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50. 공방 털이 (2)
직접 확인하는 유선과 다르게 루데릭은 확고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확신해?’
-그 녀석을 이루는 생명이 아직 깨졌다는 느낌이 안 왔으니까. 그리고 공방의 신은 단순히 무기만 잘 만들지는 않는다.
루데릭은 포어셰크의 명성이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유선은 루데릭의 말을 믿기로 하고 그에게 방법을 물었다.
‘어떻게 하면 깨어날까?’
-그 녀석을 용암로에 던져라. 그러면 알아서 깨어날 거다.
유선은 루데릭의 말에 부글거리는 열기가 장난 아닌 용광로를 내려다보았다. 루데릭이 한 말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영 꺼림칙하기 짝이 없었다. 유선은 포어셰크를 옮기려고 그의 몸을 들려고 했다.
“뭐야, 왜 이렇게 무거워?”
몸이 말 그대로 쇳덩이 같았다. 유선이 들어 올리려고 하니, 그의 몸이 조금 꿈틀거릴 뿐, 더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유선님, 뭐 해?”
엘레노어가 유선이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자신의 능력 밖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엘레노어에게 부탁했다.
“엘레노어, 혹시 이 사람 좀 들어서 저쪽으로 옮겨 주겠어?”
“응!”
엘레노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포어셰크의 몸을 들었다. 그녀의 힘으로도 살짝 버거운 느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옮기는가 싶더니······.
“에잇!”
그리고 그대로 용암로로 던져 버렸다. 풍덩! 포어셰크의 몸이 깔끔하게 용암로 안으로 들어갔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과감한 행동에 그녀를 보며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던져 버리면 어떻게 하니?”
“그렇지만 무거운걸······.”
엘레노어가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었다. 던지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으니, 유선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떻게 들어가든지 간에 포어셰크가 용암로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부르르르르······..
그러자 용암로 포어세크를 던져 넣은 장소에서 비정상적으로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점점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싶더니, 그것은 갑자기 급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쿠웅!
뜨거운 용암을 이리저리 튀기며 뭔가가 튀어나왔다. 검은색으로 된 골렘 따위였다. 포어셰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섭고, 거대하며, 육중해 보였다. 그 형체는 튀어나오자마자 자신의 가슴을 붙잡은 채로 신음했다. 포어셰크의 몸에서 관통당한 부분이었다.
-크아아악! 내 가슴! 내 가스음······! 어라? 이제 안 아프네? 누가 용암로에 나를 넣어 주었나?
자신의 몸을 더듬고는 그것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 골렘은 가슴을 더듬더듬하더니, 유선을 내려다보았다. 육중하고 무거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들뜬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오, 형씨! 왔군! 형씨가 내 몸을 이곳에 넣어 주었나?
“제가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했죠.”
-응?
포어셰크는 그제야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라는 또 다른 손님을 보았다. 엘레노어는 호기심이 넘치는 얼굴로 그것을 보았고, 오르넵토스는 엘레노어를 뒤로 두고 포어셰크를 경계했다. 포어셰크 또한 깜짝 놀란 얼굴로 그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정령왕 님이랑······ 드래곤인가? 대단하구먼. 형씨가 능력 있는 사람인 걸 알았지만, 설마 없어졌다는 드래곤을 다룰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지금은 중요한 게 그게 아니지.
어째서 포어셰크가 죽어 갔는지가 중요했다. 포어세크도 몇 시간 전 일을 떠올렸는지, 유선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뭣 때문에 그렇게 죽었습니까?”
유선은 포어셰크의 오른쪽 가슴에 뚫린 구멍을 보았다. 흔적을 보면 날카로운 것이 꿰뚫고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포어셰크가 분노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쾅! 쾅! 용암로 안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젠장, 망할 어떤 년이 와서, 내 공방을 습격했어! 말도 안 통하고, 그냥 다짜고짜 나를 보더니 공격하더라고! 어이없어서, 진짜! 으아아아!
말하지 않았다. 맘대로 날뛰더니 어느 정도 머리가 식었는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그 뭐냐, 재앙을 잡는 고독한 늑대인가 뭔가 하는 년이 분명해. 그 비겁한 년이 머리를 완전히 검게 염색하고, 묻지 마 살인마 식으로 나를 노리고 온 게 분명해!
고독한 늑대라면 유명한 별명이기에 유선은 경악했다.
“고독한 늑대······? 세네타 유 말입니까?”
-맞아! 세네타 유! 그 용사의 딸이라는 그 년이 틀림없어!
포어셰크는 확신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은 포어셰크의 말 중의 말이 안 되는 것을 지적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세네타의 머리 색깔은 그대로입니다. 검은색이 아니에요.”
-그대로라고? 형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
“최근에 봤으니까요. 세네타가 이 사건을 일으킨 원흉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자 포어셰크가 분개하며 유선에게 소리쳤다.
-그럼 누구란 말이야? 나는 그 년의 얼굴을 똑똑히 봤어! 분명히 세네타 유라고!
유선은 그렇게 착각할 만한 얼굴이라고 알았다. 확신하는 포어셰크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네, 하지만 세네타와 닮은 누군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포어셰크가 씩씩거리며 화를 내다 조금 진정하며, 그 말에 흥미롭다는 듯이 용암 묻은 손으로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유선에게 물었다.
“뭔가 제대로 아는 것 같군, 그래. 말해 봐, 형씨.”
유선은 최근에 사막에서 발견한 여인에 관해 얘기해 주었다.
“최근에 세네타와 닮은 검은 머리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여자와 닮은 사람?”
“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사막 쪽에서 만난 여인이었습니다. 탈진 상태여서 우리가 물을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에고르트가 만들어 낸 피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포어셰크는 아직 긴가민가한 상태였다. 그런 말을 했지만, 그의 두 눈으로 본 것이 다른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자신을 죽이려 들었기 때문에 의심이 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세네타 유는 우리와 이제 함께하는 사이입니다. 악마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굳이 당신에게까지 적의를 보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포어셰크는 유선의 말을 신뢰했다. 그렇기에, 거인의 몸으로 바보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하, 그렇군. 인간으로 쳐도 불완전한 감정에다가 호문쿨루스라고 하기엔 뭔가 생동감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에고르트······, 그 망할 영감탱이가 인간을 만들어 냈을 줄이야!”
포어셰크는 끙! 신음을 내었다. 그가 앓는 소리를 내는 동안 유선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많던 무기. 유선은 그것이 끊긴 사슬들만 남은 채로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 많은 검은 어떻게 훔쳐 갔습니까?”
믿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같이 털려고 왔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유선이 본 그 여인의 얼굴에는 절대로 무리 짓지 않은 것이 세네타와 닮았다고 느꼈다. 포어셰크는 그녀 혼자 이 공방을 습격했음을 잘 알았다.
-나도 몰라.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에 검이 사라져 가는 것만 확인했어. 그 이상은······. 후우우······.
뜨거운 불 숨결을 내뱉었다. 다시 생각해 내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공방에서 만든 물건인 데다, 주인으로도 인정하지 않은 침입자가 멋대로 강탈해 갔으니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포어셰크는 육중한 쇳덩이 팔로 바닥을 내리치며 유선에게 말했다.
쿵!
-형씨, 그 망할 도둑놈을 찾아 줘! 사례는 내가 해 줄 테니까! 그 빌어먹을 놈을 잡고 그 무기 값을 톡톡히 치르도록 해 주겠어! 내 분노로 녀석의 몸을 녹여 평생에 걸친 졸작으로 만들어 버려 주지!
펑!
때맞추어 뒤에서 용암로가 터져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네, 뭐······ 화가 나시니까 알겠습니다만······ 저한테 화난 건 아니죠?”
-응? 아, 미안, 미안하군, 형씨. 부탁하는 처지에서 너무 역정을 내 버렸군. 그래서 찾아 줄 거지?
포어셰크는 평소대로 능글거리는 말투로 유선에게 부탁했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포어셰크의 천장에 달린 수천 자루의 검이 사라져 쇠사슬만 남은 곳. 유선은 그곳에서 뭔가를 보았다.
“그런데······.”
-왜 그래, 형씨?
“저기, 가운데 쇠사슬 끊어진 데, 뭔가가 있는 게 보이는데······ 저건 뭡니까?”
흐릿하게 뭔가가 흔적이 남은 것 같았다. 정확하게 검은색 사슬의 끄트머리였다. 그 사슬만 유일하게 하얗게 빛을 내었다.
-뭐가 있단 말이냐? 검은 철? 끊어져서 반짝이는 매끈한 단면?
“뭐가 있어?”
“뭐야?”
그들은 아무도 모르겠다는 듯이 반응했다. 유선은 자신만 본다는 것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 사슬들을 가리키며 포어셰크에게 말했다.
“포어셰크 씨, 저 사슬을 내려 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으니까.
포어셰크는 그의 말대로 사슬 하나를 잡아당겨서 유선에게 건네주었다. 유선은 그 사슬 끝을 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게 단순히 멀어서 이상하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교감의 반지 때문에 그런가?’
추측해 보지만, 그 해답을 알려 줄 사람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알아야 하기에, 유선은 조심스럽게 그곳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뜨거운 불을 경계하듯 조심스레 그 희미하게 남은 것을 건드렸다.
“아······.”
한순간 의식이 멀어졌다. 현실이 꺼져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무대가 유선의 눈앞에 펼쳐졌다.
-크어억······.
포어셰크의 신음이 들렸다. 포어셰크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포어셰크의 시선은 어딘가를 향했다. 바로 자신이었다.
평소와 같지 않은 시선, 평소와 같지 않은 무기, 그리고 평소와 같지 않은 악의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것으로 유선은 확신했다.
이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이 기억의 주인, 세네타를 닮은 그 여인의 몸에서 나온 기억의 흔적이었다. 레코드처럼 강제적으로 그 기억들에 따라 몸이 움직이며 재생했다.
유선은 무기를 들어, 쥔 검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검이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유선은 그것을 무시했다. 휘둘리면 안 됨을 알기에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팔꿈치에 찔러 넣었다.
고통이 올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그 검은 검집에 들어가듯 깔끔하게 안을 파고 들어갔다. 손잡이마저 사라지자, 유선은 쓰러진 공방의 주인, 포어셰크를 한 번 보다가 양팔을 하늘로 뻗었다. 그 하늘에는 수많은 검이 걸려 있었다.
쿠구구구궁
그 많은 검이 손을 들면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각!
그리고 그 무기들을 속박해 온 사슬들이 부서졌다. 완전히 끊어진 검 하나가 지면을 향해 낙하했다.
아니, 그 검은 자석에 이끌리듯 유선의 팔을 파고들었다.
창이 끊어져 내렸다. 그 창도 유선의 팔 속으로 들어왔다.
모든 무기가 홀린 듯 그 작은 손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 작은 손은 그 무기들을 환영했다.
그것으로 유선은 알았다. 그녀가 검을 강탈해간 것이 아니었다. 그 검이 그녀를 선택했다. 마치 본래 주인이었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검이 그 가녀린 팔 안으로 들어갔다. 검들의 악의가 느껴졌다. 작다고는 하지만, 그 수많은 악의가 모여들어 태산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언어로 끊임없이 조잘거리며 악의를 부추기는 것이 느껴졌다.
유선, 아니 여인은 강인했다. 어떤 의미로 그 악의는 그들의 목소리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여인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등을 돌리며 걸어갔다. 그다음 행선지는 어딘지 알았다. 그다음 행선지도, 그리고 그다음 여정도 어떻게 보낼지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을 향했다. 그곳은······.
“유선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