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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파멸의 광기 (2) (14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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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파멸의 광기 (2)

크기기기긱····.

그게게게······.

세네타는 그것이 주변에 널브러진 돌멩이들이 바람에 날려 부딪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것은 해골들이 흘려 내는 뼈 소리였다. 해골들은 한때 스켈레톤 정병으로 마왕의 군대에 있던 몸이었지만, 그것도 과거일 뿐. 몸에 감도는 마력이 잔불처럼 희미하게 안에서 타들어 가며 생명력을 겨우 유지하는 신세였다. 그것을 버티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해골들은 애초에 뼈로 이루어졌기에, 부서졌다고 해서 기괴하다거나 공포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악마들이 문제였다.

광기의 현장이었다. 형체가 본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장난감 레고를 마음대로 뜯어고친 것처럼 인간의 상상 범주에서 벗어난 기괴한 조형물들이 곳곳에 세워졌다. 살갗이 날아가고 피가 바닥을 이루었다.

“허으어······!”

어쩌다가 살아 있는 생명이 힘차게 마지막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마지막 숨의 끝에는 완전한 죽음으로 도달했고 더는 꿈틀대지도 않았다. 그것이 바람 소리라 생각하던 세네타에게는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어떠한 전장들을 누벼도 그만큼 참혹한 곳은 없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원래 마계가 이렇게······ 광기로 물든 곳인가요?”

“이건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본래라면, 그냥저냥 인간들과 사는 게 다르지 않았을 거야. 누군가가 작정하고 미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만들 수는 없을 테지.”

“그렇다는 건······.”

“마왕이 한 짓일 거다.”

루데릭이 담담하게 말했다. 세네타는 주변 상황을 하나씩 지켜보았다.

“세네타, 정신 차려.”

“아······.”

미라가 세네타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그녀는 일순간 멍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루데릭이 말한 경고였다. 그가 지켜본 모든 것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려웠는데, 인간인 세네타가 그것에 쉽게 담담해질 리 없었다.

패닉을 가져다주는 그 광경이 전투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에, 루데릭은 세네타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경고한 것과 다르게 세네타는 크게 충격받지는 않았다.

‘그래도 재빠르게 냉정함을 찾았군.’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다짐. 그것을 위한 기도를 유선과 함께했다. 가장 믿는 사람에게서 얻어낸 희망이 세네타를 붙잡았다.

루데릭은 세네타에게 경고한 미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미라는 진지한 눈으로 그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길을 걸을 뿐이었다.

“너도 보고 싶나?”

그것은 인간을 닮은 몸인 미라에게도 보이지 않을 터, 그 마법을 사용하면 미라도 세네타가 보는 것을 볼 것이다.

“아니, 됐어.”

미라는 루데릭의 제안을 거절했다. 세네타가 일시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움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적어도 정신이 멀쩡하게 마왕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한 명이 필요하잖아?”

어디까지나 본 목적에 충실할 뿐. 확인된 호기심을 굳이 자기가 더 파고들 필요는 없었다.

전장의 상황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세네타나 목표를 한 가지에만 두고 돌파하자는 그 둘의 의견은 달랐지만,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세네타는 그것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헌터들을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빛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빛이 있었다면, 형상만 보이는 앞 속에서 기괴하게 일그러진 붉은색이 자리를 채울 것만 같았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퓨퓨퓩!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들. 미라는 코앞까지 다가와 부서지는 것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참혹한 현장 속에서 그 마법들을 날리는 사람은 대체 누구지?”

“그냥 미리 설치해 놓은 방어 마법일 거다. 너희 둘이 올 것을 대비해서 만들어 놨겠지. 시험할 목적으로 말이야.”

세네타와 미라. 그 둘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 검임을 알기에, 검은 꼬챙이들이 날아가는 마법으로 함정을 깔아 실력을 체크해 볼 심산이었다. 꼬챙이의 양은 갈수록 많아져 갔기에, 루데릭의 추측이 확실했다.

“내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함정 마법들은 모두 루데릭의 마법에 무력화되었다. 마왕의 하수인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고, 설치해 놓은 일방적인 함정 마법들은 모두 루데릭의 손에 의해 무력화되었기에 도착하는 길까지는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아비규환의 장소에서 커다란 대문 앞에 도달했다. 검은색으로 된 무거운 철문. 그곳에 새겨진 커다란 용. 모두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내용의 조각이 양쪽 철문에 새겨져 있었다.

루데릭이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이 앞에 마왕이 있다.”

“······.”

“한 번 더 말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정신 차리는 게 좋을 거다. 이게 마지막이니 말이야.”

루데릭은 그 경고와 함께 문에 다가갔다. 짐승 같은 그의 손이 닿자, 문은 그것에 반응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과는 달랐다. 최소한의 빛. 마법이 없어도 그 속에서 누군가가 있다고 자각할 정도로 미약하게 빛을 지녔다.

흑색 타일 위에 깔린 레드 카펫. 그리고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나오는 층계.

그 끝에는 그들의 가운데에 놓인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왕좌가 있었고, 그 커다란 왕좌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가 결코 작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왕의 자리가 너무 클 뿐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그곳에 앉은 사내는 큭큭 음산하게 웃음을 흘렸다.

고요한 궁전 속,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루데릭은 그 기분 나쁜 웃음에 인상을 구겼다.

“이렇게 황량한 빈소에 오느라 아주 수고가 많았다.”

미라와 세네타는 그 인물을 일전에 본 적이 있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결계를 쳐서 떳떳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며 다가와 선전 포고를 하던 그 모습이 불과 하루 전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잊겠는가?

“마왕······.”

세네타는 그것을 노려보며 검을 겨누었다.

“비겁함을 혈통으로 두고 온 놈들답게 함정을 아주 많이 깔아 놨더구나.”

“비겁? 그건 인사다. 일찍이 마중 나갈 악마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서 말이다. 왕이 직접 나갈 수는 없지 않나! 내 환영 인사 같은 것으로 생각해 주지, 그래. 제대로 인사하지 않았다면······ 내 사과하지. 귀족처럼 말이야.”

사내는 어울리지 않게 과장된 몸짓으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세로 인사했다. 그 행동은 조롱으로 비치고 오히려 혐오감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

“왜 그러나, 루데릭?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상당히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 않는구나.”

루데릭의 표정은 의외와 경멸이 섞인 얼굴이었다. 루데릭은 그를 보며 물었다.

“마왕은 어디에 있느냐?”

루데릭의 물음에 세네타와 미라가 고개를 돌려 루데릭을 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저자가 마왕이 아니라는 소리냐?”

루데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뱉은 물음 그대로다.”

루데릭은 그를 노려보며 한 번 더 물었다.

“마왕은 어쨌냐, 크레이븐?”

그 크레이븐이라는 사내는 루데릭의 말에 킥킥거리며 조소했다.

“크흐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어찌 마왕이라 칭하느냐? 그렇게도 네 아비가 밉더냐, 버려진 자식아?”

“원한 따위에 얽혀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놈은 아버지라는 단어보다 마왕이 어울린다. 그렇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다. 그러니 대답해라, 마왕은 어쨌냐?”

크레이븐의 조소가 그 물음과 함께 끊어졌다. 그리고 루데릭이 진지해진 만큼 똑같이 진지해진 어조로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죽였다.”

“······뭐?”

“말 그대로다. 약해 빠진 늙은이를 그대로 이 손으로 쥐어 죽였다, 루데릭.”

크레이븐이 커다란 손을 들어 보이며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어째서지?”

루데릭은 순간 격앙되려는 감각을 애써 감추고 침착하게 그 녀석에게 물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느냐?”

사내는 자랑스럽게 팔을 벌리며 대답해 주었다.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약자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옳지.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냐, 루데릭!”

이성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사내는 거짓된 믿음에 사로잡혔다.

“나는 강자였던 약자를 물리치고 우두머리에 섰다. 그리고 절대자가 되었다. 이 세상의 절대자가 되었으니, 다른 세상으로 뻗어 나가 다시 강자로서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던 크레이븐의 몸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감추던 옷들이 터져 나가듯 찢어졌고, 그는 자신이 감춰 둔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시가 돋고, 몸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철갑옷을 두른 것처럼 피부가 투박하게 팽창하며, 지옥 속에서 솟아오르는 용암처럼 붉은빛이 두 눈에서 발했다.

“그러니 전력으로 덤벼라. 전력으로 덤비고 너희가 약자가 아닌 존재임을 증명해라. 아니면 도태된 자들의 도시로 보내 줄 테니 말이야!”

크레이븐이 변이와 동시에 격전의 시작을 알렸다. 그가 재빠르게 날아올라 그의 강철 같은 손으로 바닥을 향해 덮쳐 왔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세 명은 그대로 흩어져 그 공격을 피해 냈다.

콰가가강!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이 부서져 파편이 튀었다. 크레이븐이 전력으로 뛰어들어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그 모래 먼지를 뚫고 안으로 파고들어 가 크레이븐을 향해 날아왔다.

미라였다. 그녀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크레이븐은 그 검을 가뿐하게 피해 냈다. 그것까지는 미라도 예상하던 시나리오였다.

그렇기에 미라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고, 재빠르게 다음 공격으로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잔꾀를 부리려 하는구나!”

크레이븐은 미친 듯이 웃으며 그 공격을 팔로 흘려보냈다. 아주 자연스럽게 검날의 방향을 틀어 버리고,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 탓에 미라는 중심을 완전히 잃었고, 스텝을 밟을 여지가 없었다. 크레이븐은 그대로 넘어지려는 미라의 몸을 팔로 힘껏 쳐 내었다.

“쿠흡!”

크레이븐이 가진 힘이라면 분명히 죽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 검은 촉수가 크레이븐의 팔을 감싸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는 그 촉수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았다.

“루데릭······.”

“그 더러운 이름으로 내 이름을 올리지 마라.”

루데릭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수많은 검은 촉수가 크레이븐이 꿰뚫은 바닥에서 솟아나 그의 전신을 완전히 묶었다. 단단하게 얽히면서 그의 몸이 완전히 묶였다.

“그거 아나?”

크레이븐은 그 마법에 감겨 간다.

“네 마법은 언제나 약해 빠졌어!”

하지만 그것도 잠깐. 크레이븐이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이자, 촉수들이 뜯겨 나갔다.

“안다.”

루데릭은 크레이븐의 말에 미소 지었다. 어차피 그 마법은 단순히 시간을 벌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좋아!’

검을 찔러 넣기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세네타는 이 결투를 종식할 것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세네타는 몸을 날려 단번에 파고들었고, 마왕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트극!

살갗을 찔러 넣거나 그것보다 더 딱딱한 뭔가를 꿰뚫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껍질에 닿아 나는 소리였다.

세네타의 힘이 모자라기도 했지만, 검 자체의 예리함이 마왕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검의 신이 만들어 낸 기적이 먹히지 않았다. 세네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가슴을 향해 노려 들어온 검에 크레이븐은 세네타의 검날을 손으로 쥐었다.

“소렌의 기적인가?”

으득.

자신의 힘으로 꽉 쥐자, 검이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그런 마나를 써서 만든 검으로 이 몸을 꿰뚫을 거로 생각했느냐? 검의 신 따위의 힘으로 나를 농락하느냐!”

파창!

세네타가 만들어 낸 검이 그대로 부서졌다. 크레이븐은 무기를 잃은 세네타의 몸을 그대로 잡아 중심을 흩트렸다.

“죽어라, 벌레야!”

그리고 중심이 흐트러진 사이에, 크레이븐이 세네타를 향해 가시 돋친 팔을 뻗었다. 그 가시는 가슴을 관통하고 그대로 심장을 꿰뚫어 모든 것을 끝내 버리리라 생각했다.

하나 크레이븐의 손은 가슴을 관통하지 못했다. 그가 뻗은 손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세네타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검이 날아왔다. 그 검이 창처럼 날아와 빠른 속도로 세네타를 공격하려 드는 손을 요격해 냈다.

“후우우······.”

그 검을 지니던 미라가 참다 숨을 한 번에 몰아 내쉬었다. 그녀가 전력을 다해 자신의 검을 던져 크레이븐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세네타는 그런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팔에 걸친 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그 검이 꿰뚫은 검날의 방향대로 힘껏 내려찍었다.

콰직!

“크아아악!”

크레이븐은 고통에 소리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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