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53. 언데드 드래곤 (2)
-크롸아아아!
엘레노어가 한 번 더 위협적인 포효성을 내뱉었다.
온몸의 힘을 모아 유선을 향해 일격을 날리려던 녀석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든 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온 드래곤의 머리가 그의 눈에 보였다.
콰광!
두 번째 격돌. 엘레노어가 언데드 드래곤과 몸을 부딪치자, 언데드 드래곤은 그 육중한 돌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구르고 말았다. 엘레노어는 거기서 멈추려 들지 않았다.
-그라······. 그라······.
재빠르게 목을 뻗어 언데드 드래곤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리고 오르넵토스가 끊으려 했던 그 목을 완전히 으깨 버렸다.
우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와 유선의 귓가에도 박혀 왔다.
-그르르르륵!
그런데도 드래곤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언데드 드래곤이기에 그 정도의 상처는 상관없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발톱으로 엘레노어의 몸을 상처 내려 들었다. 하지만 엘레노어의 몸을 상처 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경도와 힘이었다.
그렇게 발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껄떡거리며 숨 쉬는 시늉하던 목도.
-우두두두둑!
그렇게 완전히 끊어졌다. 엘레노어는 그것의 목덜미에 더욱더 깊숙이 이빨을 박아 넣었다. 초록 안광이 다시 사라졌지만, 그대로 안심하지 않았다. 살점을 떼어 버리기 모자란다면, 그 목을 완전히 끊어 버릴 심산으로 뼈까지 파고들었다.
쿵!
그리고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초록 액체가 바닥을 적시며, 그 상황은 그렇게 완전히 종료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크르르르르······!
엘레노어가 초록으로 물든 입으로 으르렁거렸다. 그 사나운 맹수의 모습에 감히 다가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선은 조심스럽게 엘레노어를 불렀다.
“엘레노어!”
드래곤의 얼굴로는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건 오르넵토스도 제대로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유선은 그녀의 기분을 확실하게 느꼈다.
엘레노어는 겁에 질렸다. 자신이 물어뜯어 목숨을 앗아 간 그것의 시체를 보고는 겁에 질린 상태로 서 있었다.
“엘.”
-크르······.
유선은 다시 한 번 더 엘레노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제야 엘레노어가 반응해 고개를 돌려 보았다.
유선은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엘레노어에게 양팔을 뻗었다. 엘레노어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 고개를 내밀어 유선에게 다가갔다. 두 팔로는 제대로 감쌀 수 없는 머리가 닿았다.
점점 작아졌다. 머리의 크기에 따라 엘레노어의 몸도 점차 작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한쪽 팔로 그 작은 몸을 껴안을 몸이 만들어졌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엘레노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엘레노어는 겁을 먹은 채로 품에 안겨 숨을 죽였다.
***
한 단계의 고비를 그렇게 넘겼다.
하지만 분위기가 가라앉은 채로 30분째,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오르넵토스가 정령들의 도움으로 몸을 수복해 갔다. 시선을 어디로 제대로 두지 못하는 오르넵토스가 기습하듯이 입을 열어 유선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계약자.”
“아냐. 너도 몰랐다고 했잖아. 언데드 드래곤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고, 그만한 양의 마나 때문에 다시 소생할 줄은 몰랐다고. 네가 잘못한 건 없어.”
유선은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하려 애써 보았다. 하지만 그 사과도 벌써 두 번째였기에 사과만 받는다고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지금 이 불편한 상황에 본 목적을 잊어버리면 안 됐기에, 유선은 화제를 돌려 보며 세네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추격이 늦겠네.”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오르넵토스는 몸을 옮기며 치유하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 있기에 섣불리 자리를 옮길 수 없었다. 유선은 그것을 뼈저리게 느껴 본 적이 있기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유선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잡히는 것은 하얀 머리의 소녀였다. 엘레노어가 등을 돌린 채로 어디론가 시선을 던졌다. 공허하게 어디론가 던지며 뭔가 생각에 빠졌다.
‘심각하진 않아.’
악몽을 꾸었을 때보다는 확실히 덜 했다. 여러 충격적인 것을 경험해 보면서 성장해 그런 부분에서는 쉽게 절망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파고들어 온다면······ 깊은 상처가 돼서 나오지 못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엘레노어가 얼마나 아파했는지 유선은 알기에, 그녀의 상황을 내버려 두거나 미루고 싶지 않았다.
‘반지를 낄까?’
엘레노어를 보았을 때 반지를 착용하긴 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 낀다면 엘레노어의 생각이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방법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분명히 이 길은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것에서 절대라는 건 없었다. 엘레노어가 수치상으로 얼마나 강하거나 간에, 그녀는 어쩌면 유선보다 약하게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듯이 유선이 그녀의 마음을 본다고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나서는 것은 우스운 짓이었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동족들이 죽은 모습이······ 아무래도 충격적이지?”
엘레노어는 그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과 만남 이후에는 처음으로 보는 동족들일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엘레노어가 저렇게 무섭게 변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런 것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섭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자.”
만약 엘레노어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유선은 그 여인을 그만 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열린 틈으로 다시 나갈 것이다.
“아냐.”
하지만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었다.
“무서운 건 그런 게 아냐.”
유선은 엘레노어의 말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엘레노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에게 다가올 그런 미래라고 생각했다.
“저기, 저 아찌들은······ 모두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옛날에 칭구가 말해 주었어.”
“그래. 그걸 들었구나.”
“그리고 나도 죽으면 저런 아찌들처럼 될 거라고도 했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다 잡아먹는데.”
오래전 이야기인 듯했다. 실제로 본 적은 없고, 그저 오르넵토스가 해 준 이야기로만 생각하다가 막상 그것을 마주하고 나니, 두려워진 것 같았다.
“그런 게 무서운 거 아니었어?”
“아냐. 나는······.”
엘레노어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다가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만약에, 내가 저렇게 되면······ 저렇게 돼서 유선 님을 아프게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
엘레노어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생각에 유선도 순간 왈칵하고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엘레노어가 두려워하는 것은 확신 없는 미래. 하지만 있을 수 있는 미래. 엘레노어는 그 부분이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그리고 유선은 그 마음을 듣고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엘레노어는 나를 해치는 게 싫지?”
“응, 싫어. 죽기보다 싫어.”
엘레노어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됐어.”
“그러면 돼?”
“응, 왜냐하면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유선은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레노어가 벌써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미래는 아무도 몰라.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당장에 엘레노어가 좋아하는 라면이 다 없어질 수도 있어. 그렇다고 그런 두려움을 계속 안고 살 수는 없잖아. 그러니 확신이 없다면 가장 믿고 싶은 걸 믿으면 돼.”
엘레노어가 가장 믿고 싶은 것은 자신이 저렇게 되어도 절대로 유선을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틀리면? 내가 틀리면 어뜨케?”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순진무구한 아이라도 의심은 하기 마련이었다.
“그럴 일은 없어.”
유선은 엘레노어를 꼭 안아 주었다.
“엘레노어는 강하니까. 단순히 육체만 강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야. 엘레노어는 한다면, 반드시 한다는 걸 계속 봐 왔으니까. 엘레노어가 믿는다면 분명히 할 수 있어.”
불안하다고 여기는 타오르는 불꽃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잔불만 남은 채로 점점 식어 가는 열기에 유선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슈퍼맨인걸?”
“슈퍼맨?”
“자, 이렇게.”
엘레노어를 들어 올렸다. 양어깨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며,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그렇게 센 엘레노어라도 이렇게 들어 버리면 꼼짝도 못 하잖아, 안 그래?”
들린 채로 유선을 내려다보는 엘레노어. 유선의 믿음직스러운 표정에 엘레노어는 그의 말에 동조해 함박 미소를 지었다.
“슈퍼맨!”
“그래, 슈퍼맨이야! 그래도 무서워?”
“안 무서워.”
유선은 엘레노어의 말을 듣고 다시 엘레노어를 내려놓았다.
엘레노어가 불안감을 떨쳐 내고, 다시 전의를 되찾는 데 성공했고, 멈춘 발걸음은 다시 그 여인을 쫓기 시작했다.
***
퍼석!
펑!
여인이 베어 낸 호문쿨루스의 몸체가 마지막이었다. 에고르트의 호문쿨루스가 인형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40명에 가까운 숫자가 한꺼번에 덤벼들었기에, 여인도 상당히 고전한 싸움이었다. 놈들이 더욱더 강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해 봐야 여인은 매번 승리를 거두었다. 불가능하리라 믿으며, 승리를 확신하던 호문쿨루스들을 꺾고 이곳까지 다가왔다.
“휴우······.”
검은 머리의 여인은 숨을 깊게 내쉬며 검을 거두었다. 아니었다. 거두기엔 조금 일렀다.
‘누군가가 오는구나.’
여인은 맹렬히 따라오는 속도를 느꼈다. 이 속도로 따라올 생물체라면 분명히 이 숲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짐작할 것은 하나뿐.
“세네타와 그 남자의 무리인가?”
그들이라면 충분했다. 시차를 두고 벌리던 그녀를 찾으려고 맹렬한 속도로 움직였다.
‘도망칠까?’
그 정도의 속도라면 충분히 범위에서 벗어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 다시 시차를 벌리고 자신을 쫓게 했다.
‘그렇게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거리를 벌리려고 발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쿵!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져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뜬금없이 내려온 그것은 사람이었고, 일전에 한 번 만나 본 남자였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유선이었다. 자신에게 물을 주었던 그 남자가 급속도로 하강해 아래로 내려왔다. 함께 날아왔다고 추정된 소녀가 날갯짓하며 조심스럽게 옆에 섰다.
“······.”
여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유선을 보았다. 곧 그녀를 쫓던 것이 완전히 가까워졌고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오르넵토스와 세네타였다. 그녀의 뒤에 서서 검을 뽑은 채로 서 있었다. 지금 이만큼 가까워진 상태에서 도망친다면, 그대로 제압하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미끼였구나.’
일부러 감지되는 범위에서 천천히 날아와 생각하게 두고, 그 감지 범위에서 미리 도착해 앞길을 가로막았다. 여인은 그런 작전에 뭔가 배신감을 느끼며 유선을 노려보았다.
“충분히 이럴 능력이 있었네.”
“충분히는 아닙니다. 이건 도박이었으니까요.”
단서조차 주지 않고 사라졌기에, 유선은 이렇게 저돌적인 추적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시간을 버릴 수만은 없었다.
“이제 우리와 이야기 좀 하죠.”
얼른 에고르트와 결판내기 전, 그녀가 적으로 돌린 것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