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54. 불필요한 대화 (2)
세네타와 유선은 거대한 불기둥을 세워 준 오르넵토스의 도움에 호문쿨루스들의 추격을 무시한 채로 그녀의 자취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뒤를 쫓은 결과, 그들은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악마의 동굴······.’
모든 악마가 그렇듯이 그 틈 입구에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흘러나와 오싹하게 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경고같이 흘려보내는 것도 이젠 악마가 있다는 신호로만 보였다.
“그 여자다.”
유선의 시야에 그 여인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어둠에 묻히기 전, 그 머리카락을 보고 확신했다.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에고르트에게 도달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이 확실했다. 더는 지체해선 안 되었다. 그들은 재빨리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유선은 또 다른 악마들의 동굴 모습을 보았다. 악마들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의 겉모습과 다르게 안은 인위적인 벽과 구성을 이루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정신이 엿보였다.
패턴을 보이는 벽 문양, 그리고 길의 끝이 드러나면 계속해서 나오는 두 가지로 나뉜 갈림길과 함께 주어진 선택의 시간.
쿵!
하지만 그 선택도 마냥 길게 할 수 없다는 듯이 동굴이 울렸다. 기습적인 그 소리에서 언데드 드래곤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커다란 물체가 이쪽을 향해 추락한 게 확실했다. 바깥에서 격전이 일어남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쩌적-.
“이런.”
바닥이 불안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벽은 튼튼한 것과 다르게 바닥은 심히 문제가 커 보였다.
유선은 자신의 발치 아래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행히도 갈라져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공격.
그렇게 바닥에 정신 팔릴 때, 누군가가 매섭게 유선을 덮쳐들었다. 날이 선 검으로 옆에서 덮쳐 왔다.
“조심해요, 오빠.”
“알아.”
반지를 착용한 상태였기에, 유선은 기습을 금방 눈치챘다. 기습하는 만큼 모든 것을 걸고 다가온 탓에 반격에는 취약했다.
그렇기에 본래 가죽 덩이로 돌려보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로와 거기에 준비된 파수꾼들이라······!”
호문쿨루스 병사들까지 앞을 가로막고, 기습을 준비하니, 정석적인 미궁 그 자체였다. 게임 같은 곳은 흔하겠지만, 유선은 현실에서 이런 것을 보니 신기했다.
“독특한 구조네.”
“이곳은 악마들의 영역이니까요. 그 악마의 특성과 취향에 따라서 만들죠.”
발록, 벨제브라고도 불리는 그 악마는 커다란 싱크홀 같은 구멍, 렛놈은 두 갈림길, 그리고 지금 들어온 에고르트는 미궁이었다.
“이러면 에고르트를 찾는 데 한참 걸리겠어요.”
“그러게. 하지만······.”
에고르트가 아닌 그 여인을 찾는다면 달랐다. 이상하게도 유선을 기습한 호문쿨루스를 제외하고 한 구가 죽어 버린 흔적이 보였다.
“갑자기 한 구를 죽였다는 건 싸움이 일어났다는 말이겠지?”
“들여보낼 때는 순순히 보내 줘 놓고 왜 지금 와서 싸울까요?”
모순이 일어났다. 그 말은 유선과 다른 이들이 생각하던 저지와 제압의 목적이 아님이 확실했다.
“이게 있다는 말은 어찌 됐든, 그녀를 쫓을 만한 단서가 있다는 거니까, 그걸 쫓아가 보자.”
유선은 교감의 반지를 이용해, 그 여인을 쫓을 때 썼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녀가 행선지를 아는지 모르지만, 여인이 어디로 갔는지는 충분히 알 테니까. 그렇게 미궁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또 다른 목적······.’
유선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생각했다. 에고르트는 많은 호문쿨루스를 그녀에게 보냈다. 하지만 애초에 많은 숫자를 보내지 않았으며,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모든 것을 없애 버렸다. 그녀가 겨우 역경을 이겨 내고, 곧바로 다음 단계의 시련을 주듯이 조금 더 많은 숫자와 더 강한 병력을 보내었다.
애초에 저지나 제압 같은 목적을 위해 찔끔찔끔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마치 일부러 그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것만 같았다.
‘설마······.’
그렇게 해서 자신에게 오게 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여인은 분명히 자신이 에고르트를 죽이러 간다고 확신했지만, 그 몸은 에고르트가 만들었고, 어디까지나 에고르트의 의도로 만들어진 몸체였다.
‘윽······.’
유선은 반지를 계속 착용하면서 오는 부작용에 고통스럽다는 듯 숨을 신음했다.
“반지 때문에 그러세요?”
“응, 잠깐 빼야 할 것 같아.”
“추적은 발자국이 있으니,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 빼놓으세요.”
세네타의 말대로 유선은 얼른 반지를 다시 빼 버렸다. 세네타가 앞장서서 다시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하던 생각을 마저 정리했다.
여인이 품은 감정이 증오였지만, 그것은 결국 에고르트가 원하는 것이고, 에고르트에게 다가가는 것도 결국 에고르트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그러면 더욱더 빠르게 찾아야만 했다.
“발자취가 사라졌어요.”
세네타가 추적하던 여인의 발걸음이 사라졌고, 세네타는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갈림길로 나뉜 그곳에서 딱 사라졌다.
“뒤늦게 알아차리고 흔적을 지웠을까?”
“흔적을 지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감쪽같이 지울 수는 없을 텐데요.”
“이상하네.”
그렇다면 그 갈림길에서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하나의 시련일까, 유선은 고민했다.
“오빠.”
“응?”
세네타는 재빠르게 가만히 서 있는 유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유선은 가만히 자신을 향하는 그 공격을 본 채로 서 있었다.
챙!
세네타가 자신을 향하는, 정확히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검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어두운 동굴 속 울리는 소리와 터지는 스파크. 유선은 자신의 위에서 검이 날아왔음을 알았다. 그것은 함정이었다.
교감의 반지를 끼었다면, 금방 눈치챘겠지만, 그것도 계속해서 낄 수 없는 탓에 잠깐 빼놓은 사이, 기습에 노출되었다. 세네타가 불현듯이 나타난 기척에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기에 망정이지, 유선은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세네타는 바로 그 검을 튕겨 내며 거리를 좁혀 유선을 기습한 괴한을 처리하려 했다. 그것은 다른 호문쿨루스들과 다르게 세네타의 검에 쉽게 공격을 맞지 않았다.
그 공격을 피할 만한 것은 호문쿨루스 중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 명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인이었다. 유선과 세네타가 쫓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먼저 처리하려고 숨었다.
“끈질기게 따라붙네.”
여인은 거리를 벌렸다. 세네타를 닮은 그 얼굴이 싸늘하게 유선을 노려보았다. 유선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그 말에 받아쳤다.
“당신의 목적을 아는데,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단순한 용사 놀이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건가?”
여인은 우습다는 듯이 유선을 보았다.
“그러니 그 증오에 관해서 얘기 좀 하죠?”
유선은 한 번 더 그녀에게 좋게 말로 이야기하길 바랐다. 여인은 그런 유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기습해 죽이려 하고, 불필요한 대화로 여기며 멋대로 방패막이로 몰고 간 여자에게 계속 대화를 요구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가지 묻지.”
“말씀해 보세요.”
원하는 대화 방향이 이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유선은 그녀가 스스로 발목을 잡혀 주겠다니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에고르트는 그렇다 치고, 내가 인간을 타깃으로 잡는다는 것. 그걸 어떻게 알지?”
흔적이야 자신의 몸에 있는 각인으로 어떻게든 찾는다지만, 그녀는 자기의 목적을 알아내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이 남기고 간 흔적들 때문에 알았습니다. 그거로 당신을 쫓았고요.”
“그 망할 흔적들······. 기적의 문장이라던가! 나를 추적하는 그 각인이 아직도 몸에 남은 모양이네. 떨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기적의 문장도 그녀를 쫓는 이유에 충분한 대답이 되진 못했다.
“그런데 그건 내게 이유가 되는 말이 아니네. 나는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가를 물었지, 네가 쫓은 방법을 묻지 않았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세네타는 혹여나 생길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유선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이 남긴 흔적. 그걸 통해서 당신의 기억을 엿보았습니다.”
교감의 반지를 착용해야만 보이는 그 희미한 빛. 그걸 만지면 그녀에 대한 기억이 흘러들어왔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여인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내 생각을 읽었다고?”
“네.”
쿠웅-.
밖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내부, 그 진원지는 여인 쪽이었다. 세네타도 깜짝 놀라 한순간 덤벼드는 줄만 알고 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여인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 말.”
여인은 드래곤처럼 진한 살기를 뿜으며, 검으로 유선을 가리켰다
“방금 당신이 한 그 말 때문에 내 우선순위가 바뀔 뻔했어.”
그녀의 싸늘한 말에, 유선은 그 순간 가슴이 하늘 위로 올려 들어 내리친 것처럼 철렁거렸다. 우선순위라면 분명히 죽이는 것을 말했다.
세네타가 그녀의 살의를 느껴 조심스럽게 유선의 앞에 섰다. 지금 당장 뛰어들 생각이 없음을 알았지만, 유선이 무방비하게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앞을 막아섰다.
“그만큼 당신에게 위협적인 사람이라는 소리인가요?”
“내게는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지.”
생각을 읽었다. 그녀는 자신을 엿보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아나?’
남에게 들키기 싫은 치부나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극비의 비밀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기억인지 유선은 궁금했다.
“날 이대로 에고르트에게 보내 줘. 그 녀석을 없앨 거다.”
그 의문은 일단 뒤로 미뤄야 했다. 유선은 그 여인을 막으려고 소리쳤다.
“당신은 에고르트에게 놀아나는 겁니다. 당신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유도해? 나를?”
“네, 분명히 당신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닥쳐.”
여인은 말을 끊었다. 불신에 어린 황금색 눈동자. 유선이 하는 말이 오히려 더 거짓말 같다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악마가 있다면, 유선도 그런 악마였다. 그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여인은 그 불필요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자유 의지로 그 녀석을 죽이고 싶어. 누군가의 손에 놀아나는 건 이제 질린 지 오래야. 그러니까 그 녀석을 죽일 거야. 날 방해할 생각은 하지 마.”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 협박이 먹혔더라면 이렇게까지 왔을 리가 없을 것이다.
“순순히 당신의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오지도 않았겠지요.”
세네타가 그녀를 향해 살짝 다가오며 앞에 섰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막아서겠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행동을 본 여인은 뜻을 확실히 전달받았다. 그녀도 자신의 우선순위에 드는 문제의 인물이었지만, 그것은 에고르트 다음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를 조금 바꿔야겠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 싸움은 불가피했기에, 여인은 세네타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쿠웅!
바깥에서 일어나는 격전에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불안하던 지반이 벌어졌다.
쩌적!
쿠르르릉!
단순히 벌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더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어라?”
그것도 유선의 발밑이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선이 밟던 땅이 꺼져버렸다. 유선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빨려 들어가는 듯이 꺼지는 몸으로 뭔가 하는 방법은 없었다.
교전에 돌입하려던 순간, 세네타가 유선의 목소리를 뒤늦게 듣고, 고개를 돌렸다.
“오빠!”
세네타가 그를 구하려 손을 뻗으려 해 보았다.
“어딜 봐?”
여인은 그 행동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세네타의 팔을 재빠르게 찌르며 자신에게 집중하게 했다.
“읏!”
세네타는 그 공격에 개의치 않으며, 유선을 구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유선은 깜깜한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세네타는 여인의 이어지는 공격을 막으려고 검을 들었다. 유선의 생사를 확인할 새도 없이 싸움을 이어 가야만 했다.
“한눈팔지 마. 네 상대는 그쪽이 아니잖아. 하나에 집중해. 모두를 구하고 싶다면.”
여인은 자비가 없었다. 그녀는 검을 다시 뻗으며 조용히 경고했다.
“네 아버지처럼 말이야.”
다시 세네타를 향해 검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