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67. 열 길 마음속을 알아도 (1)
도원을 은둔 생활을 시킨 지 일주일이 흘렀다. 유선은 아무도 모르게 헌터 숙소로 홀로 들러, 도원을 한 번 만나기로 했다.
“이렇게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유선 헌터님.”
“아닙니다, 잘 지내셔서 다행이네요.”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도원의 방은 깨끗하고, 청결했다. 마치 쓰지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밥은 준비되는 대로 먹고, 입는 거나 그런 것도 걱정할 게 없어 보였다.
애초에 감금당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도원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도원이 원활하게 활동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정보가 얼마나 확산했는가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도원의 목에 현상금을 건 것은 돈이 절실한 극소수의 정예들에게만 알려지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지 사이트였다. 그리고 그 의뢰가 시작된 직후에도 타깃에 대한 소문이나 정보를 획득할 수가 없어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뢰가 사람들에게 반쯤 잊혀 갔을 것이다. 형사는 그 반쯤 잊히다가 다시 떠올린 극소수 회원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형사님에게 조사받으러 가 봐야 하지 않습니까?”
도원이 생각났다는 듯이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은 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우리 쪽에서 알아서 다 해 뒀으니까, 아무래도 도원 씨를 귀찮게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역시 돈이 좋죠.”
도원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며 유선이 돈을 주면서 입막음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유선은 그것에 미소만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 형사 같은 사람은 돈으로 절대로 해결을 볼 수 없는 타입이었다. 끝없는 욕심으로 어떻게든 더 많은 이득을 보려 할 것이기에, 유선은 돈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바로 루데릭에게 부탁해 최면 마법으로 형사가 아는 정도원에 관한 정보를 모두 잊게 해, 어디에도 정보를 퍼트릴 수 없게끔 손을 보는 것이었다. 그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도원에게 말해 주지 않았고, 도원은 그런 방법을 썼으리라곤 생각도 안 했다.
“기억은 어느 정도 돌아오셨습니까?”
“그게 참…… 이것저것 떠올리려 별짓을 해 봤지만…….”
도원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유선은 그가 거짓말하는 게 아님을 알고 괜찮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천천히 떠올리십시오. 고작 일주일 지났고,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러고 싶은데 마음은 참 급합니다. 하하…….”
멋쩍게 웃는 도원. 그런 그를 보면서 유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나 생활하는 데 결함이 없나 싶어서 관찰하는 행동이었다.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수도는 잘 나오고요?”
“말했지만, 아주 잘 생활합니다. 아니 괜찮게…… 아니 호사를 누리지요.”
“흠, 텔레비전도 잘되나?”
유선은 리모컨을 건드려 TV를 켰다. 화면이 번쩍이며 채널이 잡혔다. 그리고 타이밍이 좋게 틀자마자,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한때,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조용히 무시된 헌터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화 인간 프로젝트’라는 것인데요. 많은 제약 회사가 도전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사건들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인 ‘이것이 알고 싶다’ 재방송 영상이었다. 유선은 그것을 보며, 도원에게 말했다.
“옛날에 유명했던 사건이네요. 강화 인간 프로젝트라…….”
“유명했던 사건인가요?”
도원은 딱히 뭔가 물을 게 없던 주제를 유선에게 맞춰 물음을 던졌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게 상당히 유명했죠. 반인륜적이다, 뭐다 해서 접은 사업이었으니까요. 이걸 다시 볼 줄은 몰랐네요.”
그렇게 말했지만, 유선이 채널을 돌려 이것이 알고 싶다를 튼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유선은 오기 전에 방송 편성표를 확인하고 왔다. 자연스럽게 기억을 끌어내려고 방송 편성표에 나온 시간에 맞춰 방문했고, 집을 점검한다는 이유로 TV를 틀어 일부러 채널을 맞춰 틀었다.
구식이지만, 그래도 유선은 능력이 있기에, 그를 떠본다는 진부한 방법까진 필요 없었다. 유선은 생각을 읽는 그저 그것에 관한 반응만 있으면 됐다.
‘호기심……인가?’
단순히 낯선 주제에 관한 호기심 같은 게 아니었다. 뭔가 망각의 호수 속에서 기억이라는 물고기가 미끼를 덥석 문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대어를 건졌다고는 볼 수 없었다.
“채널 돌릴까요?”
“아뇨, 조금 보죠.”
유선은 자신의 의도가 들키지 않게 도원에게 물었다. 하지만 도원은 뭔가 흥미롭다는 듯이 유선이 쥔 리모컨을 내려놓게끔 했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도원은 이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했다. 그리고 중간쯤 갔을까, 도원이 유선에게 말했다.
“그래, 강화 인간 프로젝트라…… 그런 게 있었지요.”
“뭔가 기억나십니까?”
뭔가가 왔다. 유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도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자 도원은 씁쓸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유선 헌터님께서 말한 것처럼 한때 그것이 반인륜적이라는 소리로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유선의 물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도원이 떠올렸으면 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는 말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참 말이 많았죠. 도원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원은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흠, 글쎄요. 저는 이것이 나쁘다 좋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보통이라면, 누구나 나쁘다는 식으로 나올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것이 알고 싶다만 본다면 그런 의견이 충분히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원은 그것에 비난하려 들지 않았다. 기억하지는 않지만, 몸은 안다는 것만 같은 반응이었다.
“어째서입니까?”
“그야 인간들은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분명히 그걸 나쁘게만 비출 수는 없을 겁니다. 이세계에서 빠져나가는 쓰레기들이 언젠가 자신이 힘을 내지 못할 때, 자신의 가족을 위협한다는 공포를 느끼겠지요.”
그 말이 완전히 공감되지 않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익이었다. 더 강한 헌터들을 만들려고 반인륜적이라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그 누구도 도원이 말한 것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어째서인지 유선은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원은 그런 유선의 표정을 보다가 그에게 물었다.
“정유선 헌터님은 언제까지고 이런 위협이 없는 듯한, 그리고 동시에 위협을 받는 세상 속을 살리라 생각하시나요?”
“그건…….”
모르겠다.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잔잔한 생활이 언제까지 가고, 또 재앙급 던전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선이 알 방도는 없었다.
세계는 지금처럼 쭉 이렇게 흐를까?
도원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려는 마음에 왔는데 의문이 늘어났다.
***
유선은 도원에게서 직접적인 정보를 얻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사무 일을 진행했다.
‘언제까지라…….’
거슬리던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어떠한 공식으로도 증명해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하는 문. 그것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관념으로 자리 잡히던 것들은 대부분 깨지고 말았다.
코어라는 물건으로 상상도 못 하는 어마어마한 무기들을 만들어 냈고, 그 가치가 높아지면서, 그 코어를 캐려고 목숨 거는 직업이 모든 이를 매료시켰다.
이게 언제까지 진행될지는 첫 등장처럼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만 수천 가지가 넘어가고, 대부분 이론에서 끝날 소리뿐일 것이다.
“일이나 하자.”
그리고 유선이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도 잡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현실에 충실한 게 답이었다.
타닥타닥 타닥!
그렇게 생각하고 일하는 중,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달려오는 소리가 재빠르게 몸을 꺾어 유선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르넵토스였다. 그녀가 상당히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뭔가 적당한 것을 발견했는지, 유선에게 다가왔다.
“계약자, 잠시만……!”
“갑자기 왜……?”
오르넵토스는 유선의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냥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만 말아 줘!”
“무슨 일인데 대체 그러냐?”
그리고 오르넵토스는 숨을 죽인 채로 가만히 앉았다.
곧이어 다른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힘이 실린 발소리가 들리더니, 오르넵토스가 왔을 때처럼 똑같이 문을 열어젖혔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엘레노어였다. 당황한 표정을 하는 오르넵토스처럼 그녀의 표정도 만만치 않게 좋지 않았다.
말 그대로 뿔이 난 상태였다. 엘레노어가 씨익씨익 주변을 둘러보더니,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 님, 칭구 어디 가써?”
“왜 그래?”
엘레노어가 분노와 설움이 섞여 울먹거리다 손에 든 자신의 그림을 펼쳤다. 어린아이답게 거침없이 그어진 선이 돋보였다.
“칭구가 내 그림에다가 낙서했어!”
“…….”
어디에다가?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관찰하고 나서야 유선은 어느 부분이 낙서인지 알았다.
“왜 엘레노어 그림에다 이런 짓을 했을까?”
“그냥…… 그냥 내 그림에다가 낙서했어!”
엘레노어는 영문도 모른 채로 당했다는 듯이 상당히 상심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구나……. 그 친구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때려 줄 거야!”
히끅! 책상 아래가 한순간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엘레노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앙증맞은 주먹이 귀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유선은 얼마나 많은 것을 부숴 버렸는지 알기에 한편으로 섬뜩한 감각이 들었다.
일단 엘레노어를 진정시키자는 생각에 그녀에게 말했다.
“엘레노어가 몹시 속상하겠네, 그래.”
“몹시 속상해. 그래서 때려 줄 거야!”
시뻘겋게 부은 눈을 부릅뜨며 한 번 더 다짐했다. 분명히 그 힘이 자신을 향하면, 꼼짝도 없이 사라질 걸 알기에 유선의 책상 밑에 숨으려고 생각했겠지.
유선은 한숨을 내쉬며 화가 난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그런데 오르넵토스는 이쪽으로 온 것 같진 않아.”
“여기 안 와써?”
“응, 다른 곳에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응……, 알았어.”
엘레노어는 유선의 말에 순순히 물러났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 있을 오르넵토스를 찾아 문밖으로 나갔다. 오르넵토스는 엘레노어가 나간 것을 알고 숨을 몰아 내쉬었다.
“휴, 고마워, 계야으윽!”
유선은 다리 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오르넵토스의 얼굴을 양손으로 그대로 잡아당겼다.
“너의 죄를 네가 알렸다?”
“헤헤…….”
오르넵토스는 스스로 민망한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정령이 애를 놀리면 쓰냐? 애 그림에다가 낙서가 뭐야, 낙서가.”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재밌어 보여서……”
헤실 웃으려 하자, 유선은 다시 오르넵토스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게 이유니?”
“아으으……,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세계가 다시 만들어진다고…….”
세계가 다시 만들어진다는 소리에, 유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통념적으로는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우리 정령들은 또 다른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할 운명인데, 언제까지고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말이야. 특히 나는 더더욱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