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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결전 (1) (14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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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결전 (1)

그 검은 소렌의 기적으로 만든 검과는 차원이 다른 예리함이었다. 크레이븐은 뒷걸음질 치며 반쯤 날아가 버려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손을 보았다.

“뭐냐, 이건······ 마계 속 그 어떤 무기도 이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지는 못했건만······.”

크레이븐은 얼른 상처를 수복시키려 했다.

반쯤 날아간 팔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며, 크레이븐은 다시 새살로 엮으며 자신을 죽이겠다는 살의를 느꼈다. 단편의 퍼즐 조각이 몇 개씩 맞춰지자, 그 무기가 어떤 것인지 짐작했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크크······ 그래, 이 힘은 그 도망자가 만들어 낸 거로구나. 쓸데없이 인간들에게 좋은 짓거리를 해 주다니······!”

크레이븐은 이를 악 깨물었다. 이빨을 부서트려 버릴 듯이 이를 악문 채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싸움이 된다고 하겠지! 어디 발버둥 쳐 봐라! 그 검이 먼저 부서질 것 같나, 내 몸이 먼저 부서질 것 같나?”

제 흥분에 못 이겨 소리치며 다시 한 번 더 세네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검을 똑바로 잡아서 들고 크레이븐의 일격을 막아 내며 말했다.

“검이 먼저 부서지든, 네 몸이 먼저 부서지든 상관없다. 검이 부서지면 또 다른 검을 쓰면 되니까.”

검은 얼마든지 있었다. 포어셰크의 공방을 털어, 미라의 몸속에는 수백 자루가 넘는 무기가 담겼다.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듯이, 그녀는 언제든지 새로운 검을 얻었다.

“그게 언제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겠지.”

크레이븐의 물음에 미라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팔꿈치에서 또 다른 검을 뽑아내며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 한 자루는 남을 거다.”

미라와 세네타는 크레이븐에게 돌진하려고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한 자루가 네놈의 가슴을 후벼 파 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더 격전이 시작되었다.

***

유선은 던전 앞에서 기다렸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저 앞에서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아······.”

유선은 뭔가가 그의 머릿속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잠깐······ 뭔가가 느껴져서요. 한기가 들었나 봅니다.”

유선은 기분 탓이라며,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한기 따위에 탄성을 내지른 것이 아니었다.

유선은 세 가지 감정이 자신의 몸을 향해 달려들어, 자신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감정의 무게에 유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서워······. 외로워······ 유선 님, 어디 있지?

엘레노어는 무의식적으로 신격을 발휘해 무너트리는 세계수를 애써 막았다.

-조금만 더 버텨야 해. 이것마저 무너져 버린다면, 우리는 정말로 끝이야.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을 아는 오르넵토스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고통받으며 버텼다. 정령들을 엮어서 덮쳐 오는 악의 힘이 세계수를 썩히는 것을 저지했다.

-이 망할 놈을 정말로 이길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답이 안 나와.

루데릭도 오르넵토스와 상황이 비슷했다.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 루데릭의 시야가 유선에게도 보였고, 그들의 생각마저 모두 들어왔다.

고독, 고통, 슬픔······.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유선의 몸을 향해 공격해 왔다. 홀로 이 장소에 앉은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유선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그 목소리들은 공격이 아니라 여겼다. 그것은 그들의 짐을 덜어 주는 그가 할 최선의 일이었다.

그들이 이 싸움에서 결코 홀로 서 있지 않음을 상기시켜 주려는 일이었다.

“할 수 있어.”

떨리는 가슴, 그리고 머리를 짓누르는 무게감. 유선은 양손을 포개어 머리에 가져다 대며 기도했다.

“모두 할 수 있으니······ 무사히 돌아와 줘.”

***

마왕의 본거지. 그 궁전 안은 부서지고 깨지는 것을 반복해 난장판이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전장을 돌았다. 그것은 세네타와 미라, 그 둘의 숨소리였다. 맞서 싸운 크레이븐은 그들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벌써 지쳤느냐?”

크레이븐이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오래 싸웠는데도 그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쉬지 마라. 이 혈기가 모처럼 끓어오르려는데, 이렇게 김새게 할 속셈이냐?”

크레이븐이 숨을 고르는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더 전력을 다해 싸우려 했다.

하지만 크레이븐에게 적은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어림없다.”

쿠웅!

한 곳에 떨어진 루데릭이 마법을 이용해 커다란 검은 벽을 만들어 미라와 세네타의 앞을 가렸다. 크레이븐의 시야에서 한 번에 감춰졌다. 그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흥!”

쾅!

그것은 크레이븐에게 모래로 쌓아 오른 성만큼이나 약한 벽이었다. 그는 그 검은 벽을 주먹으로 부숴 버려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기다리던 미라와 세네타가 뚫고 들어온 크레이븐을 향해 검을 뻗었다. 그가 인지하지 못하게 복부를 향해 파고들었다. 지친 기색에서 볼 수 없던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루데릭이 그들의 힘을 끌어내도록 신체 강화 마법을 부렸다. 일격에 집중하도록 지속 시간이 짧았지만 그만큼 강했다.

두 검이 날카롭게 복부를 파고들려 했다.

“망할 하루살이 같은 자식!”

피부를 꿰뚫고, 들어가려는 찰나, 아슬아슬하게 크레이븐이 그들의 공격을 커트했다. 데미지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그들의 공격이 어찌 됐든 크레이븐에게 먹힌다는 의미였다. 세네타와 미라는 다시 거리를 벌리며 공격을 준비했다. 둘은 숨을 참다 루데릭의 마법이 풀리자, 다시 헐떡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크레이븐이 포효하며 주변을 향해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발작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공격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

“검기다!”

“조심해!”

가시 발톱의 검기가 주변을 난무하기 시작했다. 퍼져 나간 검기가 벽과 천장을 파고들어 부수고, 찢어발겼다.

그것이 얼마나 빠르던, 그 궤적을 읽힌다면 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크레이븐 또한 잘 알았다.

그 데미지 없는 공격을 흩뿌린 것은 어디까지나 눈을 돌리려는 작전이었을 뿐이다.

“잡았다, 쥐새끼.”

바로 루데릭을 노리려는 방법이었다. 루데릭은 지속해서 세네타와 미라를 서포트해 주면서 변수를 만들려 했다. 그렇기에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본래 노리지 않던 루데릭을 노렸다.

“윽!”

루데릭은 얼른 마법을 써서 크레이븐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했다.

“마법은 소용없다!”

하지만 크레이븐의 손이 루데릭의 얼굴에 닿자, 그는 마법을 쓰지 못하고 그 손에 잡힌 채로 딸려 나갔다. 크레이븐은 그대로 지면을 향해 세게 내리찍었다.

콰과광!

바닥이 갈라지고, 파편이 튀어 올랐다.

“루데릭!”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들이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먼지 속에 흐릿하게 잡히는 커다란 형체가 일어섰다. 그리고 세네타와 미라를 향해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먼지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한 놈은 처리했으니······. 이제 둘 남았나?”

크레이븐은 광기에 젖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오싹하게 하는 그 기분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확실히 다른 위압감을 보였다.

‘기분 탓인가?’

‘아냐,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

단순히 지쳤다거나 그래서 생기는 주관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녀석은 계속해서 성장했다. 힘은 점점 강해지고, 피부는 점점 단단해져, 그들의 공격이 더는 통하지 않게끔 무장되어 갔다.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꿈틀거렸고, 그는 그것에 적응해 갔다.

“눈치챘느냐?”

크레이븐이 그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마왕의 심장이 내 몸속을 꿈틀거리는 중이다. 씨앗처럼 품어진 그 구슬이 내 몸을 양분으로 삼아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중이다.”

크레이븐은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그런 성장을 보인다는 말이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너희는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멍청한 인간들아!”

후에 가면 걷잡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세네타.”

옆에 선 미라가 조심스럽게 세네타의 이름을 불렀다. 세네타는 생각을 멈추고 미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세네타에게 물었다.

“우리가 했던 훈련 기억나나?”

“훈련이라 하면······.”

뭔지 기억했다. 그것을 깨달은 세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할 셈이야?”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겠지. 그리고 이 순간을 위해서 짜 놓은 시나리오이기도 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걸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실패? 언제부터 실패부터 생각했어?”

미라는 세네타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치듯 말했다.

“이건 마지막이야. 더는 뒤를 봐선 안 돼. 망설이면 지니까. 네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보려면 뒤를 봐선 안 돼.”

“······.”

미라의 말이 맞았다. 세네타는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네타가 그 작전을 망설인 이유는 단순히 미완성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작전에 누군가가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고, 세네타가 아닌 미라가 그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라가 동의한 작전이라면 그녀의 뜻에 기꺼이 따라 주었다.

미라는 세네타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두고, 크레이븐에게 걸어갔다. 그가 그녀의 대담한 행동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너 혼자 상대하겠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생겼느냐?”

“글쎄? 굳이 이유가 있어야만 와야 할까?”

미라가 담담하게 크레이븐의 말을 받아쳤다. 미라가 검은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때로는 근거 없이도 자신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해. 근거에만 치중한다면 그 어느 것도 못 하거든.”

“멍청한 자신감이군. 그런 건 어디서 배웠나?”

크레이븐이 흥분하며 미라에게 묻자, 그녀는 눈을 감고 한 이름을 내뱉었다.

“지크.”

미라는 손에 든 검을 크레이븐에게 겨누었다.

“이것은 내 오랜 파트너가 가장 바라던 순간.”

그리고 미라는 눈을 다시 부릅떴다.

“파트너를 대신해 이루어 줄 새로운 희망!”

미라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것이 뚫고 나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 많은 물건이 천장 위를 메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 그리고 순식간에 몰아붙이는 소낙비처럼 크레이븐을 덮쳤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크레이븐은 그 광경을 보고도 코웃음을 쳤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마법으로 부리는 잔재주냐?”

그 공격이 성장해 가는 자신에게 절대로 먹히지 않을 것을 알기에, 크레이븐은 단단한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 냈다.

후드득!

카캉!

“크악! 이건······!”

크레이븐은 그 공격이 단순한 마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마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들지 않고 지면에 떨어진 것을 보았다.

검이었다.

검게 빛을 내며 자신을 덮쳐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검이었다. 그 검들이 크레이븐의 몸에 사각지대 하나 만들지 않고 자비 없이 몰아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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