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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선전 포고 (1) (14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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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선전 포고 (1)

늦은 저녁, 당직 근무를 서는 직원들을 빼면 회사에는 아무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예외로 가끔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오는 헌터들이 장비를 반납하러 들르는 경우가 있었다.

세네타는 특히 밤에 들르는 일이 잦았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것저것 처리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녀가 밤에 회사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휴우······.”

세네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비를 반납하고 나서야 그녀는 오늘 일이 모두 끝났음을 실감했다.

“끝났나?”

밖에서 기다리던 미라가 물었다. 미라가 유선과 계약을 맺은 이후엔 늘 세네타와 함께 붙어 다녔다. 미라는 세네타에게는 스승이면서 동시에 파트너였다. 세네타의 실력에 맞출 헌터가 없어 늘 홀로 사냥하던 그녀에게 생긴 둘도 없는 파트너였다.

세네타는 미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래, 수고했지. 내가 한 일이 너보다 많으니까 말이야.”

미라가 미소 지으며 도발했다. 세네타는 익숙한 그녀의 도발을 무시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려는 생각이었다.

세네타는 천천히 도심 속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옆에서 따라 걷던 미라가 심심한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배고프다.”

“······.”

“밥이라도 먹고 가지 그러나?”

“밤이 늦었어.”

“살이라도 찔까 봐 걱정하나?”

“아니. 늦었으니까 잠자고, 컨디션을 유지해야지.”

“바른 생활 하는 아이는 재미없다. 네 아비도 이렇게 재미없게 살진 않았을 거야.”

미라는 질린다는 듯 세네타에게 말했지만, 세네타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그렇게 살아왔기에 일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흐음······, 그나저나 느꼈나?”

“······응.”

세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주변을 보았다. 늦은 밤이라도 도심 속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거리의 가로등과 가게 불빛으로 밝혀진 거리에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이곳에 있었다. 그들은 눈을 굴려 주변을 확인해 보았다.

“뒤늦게 알아차려 버렸군.”

“쓸데없이 말을 계속 걸어서 집중하지 못했어.”

“변명거리 하나 만들어 줘 버렸네. 뭐, 이 정도까지 주변을 완전히 배제해 버릴 만한 녀석이라니! 참으로 놀랍지만······.”

미라와 세네타는 검을 빼 들었다. 미라는 몸 자체에 모든 검을 지니기에, 함부로 가지고 다닐 수 없는 헌터 장비도 언제 어디서든지 꺼냈다.

그들은 그렇게 경계하다가 누군가가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아무도 없던 거리 속, 갑작스럽게 나와 그들을 반겼다.

남자였다.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거친 외모에 이질적인 복장과 이질적인 기운. 모습은 인간과 유사하지만 절대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없게 했다.

“안녕하신지?”

사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미라와 세네타는 그런 농담까지 받아들일 만큼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내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절대로 방심할 수 없게 했다.

“초면에 실례하는 게 인간들 방식이냐? 하여간 못 배워 처먹은 것들이야.”

사내는 키득 웃었다. 세네타는 그것에 동요하지 않으며 사내에게 물었다.

“넌 뭐 하는 놈이냐?”

“내 쪽부터 소개하라 이건가? 하여간 재미없는 것들이라니까.”

사내는 키득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일찍이 너희, 아니 너와······.”

뜸을 들이다가, 손가락이 세네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아비가 대항하던 존재들의 중심이다.”

타닥!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네타와 미라가 사라졌다. 아니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동시에 그 남자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들이 머리로 이해한 것은 한 단어였고, 그 단어를 이해한 이상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틈을 보일 때 바로 죽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성공적이진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끝나자마자, 덤벼드는 건 너무하지 않나?”

사내는 여유로운 톤으로 말했다. 세네타와 미라. 두 명이 꿰뚫었으리라 믿은 검은 그 교차한 양손에 잡혀 있었다.

그들의 검신을 잡아 방향을 틀어 버렸다.

“읏!”

“으윽!”

사내는 그 검을 밀치듯이 놓아 주었다. 가볍게 툭! 하고 내친 것과는 다르게 미라와 세네타는 한순간 휘청거리고 말았다.

“지크벨트 녀석과는 차원이 다르군. 계집의 몸이라서 버티지 못하나?”

세네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심기를 자극하기 아주 좋은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흥분하려 들지도 않았다.

장비들은 모조리 큐앤 헌터 컴퍼니 본사 쪽에 놔둔 상태, 있는 거라곤 검과 몸뚱이뿐이었다. 제아무리 맨몸으로 던전을 들어간 헌터라지만, 그것도 이런 악마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소리였다.

지금은 아무런 준비도 안 되었고, 허튼 짓거리를 하면 오히려 손해만 입을 뿐이다. 세네타는 이 상황을 생각했다.

‘한 명이 길을 막고, 한 명이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서 오빠만 불러낸다면······.”

이길 가능성은 충분했다.

미라와 세네타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미라는 스스로 미끼가 될 준비를 확실히 마쳤다.

“나를 잡겠다는 생각이나 그런 계획은 짜지 마. 한 명이 이탈해서 연락을 취할 만큼, 나도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사내는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세네타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세네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습을 보인 이유가 뭐지?”

자신들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세계를 파괴할 목적이 아니라면 어째서 모습을 드러냈는지, 세네타는 영문을 몰랐다.

“왕인 몸이 품위 떨어지는 기습 따위를 하러 올 것 같으냐? 이건 너희에게 선포하러 온 거다.”

사내는 씨익 웃었다. 비릿한 미소가 번지며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파괴될 거다.”

말 그대로 선포였다.

“그때까지 최후의 만찬이라도 실컷 즐겨라. 더는 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할 테니 말이야.”

세네타가 픽 웃으며 물었다.

“저급한 농담을 하는구나. 언제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선포라는 걸 하러 왔느냐?”

그러자 사내가 미라를 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농담이라! 내가 단순히 농담이나 하자고, 이렇게 손수 회장까지 만들어서 너희에게만 알려 주겠나?”

습격할 속셈이라면, 알려 주지 않고 그때 바로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악마들이 그 정도 생각도 못 하고 그럴 리는 절대로 없었다.

“제아무리 너희가 막으러 온다고 한들, 너희는 절대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향한 믿음이었다. 지금의 세네타와 미라 정도로는 자신을 결코 막을 수 없으리라 강하게 믿었다.

“막을 테면 막으러 와 보아라.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사내의 모습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더니, 자연스럽게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짐과 동시에 이질적으로 변한 거리의 기운도 완전히 사라졌다. 기운이 사라짐과 동시에 골목골목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노래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거리를 채웠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거리가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세네타와 미라 둘만이 그 속에서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

새벽.

유선이 급하게 찾아온 곳은 병원이었다. 새벽에 온 전화에 급하게 달려와 후줄근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1층 병실로 몸을 옮겼고, 현태와 마주쳤다. 현태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선을 반겼다.

“무사합니까?”

“네, 무사합니다.”

현태는 유선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유선은 병실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도원이었다. 유선은 도원이 누운 침대를 보았다. 전화로 들었지만, 설마 정말로 이렇게 병실에 누워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만히 있는 유선을 보고 위로하려고 말을 거는지, 현태가 옆에 서서 유선에게 말했다.

“다행히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대체?”

“이게 참······, 이야기하자면······.”

현태는 현재까지 파악한 것들을 알려 주었다.

괴한의 습격. 누군가가 헌터 기숙사에 침입했다고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 특별히 원한 관계나 위험군으로 찍히지도 않은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드문 일이었다. 아무 죄도 없이 쉬는 헌터들에게 앙심을 품어서 그곳으로 침입했을 리는 없었다.

유선은 그것을 듣자마자 도원을 노리고 온 사람들임을 알았다.

“그곳에 들어오려면 경비들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 텐데······ 그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참······.”

현태는 껄끄럽다는 듯이 말을 더듬다가 결국 유선에게 알려 주었다.

목에 현상금이 달린 도원, 그리고 돈이 필요한 전직 헌터들.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어떤 범죄도 저지르겠다고 각오했을 것이다. 설령 무고한 시민이라도 말이다.

그 희생양으로 엉뚱하게도 경비병 2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유선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헌터도 아니고 모두 일반인인 데다 노인들이었다. 적당히 제압하고 묶어 놓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들킬 여지를 철저하게 남기지 않을 속셈이었을 겁니다.”

“짐승 새끼들······.”

유선은 욕설을 내뱉었다. 돈에 급급해 인간이 지켜야 할 것들을 저버린 모습에 그는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 그 분노를 계속해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심호흡하며, 현태에게 물었다.

“그 새끼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우선 동태를 살펴서 사용한 자가용이나 물건들 일부는 찾아냈습니다. 신원 조회가 아침이면 아마 모두 끝날 것이고, 끝나는 대로 공개 수배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쓸데없이 휘말린 경비병 두 명은 피해자 처지에서 될 수 있으면 보상해 주세요. 경비 이상이 나오면 제가 지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현태는 그렇게 말하며, 잠깐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 병실에 남은 것은 도원과 유선 둘뿐이었다.

도원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로 가만히 누웠다. 모든 것이 정상인데도 깨어나지 않는 걸 보면, 언제 깨어날지는 전문 의사들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습격한 사람들에게 그 정보를 말해 주었는지, 그리고 누구인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만지면 뭐라도 생각이 들어오지 않을까?’

유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 넣어 둔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링거가 꽂힌, 도원의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구나······.”

역시나 그랬다. 수정구를 쥐었을 때 이후로 반지의 위력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상대는 특별한 물건이 아니며, 인간인데 설마 뭔가 있겠는가!

유선이 손을 거두려던 찰나였다.

유선은 자신의 손을 기습적으로 낚아채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 말았다.

도원이 유선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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