는 무공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사흘 후.

어제 난주 지부 대인에게 문파대전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하고 24시간이 지나면, 상대 문파원들에게 무한 PK가 가능해진다. 아마 기습 공격을 막기 위해 이 대기 시간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문파대전 중에는 사망 페널티가 일반 사망에 비해 적었다. 레벨만 1레벨 하락하고, 무공 숙련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또 죽더라도 아이템을 흘리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박 터지게 맘껏 싸우라는 시스템이었다.

감숙의 패권을 놓고 거대 문파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소문을 들은 구경꾼들이 사방에서 난주로 몰려왔다. 한산했던 난주의 거리가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광풍단과는 공성전도, 게릴라전도 아닌 정면 승부를 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장소는 난주성 북문 외곽. 외로이 키 작은 나무 몇 그루만 지키고 있는 황량한 들판인 참마평(斬馬坪)이었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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