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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성검 아발트 (11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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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성검 아발트

압도적인 전력으로 여겨지던 싸움이었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지상에 있는 호문쿨루스들은 나무 위에서 가지를 쳐 대며 최대한 공격을 받을 만한 수단을 없앴다.

“정령왕 님의 뜻대로.”

“무어어어어······!”

땅의 정령을 불러내서 싸워 보려고 했지만, 언데드 드래곤이 오염시킨 땅 때문에 정령들을 부르기도 꺼려졌다.

-후으으으!

-좀 더 강하게! 저쪽으로 가면 또 죽은 놈들이 있으니까, 그것들도 마저 불로 지져 버리자!

정령들이 할 것은 뿌리를 뻗은 장소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화염의 정령들이 최대한 뿌리에 손상이 가지 않게 독들을 불로 굳혔다. 태어난다면, 분명히 아군도 공격할 것이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오르넵토스는 하늘을 보았다. 수십의 드래곤이 하얀 드래곤에게 달라붙어 난전을 유도했다.

-크롸아아아!

하지만 그 난전에도 엘레노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하나씩 떼어 내 천천히 목덜미를 물어 부서트리는 데 집중했다.

‘하늘에서도 도울 수가 없고······.’

하늘을 떠다니는 정령들의 숫자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오르넵토스의 머릿속에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언데드 상태라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정령들이 호문쿨루스들을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소환해 언데드 드래곤을 대적하는 건 쓸데없는 전력 소모가 일어났다. 지상을 향해 뿜어내는 브레스를 막기도 모자랐다.

‘엘레노어가 지쳐 가.’

공중에서 일어나는 교전에서 눈에 띄는 진전이 없어 보였다. 30초마다 한 마리씩 잡는 것 같아, 지금이라면 절반 정도가 줄어들어 보일 텐데, 달라붙은 언데드 드래곤은 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어디서 그 많은 것을 계속 만들어 내나 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히 전투만 하는 호문쿨루스들만 있지 않구나.’

누더기처럼 만들어진 언데드 드래곤들을 인형을 고치듯 실과 바늘 따위로 끊어진 목과 머리를 기워 다시 형상을 유지해 엘레노어에게 달려들게 했다.

‘큰일이네.’

엘레노어는 지치지 않고 계속 상대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데드 드래곤이 계속해서 엘레노어를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불의 아이들아.

-네, 왕이시여.

-말씀하소서.

지면을 태우는 데 집중하던 불의 정령들이 그녀의 부름에 응답했다.

-주변에 떨어진 시체들을 완전히 소각시켜라. 지면에 남긴 독들을 굳히는 것은 하급 정령들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언데드 드래곤으로 향하는 호문쿨루스들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녀석을 추적해라.

-네!

-알겠습니다!

오르넵토스는 전술을 변화시켰다. 언데드 드래곤들의 목숨을 끊어 내는 것을 완전히 처리하는 게 좋을 성싶다고 생각했다. 호문쿨루스들에게 조금 소홀해지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쿠웅!

엘레노어가 언데드 드래곤 하나를 더 추락시켜 지면에 구르게끔 떨어트렸다. 그렇게 상대하던 엘레노어의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그녀는 무언가를 느꼈다.

-크르······.

-엘레노어, 너도 느꼈어?

엘레노어뿐만이 아니었다. 오르넵토스도 그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를 속박한 인장이 반응을 보였다. 테이머가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갈 수 없어. 그에게 해 줄 것은 이런 게 아니니까. 그는 무조건 살아 있을 거야.

오르넵토스는 엘레노어가 절망하지 않게끔 그녀를 구슬렸다. 무엇보다 전적이 있어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유선 님이 당할 리가 없어.

엘레노어가 말했다. 그녀는 오르넵토스가 우려하는 불안감을 가지지 않았다. 엘레노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그렇기에 유선은 살아 있었다.

-유선 님은 슈퍼맨이야.

자신보다 강하기에, 언제나 이끌어 주던 남자였다. 그렇기에 엘레노어는 이런 위험도 이겨 내리라 믿었다.

그 믿음으로 어떻게든 지금은 자기 일을 해야 했다.

***

“끄으으으······.”

꺼진 바닥. 유선이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떨어지면서 받은 충격에 제대로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유선은 얼른 회복 포션을 마셨다. 치유 속도가 빨라져 금이 갔다고 여긴 뼈도 금방 달라붙으며, 동시에 느끼던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유선은 웬만해선 포션 중독을 우려해 중상이 아니고서야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걸리는 모든 상처를 사전에 없애야만 했다.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 그리고 세네타는 각자만의 싸움 중이었고, 그가 기댈 것은 자신뿐이었다.

“미쳐 버리겠네.”

유선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울렁증이고 나발이고, 이제는 무조건 반지를 착용해서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거리가 한 5m 정도 되려나······?”

아무래도 뭔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계속 여기서 기다리다가 세네타가 얼굴을 보여서 뭔가 방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세네타는 여인과 교전을 계속 치를 것이고, 바닥은 계속 깨져 갈 것이다. 쉽게 결판이 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기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네.”

유선은 플래시를 들었다. 자신이 내려온 곳도 미궁 중 일부. 그렇기에 돌아다니다 보면, 길이 있으리라 여겼다.

쿠웅!

동굴이 울렸다. 천장이 쩌적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레노어······!’

동굴 전체가 울리는 것, 그것은 외부에서 충격이 온다는 것이고, 그 말은 엘레노어가 싸운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직 그녀가 제대로 싸운다는 말이기도 했다. 안심하면서 동시에 마음에 걸렸다.

‘능력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검과 함께 그 미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

세네타는 자신을 닮은 여인과 싸우며 다시 결판내려고 검을 서로에게 휘둘렀다.

쿠궁!

쩌저적!

단순히 울림뿐만 아니라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과 바닥이 갈라져 부서지는 것도 감수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결투장이었다.

하지만 고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장식 효과일 뿐이라는 듯이, 흔들리는 동굴 속에서도 제대로 중심을 잡으며 검을 다루었다.

“후으······ 후으······.”

세네타는 여인의 검을 받고 숨을 골랐다. 전투 중에 약점을 드러내면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그런 문제까지 생각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리저리 베인 상처들이 가득한 곳에서 피가 찔끔찔끔 흘러나와 금방 지쳐 갔다.

세네타가 힘들어하는 반면, 검은 머리 여인은 숨도 고르지 않았다. 체력 면에서는 우세라는 반응이었다. 여인은 여유롭게 검을 흔들어 보이며 세네타를 보았다.

“늑대 기사의 검법이라고 했던가? 네가 사용하는 그것 말이야.”

“그런 걸 알려 줄 만큼 한가롭지 않을 텐데?”

여유가 사라지니 잡담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실제로 점점 밀리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적응해 가.’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검술에 적응했다. 한 번 공격에 성공한 것들은 다음 수에서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고, 그간 섞은 페인트도 이제는 간파해 버렸다. 그렇기에 그걸 깨달은 세네타는 자신이 가진 수를 함부로 꺼내 쓰지 못했다.

이미 보이는 공격으로 싸운 결과, 상처는 세네타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전체적인 상태도 압도적으로 나빴다.

검을 들던 여인은 잠깐 뒤로 물러나며 세네타를 보았다.

“괜찮은 것 같지만, 아직 네 아버지와 비교하면 뭣도 아니네. 그런 검술은 네 아버지가 참 잘 썼던 것 같은데. 지크벨트였나? 그 꼬맹이가 아주 실력은 출중했어. 그러니까 어찌 됐든 용사의 자질이 확실했겠지만 말이야.”

말투가 지크벨트를 아주 잘 안다는 듯했다. 자신과 닮았다는 여자가 지크벨트의 이름을 알고 그렇게 안다는 듯이 굴어 대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해서······ 잘 알아?”

“네 아버지라······! 잘 알고 지냈지.”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세네타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나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마왕과 대적할 때까지, 쭉 함께였으니까 말이야.”

스스로 긴밀한 관계라고 말했다. 그녀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거짓말해서 얻을 것이 없으니까.

“넌 아버지의······ 뭐야? 아버지는 너 같은 여자에 관해서 얘기해 준 적이 없어.”

기억을 더듬다가 포기한 세네타의 물음이었다. 그것에 여인은 잠깐 멈춰 섰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였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글쎄······, 네 아버지의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간단하게 말하면, 네 아버지의 옛 동료. 그리고 동시에 마왕을 봉인시킨 장본인이야. 그리고 이름은······.”

그녀는 들고 있는 검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검, 아발트.”

아발트.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세네타도 많이 듣던 이름이었다. 지크벨트가 악마들과 싸운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나오던 두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르젤과 아발트.

지크벨트가 말하길 아르젤은 옛 동료였으며, 아발트는 자신의 반신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반신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었다.

아발트는 검이었다. 마왕을 봉인시킨다는 유일한 검으로 모든 검의 근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녔다.

그렇지만 지금 있는 것은 여인이었다. 이야기가 달랐지만, 이해할 수 없지는 않았다. 성검은 용사에게 이끌리고, 그 용사의 핏줄인 자신에게도 이끌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세네타는 여인의 존재에 대해서 이끌렸다. 오직 세네타만이······.

“당신이······ 성검이라고?”

“맞아. 나는 검이야. 성검이라 불렸지. 그것도 예전 이야기고.”

여인, 아니 아발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보자기같이 넓은 손바닥과 4개의 길쭉한 손가락과 옆에 붙은 뭉툭한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것은 그녀를, 여태 자신의 몸을 쥐여 온 형태였다.

“에고르트······, 그놈이 나를 이용해서 육신을 만들었어. 본래 잠든 채로 용사를 보조하는 게 역할이었기에, 그 자아를 깨우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 수 있음을 알았던 거야. 그리고 그 녀석은 그걸 성공했지.”

아발트는 자신이 만들어진 과정을 뚜렷하게 알았다. 그리고 그걸 숨길 이유도 없어 그대로 세네타에게 말해 주었다. 세네타는 그것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어째서 성검인 당신이······ 악마를 죽이는 것으로 모자라서······ 우리마저 타깃으로 잡았지?”

세네타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물었다. 그러자 아발트가 잘 물었다는 듯이 세네타에게 말했다.

“너희도 악마들과 다를 게 없으니까.”

그녀의 눈동자는 확고했다. 한순간 에고르트의 손에 놀아나며 세뇌되지 않았나 했지만, 그것도 헛다리를 짚었다는 듯이 매서웠다.

“신성함이라는 허울 속에서 나를 이용해, 또 다른 불행을 안겨 준 것에 불과하니까.”

검으로서 자신이 느끼던 것을 그대로 말했다. 검으로 살면서 그녀는 자신의 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베었는지 알았다. 수십 년을 거치며 피의 색깔과 형태가 달라지던 것을 기억하기 싫어도 온몸이 알았다.

“이제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건 질렸어. 저마다의 이상, 저마다의 탐욕에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

자아를 가진 이후로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신을 만든 에고르트가 최우선이었으며, 자신의 몸에 흐르면서 동시에 자신의 주인이었던 지크벨트의 피가 흐르는 자를 막아야만 했다.

아발트는 검을 들어 세네타를 겨누며 물었다.

“이제 충분한 휴식이 됐지?”

“······.”

여인은 세네타가 휴식을 취하려고 그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면 다시 검을 들어. 이젠 더는 봐줄 생각이 없으니까.”

아발트의 말에 세네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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