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황금충 (4/62)

제4장. 황금충

“들어가십시오.”

보초인 듯한 사내의 말을 뒤로하고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엔 유민(流民)들이나 살 만한 허름한 움막이었다.

짐작대로 움막은 그저 또 다른 장소를 위한 입구 역할일 뿐이었다. 움막에 들어서자 지하를 향해 계단이 뻗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계단은 길었다. 숭산 소림의 계단이 인간의 번뇌만큼이나 길다면, 이 흑점의 계단은 인간의 탐욕만큼이나 길다고 해야 할까?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낙양 흑점 분점의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복면인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니, 처음이군요. 이렇게 손님을 맞아보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토록 빨리 흑점의 존재를 알아차린 유저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 일단 소개를 드리지요. 흑점 낙양 분점을 책임지고 있는 당빈입니다.”

“예. 일단 반갑군요.”

예의상의 답변을 해주고 난 후, 난 잠시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저 NPC는 NPC가 말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은 간단했다.

“먼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당빈 님은 혹시 NPC가 아니라, GM(Game Manager)이십니까?”

“하하, 역시 최초로 흑점에 오실 만한 분이군요. 네, 맞습니다. 전 NPC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게임 매니저도 아닙니다.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라서 이렇게 임시로 흑점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빨리 흑점에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저 조연 님의 강호 적응 속도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역시 NPC가 아니라 IGM의 직원이었다.

“굳이 그렇게 제 능력에 대해서 확인시켜 주시지 않아도 압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볼 게 있습니다. 방금 당빈 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후의 흑점 관리를 다른 사람이 맡게 된다는 것인데… 강호의 메인 프로세서가 맡습니까, 아니면 따로 GM들이 관리합니까?”

“음… 뭐라 달리 드릴 말씀이 없네요. 회사 기밀에 관한 부분이라서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상용화가 되고 난 이후로는 조연 님이 이곳 흑점에서 절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전 그저 임시직일 뿐이니까요. 이후에 컴퓨터가 담당할지, 아니면 다른 운영자가 맡을지는 지금으로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밀이라……. 그래, 흑점이 게임의 밸런스를 해칠 만큼 위험한 시스템이긴 하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니야. 하지만 어쩌지? 난 이미 힌트를 얻었는데 말이야. 바로 사람이 직접 관리를 맡을 정도로 흑점 시스템의 위험성을 개발사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에게 담당시켜야 될지 고민할 정도로 강호 메인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렇게 인공지능이 뛰어나고 또 진화하는 시스템이라면, 앞으로 강호가 얼마나 대단하게 변모할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지 않겠어?

“어쨌든 NPC가 아니라니까 말하기에 훨씬 편안하네요. 이후로도 컴퓨터가 담당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차피 흑점에 올 만한 사람들은 별로 되지 않잖아요?”

“물론 그렇기야 합니다만, 음… 이것도 기밀이긴 하지만, 굳이 말씀드리지 못할 말도 아니지요. IGM은 유저들이 법에 저촉되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게임 내용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거든요.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죠.”

뜬금없는 이야기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도 아니었다. 당빈은 내가 흑점의 아이템으로 폭리를 취하고 현거래를 할까 봐 미리 겁을 주는 것이다.

“굳이 이야기를 더 길게 끌 만한 이유도 없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당빈 님, 흑점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기본적으로 모든 흑점 고객들은 설명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답니다. 그럼 설명을 해드리지요.”

역시 강호는 따로 설명서 따위가 필요 없는 게임인 건가?

“흑점은 강호 최고의 보안을 유지합니다. 이미 흑점에 출입할 수 있게 된 조연 님 같으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시겠죠. 하지만 하남성의 흑점 출입이 그렇게 어려운 편도 아니랍니다. 이곳보다 더 극악한 지역도 많고, 심지어 흑점이 없는 지역도 있으니까요.”

하긴 월향루 주방의 쪽문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을 뿐이지, 별로 세지도 않은 산적 두목에게서 흑점패를 얻는다는 설정은 하남성으로선 특혜라고 볼 수도 있겠지.

“흑점에서는 물건을 살 수도, 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가격은 임의 책정 방식입니다. 과거에 어떤 물건이 얼마의 가격에 팔렸는가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지금의 물가, 그리고 흑점만의 가산치에 따라 책정합니다. 게임 속 화폐 가치에 따라 흑점 물건 가격도 달라진다는 식이죠. 절대 고객을 우려먹겠다는 그런 방식은 아닙니다. 일단 거래를 트고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흑점 시스템에 믿음을 가지실 겁니다.”

그래. 나도 장사꾼이지만, 장사꾼들 하는 말이 항상 그렇지. 소비자들에게 절대 손해 보지 않는 결정이라고 추켜세우고선 책임은 회피한다. 내가 묵룡수 팔아먹은 것도 같은 식이지만.

“더 이상 들려줄 말이 없으면, 이제 물건이나 보여 주세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던지 당빈은 물건 보자는 말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성큼성큼 의자 뒤편의 어두운 복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도 바로 당빈을 쫓아 그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복도 중간엔 등잔 하나가 조용히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당빈이 그곳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당빈은 손을 들어 복도 주변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었다.

“이쪽은 주로 서적류입니다. 바로 맞은편은 각종 약재구요. 아! 흑점에서 무슨 절세의 기보나 영약을 취급할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아쉽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그런 고가의 물건은 흑점 본점에 가셔야 됩니다. 음, 그리고 저쪽은 각종 병기와 도구들입니다. 마지막 방은 정보를 파는 곳입니다. 이쪽이 우리 흑점의 전문이죠.”

복도에는 문도 없는 4개의 방이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각각의 방은 취급하는 물건이 서로 달라서 그런지 방을 밝히는 등잔불의 색도 달랐다. 당빈이 마지막으로 소개한 방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의자 2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정보를 판다면 어느 정도의 정보를 말하는 건가요?”

“아무거나 다 팝니다. 시스템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는요. 유저 개인의 무공 내력까지도 알려 줄 수 있죠. 단, 그런 식의 정보는 가격이 비쌉니다. 그럼 이제 제가 더 이상 설명드릴 부분도 없는 것 같군요.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약방에 들렀다.

[소림속명고(少林速命膏)

소림사 약왕당 비전의 내외상 치료제

사용 시 1분간 운기로 인한 회복 속도가 2배 증가한다.

가격:10,000냥]

[소림소환단(少林小還丹)

강호 최고의 내상 치료제

사용 시 1분간 운기로 인한 회복 속도가 10배 증가한다.

가격:100,000냥]

[오독단(烏毒丹)

운남 오독문비전 독단. 반경 3장 안의 적들을 중독시킨다.

성공 시 3분간 지속적으로 체력과 내공이 소모된다.

가격:50,000냥]

[장백설삼(長白雪參)

장백산의 영기를 받고 자란 설삼

사용 시 1년간 무공 증진 속도가 50퍼센트 향상된다. 단, 양강(陽强) 무공에만 효과가 있다.

가격:2,000,000냥]

약방에는 당빈이 말한 대로 무슨 절세의 영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내심 스탯 보정 아이템이나 내공, 또는 체력을 증진시켜 주는 아이템을 기대했는데 전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진열된 10여 가지의 아이템은 모두 그럭저럭 쓸 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가격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책방에 있는 물건은 약방에 비해 그 가짓수가 훨씬 많았다. 대략 1백여 권의 서적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게 모두 무공 서적은 아니었고, 심지어 상인을 위한 서적도 있었다.

[귀곡산서(鬼谷算書)

전국시대 귀곡자가 저술한 산법 강의서. 소지 아이템. 중복 효과 없음.

소지하면 지능 스탯이 +5 증가한다.

가격:2,000,000냥]

이 귀곡산서뿐만 아니라 무슨 기문진(奇問陣)을 설치하는 법, 바둑 잘 두는 책, 심지어 음악책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대다수는 무공 서적이었다. 각 문파의 독문무공서도 꽤 많았다. 소림의 나한권, 무당의 사상검진, 공동의 복마검법,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 등등.

그중에서 가장 신기한 책은 진결육합권이라는 책이었다.

[진결육합권(眞結六合拳)

소림육합권의 진본. 혜공대사가 실전된 투로를 다시 찾아 엮은 고급 권법서.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나 내공 소모가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힘:10 체질:10 근성:30

가격:3,000,000냥]

육합권은 지금 아무 서방에나 들러 단 1백 냥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무공이다. 어느 무관에서도 기본적으로 가르쳐 주는 권법이라 삼류 무공 취급을 받는다. 그런 육합권의 진본이라는 이유 하나로 3백만 냥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붙어 있었다.

설마 삼재검(三才劍)도 이런 식으로?

하지만 원래 없는 것인지 지금만 없는 것인지 진결삼재검이란 무공서는 볼 수 없었다.

병기창은 특별한 게 없었다. 하기야 약방이나 서고에서도 최절정급의 보물을 볼 수 없었는데 병기창이라고 특별히 좋은 아이템이 있을 리가 없었다.

뇌룡창(雷龍槍), 금문혈부(金雯血斧), 용아태대도(龍牙太大刀) 같은 이름만 현란한 무기들이 나무로 만든 거치대에 진열되어 있었지만,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없었다.

눈에 띄는 물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템의 옵션을 살펴보는 건 꽤 재미있었다.

흑점의 모든 무기는 상당히 높은 사용 제한 스탯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은 힘 스탯만으로 제한을 두는 데 반해 몇 개의 물건이 다른 스탯을 적용하고 있었다.

[금과추(金果錘)

특수 제련한 금두(金頭)를 장착한 유성추

공격력:1,200

사용 제한=힘:20 지능:20 근성:30 명성:500

가격:2,000,000냥]

[혈죽선(血竹扇)

피를 머금고 자란 혈죽으로 만든 부채

공격력:800

사용 제한=지능:30 악명:2,000

소지 효과:지능 +10 악명 +500

특수 효과:한 시간에 1회, 공격력 2,000의 암기 발사 기능.

가격:8,000,000냥]

금과추에 지능과 근성이 제한 스탯으로 적용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명성이 아이템 착용 조건이 된다는 생각은 미처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혈죽선의 경우는 명성도 아니고 악명이 2,000이나 필요했다.

혈죽선은 공격력이나 사용 효과 모두 병기창의 물건 중에선 최고로 좋았지만, 부채 들고 싸우는 무공은 대체 어디서 배울 것이며, 무기 하나 들려고 살인마가 될 생각도 없었다.

그나저나 악명이란 것도 이렇게 쓸모가 있다면, 악명이 높아야만 배울 수 있는 무공도 있다는 말인가?

대충 물건을 훑어보고 마지막 방에 들어갔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달랑 의자 2개만이 마주하고 있어서 썰렁했다.

한쪽 의자에 앉자마자 맞은편 의자에 아까 그 당빈이 흐릿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 둘러보셨나 보네요. 어때요? 맘에 드는 물건은 있던가요?”

“뭐 그럭저럭 쓸 만해 보이긴 합니다.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만 빼면요.”

“그런 가격이 아니라면 강호 시스템이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의뢰할 정보가 있나요, 조연 님?”

“음…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긴 하네요. 한 가지씩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강호에서 가장 부자가 누구고, 얼마나 소지하고 있죠?”

일단 어딘가에 있을 라이벌의 수준을 파악하고 싶었다. 유저들의 정보도 취급한다고 했으니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이런 종류의 질문은 가격이 좀 비싸다고 할 수 있죠. 대략 십만 냥이면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질문에는 특별히 할인가로 해드리지요. 어쨌든 첫 손님이니까요. 하하.”

[흑점에 정보비로 5만 냥을 지불하시겠습니까?]

[은자 5만 냥이 인출되었습니다.]

“통이 크시군요. 역시 중원 제일 갑부다운 배포십니다.”

끄윽, 역시 괜히 깎아주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일등이라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답변에 만족하시죠? 그럼 다른 질문이 있나요?”

물어볼 게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고민되네. 왠지 개방 거지패들보다 더 지독한 돈벌레로 보이니. 에고, 그래도 어쩌랴! 궁금한 것보단 돈 나가는 게 낫겠지.

“그럼 제 뒤의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주세요. 아! 그냥 아이디와 활동 지역, 재산 총액 정도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어려울 거야 없죠.”

그렇게 당빈에게 한 사람당 10만 냥이란 거금을 주고서야 강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비싼 돈이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 나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정보였다. 혈혈단신 혼자 플레이하는 나로서는 이런 정보 상인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전혀 파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강호 제2의 부자는 사천의 백발마녀라는 여성 유저였다. 전 재산이 8백만 냥 정도란다. 제3의 부자는 놀랍게도 낙양에 있었다. 5백만 냥이 좀 더 되는 재산을 가진 파도라는 캐릭터였다.

파도라는 캐릭터는 나도 만난 적이 있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묵룡수를 사간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파도라는 사람이 묵룡수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거의 1천만 냥이란 돈을 가지고 있었단 소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지. 어쩌면 내가 뿌린 떡밥을 먹으려고 주위 사람들의 돈이 일시적으로 파도 캐릭터에 몰린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낙양에는 돈이 일부 캐릭터에게 몰리는 현상이 있다는 건데……. 흐음, 이거 괜찮네? 낙양 한번 뒤집어엎는 재미도 있겠는걸? 욕이야 바가지로 먹겠지만. 크큭.

최고 레벨을 기록 중인 사람은 93레벨의 소림 무승이었다. 아이디는 공갈 대사. 93이라면 대충 이류 무사의 초입 단계다. 강호가 오픈한 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빠른 속도의 레벨 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충 유저들의 상태를 알고 나니 지금의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무식할 정도로 대단한 경지! 라는 것. 아마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른 유저들과 나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가 뒤에서 쫓아올 것만 같던 그동안의 긴장감도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은 너무 조급하게 최고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래도 이젠 좀 살살 해야지,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 위대한 계획은 아직 멀고도 험했다.

그렇게 당빈과 몇 마디 면담을 하고, 몇 가지 물건을 사고, 또 몇 가지 골동품들(왕곤을 잡아 나온 서화, 도자기 등등)을 정리하고 흑점을 나왔다.

로그아웃할 시간이다. 피곤하다.

다음 날.

흑점의 물건이 고가이긴 하지만, 장사꾼인 나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은 다른 사람들이 내주니까 말이다. 난 그저 약간의 시간을 들여 재포장을 하고, 그저 남들보다 조금 많은 수고비만 받으면 된다.

“자, 자, 다들 긴장들 하시고! 오늘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물건은 바로! 말로만 듣던 절세 영단입니다. 이름하야~ 저 멀리멀리 동쪽 끄트머리에서 이슬만 먹으면서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이치를 깨우친 영물! 바로 장백설삼입니다!! 자, 자, 박수들 치세요, 박수! 박수 안 치면 안 팝니다!”

“와! 박수~ 짝짝짝!”

“오빠 멋져~ 샤릉훼~ 유후~!”

“음,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특별히 다섯 개를 내놓겠습니다. 일명 장백오룡이라 불리던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 나름 장백산에선 알아주던 영물입니다. 아! 시끄럽다구요? 나가주세요.”

“자 그럼, 우선 설명부터 드려 볼까요? 귀한 영물이다 보니 들어갈 배 속도 좀 따지는 친구들입니다. 일단, 양강무공을 배우신 분들만 맛보실 수 있겠습니다. 양강무공이 뭐냐구요? 제가 전에 벽력권을 소개해드렸죠? 그 벽력권 같은 무공 말입니다. 이 오동통한 장백설삼 한 뿌리 달여 잡수시고 벽력권을 시전한다면, 가히 천하를 위진시키는 대협객이 되는 일도 꿈만은 아니겠죠! 효능은 그 양강무공을 사용하시는 분들에게 일 년간 오십 퍼센트의 증진 속도 향상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대단하죠? 시간이 부족해서 남들 따라가기 벅차셨던 분! 남들보다 더 일찍 최고수의 자리를 노리시는 분들이시라면 꼭 한 뿌리 잡숴보시라고 권장해드리는 바입니다. 경매 시작가는 오백만 냥, 낙찰가는 천만 냥입니다.”

말을 막 쏟아냈더니 입이 아프다. 그나마 지금 사용하는 게임 고글의 음성 패턴 인식 기능이 좋아서 다행이지, 싸구려 제품이었으면 길거리에서 골라, 골라 하는 아저씨들만큼이나 큰 목소리를 내야 했을 것이다.

음, 이참에 강호 전용 컨트롤러나 구입해볼까? 돈도 많은데.

며칠 동안 정해진 시각에 귀한 물품을 들고 나오는 나 때문에 강호 홈페이지는 난리가 났다. 버그를 사용하는 유저라고 신고하는 사람도 많았고, 소설을 써가면서 아이템의 출처를 짐작한 글을 올리는 이도 많았다.

유저들의 항의 소동은 결국 IGM에서 아무 문제없는 아이템이고 정상적으로 플레이해서 획득한 물품이라는 공지를 올리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암! 지극히 정상적인 플레이의 결과물이지.

그런데 아무 문제없는 물품이라고 해서 소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 물건들의 시세가 너무 터무니없다고 항의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글에 살짝 댓글을 달아주었다. 물론 아이디는 익명으로.

<지금 하남성 말고 다른 곳에서 이와 비슷한 물건이 출현한 적 있습니까? 오직 낙양에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낙양에서 플레이하시는 분들은 결국 이득입니다. 남들보다 더 일찍 최고의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요. 자꾸 이런 식으로 저를 비난하시면, 더 이상 낙양에는 물건 안 팝니다. 이젠 다들 아시겠지만, 저 다른 지역으로 이동 가능합니다. 멀긴 하지만 사천으로 옮겨 갈까 고민까지 종종 해본답니다.>

리플 한 방에 비싸다는 항의도 깡그리 사라졌다. 물론 가볍게 툴툴대는 인간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신기한 건 내가 타 지역에 물품을 안 뿌린다는 말을 해버려서, 정주와 개봉에서 플레이하는 유저들까지 내 물품을 노리고 낙양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터무니없는 가격 때문에 주변에 돈 빌릴 곳이 없는 사람들은 현금 거래를 통해서 자본을 모아야만 했다.

어젠 심심해서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글쎄 하남성의 시세만 다른 지역의 10배였다.

“시간 됐습니다. 그럼 신호 주면 입찰 가격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오, 사, 삼, 이, 일, 영!”

“천만 냥!”

“천만 냥!”

“천만 냥!”

“천만 냥!”

“천만 냥!”

……

“천만 냥!”

요즘 상황이 이렇다. 그렇게 하남성의 돈줄을 말려 버리려는 시도를 해도, 언제 또 자금을 만들어 와서는 저렇게 질러댄다. 아! 정말 한국 사람 대단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최고 입찰가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팔 수만도 없다. 어느 정도 착한 척도 해줘야 고객 관리가 되는 법이지, 돈 욕심에 수많은 잠재 고객들을 외면한다면 나중에 당할 소지가 크다.

“에… 어쩔 수 없네요. 지금 천만 냥에 입찰해주신 분들이 여덟 분이십니다. 우선 다섯 분은 지금 받아 가시고, 어쩔 수 없이 세 분은 내일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각에 오시면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설삼이 인기가 좋으니 다음부터는 가격을 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정리하겠습니다. 내일은 청성파의 독문검법서 일 권과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법 일 권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렇게 또 하루의 장사가 끝이 났다. 오늘 거둬들인 은자만 7천만 냥에 가깝다. 내가 만일 계속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겠다면, 이런 수입은 절대 못 올린다. 경매 사업을 시작할 때 유저들에게 약속했다. 일주일만 한다고. 그 덕에 유저들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저렇게 열심인 것이다. 그 일주일의 끝이 바로 내일이다. 그리고 강호는 상용화 서비스를 위한 사흘간의 휴식에 들어간다.

* * *

오픈 베타 마지막 날.

조연은 한 달간 진행된 오픈 베타 마지막 날, 하남성의 돈이란 돈은 깡그리 긁어모았다. 그날 그가 진행한 경매를 처음부터 살펴본 어느 유저의 계산으로는 그가 6억 8천 7백만 냥이란 말도 안 되는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강호 홈페이지에 오르고 난 후, 조연은 강호를 통틀어 최초의 공인된 별호를 가진 인물이 되었다. ‘황금충(黃金蟲)’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막대한 돈을 긁어모은 조연의 이후 행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무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어떤 무림기보도 조연상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조연의 외부 활동도 드러나지 않았다.

혹자는 그가 모든 게임머니를 현금화하고 날라버린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그 게임머니의 시세도 스스로 뻥튀기한 셈이었으니, 현실 속이었으면 범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낙양 무림계의 의혹도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희석돼갔다. 그래도 오픈 베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황금충이라는 인물은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때는 바야흐로 귀뚜라미 우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10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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