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57. 성검과 자격 (3)
유선은 의뢰주나 다름없는 포어셰크의 공방에 들어가, 그에게 사건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말해 주었다.
포어셰크도 악마였기에, 에고르트의 죽음은 알았지만, 그 과정은 몰랐기에, 해결하는 과정까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했다.
강철 골렘처럼 커다랗던 포어셰크는 다시 원래대로 흑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채로 유선의 이야기를 들었고, 모두 들을 무렵, 포어셰크는 입속에서 감탄사를 흘려보냈다.
“흐음······.”
“그렇게 해서 결국, 포어셰크 씨를 찌른 여자는 아발트였고, 이렇게까지 왔습니다.”
포어셰크는 이야기하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나지도 않아서 오히려 걱정이었다. 차라리 화를 낸다면 그것에 맞춰 조심하겠지만, 포어셰크가 마치 일부러 틈을 주듯이 무표정한 채로 유선의 말을 들으니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미라에게 복수심을 품어서 혹시 잘못해 적으로 돌려 버리지는 않을지, 괜스레 걱정되었다. 한참을 무표정하던 포어셰크가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기대며 허탈하게 말했다.
“아발트가 설마 나를 찌른 그 여자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군, 그래.”
그리고 한편으로 재미있다는 듯이 끌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유선은 알 수 없었다.
“뭐가 그리 웃기십니까?”
“갑자기, 끅끅, 웃겨서 말이지.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이 말이야.”
“예전에 했던 말?”
“예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형씨가 단검을 쥘 때 했던 말.”
호문쿨루스가 가진 검에 관해서 물으려고 갔을 때였다.
“아, 그······ 자살하고 싶어 미친 사람 같다는 것 말입니까?”
“그래, 그 말.”
포어셰크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이없다는 듯 계속 실실 웃었다.
“설마 내가 만든 검에 찔려 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군······ 네?”
유선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받아치다가, 포어셰크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성검이 포어셰크 씨가 만들었습니까?”
“그래, 내가 만들었어.”
포어셰크는 낄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말했지? 검을 하나 잘못 만들어서 동족을 파멸로 이끌 만한 걸 만들어 버려서 역적으로 내몰렸다고?”
유선은 그 대화를 기억했다.
“그게 바로 성검이야.”
악마에게 치명적인 검. 포어셰크가 바로 마왕에게 치명적인 검을 만들어 역적으로 몰리게 만든 검의 주인이었다.
그래서 포어셰크는 공방의 악마가 아니었다. 악마가 성검을 만들어 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도 모순이었을 테니까. 포어셰크는 그래서 신으로 불렸다.
“가장 초창기에 악의를 담고 만들었는데, 설마······ 내 스승이던 버러지가 그딴 짓을 했을 줄이야!”
성검을 가지고 그 추악한 욕구에 휘둘려 자신의 역작을 만들어 내는 데 사용했다는데, 용서가 되지 않았다.
“혹시나 돌려받고 싶다는 그런 생각입니까?”
“돌려 달라고 하면 돌려줄까?”
유선이 포어셰크에게 먼저 물었지만, 이미 대답은 확고했다.
“제가 말하기 뭐하지만······ 미라가 스스로 제게 등을 돌리지 않는 이상, 돌려 드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강요하고, 협박해도, 미라가 싫다지 않은 이상, 유선은 포어셰크가 요구해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포어셰크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유선에게 말했다.
“그거면 됐어.”
포어셰크도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성검은 저 멀리 버려진 검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걸 회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선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미라가 포어셰크의 가슴을 꿰뚫고 남은 검들마저 모두 털어가 버린 것이 그래도 화를 남기지 않나 생각해 포어셰크에게 물었다.
“혹시 위로될지 모르겠지만, 검이 필요하다면 전부 돌려 드릴 의향은 있습니다만······.”
미라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면 충분히 돌려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포어셰크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로, 억양 하나 변하지 않고 유선에게 말했다.
“필요 없어. 그런 검들을 그렇게 처분한다는 것만 감사해야지.”
“처분?”
“그것들은 내가 말했던 것처럼 ‘주인이 없는 검’이야.”
주인이 없는 검. 그것은 포어셰크 자신도 포함되었다. 그 검들을 다룰 사람이 없는 악의에 찬 검들이었다.
“내가 창조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그런 검들이지. 그 검들을 모두 훔쳐 간 게 아니라 검들이 모두 그 아발트를 선택했다면, 그대로 넘겨줘야지. 뭐 어쩌겠는가!”
포어셰크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방의 신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야기는 이거로 끝내고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해. 나중에 내 복수······ 는 아니지만, 사건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려 준 대가는 톡톡하게 보상해 주지.”
“네.”
포어셰크가 어떤 물건을 만들어 줄지 궁금했지만, 그것은 포어셰크도 모른다는 걸 알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갈 뿐이었다.
“아, 그리고 형씨.”
“네.”
포어셰크가 잘 가던 유선의 발길을 붙잡았다. 포어셰크가 반쯤 녹인 철광석을 모루 위에 얹으며 말했다.
“형씨한테 성검이 간 것은 뭐라고 생각해?”
“미라가 제게 온 것 말입니까?”
무엇을 생각하라는 건가? 유선은 미라가 자신에게 온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마주치고, 그 의도를 포어셰크를 통해서 알았던 것밖에 없었다.
“우연일 겁니다.”
“우연이라······!”
포어셰크는 붉게 달아오른 손으로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유선에게 물었다.
“그 성검이 다가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뭐 상관없어. 거기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말고, 이것만 확실하게 하자고.”
“무엇을 말입니까?”
“아발트가 과연 형씨가 감당할 물건이라고 생각해?”
“해낼 겁니다.”
포어셰크가 의미심장하게 물은 것과 다르게, 유선은 바로 대답했다. 그 탓에 포어셰크는 첫 망치질을 하려다가 자신의 손을 내리찍고 말았다.
“아뜨뜨······ 아우, 아파라.”
포어셰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털고 유선을 보았다. 생각 없이 대답한 줄 알았지만, 유선의 눈은 확고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해낼 겁니다.”
포어셰크가 진지한 유선의 표정을 보고 아픈 와중에도 픽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 좋아. 그래야지 성검을 가진 남자라고 하지. 발걸음 붙잡아서 미안해. 이제 정말 가 보도록.”
“그럼 고생하십시오.”
유선은 다시 인사하며 포어셰크의 공방에서 나왔다.
***
“끄으으응······.”
유선은 침낭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일어났다. 눈을 뜬 곳은 자신의 사무실. 하루를 사내에서 보냈다. 딱히 침대가 없어서 불편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바닥에서 자 본 것은 흔한 일이었고, 예전에는 충분히 그런 생활을 해 왔으니까. 유선은 몸을 일으켜 침낭을 말아 묶었다.
그리고 직원 복지용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세면 세족을 마치고, 아침밥을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고 올라왔다.
“멍멍아, 밥 먹자.”
“먀!”
거기에 잊지 않고 멍멍이 밥도 챙겨 주었다.
발성에 자신감이 붙은 크리스털 리저드, 멍멍이는 울음소리로 먀 하고 대답했다. 유선은 개밥을 털어놓은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멍멍이가 짧은 다리를 열심히 구르며 달려와 개밥을 먹으려 들었다.
그때, 유선이 멍멍이에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
“······.”
“참아.”
“······.”
“좋아, 먹어.”
“먀~.”
아삭, 아삭.
개들에게 흔히 시키는 트레이닝이었다. 애완견을 키우는 이들이 한 번씩 해 보기에, 유선도 심심해 한 번씩 멍멍이에게 그런 명령을 했다.
“좋아, 일이나 시작해 볼까?”
에고르트를 없애 버리고, 미라를 아무도 모르게 구출해 내 비공식적인 던전 처지였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기록해 둬 루데릭에게 보여 줘야 했다. 비공식적인 일인 만큼, 쓸데없는 구설에 휘말릴 수 있었다. 그전에 알리바이를 미리 만들어 내서 혹여나 파파라치에게 잡힌다거나, 정치적인 목적에 쓸데없이 이슈화되는 일을 방지해야 했다.
그렇게 평상시의 유선처럼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하려 했다.
“흐으으으음······.”
유선은 애써 고개를 들지 않고 일하려 애썼다. 타자하지만, 타자에 속도가 붙지 않고 계속 주저했다.
“······.”
그렇게 헬륨 가스를 넣은 풍선처럼 눈이 위로 들려 유리문 너머를 보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이끌린 고개를 따라가면 반대편 문 너머에서 작은 생명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게 보였다.
엘레노어였다. 엘레노어가 사내에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이 유선을 보았다.
엘레노어는 유리창 앞에 선 채로 유선을 빤히 지켜보다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을 마주치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입을 벌리면 기괴한 초록 연기를 내뿜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언데드 드래곤의 첫 조우를 동시에 연상시켰다.
-빼애액!
문 주변 풀들이 시들면서 빼애액 하고 소리 지르자, 엘레노어가 깜짝 놀라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게 유리문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에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엘레노어는 말도 못 하고, 웃지도 못해 그런 자신의 처지에 울먹였다. 웃다가, 울고, 그러다가 다시 웃고, 다시 울고를 반복해 영원한 사이클을 만들어 냈다.
유리창 두 겹 너머에 있을 뿐인데도 멀게 느껴지고, 자신을 보는 엘레노어가 약간 불쌍해졌다.
유선의 안전상, 어쩔 수 없이 분리해 놔야 한다고 해서, 유선의 바로 반대편 방인 오르넵토스의 방에 감금된 상태였다. 문을 열라고 하면 열겠지만, 만지거나 썩으면, 비명을 터트리는 풀들로 도배해 놔서 애써 엘레노어의 충동을 막으려 했다.
실제로 입속에서 나오는 그 독들이 진하게 묻어서 라면을 먹으면 그 포크까지 같이 먹게 돼 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엘레노어는 철을 씹어 먹어도 탈이 없었기에, 엘레노어에겐 상관없었지만, 유선에겐 그만큼 위험함을 보여 주었다.
만약 유선에게 장난친다고 깨물거나 자칫 이를 보이는 경솔한 행동을 해 버리면, 해독할 방법도 찾지 못하고, 온몸이 썩어들어 가기에, 억지로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도배되어 충동에 이끌리기도 했지만, 엘레노어는 애써 참아 냈다. 오히려 유선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가짐이었다.
유선이 해 줄 것은 최대한 눈에 띄는 곳에서 동시에 엘레노어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 그 길뿐이었다. 유선은 다시 시선을 내리며, 열심히 일하는 척해 엘레노어의 주의를 분산시켜 보려 애썼다.
그렇게 세 시간가량 컴퓨터를 붙들고 앉아 타자했다.
부우우웅!
유선의 휴대폰에 진동이 일어났다. 짧은 진동이 메시지가 왔다는 표시가 분명했다.
-오빠, 오늘 오시죠?
세네타가 보낸 문자였다.
-응, 미라도 거기 있어?
-네, 아무래도 주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냥 같이 나왔어요.
그러고 보니 같은 호텔에 있었지.
아무래도 미라가 성인 여성에 독립을 원한다고 했기에, 미라는 세네타와 같은 큐앤 호텔의 장기 투숙자가 되었다. 방도 바로 아래층이었고, 언제든지 마주쳤다.
세네타나 미라나 둘 다 앙숙처럼 굴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키는 탓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 출발할게.
마침 할 일도 끝났겠다, 유선은 서랍에 준비해 둔 옷을 꺼내었다.
미라가 이 세상을 구경해 보고 싶다고 세네타에게 말했지만, 세네타도 현대 문물에는 어두운 경향이 있어 사실상 미라와 똑같은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가이드가 필요했는데,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은 유선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유선은 총대를 메고 세상 구경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세상 구경인데 뭐 별거 있겠어?’
유선은 준비해 둔 여벌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루데릭이 준비한 것으로 알았다. 양말만 십만 원이 넘어가고, 내의로 입는 티셔츠만 양말에 몇 배는 뛰어넘었다. 말 그대로 금으로 전신을 휘감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루데릭은 유선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격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유선은 브랜드에 둔감하기에 그저 좋은 곳에서 구한 옷인 줄만 알았다.
-유선 님······!
-나도 따라가고 싶어.
엘레노어는 유선이 외투까지 걸친 것을 보며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걸 짐작했다. 근래 많은 일이 벌어지면서 제대로 놀아 준 적이 없어 마음 같아선 같이 데리고 가고 싶지만, 엘레노어가 그럴 만한 사정이 안 됐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잠깐 일만 보고 올게.”
유선은 다정하게 말을 건네었다. 이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엘레노어가 걱정스럽다고 미라에게 소홀해지면 안 됐다. 아직 유선에 관해서 긴가민가한 상태인데, 그런 상태로 소홀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유선도 모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엘레노어가 자신의 손으로 꽉 막은 입속에서 초록 연기가 조금 새어 나왔다. 소리가 안 들려도 엘레노어의 표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부으!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을 것이다.
유선은 미소 지으며 그 자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