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48. 에고르트의 자식 (2)
본래 존재했던 세계의 무작위 장소에 발현되는 만큼, 갖가지 던전이 존재하고, 그중에는 사막 던전도 있었다. 던전이라고는 정말 칭하기 어렵게, 황량하기 짝이 없는 사막만 보여 주었다. 가끔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면서 일으키는 모래 먼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악의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면, 가장 수입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황량해 보이지만, 그 밑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먹잇감을 찾기 때문에 조금만 자극을 주면 쉽게 함정으로 유도했다. 그렇게 함정에 가둬진 몬스터들은 그 어떤 던전들보다 쉽게 처리했다.
그렇게 쉽게 일하기도 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막에 사는 것들은 모두 지성체가 없어 각성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환경만 극복한다면, 충분히 버틸 근무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불과 3분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공격대 한 무리가 사막의 커다란 바위틈, 그 아래에 숨은 채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기다란 장검을 든 사내가 무전기를 든 사내에게 물었다.
“어떻게. 지원은 언제 온대?”
“그러자 사내는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우선 연락만 했습니다. 각성체 발견으로 긴급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했으니, 이 이상은 게키들의 재량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평균 헌터들을 모두 살릴 골든타임은 5분으로 가장 일찍 오는 시간이 바로 5분이었다. 평균은 누군가가 희생하기 마련인 구조였다. 그렇기에 난입 대기자를 세우지만, 그 난입 대기자도 빠듯해 세우지 못하는 공격대도 있는 법이었다.
“시발, 하필이면 이런 곳에도 각성체가 있을 줄이야.”
하필이면 이럴 때라니······. 크롤러는 짧은 가시 같은 발톱에 기다란 목 모래를 개흙으로 삼아 파묻혀 사는 갯지렁이나 다름없어 그저 사막에서 바닥 속을 기어 다니는 저지능 몬스터일 뿐이었다. 그런 저지능인 몬스터에게 각성체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키야아아악!
각성한 크롤러가 포효했다. 그들은 그 날카로운 포효성에 숨을 죽였다. 원통형으로 난 주둥이 안에는 묵직한 이빨이 입안 속 사방에 박혔다. 이미 동족 크롤러를 잡아서 먹어 치운 상태였기에 이빨에는 곳곳에 그 희생양의 흔적이 남았다. 바위틈 밖을 빼꼼히 내밀다 본 사내가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아직 우리를 찾는 중이에요.”
“시발, 왜 이렇게 꼬이고 지랄인지 모르겠네.”
“변종 크롤러라니.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고!”
“희대의 발견은 했네.”
“그 희대의 발견에 우리는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말이야.”
모두 처참한 분위기였다. 이제는 무전도 끊겨 버렸다. 곳곳에 설치해 둔 중계기가 맛이 가 버렸고, 크롤러의 몸에 띤 미약한 화염과 특유의 오라가, 전자파가 길을 찾지 못했다.
“한 번 더 해 볼까요?”
쌍검을 든 남자가 제안했다. 그러자 옆에서 상처 난 배를 짓누르던 사내가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크롤러의 공격을 막고 버티며 약점이 노출되기까지 버텼던 탱커였고, 각성한 크롤러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남자였다. 그 피해는 방패가 가장 컸다.
“시발, 한 번 더 할 거면, 나 없이 너희끼리 해라.”
종잇장처럼 찢긴 방패를 들어 보이더니 바닥에 내팽개쳤다. 어차피 이런 물건으로 방어는커녕, 이 방패를 믿음으로써 오히려 더 죽을 수 있었다. 그의 피해가 가장 큰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탱커들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모두 내구도가 너덜너덜해진 갑옷을 입은 채로 겨우 버텼다.
앞에서 공격을 대신 맞을 탱커는 없고, 딜러들은 탈진 상태이며, 급속 치유 포션은 모두 소진. 희생 없이 제대로 싸울 사람은 없었다. 믿을 것은 오로지 난입하는 사람뿐이었다.
-키야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온몸이 돌덩이처럼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껍질로 둘린 모래 갯지렁이가 날카롭게 포효하더니 모랫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탐색이 끝났음을 알아차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도주했다.
“뛰어!”
“이런 십······.”
부상한 몸을 이끌고 죽기 살기로 바위틈을 벗어 나왔다.
쿵!
그들의 뒤편에서 뭔가를 들이박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줄에 선 헌터가 나오자마자, 아슬아슬하게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그대로 있었더라면 모래와 흙더미에 꼼짝도 못 한 채로 깔려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들이박는 소리가 크롤러의 것임을 알고 피식 웃었다.
“병신, 머리를 바위에 박은 것 같네.”
“시간 좀 번 것 같은데! 무사히 다시 출구까지 가겠어!”
아픈 몸을 이끌고 희망의 빛줄기를 잡고 몸을 이끌었다. 적어도 난입하러 오는 사람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리라 믿었다.
하지만 크롤러의 속도는 그들의 두 다리로 도주할 생명체가 아니었다.
투쿠우웅!
태양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니 태양을 가릴 만큼 커다란 뭔가가 모래 더미 속에서 뚫고 올라왔다. 크롤러의 길쭉한 몸이었다..
“실화냐, 이거?”
“허, 시발······.”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튀어나온 크롤러의 주둥이가 그들을 바라보며 한 번 더 포효했다.
-키야아아악!
그 소리가 모두의 종말을 알렸다. 그렇기에 그 공포에 순간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크롤러의 밥이 되어 이 아무도 없는 모래사막을 형체 없이 헤매나 두려워했다.
쾅!
주둥이를 벌리고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크롤러의 옆구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키에에엑!
그의 갑옷 같은 껍질이 부서지고, 돌진하던 몸부림도 결국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옆으로 구르고 말았다.
“어, 어라?”
모두 눈을 감은 채로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려 할 때, 기적처럼 나타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모두가 그 정체를 알아보았다.
“고, 고독한 늑대다!”
“고독한 늑대가 우리를 구하러 왔어!”
세네타는 늘 그렇듯이 말을 아꼈다. 모래사막의 특성상 기관지에 데미지를 입을 이물질들을 방지하려고 자신의 입을 철저하게 보호한 상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거로는 가릴 수 없는 특유의 머리색, 그리고 광이 나지 않는 검이 세네타임을 알려 주었다.
세네타의 돌격을 그대로 맞은 크롤러의 몸이 구르며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키에······. 키야아아악!
크롤러의 어그로가 느닷없이 맞은 맹돌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완전히 세네타를 향했다. 세네타는 그런 크롤러를 보며 자신의 검 끝을 모래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경계를 푸는 것이 아니었다. 공격하려는 자세 중 하나였다.
소렌의 기적을 사용해 뽑은 검은 검! 그 크기는 유선이 쓰는 장검처럼 밸런스가 잡힌 형태였다. 하지만 그 겉모습이 끝이 아니었다. 소렌의 기적이었기에, 그만한 힘을 내재했다.
-투쾅!
그녀가 모래 더미 속에서 검을 끌어올려 커다란 궤적을 만들자, 검은 검기가 발산되어 크롤러를 향해 날아갔다. 공간을 찢듯이 날아가는 검기는 크롤러를 향해 매섭게 덮쳤다.
콰드득!
그 어떤 공격도, 마법도 먹히지 않던 단단한 돌 껍데기가 갈라졌다. 완전히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지만, 그 갈라진 폼이 조금 더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워졌다.
-키야아아아악!
크롤러가 더는 당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땅을 파고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땅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진동. 그 진동은 희미하기 짝이 없어 보통 헌터들이라면 마법을 쓰지 않고는 탐색하기가 어려웠다.
투쿠우웅!
세네타가 밟은 바닥이 들리며 크롤러의 무지막지한 주둥이가 모습을 보였다. 터무니없는 기습은 상대를 재빠르게 삼켜 이빨로 모든 것을 깨부숴 버렸다.
물론 세네타에겐 아니었다. 그녀는 튀어 오름과 동시에 크롤러의 주둥이를 밟고 도약했다. 그리고 자신이 쥔 검을 돌려 잡아 바닥을 향해 비스듬히 세웠다. 낙하하면서 솟아오른 몸을 베어 버리도록 말이다.
파앙!
그녀가 허공을 향해 발길질하자,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섬광같이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콰드드드드득!
검기로 불안정해진 껍질들이 무참하게 부서지며, 크롤러의 피부 속에 검이 박혔다. 그리고 솟아오른 그대로 일직선으로 깔끔하게 갈라 버렸다.
-키아······ 키아······.
곧 죽을 듯이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는 크롤러.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폼이 금방이라도 공격을 가할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세네타는 몸을 돌렸다. 그 상태를 보고는 더는 그 크롤러에게 가망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거대한 크롤러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로 쓰러졌다.
“······.”
“······.”
홀로 만들어진 독무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한 크롤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쉽게 상대해 냈다.
‘이것이 국가 재앙급을 상대한 클래스.’
‘대, 대단하다.’
목숨이 위태한 상황을 넘기자, 모두 안도의 한숨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 멋지다. 그치?”
“응! 막 쾅쾅거려서 멋있어!”
“어머나!”
그때, 팝콘이라도 뜯는 듯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헌터들은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저, 정유선 헌터님!”
유선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응? ······아, 죄송합니다. 잠깐 저도 구경한다고 넋을 놓았네요.”
그는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자, 상황도 마무리됐고. 이제 집으로 돌아갑시다.”
유선은 구원자처럼 다가와 그들을 출구로 이끌었다.
***
“평소대로 난입했고, 각성한 크롤러는 세네타의 손으로 직접 처리했어. 코어도 적출했고.”
전화를 받은 회사 직원이 그의 보고를 듣고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난입 비용은 그쪽 회사에 청구하겠습니다.
“응, 고생해 줘.”
유선은 보고를 마친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죽은 크롤러 앞에 서서 등껍질 위에 올라간 엘레노어를 보았다. 마디마다 폴짝폴짝 건너뛰며 혼자 잘 놀았다.
“이제 끝났나요?”
옆에 선 세네타가 유선을 보며 물었다.
“응, 무사하게 모두 복귀시켰어. 다 네 덕이야.”
“아뇨,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세네타는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유선은 슬슬 복귀해야겠다는 생각에 뛰어노는 엘레노어를 보며 말했다.
“가자.”
“벌써 가?”
“응, 소풍이 너무 빨리 끝나서 심심하지?”
“부으······.”
엘레노어는 볼을 부풀리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유선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여긴 사람도 없고, 재미없으니까 이제 가자.”
“사람?”
“응, 사람.”
유선은 아무 생각 없이 그녀의 말을 반복하며 들어 안으려 했다. 그러자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람 있는데?”
“응? 여기에 있긴 하지. 나랑, 세네타.”
“아냐. 저 쪼옥에 있어.”
엘레노어는 사막 한 곳을 가리켰다.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을 자리였다.
‘설마.’
호문쿨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인간 행세를 하며 먹잇감을 찾는 것이 아닐까? 유선은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엘레노어, 혹시 몇 명인지 알아?”
“한 명뿐이야.”
“확실해?”
“응!”
10명이 넘어가 버리면 조금 고민했겠지만, 한 명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유선은 품에 안은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엘레노어, 날개 펼쳐. 그곳으로 날아가자.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응!”
펄럭!
엘레노어의 몸을 잡고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네타, 너도 같이 갈래?”
“충분히 따라갈 것 같으니······ 괜찮아요.”
엘레노어가 비행하는 속도가 나름대로 빠르지만, 그래도 세네타의 속도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유선은 더는 묻지 않았다. 유선은 엘레노어가 말한 그 장소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풍경들. 그리고 보이지 않던 곳에 홀로 가지가 풍성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엘레노어는 그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앞에 멈춰 섰다. 유선은 자신의 눈으로도 그 인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녀가 말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그늘진 나무에 기대어 고개를 떨어뜨린 채였다. 마치 오랜 세월 어딘가에 묶였다가 탈출한 것처럼 쇠사슬이 채워진 목걸이와 누더기.
유선이 놀란 것은 그런 자잘한 부분들이 아니었다. 그가 놀란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몬스터들에게만 보이는 떠오르는 ‘물’이란 단어였고, 두 번째로는 머리가 검은색이란 것을 빼면 그 여인은 세네타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