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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문도를 받다 (7/62)

제7장. 문도를 받다

사망에 따른 페널티, 6시간 동안의 재접속 금지 덕분에 어제는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 가끔씩 게임이 피곤할 때 죽어주는 것도 좋은 걸까?

강호 컨트롤러에 몸을 뉘고 게임 고글을 쓰자, 여느 때처럼 하얀 빛이 몸을 감싸온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오랜만입니다, 문주님.”

어라? 우리의 몸값 비싼 총관님이네? 죽고 나면 문파에서 다시 시작하는 건가? 그럼 운남이나 광동에서 문파로 걸어오기 귀찮으면 죽어버리는 게 낫겠군.

에고, 이런 한심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캐릭터창 오픈!”

[조연

신분:문주

호칭:없음

레벨:105

상태:정상

힘:13

지능:50(+5)

체질:12

근성:30

추가 능력:0

체력:2,605/2,605

내공:5,680/5,680

명성:2,700]

스탯은 정확히 10레벨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버렸다. 거기에다 명성마저 10퍼센트나 떨어져 버렸다.

명성은 올리기도 힘든데. 아이고!

“무공 상태창 오픈!”

[무공 상태

-병기 숙련

권:7성 13.11% 검:1성 7.27%

-무공 숙련

육합권(진결):9성(現)

나한권:10성

삼재검:1성

내공심법:나한기공 5성(現)

경공법:유운신법 1성(現)

보법:불영보 4성(現)

잡기:금나수 1성

잡기:지청술

잡기:진법(中), 사상검진 2

잡기:음공(中)

체질:불가(佛家), 양강지체(陽强之體)]

무공 숙련치도 많이 떨어졌다. 10성이던 육합권은 9성, 유운신법과 삼재검도 마찬가지로 1성 떨어졌다. 다행히 나한권과 사상검진, 불영보는 죽기 직전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잡기들이 그대로인 것이다. 잡기 무공서는 정말 구하기 힘들다. 흑점을 일주일간 줄곧 다녀서 저 정도라도 배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병기 숙련도가 조금 떨어졌다.

그래도 능력치 하락이 생각만큼 심각하진 않았다. 남들에게야 고급 무공인 육합권이 10성에서 9성으로 떨어졌다면 일주일은 다시 해야 복구될 정도지만, 내겐 길어야 이틀이면 됐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걸 확인해볼 차례다.

“소지품창 오픈!”

눈앞에 내가 메고 다니는 행낭의 물건들이 들어왔다. 평소에 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다니는 편이 아니라 몇 개 없었다. 며칠 동안 강시와 시체 사냥하면서 먹었던 잡다한 아이템도 눈에 보이고, 흠… 문주신패도 그대로 있고, 제일 중요한 무림맹 무사들 임대권도 그대로 있었다.

듣기에는 사망하면 무조건 3개는 땅에 떨어뜨린다는데, 도대체 뭘 떨어뜨린 거지? 어라? 그러고 보니 돈주머니가 없네. 끙… 그래도 달랑 30만 냥 정도만 들고 다녔으니 신경 끄자. 돈이야 맘만 먹으면 버는 거니. 에고, 그러고 보니 내 유일한 무기인 흑문도 사라졌네. 그것도 돈 주면 바로 구입하니 상관없고.

나머지 한 개는 대체 뭐냐? 각종 약들도 그대로 있는데 말이야. 내가 뭘 깜빡하고 있는 걸까? 뭘까, 뭘까… 아이고, 모르겠다. 일단 나가자구!

총관에게 새로 호위무사들을 배치받고, 필요한 몇 가지 물건들을 챙겨 소요장을 나왔다. 물론 여비도 운영 자금에서 인출하고 말이다. 문파 돈은 다 내 돈이었다.

“일단 전서구를 날려 볼까?”

전서구는 친구 등록이 된 사람들에게만 보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있다면 10분,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면 시간이 더 걸린다.

전서구를 사용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난주성에 들어가 상방에서 전서구를 산 다음에 은소소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전서구가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20분이 지루했다. 지나가는 유저들도 구경하고, 상인들을 골려먹기도 하면서 난주 중심가로 걸어갔다.

파다닥.

[은소소 님으로부터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소지품창을 열어 편지를 읽어보니, 포매향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포매향이라면 잘 알지!

포매향 앞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저번에 왔을 때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는데, 그사이 난주에서 시작하는 유저들이 늘기라도 한 건가?

약간 의아해하면서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각룡이 형과 소소 누님이 탁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광풍단주 백무와 함께.

“아! 각룡이 형, 소소 누님, 간만입니다. 광풍단주님도 오랜만이네요.”

“아, 네. 꽤 오랜만이네요. 저승 구경은 재미있었나요?”

이 친구 유머를 아네? 근데 쬐끔 기분이 나빠진다.

“야, 멍청아. 남들은 다 멀쩡한데 왜 혼자 죽고 난리야! 그렇게 죽고 싶으면 다음부턴 이 누님한테 말만 해. 으이구, 이 한심한 녀석아!”

소소 누님은 역시나 나를 갈군다.

“수고했다. 너 죽고 나서 떨어진 경험치 다 복구할 때까지 밀어줄 테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흑흑. 착한 각룡이 형. 소소 누님이랑 너무 비교된다.

일단 나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백무가 말을 꺼냈다.

“일단,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조연 님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큰 공헌자인 조연 님이 희생되셨으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조연 님이 죽고 나서 떨어뜨린 소지품은 각룡 형님한테 맡겼으니까 찾아가시고요, 제가 이 자리에 온 건 고목 존자에게서 나온 아이템 분배 때문입니다. 일단 살펴보세요.”

백무의 말이 끝나자 각룡이 형이 떨어뜨렸다던 내 물건을 건네줬다. 돈주머니랑 흑문. 그런데 2개뿐이다. 죽으면 3개라고 하지 않았나? 흐흐흐, 역시 난 축복받은 캐릭터였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네.

백무가 자기 행낭에서 꺼내놓은 아이템은 꽤 많았다. 절정급 무공서인 금강조(金剛爪), 고급 무공서인 무영각(無影脚), 잡기에 속하는 철포삼(鐵布衫)과 용독술(上), 그리고 환혼신단(還魂神丹)이라는 절세영약 2개.

잡기 비급은 구하기도 힘든데 그중에서도 상급이라면 가장 귀한 아이템은 저 용독술(上)이라는 비급일 테다. 그에 버금가는 아이템은 체력 5할을 즉시 회복시켜 주는 환혼신단이고.

가만히 살펴보면서 처음 보는 아이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백무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일단 저희 광풍단 자체적으로 의견을 모아봤는데, 저한테 전적으로 맡긴다는 확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지금 여섯 개의 아이템 중에 세 개는 조연 님 파티가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필요하시다면 한 개 정도는 더 양보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권도 먼저 드리겠습니다.”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백무 말대로 내가 아니었으면 고목존자를 해치우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백무의 광풍단이 없었다면 우리가 고목 존자를 이길 수 있었을까? 사실, 상황은 서로 똑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백무는 상당히 양보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일단, 각룡이 형하고 소소 누님의 의견도 듣고 싶네요.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서요.”

“난 네 생각대로 하마. 사실, 우리가 한 게 뭐 있어야지.”

각룡이 형의 말에 소소 누님도 동의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세 가지 물건만 가져가지요. 대신 제가 먼저 선택을 하겠습니다. 용독술하고 철포삼, 환혼신단을 주세요.”

셋 모두 내 선택에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이없긴, 이게 가장 확실한 선택이다.

용독술이나 철포삼은 잡기라서 비급을 구하기가 힘들다. 그 구하기 힘든 비급이 고목문에서 나온 이유도 고목문이 정상적인 무림 문파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앞으로 고목문을 정벌하려면 까마득한 세월이 지나야 가능할 테니 이 비급들의 희귀성은 무시못할 것이다.

절정 무공이라고 해봐야 언제든 구할 수 있다. 더구나 금강조, 무영각은 이름만 척 들어봐도 불가 계열의 무공이다. 그것도 소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마도 고목문 설립자 중 한 명인 남소림의 땡중이 남긴 비급이겠지. 그렇다면 낭인들에 불과한 광풍단에 넘겨줘도 별 상관이 없다.

“알겠습니다. 가져가세요.”

내가 물건들을 취하자, 백무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난 각룡 형하고 소소 누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누님, 제 말 잘 들어주세요. 이 아이템 분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세 가지 다 갖겠습니다.”

흐흐흐. 이런 말을 듣고도 각룡이 형은 무표정한 얼굴이다. 하여간 대단해. 반면, 소소 누님은 고운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그래도 욕이 안 나오는 게 신기하네?

“물론 날로 먹겠다는 건 아니죠. 더 좋은 물건으로 드리겠습니다. 하하.”

“뭔데? 더 좋은 거 아니면 죽을 줄 알어.”

소소 누님은 욕심쟁이.

“전에 사냥할 때 보니까 두 분 모두 내공심법이 양생도인술 같던데, 맞지요?”

“그래, 맞아. 내공심법은 무관이나 서점에서 구할 수도 없고, 쓸 만한 건 모두 대문파의 독문무공이지. 그렇다고 이미 다른 무공을 배워버린 상태로는 공동파 같은 대문파에 들어갈 수도 없고. 내가 알기로는 난주 낭인들 중에 고급 내공심법을 익힌 사람은 아직 없다.”

“네, 저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건 단지 난주 무림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죠. 다만 난주 무림은 좀 더 심한 편일 뿐이죠. 제가 두 분께 드리겠다는 건 그 내공심법입니다. 곤륜의 고급 내공심법인 소청심법입니다. 거기에 보너스로 검법서 한 가지를 얹어드리죠. 화산의 매화검법까지요.”

“흠, 잠시만. 연아, 잠시만… 생각 좀 하자.”

각룡이 형은 뭘 더 생각하겠다는 거지? 이 정도면 파격의 수준도 뛰어넘는 제의라구.

“좋아. 받긴 받겠다. 솔직히 우리가 받기엔 너무 좋은 무공들이다. 나도 고목 존자를 잡고 나온 절정 무공보다 지금 네가 주겠다는 수준 떨어지는 무공들이 사실은 더 좋다는 것 정도는 안다. 조연아, 하지만 말이다. 상대방의 호의가 받는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란다. 지금 네 행동이 그렇다. 구대문파의 제자가 아니면 습득할 수 없는 그 독문 무공들을 누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을 수 있겠냐. 난 네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슨 의도인지가 더 궁금할 뿐이다. 말할 수 없다면 그 무공도, 그리고 고목 존자의 무공도 필요 없다.”

호의를 이렇게 받아들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니, 솔직히 내 욕심이 컸다. 내가 익히지 못했던 잡기를 보고 혹해서 나에겐 별로 필요 없는 무공서와 바꾸려고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못돼먹은 생각이었다.

“휴우… 일단은 각룡이 형,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잘못이 크네요. 제 생각만 한 것 같습니다. 에고,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하나……. 사실 저… 그 황금충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가슴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놀라기를 기대했는데, 형이나 누님 모두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다. 아직 강호가 시작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네가 보여 준 능력이라면 그 사람밖에 없을 거라고 미리 짐작은 하고 있었다. 좋아. 그 한마디로 네 정체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우리에게 잘해주는 거냐? 네가 NPC를 이용해서 우리 레벨 업을 도와준 것도 그렇고, 이렇게 좋은 무공 비급을 건네주는 것도 그렇고.”

헉! 우리 형님들의 정체도 알고 있었단 말이야? 내 연기력이 하늘에 닿을 정도라서 속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길. 저 양반들 연기력은 나보다 더하다. 아닌가? 소소 누님은 전혀 몰랐었나? 저 멍한 얼굴은 뭐냐!

이미 각룡이 형한테 모든 걸 드러내고 들켜 버린 마당에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실토할 수밖에. 어차피 내가 말해야 할 일,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각룡이 형, 소소 누님과 한참을 이야기하자 서로에 대한 의문점도 많이 풀렸다. 비밀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형과 누님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비밀을 이야기하자 그들도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에게서 난주 무림과 얽힌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하고 웃고 떠들다 보니, 이제야말로 동료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각룡이 형이 새로 배운 무공의 효과를 보자며 다시 사냥을 가자고 일어섰다.

그렇게 사냥을 가기 위해 포매향을 나서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조연 님!”

백무였다. 그런데 여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나? 설마 객잔 안의 내용을 들은 건 아니겠지(객잔 안의 대화는 각각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만 공유된다. 그 당시 나는 몰랐다)? 찔끔하면서 백무를 바라봤다.

“잠시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그러면서 백무가 나를 끌고 구석진 곳으로 갔다. 나는 대체 뭔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백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엔 깜박하고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제가 조연 님이 죽고 나서 떨군 소지품 하나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동행하신 분들과는 별로 친해 보이지도 않고 해서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것 이해 바랍니다. 자, 이제 드리지요.”

백무가 웃으면서 아이템 하나를 손에 쥐고 내게 보여 줬다. 제기랄.

무사 임대권과 더불어 가장 남에게 보이기 싫었던 아이템이었다. 아니, 무사 임대권보다 더 확실하게 내 정체를 드러내는 아이템이었다.

[흑점:낙양 분점 출입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안심하세요.”

왜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날 배려하는 걸까? 아니면 자기 입이 무겁다는 걸 드러내려고 하는 걸까?

그저 아무 말 없이 백무가 또 무슨 소릴 하나 기다렸다. 한참을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는 나를 보고 결국 백무가 먼저 침묵을 풀었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죠. 처음엔 이게 뭘까 생각을 좀 했죠. 뭐, 생각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저도 흑점이 어떤 곳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요. 조연 님이 낙양에서 이곳 난주까지 못 오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가져가세요.”

백무가 다시 흑점 출입패를 내 앞으로 건넸고, 난 흑점패를 집어서 행낭에 넣었다. 하남성에 갈 수 없는 백무의 입장에선 흑점패가 필요 없었을 게다.

그래서 다시 돌려준 건가? 아니지, 필요가 없더라도 가지고 있을 순 있다. 따지고 보면 절정급 무공 비급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이니까.

그가 말하는 어투로 봐서 가치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럼 자신이 흑점패를 몰래 횡령했다는 의심을 받기 싫다는 뜻밖에 없는가? 그는 그게 두려웠다는 말인가? 왜?

이젠 내가 말을 할 차례인가 보다.

“일단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누군지는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달리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광풍단주님?”

궁금한 점이 많을 텐데도 질문이 없는 백무의 모습은 미심쩍었다.

“하하, 이거 못 당하겠군요. 괜히 강호팔룡 앞에서 주름잡은 격이네요. 맞습니다. 그 아이템은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따로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드리지요.”

역시 1백 명의 수장답게 심기가 보통이 아닌 사람이었다. 불리하면 금세 분위기를 돌리는 말솜씨라니. 근데 뭔 강호팔룡? 내가 그거야? 벌레에서 용으로 승격된 건가? 누군지 고맙네.

“우선, 묻고 싶군요. 낙양의 일인자셨던 황금용 조연 님께서 왜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난주로 오셨는지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야 제가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금충에서 황금용이라……. 띄워주는 건지,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승격이 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별 이유야 없습니다. 제가 돈을 많이 벌게 된 건, 오픈 베타의 혼란 속에서 우연찮게 기연을 좀 얻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그 기연을 다시 얻기도 힘들고요. 금방 백무 님이 건네주신 흑점패가 바로 그 기연입니다. 덕분에 한몫하게 도와주긴 했습니다만, 흑점 분점의 물건은 언제나 그대로더군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다른 곳으로 떠나서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밖에요. 아! 다른 곳에 흑점 아이템을 파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하남 무림인들에게 약속을 해버린 입장이라 그것도 좀 양심에 걸렸습니다. 솔직히 노후를 보내기에 이렇게 사람 없는 난주 빼고 다른 곳이 더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사기란 9할의 진실에 1할의 거짓을 보태야 한다고 했다. 사실, 지금 내가 말한 것 중에 1할의 거짓이 무엇인지 나도 잘 구분이 안 간다. 그런 마당에 백무 따위가 어찌 내 심중을 짐작할 수 있을까?

“네. 솔직히 말씀드려서 조금 실망스럽네요. 비록 초창기일지라도 한때나마 강호팔룡이라는 칭호를 들으셨던 분께서 벌써 은퇴를 결심한 상태라니요. 전 조연 님께서 다른 야망을 가지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터무니없었나 봅니다. 이미 끝나버렸네요. 안타깝습니다. 그럼 앞으로 가끔 보면 즐겁게나마 인사라도 나누는 사이가 됐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즐거웠습니다.”

뭐라고 심각하게 중얼거리던 백무는 경공을 시전해서 가버렸다.

왠지, 뭐랄까? 바람맞은 느낌이랄까? 난 저 녀석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영 찝찝하다. 아차! 나머지 강호칠룡이 어떤 놈들인지 물어봐야 하는데!!

백무와 이야기를 마치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사냥을 하러 갔다. 병기점에서 청강검 2자루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부턴 떨어진 내 경험치도 복구하고, 두 사람에게 완전히 새로운 무공을 숙련시켜야 했다.

몇 주 만에 만나니 되살아난 시체들도 반가웠다. 우리는 고목문의 강시보다 시체를 잡기로 결정했다. 아직 1성밖에 안 되는 매화검법으로 강시를 잡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일단 자리를 잡고, 급히 오느라 아직 배우지 못한 비급들을 읽었다. 우선 형과 누님이 가부좌를 틀고 무공을 배우고, 나는 호법을 서주었다.

나도 철포삼을 배웠다. 용독술(上)은 먼저 용독술(中)급을 배워야 익힐 수 있기에, 행낭에 보관만 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매화검법을 처음 보았다. 사실, 제대로 된 검법을 견식한 건 누님의 혈랑검법밖에 없었다.

매화검법은 중원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화산의 기운을 담아서인지 투박한 찌르기와 세기가 위협적이었다. 화산의 기본 검공이라는 매화검이 이 정도라면 이후 단계인 이십팔수, 사십팔수, 그리고 화산파 최고 무공이라는 매화칠절검은 어느 정도일까?

누님의 매화검을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나도 철포삼의 효능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전! 철포삼!”

[외문기공이 발동되었습니다. 방어력이 10퍼센트 향상됩니다. 재사용하려면 30분 남았습니다.]

철포삼은 짐작대로 방어력을 올려 주는 기술이었다. 속으로는 패시브 스킬이길 기대했지만, 역시 잡기들은 모두 액티브 스킬인가 보다. 그래도 재사용 시간이 짧다는 것과, 검진과 병행할 수 있다는 걸로 보아 그럭저럭 좋은 기술인 것 같다.

역시 철포삼 같은 외문기공에 비해 검진이 확실히 좋긴 좋구나.

진법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법이라는 잡기를 배우고, 각 진법의 수준에 맞는 비급을 구해야 한다. 즉, 사상검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진법(下)를 배우고 다시 진법(中)을 배워야 사상검진을 운용할 수 있다. 그 진법마저도 중급을 배우려면 지능 스탯이 50이나 필요했으니, 어쩌면 지금 강호에서 사상검진 같은 중급 검진을 발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철포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 소소 누님과 각룡이 형은 마음껏 검법을 펼쳐 본 모양이었다. 이제는 소청심법을 시험하고 있었다.

운기하는 모습은 나의 나한기공이나, 예전의 양생도인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양생도인술의 하얀 기가 이제는 옅은 푸른색 기류로 바뀌었다는 점만 조금 다를 뿐이었다.

확실히 성능이 좋아진 내공심법이라서 그런지 운기는 전에 비해 금방 끝이 났다. 왠지 내 나한기공보다 짧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음에 들어요?”

“응.”

“너무 맘에 든다. 고맙다, 연아.”

둘 다 마음에 든다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이제 어떤 결정을 내리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아까 객잔에서 결정했어야 하는데, 이거 모양새가 더 우스워진 것 같네. 어차피 게임을 계속하려면 문파에 몸이 매일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이미 결정은 해뒀다. 소요파에 가입하겠다.”

“나도 연 동생 같은 사람이 문주라면 환영이야. 뭐 이제는 돈도 얼마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직 우리 같은 서민들은 생각지도 못할 액수 아니겠어? 난 절대 찬성이야. 열심히 콩고물만 던져 줘. 호호호.”

이 아줌마… 원래 본색이야 알고 있었지만 나보다 더 밝히네. 하여간 일단락을 짓게 돼서 다행이다.

“그럼 문파 가입을 받기 전에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말씀드릴게요. 우선, 소요파는 정파를 지향합니다. 이후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정파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타 문도에 대한 PK는 제 허락 없이는 절대 불가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그냥 자리를 피하고 제게 상의하십시오. 이 게임은 절대 녹록하지 않아요. 문파의 일개 제자들 싸움이 수백, 수천이 죽어 나가는 싸움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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