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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열 길 마음속을 알아도 (2) (13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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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열 길 마음속을 알아도 (2)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말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살 수 없다니! 그럼 세상이 다시 만들어지면, 너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야?”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리셋! 리셋에 가깝지.”

리셋이라면 모든 것을 잊는다는 것이었다. 유선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데?”

“그거야 시간의 흐름으로 생기는 순환의 굴레는 지켜보는 우리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다시 성숙하고, 퇴화하기를 반복하지. 흔히 너희가 경험하는 죽음 같은 거야.”

죽음. 정령들이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만물을 이루는 요소이기에, 정령마저 세상 속에서 사라지면, 그건 어떤 생물들조차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만들기 때문이었다.

“뭐 그런 게 다 있어? 불로불사 같은 존재면, 영원히 그대로 있는 거 아냐?”

“무슨 영혼의 성숙이 시간의 흐름에만 맡기는 줄 알아? 그러면 내 세계에 있는 정령들은 전부 다 늙은이처럼 굴었지!”

술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오르넵토스와 휘하 정령들. 그들을 떠올리면 무리도 아니라 여겼다.

“정령들은 수많은 시간을 거치고 다녀. 아마, 계약자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걸. 태초의 세계를 보고, 그 세계가 부서지는 것을 봤으니까.”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지. 그건 우리의 모토였으니까.”

“우리?”

“······그런 사람이 있었어.”

오르넵토스는 황제의 존재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유선도 그것을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았다면, 가장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고, 아픈 기억만 남은 채였으니까.

유선은 결론짓기로 하며 오르넵토스에게 물었다.

“다 좋은데, 그래서 사과할 거지?”

“윽, 해, 해야 해?”

“그럼 어떻게 할 속셈인데?”

오르넵토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유선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애, 애들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 않을까?”

“······.”

대처도 어린애처럼 하려고 들었다.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글러 먹은 정신을 듣고 그녀의 볼을 잡아당겼다. 마나가 없는 그녀는 꼼짝도 못 하고 유선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오르넵토스는 그것에 못 이겨 눈물을 찔끔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흥븍, 흥븍······.”

“사과해라.”

“을긋슴느드······.”

오르넵토스의 동의를 얻고 나서 유선은 그녀의 볼을 놓아주었다. 오르넵토스는 얼얼한 볼을 붙잡으며 밖으로 나갔다. 엘레노어는 볼을 부풀리며 자신의 방에서 화를 식혔기에, 그녀는 조금 더 분이 삭아 들면 그때를 노려서 사과하려 지금은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애가 더 철없는 꼬맹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진 기분이었다.

띠리리리리!

폭풍같이 뭔가 흘러갔다 싶더니,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울렸다. 유선은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정도원이었다. 유선이 연락책으로 그에게 준 휴대폰 번호였다. 유선은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혹시 정유선 씨입니까?

“······네?”

유선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도원의 휴대폰 전화번호에서 들려오는 것은 낯선 목소리였다. 유선은 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도원의 전화가 맞았다.

-정유선 씨 휴대폰 번호가 맞습니까?

사내가 한 번 더 묻자, 유선은 그것에 대답해 주었다.

“그렇습니다만.”

-아, 네. 죄송합니다만 혹시 이 휴대폰 주인과 무슨 관계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관계······.”

그거야 그냥 남남이었다. 하지만 그거로 끝이 아니라, 유선은 지금 도원을 보호해 주는 처지였다. 그렇기에 유선은 관계를 물어보는 사람에게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죄송한데 남의 휴대폰을 잡고 그런 걸 묻는 쪽이 실례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쪽은 누구십니까?”

유선이 정중하게 묻자, 자신들도 실례했음을 자각하는지, 꼬리를 내리며 나왔다.

-아, 우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지금 이 휴대폰 주인을 찾으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주인을 말입니까?”

도원이 밖에 나가서 아무래도 흘리기라도 했나? 유선이 그렇게 생각한 것과 다르게 상황은 그렇게 안일한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그 휴대폰이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이게 발견된 장소가······.

휴대폰 너머의 사내가 대답해 주었다. 그걸 듣고 유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위치가 그곳이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선은 급하게 외투를 챙기며 휴대폰 너머 사내에게 말했다.

“제가 직접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얘기하지요.”

***

급하게 발걸음을 향한 곳은 헌터 숙소에서 멀지 않은 마트 앞이었다. 헌터 숙소에 있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사러 간다면, 가는 곳이었고, 도원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알았다.

아직 기자들과 방송국에서 온 앵커들이 없는 것을 보면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폴리스 라인 너머에서 무슨 일이 터졌는지 구경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보통 사건이 터지면 경찰들이 줄을 치고 선 것과 다르게, 이곳에는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서 있었다. 던전 관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유선은 줄을 넘어 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죄송하지만 관계자 외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네?”

FM대로 하는 사내의 멘트에, 유선은 자신이 잘못 찾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뒤에 선 사내가 유선을 보고는 말했다.

“아냐, 관계자니까, 안으로 들여보내 드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유선은 줄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처럼 양복을 입은 사내가 유선에게 악수를 청했다.

“정유선이라고 했는데······. 설마 정말로 헌터 정유선 씨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유선은 더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 남자도 정도원의 정체를 알면, 현상금을 노리는 사람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선은 폴리스 라인 너머에서 보이지 않은 장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았다.

친숙하지만 이질적인 장소에서 일어난 일. 유선은 자신의 육안을 의심했다.

“여기서 발견된 것이 확실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냥 조사만 하다가, 휴대폰을 흘린 걸 확인하고 헌터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유선은 한 번 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깨진 타일, 피가 튀긴 벽, 움푹 들어가 꺼진 콘크리트,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몬스터의 사체.

몬스터는 B급 몬스터인 크로울러였다. 인간보다 조금 더 큰 덩치에 사각을 줄 수 없이 도진 가시 때문에 접근전을 꺼리는 몬스터였다.

던전 안에서는 메인 몬스터도 아닌데 가끔 튀어나올 만큼 흔한 몬스터였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볼 만큼 흔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던전 관리가 제대로 안 됐군요.”

“그렇습니다. 확인해 보니 던전을 발견해 놓고 신고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해 두었더군요.”

사람 발길이 이리저리 드나드는 도심 속에서 던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말도 안 되었다. 그렇다는 건 그 던전은 암시장용으로 숨겨 놓은 던전이 분명했다. 자격이 박탈된 헌터들을 대상으로 몰래 던전을 공급해 주려고 놔둔 던전일 것이다.

그러다가 계속 방치된 상태로만 있게 됐고, 위험한 기간을 넘기기 직전까지 가서야 신고를 해야 할지 고민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신고하자니, 이미 너무나도 늦어 버려 그대로 내버려 두고 도망쳤다. 대부분이 그런 시나리오였고, 이 사건 또한 그러했다.

“현재 긴급 파견대가 있습니까?”

“현재 구하는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그게 쉽지 않습니다······.”

긴급 파견대는 정부에서 주관하기에 특혜를 얻으려고 많은 사람이 지원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난이도가 낮고, 시간이 있는 회사들에 한해서였다.

크로울러가 나왔다는 것은 B급 몬스터가 나왔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던전 등급은 최소 B급 이상은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후우······.”

유선은 휴대폰을 들어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네, 정유선 헌터님. 전화 받았습니다.

“아, 네 저예요. 혹시 관리청 쪽에서 전화 받으셨죠?”

-긴급 공략 건을 말씀하시나요? 네, 전화를 받았다고 로그에 나옵니다.

“아무래도 우리 헌터 숙소와 가까운 곳이니까, 공략 시작하려는 부대가 있으면, 그곳에서 철수하고 그 건부터 좀 해결하게 해 주세요. 보수는 평소보다 더 쳐 주겠다고 제가 말했다고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유해석 공격대장님께 그렇게 말씀해 두겠습니다.

신속하게 파견대에 관련된 일은 끝마쳤다. 유선은 통화 버튼을 끊으며 사내에게 말했다.

“긴급 공격대가 파견됐으니까, 아마 그 건은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저, 정말로 감사합니다, 헌터님!”

사내는 깍듯하게 유선에게 인사를 올렸다. 유선은 그런 단순한 감사의 인사를 받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급한 불을 끄게 해 드렸으니, 제 쪽에서 좀 부탁하겠습니다.”

“네, 무슨 부탁인지 말씀만 하십시오.”

“휴대폰을 발견한 것은 이대로 잊어 주십시오.”

“네? 왜 그런 부탁을······?”

사내는 유선의 부탁 내용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불가능합니까?”

“아뇨.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유선이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도 아니었기에 그걸 무시하기는 쉬운 일이었다. 주변에 날뛰던 몬스터를 잡은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을 찾아 훈장을 걸어 주려는 생각이었지,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

청렴하고 인성이 좋은 헌터가 그런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상부에 보고도 올리지 말고, 누군가가 이곳에서 크로울러를 잡았다고만 확실하게 보고해 주세요. 제 조건은 이겁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제가 할 수 있으니······.”

사내는 유선에게 전화를 건 도원의 스마트폰을 다시 돌려주었다.

피가 묻은 전화기. 그 피의 주인은 유선이 육안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도원이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설사 생각이 틀렸더라도, 그랬다면, 시체가 여기에 있어야겠지.

그렇다면 도원을 찾아야 했다.

유선은 반지를 착용했다. 그리고 주변 감각을 넓혔다. 어지러운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제 말만 내뱉는 사람들의 말에서 능숙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골라내었다. 그들의 발언이 하나씩 길을 만들어 주었고, 그 길은 끝이 보일 때까지 천천히 만들어질 것이다.

유선은 도원이 간 곳을 찾으려고 주변 모든 사람의 생각을 짚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옮긴 발걸음은 나무로 무성한 공원이었다. 노숙자들이 눈에 띄지 않게 자리를 찾아 자기엔 좋은 장소였다.

유선은 계속해서 도원을 찾으려 추적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목소리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유선은 도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자, 유선은 귀에서 바라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숨소리가 들렸다.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숨어서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선은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기댄 채로 헐떡이는 사내에게 이름을 불렀다.

“정도원 씨?”

“으아앗!”

사내는 화들짝 놀라 뛰쳐나가려다가 그만 제 발에 걸려 넘어져 쓰러졌다. 생각처럼 도원이었다. 평소처럼 진중한 얼굴은 어디 갔는지 없고, 혼란스러운 얼굴에 식은땀이 적셔졌다.

도원은 뒷걸음질 치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멈췄다.

“저, 정유선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물으려다 묻지 못했다. 유선은 말을 하려면 목구멍에서 숨을 내뱉어야 한다는 것을 한순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변을 아는 도원이 힘겹게 말했다.

“저, 정유선 헌터님. 저는······ 이게 대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유선은 두려워하는 도원을 감싸며 말했다. 유선은 어째서 도원이 당황해서 무슨 말을 못 하는지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선도 그의 팔을 보고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도원의 팔은 사람의 팔이 아니었다. 옷소매를 찢고 튀어나온 그의 팔은 촉수들이 엉켜서 근육을 만든 것처럼 기괴하기 짝이 없었고, 그것은 감히 어떤 인간이 가진 팔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유선은 그것을 보고 강하게 느낌이 왔다.

“대충 떠올랐습니다. 제가 누구였는지, 어떤 인간인지 말입니다.”

“······.”

기억을 떠올렸다. 그 말에 유선은 잠깐 주춤했다.

“그렇습니까?”

도원은 두려움에 젖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저는 말입니다······.”

“······도원 씨, 말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우선 자리가 좋지 않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지요.”

유선은 뭔가 말하려는 도원을 말렸다. 유선도 많은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불안한 상태에 공원 풀숲에서 듣기는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유선은 도원의 팔을 숨기도록 천으로 감쌌다. 그리고 주변을 향해 감각을 넓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는 조심스럽게 숲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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