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65. 기억을 잃은 남자 (1)
던전 등급 S급 지역은 지역 재난급으로 분류되었다. 악명 높은 몬스터들이 안에서 호시탐탐 이계의 틈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코드 헌터라는 비상사태가 울릴 정도는 아닌 것이 S급 헌터들이 있다면, 그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볼 문제였기 때문이다.
S급 헌터와 그 휘하 10인 공격대로 구성해 기본적으로 S급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였다. 하지만 그걸 맨 처음으로 박살 낸 것이 바로 고독한 늑대 ‘세네타 유’였고, 그녀의 독주 레이스 같은 활약에 따라붙은 사람이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다른 한 명이 나란히 기록을 경신했다.
그 사람이 바로 정유선이었다.
“드레이크들은 전체적으로 코어가 너무 크네······.”
해체용 나이프로 드레이크의 사체를 갈라, 심장 속 코어를 꺼내었다. 순도가 높아 빛깔이 좋은 코어가 타조 알 만한 것이 군침이 저절로 흐르게 했다. 그대로.
그렇기에 개체 수도 소수였고, 다섯 마리째 사냥하고 나서야 이계의 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 지역 몬스터들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많은 걸 캐면 좋긴 하겠다만······.”
돈 욕심이 없다지만, 그래도 막상 돈을 생각하니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서 시세를 몰라, 얼마까지 받아 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하나가 억대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선은 차기율이나 직원들이 눈을 뒤집고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훤하게 보였다.
“너무 커.”
“엄청 크지?”
“먹어도 돼?”
“아, 그건 안 돼. 엘레노어가 먹으면······ 어허이! 지지!”
엘레노어가 앙! 하며 입을 벌리고 안에 넣으려고 시늉하기에 유선은 기겁하며 그녀를 말렸다. 크기가 커서 한입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그녀라면 이 커다란 수박 같은 물건도 사과처럼 으적으적 씹어 먹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엘레노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유선의 반응이 즐거운지, 히히 웃으면서 다시 그에게 건네주었다. 유선은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구슬을 포대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때, 엘레노어가 소리를 감지한 강아지처럼 어디론가 시선을 던지며 보았다.
“왜 그래?”
“유선 님, 저쪽에 뭔가 있어.”
“뭐가 있는데?”
“사람!”
유선은 드레이크인가 싶어서 묻다가, 엘레노어의 말에 깜짝 놀랐다.
“여기에 사람이 있어?”
“한 명 이써.”
“한 명이라······.”
세네타······일 리는 없었다. 오늘 할 일이 없는 데다, 활동한다면 미라와 함께하기 때문에, 엘레노어가 절대로 한 명만 잡아낼 리는 없었다.
“그 사람 지금 움직여?”
“움직여.”
움직이면 기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미라를 발견하던 때와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번엔 정말로 실종자이려나······?”
유선은 그런 불안감을 안고,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그러면 그쪽까지 데려다줄래?”
“응!”
엘레노어는 날개를 펼쳤고, 유선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사람을 발견했다는 곳으로 날아갔다.
인근에 도착하자, 엘레노어는 유선을 내려놓았고, 유선은 그 주변에 사람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숲 나무들 사이에 사람의 형상이 서 있는 것을 조금 뒤에 발견했다.
미라를 만나던 때와는 확실히 다른 진짜 사람임을 확신했다. 일단 옷차림새가 호문쿨루스들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가벼운 구식 복장이 아닌 현대인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면서 다른 문제가 생겼다.
‘어째서 복장이······.’
이 구역에 들어와야 하는 헌터라기엔 장비가 너무나도 부실했다. 말 그대로 현대 사회인이 이곳으로 전이했다고 생각될 만큼 남자의 옷 복장이 프리했다.
오랫동안 빨지 못해 헐렁해진 것을 보면, 오랫동안 이 장소를 방황한 것으로 보였다.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른 상태로 이계의 틈으로 들어온 사람 중 하나인가 생각했다.
‘내가 예전에 그랬으니까.’
그렇게 엘레노어를 데리고 나왔기에, 다행이었던 사건이다. 일단 유선은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
“저기······.”
“으헉!”
사내는 기습당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유선을 보았다. 그의 반응에 유선도 그만 덩달아 놀라고 알았다.
“안심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습니다. 결단코요.”
유선은 확고한 표정으로 사내에게 장담했다. 미라처럼 경계하나 싶었지만, 사내는 정말로 그저 놀랐을 뿐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뜬 채로 멀뚱멀뚱 유선을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한국어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신가요?”
눈높이를 조금 낮춰 보자, 작은 소녀가 유선의 소맷자락을 잡은 것을 보고 정정하며 그에게 물었다. 유선은 일단 사내를 안정시키려고 침착하게 말했다.
“헌터입니다. 이 근방에서 사냥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을 여기서 만났고,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왔습니다.”
“도움!”
엘레노어가 한 단어를 거들어 강조하며 말했다.
“헌터? 헌터······ 헌터라······.”
기묘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선에게 물었다.
“헌터라는 게 사냥꾼을 말하죠?”
“네?”
“그러니까 여기서 이리저리 사냥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란 말 아닌가요?”
“허······, 잠시만요.”
유선은 그 반응이 어째서인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싶어, 빼놓은 반지를 착용했다. 사람이었기에 유선이 평소라면 볼 수 없던 생각이 떠오르리라 생각했다.
‘공백이다.’
하지만 유선은 그 사내에게서 어떤 생각도 보지 못했다.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눈앞의 유선과 엘레노어가 누군가 하는 생각과 헌터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했다.
“혹시 선생님, 여기를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기억하시나요?”
“글쎄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서 방황하다가, 그쪽을 만난 것뿐이네요. 허허······.”
사내는 허탈하게 웃었다.
“혹시 뭐라도 떠올려 주실 수는 없을까요?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요.”
“아무거나 말이군요? 흐음······.”
사내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발자취가 되감기듯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맨 처음까지 돌아가자 사내는 숲속에 누워 있다가 자신의 몸을 보았다는 것까지 알았다.
그 이상의 과거는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 끝나자,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는군요.”
남자의 머리는 공백이었다. 시간을 간섭하는 효과가 없어지면서 남의 생각을 읽는 것도 상당히 약화가 된 탓에 예전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는 기대할 수 없지만, 이 남자는 약간의 정보 따위도 없었다.
“아닙니다. 제 쪽이 실례했군요. 기억을 잃으셔서 상당히 난감하셨을 텐데요······.”
“사실 제가 조난했다는 사실도 몰랐던지라.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그냥 주변에 끼에에엑거리던 소리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거든요.”
드레이크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유선에게 말했다. 상당히 낙관적인 남자였다. 조난하면 심란한 상태에서 대부분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그런 문제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곳에 혼자 계시면 분명히 위험할 겁니다. 제가 인솔해 드릴 테니, 여기서 나가시지요.”
“알겠습니다. 그······.”
“아, 정유선입니다.”
“정유선! 네, 정유선 헌터······님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아, 네······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통성명하기가 힘들군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둘뿐이고, 나가서 천천히 생각하셔도 되니까요.”
사내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고, 유선은 빙긋 미소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
S급 던전 밖, 그곳에는 평소라면 준비하지 않을 전문 장비들을 대동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표면상 안심시키려는 수단일 뿐, 유선에게는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물건들뿐이었다. 현태는 그저 틈이 어떤지 체크하고, 담배를 피우는 것밖에 없었다.
유선을 기다리던 현태가 이계의 틈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온 사람 수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 한 사람이 더 늘었습니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차원 실종자 같습니다.”
“차원 실종자라, 흔하진 않지만 없는 일도 아니죠.”
“한국어도 할 줄 알고 그래서 우리나라 쪽 사람 같은데······. 그래서 최근에 차원 실종자가 있는지 확인 한 번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흠······, 알겠습니다. 잠깐 사진 좀 찍겠습니다.”
현태는 휴대폰을 들어 사내의 얼굴을 찍었다. 인적 사항을 대강 써넣어 그거로 대조해서 사람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는 연락을 취하려고 전파가 터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로 돌아오니, 공기부터가 다르네요.”
산중에 있는 곳이었기에, 그가 있던 울창한 숲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상쾌하다는 듯이 숨을 깊게 들이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앉아서 좀 쉬죠.”
평소라면 닫히는 징조가 보이면, 자리에서 바로 철수했지만, S급 던전은 어디까지나 예외 사항이었기에 그 자리를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
지역 재난급은 닫히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떠서는 안 되었다. 단순한 던전들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체들이 도사리는 장소였기에, 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 확인하고 보고까지 해야 했다.
까다로워 번거로웠지만, 유선은 안전상 어쩔 수 없기에 그걸 담담히 받아들였다. 사내는 유선을 따라 펴진 간이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헌터들이라는 건 말 그대로 사냥꾼이죠?”
사내가 처음에 물었던 그 단어였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그렇죠. 저 안의 괴수들을 사냥해서, 그 안에 든 코어를 추출해서 파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군요. 저 세계의 청소부 같은 것이로군요.”
“그렇게 해석되나요?”
유선은 신기하다는 듯이 사내에게 묻자, 뭔가 말실수한 것을 느꼈는지, 사내는 아차! 하며 말을 돌렸다.
“쓰레기들이 범람해 원래 세계로 넘어오는 것을 막는 직업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남들을 위해서 그 쓰레기들을 치우는 직업이라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유선은 그것이 신선한 관점이라고 여겼다. 보통 헌터들이라면, 그저 위험을 무릅써서 돈을 벌어 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직업으로만 인식되었기에, 이 세계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떠올리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유선 님, 배고파.”
엘레노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소풍을 다니면서 이리저리 누비다 보니, 엘레노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아니, 꼬르륵 소리는 사내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사내는 곤란하다는 듯이 자신의 배를 감췄다.
“꽤 오랫동안 조난하셔서 오랫동안 먹지 못하셨겠군요.”
“하하······.”
사내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밥을 달라기엔 아무래도 염치없어 보이니 주저하는 것 같았다.
유선은 말없이 가방에 넣어 둔 컵라면 두 개를 꺼내 세팅했다. 그 하나는 엘레노어의 것, 다른 하나는 사내의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사내는 미안하다는 듯 유선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구해 주신 처지인데, 거기다가 밥도 얻어먹으니······ 정말 염치가 없군요.”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하는 것도 없고, 애가 혼자서 다 하는데,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아요. 밥 정도는 드릴 수 있지요.”
유선은 물을 부어 익은 컵라면을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사내는 미안하다는 듯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물쭈물하는 표정으로 면발에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집어넣었다.
조금 서툴러 보이는 젓가락질로 면을 건져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입안에서 조심스럽게 씹자, 유선에게 물었다.
“음······, 맛있네요. 이게 뭐라고 했죠?”
“라면입니다.”
“라면이라 흐음······.”
사내는 그 맛이 흥미롭다는 듯이 다시 젓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입안으로 넣었다. 라면을 처음 먹어 보는 사람처럼 먹었다.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면, 라면을 먹으면 기억이 어느 정도 돌아오지 않을까 했는데······.’
라면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기억이 돌아올 만한 트리거를 건드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영화처럼 그렇게 일어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사내는 그저 그 맛을 느끼며 침착하게 라면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