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58. 서울의 휴일
서울 광장, 유선이 만나기로 한 곳은 조용한 카페였다. 세네타는 워낙 눈에 띄는 외모였기에 일부러 외진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세네타 유의 또 다른 별명 ‘전장의 여신’으로 한때, 헌터넷에서 주인님의 자리를 꿰는 것이 괜히 그런 취급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전장의 여신의 명성답게 카페를 들썩이게 했다.
“헉!”
“외국인이다.”
“뭐지? 연예인인가? 한국에 잠깐 온 그런 외국인?”
단순히 카페에 커피만 마시러 온 이들도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눈이 이끌렸고, 평소라면 자리가 하나도 차지 않을 카페가 불과 5분 만에 만석이 되는 기묘한 광경을 보였다. 헌터들에 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세네타가 그저 외국인이라고만 착각했다.
“헉!”
“세네타 유다······.”
“진짜 예쁘네.”
그리고 헌터에 관해서 관심이 많거나 헌터인 사람들은 대번에 세네타를 알아보았다. 헌터넷에서나 신문 기사로만 가끔 보던 여인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본래 목적마저 망각할 정도였다.
“세네타 유 옆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누굴까?”
“몰라, 동생 아냐?”
“되게 닮았는데······.”
그들에게 또 다른 의문은 비슷하게 생긴 검은 머리 여인의 존재였다. 아무래도 세네타와 닮았는데, 그들이 아는 정보로는 세네타 유에게는 자매가 없었다. 그 의문을 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커피 한 잔을 시킨 채로 가만히 앉았다.
미라와 세네타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독차지해 정작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호텔에 있는 코디들의 도움으로 치장한 채로 그저 약속 장소로 갔을 뿐이고, 유선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세네타와 미라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든지 간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미라는 세네타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맛이 들인 상태였다. 미라가 그 말을 듣고는 세네타에게 말했다.
“내가 네 동생이라는데?”
“······.”
세네타는 동요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유선을 기다렸다. 미라는 세네타를 보며 가만히 앉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말 안 할 생각이야?”
“당신이 있으면 제 평화가 깨지는 것 같아서요.”
“그 평화가 얼마나 유지된다고, 평화 타령인지 모르겠네.”
“당신이 제 옆에 있기 전까진 충분히 그랬어요. 당신이 온 이후로 문제가 생겼고.”
“아주 그럴듯한 구실은 잘 잡아 놨네.”
“······.”
평정. 평정심. 세네타는 그렇게 되뇌며, 가만히 커피를 들이켰다. 미라도 따라 시킨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 세네타와 다르게 미라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잔을 내려놓았다.
“써. 이런 걸 저런 인간들이 마신단 말이야?”
미라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는 남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이미 그들의 시선을 느꼈지만, 죄인처럼 구는 꼴을 보고는 픽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 카페에서 기다린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하다, 얘들아. 좀 늦었니?”
유선이었다. 그는 미라와 세네타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가며 인사했다.
“아니에요. 오래 안 기다렸어요.”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닐걸. 10분이면 뭐. 그 정도 범주도 안 들어가니까.
‘켁, 정유선 헌터······.’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정유선 헌터일 줄이야!’
정유선도 유명인이었다. 던전을 독식하려 든다거나 S급 헌터들이 자주 일으키는 난입비나 문제들을 한 번도 일으키지 않아 이미지가 청렴하기로 귀감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일 뿐. 지금 세네타에게 말 거는 것을 보면, 그저 질투의 대상일 뿐이었다.
‘인맥도 좋다. 어떻게 세네타 유를······.’
‘큐앤 쪽에도 인맥 있어, 테이머로서 사역수들도 강해, 세네타 유도······ 크흑.’
‘부럽다, 젠장.’
범접할 수 없는 두 여자와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뭔가 시선이 따가운데······.’
하지만 유선은 내색하지 않았고, 신경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 집중해야 할 대상은 세네타와 미라뿐이기에 그들에게 말했다.
“자리 옮길까?”
“그래요.”
“그러자.”
아직 커피를 완전히 비우지 않았지만, 애초에 커피만 마시러 오지도 않았기에 과감하게 잔을 반납해 버렸다.
세네타와 미라가 가게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 꽉 찬 자리가 다시 비워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
유선은 주변 구경을 하고,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볼 생각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유선은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영화 목록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최근에 유행하는 영화가 이건가?’
우주 히어로들이 우주로부터 오는 위협을 막으려고 결성한 영웅 군단 <어벤저 리그>. 재미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볼 일이 없어서 언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이건 내 외출이 아니니까, 자제해야지.’
어디까지나 미라와 세네타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위한 외출이었다. 사심을 최대한 감추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철저히 맞춰 줘야 했다. 길거리 풍선 인형의 움직임에 신기해 멍하니 1분 동안 그 움직임을 지켜볼 만큼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
“혹시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유선은 그들에게 물었다. 미리 영화를 볼 테니 생각해 놓으라고 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니 결코 생각해 놓은 것 같진 않았다.
“저는 오빠가 보고 싶은 거로 만족해요.”
“그래?”
그렇다고는 하지만 선뜻 유선이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없었다. 유선은 미라에게도 물어봐서 결정하기로 해, 고개를 돌렸다.
“······.”
미라가 광고를 언뜻언뜻 보다, 이번에는 광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유선은 그 광고의 이름을 보았다.
멜로 영화였다. 참혹한 전쟁에 징집된 자신의 남편을 만나려고, 위문 공연으로 순회한다는 내용이었다. 미라가 그것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저거 볼까?”
미라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의 이야기니까 괜찮아 보이네. 저거로 공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런 의도로 보면 상관없지만, 이거로 그런 공부가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영화 하나가 정해져 세네타에게도 물어보았다.
“세네타는?”
“저는 상관없어요.”
세네타도 딱히 거부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평이 좋은 영화 중 하나였기에, 유선은 그 영화를 보기로 했다.
큰마음 먹고 팝콘과 음료를 사서 그들에게 하나씩 쥐여 주었다. 미라가 빨대에 입을 대고 마시다 물었다.
“유선, 이게 무슨 음료야?”
“그거? 콜라라는 건데, 이상해?”
“이상하긴 한데······ 묘하게 중독되는 것 같네.”
미라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 번 더 빨대로 홀짝 빨아 마셨다. 유선은 탄산음료에 익숙하기에, 미라가 그렇게 반응하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내용은 무난하기 그지없었다. 남녀가 나오고, 사랑하고, 갈라서고, 역경에 부딪히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이 닿는 그런 뻔한 스토리······. 연출에 애틋함이 잘 살아나 상당히 인상 깊었다.
서로가 부둥켜안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서, 유선도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미라는 펑펑 우는 두 연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겠네······. 저게 그렇게 울 만한 일인가?”
미라는 더욱 심각한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기에, 그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유선도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몰랐다. 해 줄 것은 조용히 영화를 끝까지 감상시키는 것뿐이었다.
미라 쪽이 상당히 무덤덤하게 반응해, 세네타는 어떤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쓰읍.”
완전히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세네타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줄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눈물을 처음 보지는 않았지만, 유선은 설마 영화를 보고 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손으로 닦아내 보지만 그거로는 부족해 보였다.
뭔가 없을까 몸을 뒤적거리자, 마침 셔츠에 손수건이 있었고, 유선은 세네타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세네타가 소리 없이 울다 그 손길이 몰래 닿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울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영화 감상은 미라에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있다는 것을 빼면, 나름대로 성공이었다.
***
영화가 끝나고, 유선은 두 여자를 데리고 게임 센터로 향했다. 생각 없이 코스를 정한 것이 아닌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세네타가 관심을 보였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 그들을 데리고 갔다.
“옛날 기계도 있고, 최신 기계도 많네.”
“뭔지 알아요?”
“오래된 거는 몇 번 봐서 알아.”
오래전에 스트레스 풀이로 온 때를 떠올렸다. 돈이 생각보다 금방 깨짐을 알고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고, 다시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빠, 저거는 어떤 거예요?”
“저거? 글쎄?”
슈팅 게임기치고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랬다. 발로 두들기는 음악 게임처럼 커다란 판과 총이 놓인 게 어떤 게임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최신에 나온 게임이 분명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악명 높은 게임이었다. 게임 좀 해 봤다는 사람도 천부적인 반사 신경이 없다면, 3판까지 가기는 불가능하다시피 여기는 슈팅 게임이었다.
그래서 게임장에는 이런 공약을 내놓았다.
-클리어 시, 게임 평생 자유 이용 가능!
파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으니, 유선이 궁금해 세네타에게 물었다.
“해 볼래?”
“네, 그러죠.”
“뭔가 신기하네. 나도 해 봐도 되지?”
“2인용이니까 될 거야.”
유선은 코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총을 쥐여 주고 대충 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간단한 튜토리얼과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크아아앗!
명색이 공포 게임답게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몬스터에 화면이 자꾸 바뀌었다. 유선도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총 쏘기도 버거운데, 돌발적으로 패턴도 등장해 제시간 안에 발판을 누르도록 유도했다. 총도 쏘고 밑에 있는 발판도 신경 써 가는 게 난이도가 극악이었다.
퍽! 퍽!
그들은 아직 게임의 감을 잡지 못해 재장전 실패와 닷지 실패를 겪고 피가 깎이고 말았다.
‘1탄 보스도 못 가겠네.’
유선은 금방 끝나겠다 싶어 어떤 게임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흠, 대충 이렇게 하는 거구나.”
“뭔지 알 것 같네요.”
미라가 뭔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비슷하게 세네타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듯 그들의 플레이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탕탕탕!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몬스터는 바로 처리하고, 터무니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재빠르게 눈치채며, 그것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그렇게 첫판 보스에 직면했고, 악명 높은 게임답게 좁은 포인트 안에 약점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약점을 집요하게 후벼 팠고, 1탄 보스를 넘겼다.
1탄뿐만이 아니었다. 점점 어려워지는 보스들에게도 금방 적응해, 모조리 깨는 데 성공했다.
“대박.”
“나 저거 클리어하는 사람 처음 봐.”
1탄을 클리어한 사람이 흔하지 않았기에, 그 플레이를 보고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디까지 가나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최종 보스까지 도달했고, 손쉽게 결국 엔딩에 도달했다.
-내가······ 내가 죽다니······!
전형적인 마왕의 대사를 남기며, 폭발하고 평화가 왔음을 알렸다.
“우아!”
“나, 저거 엔딩 처음 봤어.”
“빨리 동영상 찍어. 처음 보는 엔딩이야!”
주변에 악명 높은 게임의 엔딩을 처음 본 이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미라와 세네타는 그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점수를 확인하기 바빴다.
“읏······.”
“내가 더 높네?”
둘 다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미라가 미묘하게 더 높았다. 처음 플레이할 때, 머리를 많이 노려 공격한 것이 컸다. 세네타는 져서 분한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되나 지켜보던 사장이 경외하는 표정으로 그 게임을 지켜보고는 웃으며, 세네타와 미라에게 다가갔다.
“축하합니다. 공약대로 여기 우리 게임장에서 모든 게임을 즐길 카드입니다.”
게임장 자유 이용권 카드라는 이름에 맞게 단말기에 대면 코인이 하나 생성되었다. 그들은 그 카드를 잠깐 들여다보더니, 유선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게임 더 해도 되지?”
“어, 뭐······ 너희 하고 싶은 거 해.”
“뭔가 좋은 게임 없을까요? 가급적이며 둘이서 확실히 결판낼 거면 좋겠는데······.”
협동보다는 확실하게 누가 이겼는지 가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격투 게임만 한 게 없지······.”
유선은 격투 게임기 쪽으로 그들을 인도했고, 그들이 격투 게임을 하게 정보를 조금 던져 주었다.
그리고 유선은 이게 큰 실수를 한 것인지 그들을 지켜보며 조금 후회하고 말았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는 서로의 경쟁이 100판 동안 무아지경으로 벌어졌고, 결국 그들의 손힘에 이기지 못하고 스틱이 부서져 버리면서 그 의미 없는 경쟁은 끝났다.
유선은 안심했다. 격앙된 감정에 부서진 게 스틱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