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70. 파멸의 광기 (1)
***
선전 포고를 한 만큼, 마왕은 아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눈에 띄도록 발현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이계의 틈은 익스플로러들의 손에 관리되지 않았고, 검증된 소수 요원의 손에 의해 관리되었다. 그 상황만 본다면, 렛놈이 공간을 비틀고 희생자들을 유도한 때와 유사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이계의 틈에서 보이는 불길함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검은색으로 일그러진 공간은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불길함을 안겨 주었다.
발견한 이도 돈에 상당히 눈이 먼 익스플로러라고 했는데, 감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관리청에 보고만 할 정도였다.
관리청에서는 그것이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 세네타에게 미리 들었던 전조가 있으리라는 말과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세네타에게 재빠르게 연락했고, 그 던전 속에서 몬스터가 나오지 않도록 지속해서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 사건을 담당할 세네타가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다가오자, 기다리던 헌터 협회장과 관리청장이 일어나 세네타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이변은 없었지요?”
“네, 불길한 전조는 말씀대로 지속해서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틈은 다른 던전들보다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지속해서 벌어지고, 닫힐 뻔한 것을 반복하며 그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처럼 소용돌이치는가 싶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변덕을 부려 왔다.
그야말로 악마의 농락이었다. 언제든지 올 수 있으며,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행태였다.
“다른 어떤 때보다 심각한 사안입니다.”
“압니다.”
“그렇기에 이건 단순히 우리 대한민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 정도의 이변 속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전 세계에 코드 헌터 상황을 발령하겠습니다.”
전 세계에 코드 헌터를 발령하고, 거기다가 각성제를 제공해 주는 용사의 핏줄이 참전한다면 모두가 도와줄 것이 확실했다.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하지만 세네타는 코드 헌터로 모든 헌터를 끌어모아서 될 일이 아님을 알았다.
“그곳에는 헌터들이 대처할 몬스터들은 없어요. 당신들이 보는 것과 우리가 보는 것은 다릅니다.”
S급 헌터들이 모여도 어디까지나 몬스터들에 한해서일 뿐이었다. 거대한 악에 마주할 만한 정신은 아무도 없었다.
“그 광기를 못 이긴다면, 그들은 전력이 아닌 우리의 적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 해 보고서야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직 시간은 일주일이나 있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악마와 싸워 봤을지 모르겠지만······ 그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당신들이 메기는 랭크에 따라가는 그런 적이 아니에요.”
세네타는 지크벨트와 함께 악마들에게 고전해 왔기에 그 공포와 광기를 잘 알았다. 사명이 아닌 단순히 돈벌이에 치중하는 용병들인 헌터들에게는 끝까지 책임질 그릇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건 제 아버지가 불러온 참사입니다. 그러니 우리 손으로 끝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다면 실패를 대비······. 아니,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헌터 협회장은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하려다 얼른 말을 돌렸다. 누구보다 악마에 대해서 전문적인 그녀가 실패했다는 것은 곧 모두의 재앙이라는 소리였기에 그런 상황을 절대로 입에 담지 않으려 했다.
세네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뛰며 자신의 가슴을 괴롭혔다.
“긴장되니?”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세네타는 고개를 돌렸다.
“네······. 많은 악마를 잡아 왔는데······ 이처럼 떨리기는 처음이에요.”
세네타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많은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하겠지만, 세네타는 유선, 그의 앞에서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유선은 그런 세네타에게 미소 지으며 다독여 주었다.
“······그래. 몹시 무섭겠지. 그래도 넌 해낼 거야.”
“고마워요, 오빠.”
세네타는 조금 위안이 됐다는 듯이 유선에게 말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였다. 원래 이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도울게.
유선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던전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친 상태로 선 그들을 보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물론 굴뚝같기만 했다.
하지만 그 싸움에는 유선이 끼어들어선 안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이고, 그들에게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그 사실을 아는 만큼, 유선도 그걸 잘 알았다.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강해질 수가 없었다. 그것이 운명이 선택한 것처럼 유선은 그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인.”
유선은 정신을 차리며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내렸다. 루데릭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죄책감 같은 것은 가지지 마라. 그대는 할 만큼 했다. 그 아이들, 그리고 나를 책임지려고 그대가 한 일이 얼마나 많더냐?”
“그거로 끝일까?”
“그거로 끝이 아니다. 그만큼이나 했으면 그대는 능력 내에서, 아니 본인의 예상보다 더욱더 많은 일을 해내 주었다. 늘 말하지 않았더냐!”
루데릭은 한 번 더 유선의 손을 붙잡았다.
“나는 그대에게 구원받았고, 그대는 내게 가치를 증명시켜 주었다. 끊임없이 나를 믿고, 내가 무슨 일이든 하게 시켜 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대에게 쌓인 빚이라면 내가 가져다준 돈 따위로는 환산조차 못 할 만큼 그대에게 빚을 져 버렸다.”
루데릭은 자신이 벨제브에게 잡혀서 서서히 죽어 가던 자신을 믿어 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유선을 올려다보며 그에게 말했다.
“이것이 그대에게 갚는 일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을 거다. 설령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 말에 유선은 순간 감정이 울컥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를 안았다.
“목숨 같은 거 바라지 않아. 무사히만 돌아와.”
“알겠다. 걱정하지 마라.”
귓가에 떨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루데릭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들이 던전으로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모든 장비를 체크하고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던전 속으로 들어갈 일만을 앞둔 상태였다.
세네타가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유선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오빠,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요?”
“들어줄게. 말해 봐”
유선은 발 벗고 나서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세네타가 자신의 양손을 포개어 올리며 말했다.
“제 손을 잡고 기도해 주세요.”
“기도······?”
“아주 예전에······ 떨리면 아버지가 손을 잡아서 기도를 올려 주셨어요. 아주 어릴 적이라서, 성인 때는 아무것도 안 해 줬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 기도가 저를 진정하게 해 주었어요.”
“그래, 알았어.”
세네타에게 조금만 더 힘이 된다면 무엇을 못 하리! 유선은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하지만 유선이 종교를 가져 본 적이 없기에 어떤 식으로 하는 게 맞는 기도인지 몰랐다. 그렇기에 그저 양손을 모으는 세네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올렸다.
“무사하게 귀환하기를······.”
멋들어진 문장이 없는 그저 직설적인 기도. 하지만 세네타는 그 짧은 문장을 듣고도 떨리는 심장을 조금은 진정시켰다.
“이 정도로 될까?”
“네, 충분해요······ 고마워요.”
세네타가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띠었다. 빈말이 아니라는 듯 그녀를 지배하는 떨림이 사라졌다.
“나도 해 줘.”
세네타의 기도가 끝나자, 미라가 끼어들었다.
“미라, 너도 무서워?”
“떨리거나 무섭거나 그렇진 않아. 어차피 검으로 살기에 죽음을 각오한 운명이니까. 단지 한 번쯤은 누군가가 돌아와 줬으면 하는 기도를 들어 보고 싶잖아.”
“그렇······겠지.”
유선은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생각에 민망해졌다.
미라는 자신의 양손을 포개었다. 그리고 세네타처럼 똑같이 그녀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두 명의 기도가 끝났다. 하지만 그 틈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 명만이 아니었다.
“분위기상, 너도 해야겠지?”
유선은 루데릭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악마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 이건 내가 생각해도 조금 말이 안 되는 소리 같구나.”
“그렇지?”
유선은 루데릭의 농담에 웃었다. 하지만 루데릭은 자신의 양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유선은 똑같이 곱게 포개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그리고 약속을 지키도록 기도할게.”
“약속?”
“함께 나들이 가자던 약속. 그 약속, 지켜야지.”
“아아······.”
루데릭도 지금 기억났다는 듯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자신이 기대하지 않았는가! 루데릭은 자신이 망각한 그 약속을 기억해 주어 고마웠다. 그리고 그는 미소 지었다.
“그래, 나들이 가자.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렇게 던전에 들어갈 세 명의 기도가 끝났다.
그들은 준비가 모두 끝났다. 그리고 그 이상 돌아보지 않고, 이계의 틈, 그 검은 곳 안으로 몸을 옮겼다.
***
그들이 순차적으로 던전 속으로 들어왔을 때는 칠흑 같은 어둠이 그들을 반겼다.
“흠!”
그 어둠뿐만이 아니었다. 뭔가가 날아왔다. 그들은 검으로 얼른 그것을 쳐 내려 했다.
파지지직-.
무언가가 세네타와 미라 앞에서 멈춰 섰다. 그것은 일순간 꼬챙이의 형태를 보이더니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속도를 보아서는 쳐 내기는 했겠지만, 기습적인 공격에 데미지를 완전히 피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만약 그들 앞에 발현된 검은 막 따위가 그 꼬챙이를 막아 비틀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위험했으리라 확신했다.
“들어오자마자 기습이라······ 안 좋은 짓만 제대로 하는군.”
루데릭이 평소의 꼬마 같은 목소리가 아닌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데릭의 목소리처럼 그는 더는 꼬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검게 물들었고, 그 형상은 삐쭉거리는 짐승의 형태로 변했다. 그곳에 색이라고 느낄 것은 오로지 붉은 눈뿐이었다.
그것이 루데릭의 본 모습, 본래 자신에게 가까운 모습이었다.
“원래 모습인가요?”
“그래. 이게 내 원래 모습이다.”
언제까지고 아이의 모습을 한 채로 싸울 수는 없었다. 루데릭은 지금 상황에서 인간의 폼을 해서는 얻을 게 없음을 확신했기에,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앞이 제대로 안 보이는데······. 여기가 어딘지 알아?”
“마왕의 본거지다.”
“본거지······라고요?”
자신을 도발해올 때 마왕과 싸울 장소임은 알았지만, 설마 본거지로 자신들을 초청해 올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게는 아주 훤한 장소다. 그리고······ 녀석이 어디서 우리를 반길지도 아니까 나만 따라와라.”
“너희조차 인지하지 못해도, 이렇게 음험한 공간 속에서는 내 감각이 아주 또렷해진다. 그러니 뒤는 내게 맡겨라.”
루데릭이 그렇게 말했고, 미라와 세네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심연처럼 어두운 공간 속, 그 속을 걷기 시작했다.
루데릭은 훤히 보이는 듯 걸었다.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꼬챙이들은 모두 그의 배리어에 막히며 사라짐을 반복했다. 그런 것만 제외한다면 아무런 제약도 없이 걸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본거지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하니, 세네타는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았다. 발밑에 잡히는 진득하면서 기분 나쁜 향이 올라오고 밤에 적응된 시야 속에서도 아무것도 안 잡히는 것이 그녀를 불안케 했다.
“루데릭, 악마들은 안 보이나요······?”
“······.”
“루데릭?”
루데릭이 세네타의 말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침묵했다.
재차 물어오는 세네타의 물음에 루데릭은 입을 열었다.
“굳이 꼭 알아야겠다면 알려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걸 안 보는 게 났다고 여긴다만.”
루데릭은 진지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런 경고가 세네타에게는 우습게 보이는 것처럼 여겨졌다.
“어차피 이곳은 우리의 전장입니다. 전장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알아야 하니까, 알려 주십시오.”
“······좋다.”
경고에도 단호하게 말하자, 루데릭은 어쩔 수 없이 마법을 부렸다. 세네타의 눈에 순간 어두운 기운이 감싸더니 곧 그녀의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세네타는 볼 수 없던 어둠 속이 환하게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째서 루데릭이 경고했는지도 알았다.
아비규환이었다. 마계를 지옥이라 표현한다지만, 그것은 지옥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지옥 속에는 악마가 존재하고 악마가 희생물들을 괴롭히지, 악마들이 시체로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