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 선택 (1) (111/148)

 # 112

56. 선택 (1)

“후우······ 쓰읍!”

세네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여인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정말로 죽이려고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고, 세네타는 살려고 어떻게든 버텼다. 세네타는 여인에게서 얻은 정보를 다시 생각했다.

‘어떻게든 모든 공격을 배울 거야.’

그렇기에 타격을 주는 공격이라도 치명상으로 몰고 가야만 했다.

세네타의 신체 조건을 아는 지크벨트는 그 치명상을 한 번에 몰고 갈 만한 공격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녀의 공격은 묵직하지 않은 대신 섬세하고 그 섬세함 속에서 약점을 만들어, 그 약점을 후벼 파 치명상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기에 상성 자체가 세네타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네타는 과감해지기로 했다. 그녀가 먼저 선공으로 아발트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공격해 봐야 네가······. 응?”

세네타는 똑같은 방법으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양손으로 말아 쥔 손잡이를 멀게 잡았다. 세네타는 변화를 주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큰 동작을 보였다.

세네타의 돌발적인 변화에 아발트는 당연히 예상하지 못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네타는 저돌적인 모습으로 검을 쥐어 올려쳤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가 되진 못했다. 변화를 주었다는 것은 그녀의 검술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그것은 곧 숙련되지 않은 몸짓이라는 의미였다.

아발트에게 타격을 주려고 취한 올려치기 궤적은 아발트의 턱을 스쳐 지나가며 천장을 강타했다.

아발트는 세네타의 과감한 공격에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이는 빈틈을 이용해 목을 향해 검을 꽂아 넣었다.

“크엑······.”

세네타는 검을 손에 놓으며 그 공격을 간신히 피해 냈다. 하지만 목에는 조금씩 피가 흘러내려 불안하게 숨을 껄떡거리게 했다.

“한 가지에 집중하라고 했지.”

아발트가 질린다는 듯이 세네타를 노려보았다.

“그 공격을 마구잡이로 내지른 탓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걸 몰라?”

만약 세네타가 바로 빼지 않았다면 목을 정확하게 찔린 건 확실했다. 세네타는 목을 막으며 아발트에게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전력으로 온다면서 설교할 시간이 있나······ 보네?”

“아무리 그래도, 네 아버지랑 함께한 시간이 더 많으니, 정이라는 게 있나 보지. 간섭하지 않으려 해도 할 수밖에 없게 하네.”

마지막 호의, 그것은 전사로서 다가온 세네타에게 모욕이기도 했다. 그걸 알지만 세네타는 그 모욕에 분노하지 않았다.

그 모욕이 자신을 쥐어짰음을 뒤늦게 알았을 테니 말이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거라면 당신도 못 하지.”

“······뭐라고?”

쿵!

산에 부딪히는 소리에 한 번 더 동굴이 움직였다.

그리고 갈라지고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바로 천장이었다. 세네타가 상처를 준 곳이었다. 미약하게 갈라진 그곳이 터졌다.

그것을 본 아발트는 큰 실수를 했음을 알았다. 그 검은 자신을 노린 것이 아닌 천장에 데미지를 가하려는 수단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쿠르르릉!

거침없이 내려오는 돌무더기에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어떻게 하든 자신은 그 돌무더기에 휘말릴 것이다. 그렇기에 최후의 발악을 하듯 세네타에게 검을 뻗었다.

세네타의 얼굴에 검이 닿았다.

쿠구궁!

아니 닿지 못했다. 곧바로 아발트의 검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돌무더기는 거침없이 여인의 몸을 이끌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이 뚫리며 저 멀리 가라앉은 여인의 몸.

인간의 몸이라면 이대로 죽었을 것이다. 안 죽었더라도, 후에 처리하면 될 정도로 제압된 상태일 것이다.

“하아······ 하아······.”

세네타가 긴장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다, 마침내 상황이 끝났음을 알고 숨을 골랐다.

아발트를 처리하려고 쓴 과감한 방법인 만큼 상처가 컸다. 이대로 정면 대결했다면 정말로 어떻게 됐을까? 세네타는 혹여나 대비해 준비해 둔 포션 병을 열었다.

목에 그인 상처도 모두 원래대로 돌아가며, 쉰 목소리도 다시 아름다운 하이 톤으로 변했다.

“오빠······, 어떻게 찾지······?”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분명히 유선이라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지 않고 과감하게 미궁을 탐험 중임을 알았다.

“오빠를 찾아야 해.”

일직선인 통로 속에서 유선에게 갈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바닥을 뚫어 버리고 내려갈 생각도 했지만, 세네타가 지금 밟고 선 곳은 흙으로 꽉 찬 바닥이어서 울림이 없었다. 경계선이 잡힌 것이 상당히 운이 좋지 않았다.

좋든 싫든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세네타는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기에 발걸음을 옮겼다. 유선을 찾으려면 내려갈 곳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네타는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았다. 그녀가 걸으면 걸을수록 악마와 가까워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발트는 에고르트에게 향함과 동시에, 세네타를 처리하고 가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건 세네타에게 악마를 처리하라는 선택지만 남겨준 것밖에 되지 않았다.

“악마······.”

아발트를 처리한 것으로 일단락 넘겼지만, 세네타에게 또 다른 주목표는 악마였다. 악마의 동굴까지 들어왔는데 피할 수는 없었다.

세네타는 용사의 딸. 용사의 사명을 이어서 사실상 용사였다.

유선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에고르트를 빈사 상태로 만들어서, 코어를 뺏은 상태로, 동굴을 겨우 유지한 다음에, 오빠를 찾자.’

혹여나 그 길에 다른 길이 있다면, 에고르트와 마주할 시나리오도 충분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세네타는 에고르트에게 다가갔다.

통로와 다르게 넓어진 동굴. 그 동굴의 주인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세네타는 그 속에 에고르트가 자리에 앉은 것이 보였다. 에고르트가 넓은 원형 판 속에서 돌의자에 앉아 세네타를 보며 물었다.

“분명히 내 물건이······ 이겼다고 여겼건만, 어째서······. 내 걸작품이 오지 않고 네가 왔느냐?”

의외라는 듯이 에고르트가 묻자, 세네타는 담담하게 답해 주었다.

“내가 처리했어.”

그리고 자신의 검을 만들어 내며 에고르트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너고.”

세네타는 주변을 향해 감각을 넓혔다. 에고르트는 호문쿨루스들을 만들어 낸 악마. 그렇기에 어떻게 물량으로 자신을 몰고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은 완전히 비워진 상태, 미궁에서 보이던 그 많은 병사가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만든 공간 안쪽에 있으니······ 어떤 형식으로든 그녀를 회수할 수 있다.”

에고르트는 돌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세네타를 향해 걸어왔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보이는 굽은 등, 약하기 짝이 없는 외관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침략자를 해치우는 것밖에······ 없지 않겠군.”

외관과 차원이 다른 위압감의 갭. 그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세네타는 에고르트를 무시하지 못했다.

“순순히 당하지 않아.”

“어째서······ 그렇게 확신······ 하나?”

“더는 악마에게 당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까.”

호오······, 하며 감탄사를 흘리는 에고르트. 그리고 느릿한 말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원하는 것······. 그 반발은······ 주인님을 위한 것. 주인님에게······ 가장 걸맞은······ 최고의 마스터피스!”

스르르르르르릉-.

검이 뽑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등에 난 무수히 많은 손이 제각각 자신의 손에 맞는 검들을 뽑아내면서 내는 소리였다.

우둔한 거북이 같은 이미지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수백 개 팔이 잡은 검들이 빼곡한 가시, 모든 걸 부숴 버릴 이빨이 되어, 바람을 맞은 가지처럼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일제히 세네타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그리고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며 소리쳤다.

“그러니 그 증오를······ 내게 더 보여야만 해! 그래야만······ 나의 주인님에게 아주 걸맞은지······ 알 테니 말이다!”

에고르트는 변태적인 말을 하며, 계속해서 인형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세네타는 소렌의 기적으로 만들어 낸 검을 겨누며 그 말을 하는 악마를 겨누었다.

“단련해서 계집의 냄새를······ 어느 정도 지웠지만, 그 결함은······ 눈에 거슬리기······ 짝이 없구나. 그런 결함 덩이를······ 내 손으로 만져 주마······.”

에고르트가 천천히 걸어왔다. 느릿한 걸음 속에 겨눈 검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세네타를 향했다.

사각이 없었다. 어디를 찾아봐도 그 검의 범위 속에서 그 몸을 꿰뚫을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세네타는 어째서인지, 그녀가 오는 것을 막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든 자신을 이기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발트를 실력으로만 이길 수 없는 세네타는 과연 자신이 그를 이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세네타는 한 발짝 더 나아가며 검을 들었다.

“용사는······.”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며,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무찔러야만 한다.

그것이 본질이며, 사명, 그리고 선택한 인생이기에.

세네타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믿으며 에고르트에게 대적했다.

***

“후우······.”

홀로 선 유선도 상당히 고전 중이었다.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 그리고 세네타에게는 아주 간단하게 처리할 호문쿨루스들이 유선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존재였다.

검 한 자루와 호문쿨루스들의 생각에 의지해 이루어지는 공격과 방어는 마치 턴제 RPG처럼 느껴졌다. 상대가 내놓을 수를 알기에 겨우 우세를 점할 테니 만약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유선은 진작 목숨을 잃었으리라.

“으으······.”

그 능력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지, 반지를 착용하면 유선에게 부작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울렁증.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시야 속에서 겨우 잡혔다. 주변의 목소리로 여기던 것의 목소리가 이제는 출근길 지하철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있는 것만 같아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 답답함이 끝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부조화를 공존시켰다. 비명과 폭소가 동시에 들려오며, 찬사와 비난이 공존하여 머릿속에 꽂혀 왔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마치 종잇장 하나 차이에 존재한다는 것처럼 굴었다.

“이제 또······.”

갈림길이었다.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어디로 가야 할까?

-오른쪽이야.

-아니 왼쪽일 수도 있어.

-뒤는 어떨까?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만 하지.

-그 선택에 후회는 없을 거야.

-어차피 지옥뿐이니까!

“개 같은······.”

이것들은 함정과 동시에 좋은 길을 인도하려고 소리쳤다. 그렇기에 난잡하기 그지없었고, 유선에게 선택 장애를 안겨 주는 것 같았다. 어느 소리든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싶었지만, 유선은 자신의 능력을 위해선 그것을 견뎌 내야만 했다. 자신의 볼을 치며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스스로 선택하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확인해 선택해 보려 했다.

-아, 아······.

그때였다. 폭풍우 치는 듯한 생각들 사이에서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가 유선의 귓가에 닿았다. 목소리는 언뜻 들어 본 것만 같았다.

‘누구지?’

-무거워. 움직이지 않아.

그것은 웃음소리와 비명 사이에서 담담하게 독백을 흘렸다. 혼란스러운 목소리들 사이에 계속 들려왔다.

유선은 그 익숙한 목소리에 끌려 집중했다. 난잡한 정신 속에서 그 목소리에 집중하니 묘하게 유선은 정신이 맑아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유선을 괴롭히는 다른 목소리가 가라앉았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것에 집중하니 마치 벽을 세운 것처럼 되었고, 형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목소리를 쫓아 보자.’

유선은 잡힌 형상에 그대로 집중했다. 또 다른 의미로는 홀린 것처럼 그곳으로 걸어갔다. 갈림길이 나와도 선택할 필요 없이 바로 길을 알았다. 호문쿨루스들이 나오면 재빠르게 처리하고, 그 목소리에 다시 집중해 걸었다.

그러자, 유선은 막다른 길이 나온 것을 알았다. 다만, 그 막다른 길은 다른 것들처럼 매끈한 벽이라서 세워진 게 아니었다. 그것은 천장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유선은 그 밑에 뭔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깔린 걸 보았다. 그리고 경악하고 말았다.

“너는 그······.”

“······.”

서로가 알았다. 그것은 세네타를 닮은 여자, 사막 때부터 줄곧 계속 봐 온 여인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신마저 죽이려 들었다는 것까지 알았다.

그러자 자신에게 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았다.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생각들과 딱 들어맞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