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 결전 (2) (146/148)

 # 147

71. 결전 (2)

“크흐으윽!”

검의 비에 크레이븐은 몸을 꽁꽁 쌌다. 이대로 사각을 보여 중요한 부분을 노출해 버리면, 자비 없이 박혀 들어갈 것 같았고, 그렇다면 세네타에게 베이듯 치명상을 입었다.

검들의 비는 아주 짧고 굵게 몰아닥쳤다. 크레이븐은 기세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고개를 들었다.

“고작 이 정도로······.”

끝이 아니었다. 크레이븐이 고개를 들어 말하자마자 미라가 자신을 향해 돌격해 왔다. 애초에 그것은 공격이 아니었다. 그저 판을 깔려는 준비였을 뿐이다.

순식간에 접근한 미라가 쏟아져 땅에 박힌 검 중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크레이븐을 향해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강!

강철처럼 연마된 크레이븐의 피부에 부딪히자, 스파크가 정신없이 튀어 올랐다. 심연의 어둠 속에 피어나는 반딧불이 반짝였다.

파캉!

검은 크레이븐의 단단한 몸을 견디지 못해 부서졌다. 검이 부서질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미라는 그 검을 놓침과 동시에 박힌 검 중 하나를 뽑아 맹공을 퍼부었다.

부서지면 뽑아서 다시 썼다.

검은 끊임없이 재생되듯, 미라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크레이븐을 몰아붙였다.

몇 자루를 부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크레이븐은 점점 가속되는 미라의 공격을 쉴 새 없이 받아 냈다. 수많은 검 밭에서 그의 몸집으로 움직일 장소는 너무나도 한정적이었다.

“으으윽! 이 망할!”

저항해 보려 하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공간, 그 속은 일방적으로 미라를 위해 깔린 판이었다. 미라는 홀로 그 안에서 크레이븐을 공격했다.

그극-.

크레이븐의 단단한 피부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절대로 뚫리지 않으리라는 그의 장담과 다르게 지속적인 공격에 약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은 가슴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크레이븐은 자신의 약점인 가슴을 막아 보려 했지만, 세네타는 그 균열을 놓치지 않고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공간은 이미 미라를 위한 장소. 그렇기에 크레이븐이 어떤 식으로 저항하든 그 손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크아아악! 이 미개한 족속들이!”

크레이븐은 제대로 저항 못 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미라의 눈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그 빛깔만큼 진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파각!

그리고 크레이븐의 가슴을 감싸던 피부가 완전히 부서졌다. 딱딱하던 그 피부가 벗겨지고 인간과 다르지 않은 연약한 살이 드러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가슴을 파고들려고 검을 뻗었다.

카창!

“어······.”

미라는 손끝에 떨려 오는 그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검이 깨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 검이 부서져 버렸다.

그것이 마지막 자루. 마지막 희망.

“아쉽게 됐구나.”

푸슉!

검으로 덮여 크레이븐을 무력하게 한 곳은 더는 미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가시 손톱을 미라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커흑······.”

미라는 입안에 고인 액체를 뱉어 냈다. 붉은 피가 크레이븐의 팔을 적셨다. 그는 그녀를 올려 들어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아무것도 나를 못 뚫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너 하나가 이 정도로 몰아붙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조롱이 섞인 어투로 미라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훌륭한 발악이었다. 버러지.”

가슴을 꿰뚫은 그 손을 그대로 벽을 향해 털어 내듯이 던져 버렸다.

그것이 마지막 자루. 마지막 희망······.

아니, 마지막 희망을 향한 힘찬 도약의 발판.

미라를 던지고 드러난 시야 속에서 금빛 찬란한 존재가 돌진해 왔다.

미라를 이루는 모든 것. 이세계를 구하려고 만들어진 파멸의 검.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마지막 희망.

성검!

모든 검보다 강한 살의를 담았으며, 그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키게 해서 극한의 성능을 끌어냈다.

애초에 미라는 그저 한 번의 공격을 넣으려고 만들어진 미끼였다. 단 한 방, 그 한 방에 모든 것을 걸려고 자신을 희생했다.

“으아아아아아!”

세네타는 단단한 피부가 벗겨진 그 가슴을 향해 힘껏 찔러 넣었다.

푸슉!

살갗을 파고드는 검. 막을 새 없이 밀려들어 와 근육을 관통했다.

“버러지가!”

팔을 날려 버릴 심산으로 손톱으로 그녀의 어깨를 꿰뚫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오히려 멈춘 것은 크레이븐 쪽이었다. 밀려오는 고통과 세네타가 집중적으로 가격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팔의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크아아아악······. 크아악!”

버티던 두 다리가 세네타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들렸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크레이븐을 몰아붙였다. 모든 것을 꿰뚫을 것 같은 돌격이 그를 끌고 그대로 벽을 향해 격돌했다.

콰앙!

쿠후우우웅!

궁전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먼지가 폭발해 주변을 완전히 덮으며 커다란 폭풍이 순간 방 안을 완전히 어지럽혔다.

한순간의 폭풍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간은 기껏해야 30분 정도였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꿈틀거렸다.

치열한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체가 꿈틀거렸다.

“커헉!”

피를 토하며 깨어났다. 그것은 크레이븐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보았다. 성검에 가슴을 꿰뚫린 채로 벽에 박혔다. 검 손잡이의 일부가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그 손잡이를 잡는 손이 보였다. 그 검을 쥔 주인이 서 있었다.

세네타는 선 채로 그 검을 쥐었다. 크레이븐은 그녀가 아직 의식이 있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세네타는 그대로 기절한 상태였다. 온몸을 이루던 근육이 끊어지고, 몰려오는 피로와 고통이 그녀를 더는 버티지 못하게 했다.

마지막을 담은 일격이었던 만큼 세네타는 온 힘을 다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크흐흐······.”

하지만 그것은 실패했다. 크레이븐이 고통 섞인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선 채로 기절한 세네타를 자신의 손으로 그대로 밀쳐 내었다.

“퉤······, 더럽군.”

크레이븐은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뽑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코어를 스쳐 지나가 즉사할 상황이었다. 크레이븐이 코어를 빗겨 나간 탓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

“크흐흐흐······ 크하하하!”

크레이븐은 다시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는 건 그 치명상도 회복할 것이고, 예정대로 이곳의 세계를 완전히 종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끼고 사랑해 온 세상마저 자신이 뺏을 상황이 올 것이다.

크레이븐은 텅 빈 궁전 속에서 소리쳤다.

“가소로운 인간들! 언제나 자기 희망에 사로잡혀 착각하는 허망한 족속들! 너희에게 희망이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희망은 죽었다. 빛은 절망의 어둠 속에 빠졌으며 인간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크레이븐은 승리했다.

“물론이다.”

공허한 대답만이 돌아오리라 생각한 공간 속에 울리는 기습적인 목소리.

푸슉!

그것이 크레이븐의 가슴을 가시처럼 날카로운 형태로 파고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너를 찾아왔겠느냐?”

그리고 힘차게 꿰뚫었다. 검이 관통한 그 자리를 다시 한 번 더 건드렸다. 그리고 힘껏 벌렸다.

푸쉬시시시식!

피가 잠깐 솟구치는 것과 함께 무언가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진득한 피 속에 구르는 것은 코어였다. 코어가 빠져나왔다.

일격을 먹임으로써 루데릭의 생명체를 이루는 물건을 뽑아냈다.

“그걸 뽑아서 뭐 어쩌겠다는 말이냐?”

코어를 파괴하지 못하면 그것도 무용지물. 그렇기에 오히려 역으로 루데릭을 잡을 기회를 주기만 했다. 크레이븐은 꿰뚫은 루데릭의 손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몸속에서 빼내어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쿵!

“커흑!”

루데릭이 전신에 오는 충격에 숨을 토해 냈다.

“핏줄만 타고난 가여운 꼬마야! 아직도 그 기세를 유지하겠느냐?”

쿵! 쿵!

크레이븐은 루데릭의 몸을 짓누르고 자신의 주먹으로 그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그의 손에 들린 루데릭은 그의 무자비한 폭력에 그대로 휘둘려야만 했다.

“제아무리 네가 머리를 굴려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네 아비처럼 말이야!”

그렇게 한참을 내려치다가 크레이븐은 루데릭의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커으······ 으으윽······.”

루데릭은 그 손에 들린 채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의 힘으로는 크레이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크레이븐은 고통스러워하는 루데릭의 표정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지옥에 있는 네 아비를 만나러 가라. 아주 감동적인 부자 상봉일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주었다.

뚜둑-.

일시적으로 찾아온 고요함. 그 속을 꿰뚫는 소리. 목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발버둥 치던 루데릭의 팔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마왕의 자식, 루데릭은 그렇게 숨통이 끊어졌다.

부스럭-.

뭔가가 움직였다. 크레이븐은 등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픽 웃었다.

세네타와 미라, 그 둘 중 어느 놈이 다시 일어났을까?

“지긋지긋한 바퀴벌레 같으니, 또 일어나는······.”

‘거냐?’라고 묻기도 전에, 크레이븐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본 사람은 처음 보는 인간이었다.

남자였다. 꼬마와 여성 둘이서만 온 그곳에 남자가 서 있었다.

정유선. 그가 왔다.

***

유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던 풍경. 그렇기에 유선이 본거지까지 육안으로 찾아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미라가 남겨 놓은 그 자취가 없었더라면 말이다. 유선은 그녀가 남겨 준 흔적 덕분에 안전하게 그곳을 지나쳐 이 장소로 왔다.

그리고 이젠 모든 것이 보였다.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내부 상황을 보았다.

“미라······.”

미라는 가슴이 꿰뚫린 채 싸늘하게 누웠다.

“세네타······.”

세네타는 기절한 채로 누웠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그녀가 죽었다고 여기기에 충분했다.

“루데릭······.”

그리고 루데릭은 그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유선은 그것만으로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짐작했다.

믿어 온 그들이 마왕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다는 소리였다.

“뭐냐, 인간? 잘도 여기로 기어들어 왔구나.”

크레이븐이 큭큭 웃으면서 루데릭을 놓았다.

“이 인간들과 함께 지낸 동료였나? 참으로 유감이군. 이 손으로 죽여서 말이야.”

“······.”

유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멍한 눈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네가 그 코어를 주워 준 덕분에 허리 숙일 일이 없어서 좋군. 그 코어를 이제 이리 내놓아라. 부수려는 허튼짓은 하지 말고. 어차피 인간의 힘으로는 그 코어를 부수지 못한다.”

유선은 크레이븐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눈을 코어로 옮겼다. 아주 작고······ 붉어져 가는······ 작은 코어······.

“그걸 순순히 이리 준다면 편하게 죽여주지.”

물론 말뿐이었다. 그가 고통스럽든 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 됐든 죽이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유선이 그렇게 멍청하니 서 있다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

그것은 크레이븐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무능해서······.”

유선은 그것을 집어삼켰다.

크레이븐은 유선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유선은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러자 크레이븐이 폭소를 터트리며 유선에게 말했다.

“크하하하! 인간 따위가 마왕의 심장을 버틸 것 같으냐! 그 힘에 취해서 너 자신을 죽이는 꼴이 될 거다! 하하하하!”

유선의 몸에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왕의 코어가 유선의 몸에 흘러든다는 말이었다. 이대로 빛이 더욱더 진해지고, 그 빛에 적응 못 하고 모든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을 느끼며 폭발할 것이다.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크레이븐은 그렇기에 유선이 고통스러워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뭐라······?”

크레이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빛이······ 사라진다고?”

붉은빛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크게 발하던 것이 천천히 그의 몸에 적응해 갔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신음하던 유선도 더는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그 구슬이 나조차 흥분하게 만들어 이리저리 날뛰게 해 줬건만······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감히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 이 말이냐!”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나쁜 신호가 아니었다. 크레이븐의 몸을 받아들였을 때보다 더욱더 안정적이라는 의미였다. 마치 제 몸에 딱 맞아 간다는 반응이었다.

유선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을 붉히는 희미한 안광이 보였다. 그 불꽃이 희미하다고 해서 약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크레이븐의 감각을 지배하기엔 충분했다. 최강이라 믿은 크레이븐의 깊숙한 곳에 감춰진 공포가 자극되었다.

“아, 아냐······.”

그렇기에 크레이븐은 분노했다. 힘도 없는 인간 따위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나 자신의 얼굴을 벅벅 긁으며 소리쳤다.

“그 힘은 나를 선택했다! 나를 위해, 나를 향해 온 힘이란 말이다!”

크레이븐은 가시 발톱으로 유선을 공격하려 손을 뻗었다. 어떤 기색도 보이지 않는 허점이 많은 사내였기에 자신의 손톱이 유선의 머리를 꿰뚫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크레이븐의 팔이 허공을 저은 것처럼 빗나간 느낌을 받았다. 그는 눈을 옮겨 자신의 팔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유선이 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헛친 것이 아니라, 허공을 저을 만한 팔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