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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성검과 자격 (1) (11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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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성검과 자격 (1)

그것이 포어셰크의 스승이자, 장인인 에고르트의 최후였다.

-아, 주인님······!

유선은 무슨 소리를 듣고 말았다. 세네타도 미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에고르트의 목소리와도 유사했다. 다만, 그 특유의 느릿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것 또한 당신이 바라는 일······ 그 종말의 형태가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종말을······ 맞이하소서······.

“종말의 형태?”

그게 마지막이었다. 후회 없는 듯한 에고르트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동시에 그 의문을 풀 만한 단서는 던져 주지 않았다. 에고르트는 완전히 그 세상 속에서 사라졌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차피 에고르트가 아니었다. 유선은 겨우 서 있는 세네타에게 다가갔다.

세네타는 미라를 보며, 검을 겨우 들고 서 있었다. 바위에 깔려 죽었으리라 생각한 여자가 다시 돌아왔으니,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세네타는 미라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세네타,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저 여자는 저랑 오빠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사람이에요. 우리에게 검을 겨누던 적이에요. 그러니깐 우리를······.”

이리저리 극한의 상황에 몰려가니, 세네타는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유선은 그 심정이 어떤지 이해했다. 세네타에게 천천히 다가가 검을 쥔 양손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세네타가 손목에 힘을 빼게 천천히 유도해 주었다.

세네타는 처음에 저항하는가 싶더니 순순히 따라와 주었다. 세네타는 검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기적으로 만들어진 검이 사라졌다. 그러자 세네타의 다리가 동시에 풀려 인형처럼 쓰러지려 했다. 유선은 세네타의 몸이 무너지는 것을 간신히 잡아 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혔다.

“괜찮아?”

“네, 긴장이 풀려서 그냥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뿐이에요.”

깊던 상처들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에고르트에게서 받은 위압감이 위를 쥐어짜 액을 역류시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살아 있는 것조차 모르다가, 갑자기 나타나 안전한 걸 보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행이에요······. 진짜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래, 다행이지.”

유선은 세네타의 머리를 감싸 주며 그녀를 토닥였다. 어떻게 됐든 지금은 상황이 끝났다. 자신이 쫓던 아발트, 미라를 설득하는 데도 성공했고, 그녀를 제조한 에고르트라는 악마도 없애 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쿠구구궁!

아니, 아직 하나가 남았다. 천장이 갈라지며, 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고르트가 죽으며 그가 만들어 유지한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라, 혹시 여기서 탈출하는 다른 길은 없어?”

유선의 물음에 미라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없다.”

“······진짜?”

“뭔가 복잡한 걸 만드는 걸 좋아하는 놈이지만, 쓸데없이 구멍을 많이 만드는 건 취향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 미로에서 출구를 찾는 데, 나도 시간이 꽤 걸렸어.”

“상황이 안 좋네, 그러면······.”

천장은 갈라지기 시작했고, 무너지는 것도 앞으로 시간문제. 이대로 깔려 죽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뭔가 방법이 없나 생각하던 찰나,

쿵!

벽이 울리기 시작했다. 언데드 드래곤을 물어뜯고 추락시킨 소리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쿵!

쿵!

벽이 울리는 소리는 지속해서 울렸다. 마치 일부러 깨부수려고 전력으로 벽을 쳐 대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압도적인 힘으로!

콰앙!

속이 시원할 정도로 호쾌하게 부서지는 벽과 함께 날카로운 발톱이 파편을 가지고 뚫었다.

그 거대한 팔은 후드득 떨어지는 파편을 끌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 거대한 뭔가가 머리를 들이밀려다가 실패해 머리를 돌렸다.

머리만큼 커다란 도마뱀 눈이 유선을 확인했다.

-유선 님이다!

그리고 그 무서운 눈과 대조되는 엘레노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유선의 귀를 울렸다. 엘레노어뿐만이 아니었다.

-다행이네. 확실히 여기 있어서.

상당한 마나를 소모한 탓에 어린아이도 아닌 요정의 모습으로 현신해 작아진 오르넵토스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이 확실하게 있었다.

“바깥은 어때?”

“묻는 게 바보 같을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했지.”

유선은 바보 같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는 웃으면서 무사하게 돌아온 그들을 보며 말했다.

“고생했어, 얘들아.”

그들이 만들어 준 구멍으로 걸어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

“흐으으으음······.”

큐앤 헌터 컴퍼니 최상층. 그 자리는 회사 경영자인 차기율과 직원들이 있는 장소였다. 산더미 같은 일 속에서 차기율은 인터넷 검색 창에 단어를 쳐서 보는 중이었다.

‘차원 조난.’

차원 조난. 그 세계에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조난했다. 헌터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으로 여겨지는데, 생존율도 극히 낮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와 주변 경계가 전쟁의 후유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 해서, 하루만 그 세계에 고립되어도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산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모든 회사가 차원 조난이라는 상황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차원으로 게이트 키퍼라는 사람을 세워서 일을 보기 마련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위험하지 않으려나······?’

이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한 작전이었다. 애초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멤버들로 구성해 놨기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앓을 만한 일이 없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인간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게 현실이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데!’

단순히 회사 부흥에 꼭 필요한 일원이기에, 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애초에 기율은 회사 성장 욕구도 없었고, 최대한 유선이 하는 일에 서포트해 주면서 편안하게 보내려고 할 작정이었다.

이만한 부흥을 일으킨 것은 루데릭이 억지로 코가 꿰어 버리면서 시작되었다. 이것도 주인을 위한 일이라며.

“사장님.”

“응, 왜?”

가만히 사색하던 기율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전속 비서가 그에게 보고했다.

“방금 전화가 왔는데, 정유선 헌터님이 멤버 그대로 이끌고 회사로 다시 돌아온답니다.”

“어, 정말이야? 상태는 어때 보이는데?”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양호해 보였습니다. 그전과 다를 것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얼른 차를 준비시켜야겠네.”

기율이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전화하려고 하자, 비서가 차마 전달하지 못한 것마저 전달했다.

“차로는 안 될 겁니다. 전화는 영국 쪽에서 왔는지라, 아마 가려면 무리일 겁니다.”

“······.”

더럽게 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율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 전용기를 준비시키면 되지, 뭐.”

지구 내에만 있다면, 유선을 데려올 방법은 많았으니까. 전화를 돌려서 공항 쪽 관계자에게 연락하려던 중, 비서의 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네, 큐앤 헌터 컴퍼니······. 네······. 아, 알겠습니다.”

비서는 짧게 통화를 마치며.

“전용기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왜?”

“벌써 도착하셨답니다.”

“엥?”

기율은 그 말을 듣고 한순간 무슨 소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거 보고받은 지 5분도 안 되지 않았어.”

“네, 그런데 벌써 도착하셨답니다.”

평소에 복귀할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만큼 빨리 왔다는 것은 생각처럼 큰일이 안 일어났음이 분명했기에, 여태 걱정하던 것이 한 번에 싹 사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요?”

“뭐 어떻게 하긴, 우린 일이나 다시 하자.”

잠깐 마실 나갔다가 온 것처럼 너무 빠른 복귀에 어이없어서 뭔가 환영회를 당장 열자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마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결재할 서류를 열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에 다시 올라왔다. 집에서 휴식하기보다 우선 다시 돌아와서 일을 먼저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지옥 같은 드래곤들과 사투를 벌인 엘레노어는 유선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그에게 말했다.

“유선 님, 돌아왔으니까 같이 책 읽자.”

하루 건너뛴 엘레노어의 책 속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유선은 늘 그렇듯이 따뜻하게 엘레노어를 대했다.

“그럴······.”

“아, 안 돼.”

유선이 엘레노어의 말에 대답하려 하자, 오르넵토스가 엘레노어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오르넵토스의 행동에 엘레노어가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왜애?”

“아무래도 언데드 드래곤이랑 싸웠으니까, 당분간은 떨어져서 지내야 해. 혹시나 남은 독이 있으면 엘레노어한테 큰일이 아니더라도 계약자한테는 맹독일 수도 있으니까. 엘레노어 건강 상태만 제대로 확인하고 책 읽자. 알겠지?”

“부으······.”

미처 캐치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엘레노어는 상당히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그것이 곧 유선에게도 위험함을 알기에 더는 떼쓰지 않았다.

그렇게 엘레노어는 오르넵토스의 손에 이끌린 채로 자신의 방으로 갔다.

남은 것은 미라와 세네타. 세네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것이고, 유선은 미라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세네타.”

그런 의문을 품던 찰나 미라가 세네타를 보며 말했다. 계속해서 적으로만 있던 세네타였기에, 미라를 보는 눈초리가 따가웠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미라는 그것에 개의치 않으며 자신이 할 말을 했다.

“······.”

세네타는 미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금방이라도 다시 싸울 것처럼 나왔다.

“일단 그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 적당히 쉬는 게 어떨까?”

유선은 그 얼굴을 보고, 미라에게 말했다.

“이건 중요한 문제야. 용사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같은 거라서 말이지.”

용사. 그 단어가 세네타를 자극했다. 미라는 그것을 잘 알았다. 세네타가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 정도의 도발이 세네타에겐 아주 큰 자극으로 전해졌다.

“좋아.”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찌 됐든 세네타는 미라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세네타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했기에 그런 문제라면 성검이던 아발트와 이야기해 봐야만 했다.

세네타의 동의를 들은 아발트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유선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유선. 너도 같이 와 줄래?”

“나도?”

왜? 라고 묻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네, 오빠도 잠깐 이야기해요.”

세네타도 이 대화에는 유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혹여나 지크벨트에 관한 욕이라든가, 모욕을 줘 감정이 격해지는 소리를 해 대면 자신이 자제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의미가 없더라도 중재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유선은 미라와 세네타의 뒤를 따라 세네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세네타의 방은 무술을 가르치는 도장 같은 느낌이 강했다. 차분하게 있는 것을 좋아했기에, 가꾸어 놓은 화분 몇 개와 묵화 하나만 공간을 차지했다.

그런 정갈한 방에는 소리가 없는 분위기라면 어떤 것도 적응하기 쉬웠다. 침착하게 명상하는 것도, 가만히 넋 놓는 것이라도.

그리고 이렇게 불편한 삼자대면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세네타와 미라는 서로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덩달아 앉은 유선만 긴장감에 압박감을 느끼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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