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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거부할 수 없는 선택 (2) (12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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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거부할 수 없는 선택 (2)

도대체 뭐가 저렇게 만들어 버렸는가?

그에 대답하듯 유선은 1년 전을 떠올렸다. 유선이 합격하고 테이머라는 직업에 선택받았을 때 상상이 아마 저랬을 것이다. 저대로 살다가 저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유선을 괴롭혔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지금 돌아가면 일어나는 일들이야. 직접 보니까 어때?”

그것을 보던 중, 코스가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는 어느새 유선 옆에 선 채로 함께 그의 모습을 보았다.

“절망이 가득하지 않아? 이게 네가 그대로 돌아갔을 때 생기는 일이야.”

“그대로······ 돌아갔을 때?”

“그래. 내가 더는 간섭하지 않은 세계 말이지. 만약 이대로 돌아갔다면, 너는 엉킨 시간 속을 걸으면서 그대로 죽어 나가야 할 거야. 그러니 기회를 주는 건 너한테 선택권을 주는 게 아냐.”

유선은 그제야 그 소녀가 신임을 실감했다. 신들은 인간들과 함부로 협상하지 않았다.

“네가 벌인 짓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거지.”

그저 강요할 뿐이었다. 유선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 자신의 얼굴을 보며 겨우 입을 떼며 물었다.

“뭐가······?”

유선이 불안감에 젖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자신의 처량한 모습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두려운 것은 엘레노어와 아이들이었다. 늘 옆에 있던 그들이 갑자기 사라진 모습에 절망하다 보니, 유선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 아이들이 그대로 사라진다면, 그 기억을 안고 혼자 산다면, 분명히 유선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겁먹은 유선의 표정을 본 코스는 예상대로 너무 잘 반응하자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아이가 사라진 거야. 네가 과거를 들여다보고 직접 간섭하면서 말이지.”

“내, 내가 과거를 들여다보면서······?”

“너 하나를 위해서 그럴듯한 구실을 그냥 가져다가 썼는데, 그게 시간이 엉키고, 공간이 얽혀서 또 다른 세계선으로 강제로 너라는 존재가 들어간 거란 말이지. 어리석은 그 행동 때문에 말이야. 이해가 가?”

“······.”

“아직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네.”

코스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새로운 원을 그렸다. 그리고 유선의 모습이 보였던 것처럼 하나의 영상이 띄워졌다.

시체였다. 시체가 죽은 채로 있었다. 유선은 그게 처음에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반응에 코스는 그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네 시체야.”

페르아 신전에 있던 유선의 시체였다. 등에는 커다란 검이 꿰뚫은 흔적이 유선이 느낀 것과 확실히 비슷했다. 틀림없는 자신의 시체였다.

아니, 시체가 아니라, 그 몸이 시체로 있는 것은 잠깐이었다. 유선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몸을 다시 일으켰다. 몸이 재빠르게 부패하지만, 삐걱거리며 일어나는 것이 부활하는 게 틀림없었다.

-크르르······.

붉은 안광이 서렸다. 뭐가 되었는지 단번에 알았다. 시체는 수많은 언데드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부분은 지루하니까 좀 더 빨리 넘겨 보자고.”

유선의 시체가 된 모습이 빠르게 넘어갔다.

그리고 휙휙 넘어간 장면들이 멈추고 다시 원래 속도로 흘러갔다. 언데드가 된 유선이 누군가와 싸웠다. 다른 언데드들보다 더욱 강하고 무장된 상태였다. 못 해도 언데드 중에 상위권인 언데드 나이트 정도였다. 반면, 그 상대는 노인이었다. 거기다가 뭔가를 소중하게 안았다. 그런 언데드 나이트를 이길 방법 따위는 없었다.

언데드 나이트는 승리했다. 뭔가를 안은 사내는 그대로 죽으며 그것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언데드 나이트는 무자비하게 그 떨어뜨린 것을 보았다. 그 떨어뜨린 것이 뭔지 알았다. 노인이 애지중지한 이유를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지 그 짧은 영상으로도 알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노인 대신에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유선은 대꾸하지 못했다. 이해했다.

나비 효과라는 것이었다. 본래 그 세계에 없던 유선이 끼어들면서 결과가 바뀌었다.

“그러니 이건 선택이 아니지. 네 의무야. 모든 것을 바로잡을 의무. 그 의무를 포기할 거라면 네 뜻대로 해도 돼. 그 대신 그만큼 어이없는 일이 많겠지만.”

코스가 악의를 품는지, 정말로 선의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겠습니다.”

유선은 코스에게 말했다. 과거에 들어간 것에 도움을 주다가, 오히려 멍청한 짓이 되어 버렸으니, 유선은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코스는 미소 지었다. 유선은 자신이 저지른 일임을 자각하며 자신이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임무······ 그것은 뭘 하면 됩니까?”

“좋아, 임무가 뭔지 알려 주지······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 안 나네. 어디 한 번 보자······.”

유선의 옆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처럼 갑작스럽게 다시 높은 의자 위에 앉아 덕지덕지 그려 놓은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모서리부터 차근차근 짚더니, 유선에게 말했다.

“그래, 이때로 가면 되겠네. 이곳에서 그림을 그려 내면······. 좋아, 다시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겠어.”

코스는 페인트 통을 들었다. 그리고 미리 칠할 부분을 살짝 손보며, 다시 유선에게 다가갔다.

“네가 시간을 간섭한 것보다 더욱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일을 하나 수행하면 돼.”

“그게 어떤······.”

“아, 아. 우선 조건부터 듣자.”

유선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코스는 손가락을 하나 펼치며 말했다.

“첫째, 네 정체는 절대로 밝히면 안 돼. 네가 정유선이라는 것과 무엇을 했는지도 이야기해선 안 돼. 그때는 착오가 생겨 눈치채고 말았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해 놨으니까, 신들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코스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자화자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

“둘째, 팔찌를 착용하고 절대로 벗지 말 것. 팔찌가 붉게 물들거나 진동하면, 세계선이 바뀐다는 신호이니, 30초 이상 울리게 두지 말 것. 만약 이 두 가지 사항을 무시하면 그대로 실패. 게임 오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어.”

“팔찌?”

“네 손목에 지금 찬 거.”

유선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 올려 보았다. 코스의 말대로 팔찌를 찼다. 언제 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두 가지만 준수한 채로 임무를 진행하면 돼.”

두 가지 조건은 결국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라는 거였다. 조건이 언뜻 들으면 쉬워 보였지만, 유선은 그게 결코 쉽게 진행될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자, 그러면 내 망친 그림을 다시 복구하도록 해 봐.”

코스는 막대기로 유선에게 보여 준 원과 똑같은 것을 그렸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계의 틈처럼 그 속에 어떤 것이 있는지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듯했다.

그것이 분명히 과거로 보내려는 행동임을 알았다. 유선은 그 원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코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임무는 뭡니까?”

“아차! 그러고 보니 주 임무에 대해서 말 안 해 줬네.”

코스는 깜빡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가 그곳에 가서 해야 할 일은 세계의 마지막을 잘 돌보고 보좌할 것. 간단하지?”

“세계의 마지막? 그게 무슨······.”

그게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물으려 했지만, 코스는 더는 힌트 따위를 주지 않겠다는 듯 유선의 등을 힘껏 떠밀었다.

***

“으아악!”

유선은 그대로 넘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떠민 코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대신 화려한 궁전 복도의 뒤편이 있을 뿐.

‘어라?’

궁전 복도? 분명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뒤편에 백지같이 하얀 배경과 페인트 통, 그리고 의자뿐이었다. 이렇게 시선을 사로잡는 백색 궁전이 아니었다.

“일어서라, 이 미개한 놈!”

누군가가 갑옷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유선의 몸을 거칠게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은색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것이 검사 클래스들의 옷차림과 비슷했지만, 현대 갑옷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고전적인 센스가 묻었다. 그런 기사 8명 정도가 유선의 앞에 서서 대열을 맞춘 채 걸었다.

유선을 일으킨 남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선 패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행동이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경고만 남겼다.

“만약 황제님 앞에서도 이딴 식으로 엎어져서, 우리 국왕 폐하를 모독한다면 발 가죽을 벗겨서 갈대밭을 걷게 해 주마.”

유선의 몸을 밀치며 다시 이끌었다. 유선을 안다는 듯한 반응이 마치 페르아 신전에 있었던 때와 유사했기에, 그는 자신의 옷차림이 바뀐 것을 먼저 확인했다. 어울리지 않은 화려한 의복을 입었다. 귀족들의 옷이 틀림없었다.

귀족의 옷을 입었는데도, 그에 반해 기사들의 대우는 푸대접이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유선을 증오하는 것으로 보였다. 너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는 듯이 보았다.

유선은 병사들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고, 그리고 거대한 문 앞에 도달했다. 유선은 고개를 들어 은으로 만든 거대한 문을 올려다보았다. 5m는 넘어갔고, 그것에 새겨진 조각들은 더욱더 위협적이었다.

드래곤이 그려져 있었다. 눈을 마주치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그런 위협적인 조각이 새겨진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문이 갈라져 열리며 보이는 것에 그 이유를 찾았다.

긴장하지 않으면 이것이 너희의 무덤이리라는 경고였다.

단순히 여인이 옥좌에 앉은 것이 보였을 뿐인데도. 멀리 떨어졌지만, 유선은 그 여인의 얼굴을 또렷하게 보았다.

“고개를 숙여라.”

병사가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유선에게 경고했다. 유선은 그 말을 따라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신이 또렷하게 본 것이 정말인가 하고 의구심이 들었다.

중앙까지 걸어간 기사들은 갑주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유선은 강제로 무릎이 굽혀진 채로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기사 중 하나가 강제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유선은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산 제물이 이 남자렷다!”

여인이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견장을 찬 사내가 그것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 중 악귀에 물들어 검은 머리를 지닌 인간이며, 이번 산 제물로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이자가 무슨 악을 저질렀는지 말해 보아라.”

사내는 미리 준비한 말을 꺼내었다.

“친절이라는 행위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부추겨, 왕국을 뒤집으려는 음모를 계획했으며, 그것은 일개의 나라를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세계를 향해 반역하려고 했다고 예언도 내려진 사내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산 제물로 지목되었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얼떨결에 엄청난 인간이 된 것에 당황했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 또한 코스가 꾸민 설정 중 하나일 것이다. 유선은 닥치고 가만히 무릎 꿇은 채로 여인이 코웃음 치는 것을 들었다.

“네 말대로라면 끊임없이 흘러가는 역사 속에 사라진 나라들처럼 한 나라를 부수는 것이 주된 목적이겠지. 다른 인간들 또한 꾸미는 짓일 터.”

여인은 역사를 알았다. 그렇기에 그들의 얄팍한 수를 꿰뚫어 보는 데 능했다.

“머리가 검다는 명분을 이용해서 숙청하려 드는 것으로만 보이는구나. 나는 그대들이 타락에 젖어, 영웅이 될 인간을 반역자로 꾸미는 음모로만 보이는데······ 혹시 내가 틀렸는가?”

여인은 예리하게 집어 그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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