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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에고르트의 자식 (1) (9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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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에고르트의 자식 (1)

“실패.”

빛이 들지 않는 음산한 동굴 속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팡이를 짚은 채로 자신의 앞에 있는 돌 탁자 위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흉측한 괴수가 있었다. 동물들의 근육, 뼈, 피, 모든 것을 정밀하게 짜깁기했지만, 그 어색함은 그 기술로도 결코 감출 수가 없었다.

“······.”

노인의 이름은 에고르트. 악마들에게서 장인으로 통하며, 그는 살아 있는 생명을 개조하는 데 가장 열중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지닌 두 팔로는 도저히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알고, 수많은 인간과 그 유사한 동물들을 죽여 그 팔을 뜯었다. 그리고 자신의 등에 심어 놓고 개조했다. 그 결과로 그의 등에 달린 수십 개, 아니 수백 개 작은 팔들이 생겨나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하나 속도가 빨라지면 뭐 하겠는가!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걸작은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예술가의 고독처럼 그 상황에 분노했다. 메스를 든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난도질했다.

찌직!

콰직!

수십 개 조각으로 해체했다. 이어 붙인 것을 다시 다 떼어 버리며, 해부하듯 장기도 부위별로 정밀하게 해체해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엎어 버렸다. 고뇌했다.

“좀 더······.”

좀 더 완벽한 작품! 절대적인 아름다움!

그가 바라는 이상에 도달한 작품을 바랐다. 하지만 수백 년 세월을 거친 악마도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힘들었다.

아니, 실제로 만들어 냈다.

딱 한 번.

그리고 그 한 번은······.

“주인님.”

“······.”

누군가가 엎드린 에고르트를 보며 말했다. 사내는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표정 없는 얼굴, 대충 걸친 옷, 그리고 직접 하사해 준 무기······. 자신의 노예인 호문쿨루스였다.

“무슨······ 일이냐?”

무릎을 꿇은 인형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신 물건은 찾지 못했습니다.”

“······.”

에고르트는 어디까지나 그럴 거로 믿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자 그 찾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그런데 왜······ 이것······밖에 오지······ 않았지?”

자그마치 88명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20명 정도뿐이었다. 그러자 보고하던 인형이 입을 열었다.

“······그것을 찾으려던 중, 정령왕과 수상한 아이를 거느린 남자가 있어, 전력의 7할에 손실이 일어났습니다.”

“정령왕?”

“네, 정령왕과 수상한 아이가 우리를······.”

푹! 찌직!

그 보고는 더는 잇지 못했다. 노인의 움직임과 다르게 그 손은 빠르고 정밀했다. 인간의 몸에 있는 모든 급소 부분을 메스로 관통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니까······ 네놈들은······.”

보고하려던 인형의 말을 끊고 에고르트가 말을 가로챘다.

“쓸데없는······ 교전을 했단······ 말이구나.”

“······.”

“무능한······ 놈.”

그의 등에 있던 수많은 손. 그것들이 든 수술 도구로 온몸을 구멍 내 버렸다. 그러자 꿈틀거리던 인형은 곧 제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바람이 빠져나가며 그의 몸에 꽂힌 구슬이 바닥을 굴렀다.

에고르트는 뒤에서 무릎을 꿇는 자신의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라면 죽을 수도 있는 아주 충직한 하수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에고르트를 위해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가 되었다.

그런 에고르트는 손가락을 세 개 펼치며 그들에게 짧게 말했다.

“3명.”

그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렇기에 각자가 쥔 검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겨누었다. 순식간에 절도 있는 분위기는 난투장이 되었다. 편도 없이, 그 누구 가릴 것도 없이, 검을 꽂고, 꽂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3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였다.

가죽과 찢는 소리, 터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그리고 몇 분 채 되지 않아, 에고르트는 실눈을 뜨며 그들에게 다시 명령했다.

“그만.”

최종으로 세 명이 남았다. 서로에게 진한 살의를 보내며 싸우던 인형들은 다시 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동족들의 가죽을 밟은 채로 서 있었다. 에고르트는 자신의 발치 앞에 굴러온 코어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다시······ 할 일이 생겨 버렸군.”

완벽한 생명체는 또 뒤로해야만 했다. 다시 한 번 더 인형, 호문쿨루스를 만들 차례였다. 더욱 많은 호문쿨루스를 만들어야 했다. 더욱 강력한 녀석들. 미적인 것은 이제 더는 필요 없었다. 그들을 없애려고 자신의 동족마저 기꺼이 이용해 강력한 병사들을 만들어야 했다.

“정령왕과 수상한 아이······ 그리고 남자라······.”

렛놈이 그들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히 게이트를 만들어 코드 헌터 상황을 만들지만 않는다면,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으리란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었다. 경계 대상은 그들뿐만 아니라 용사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인형의 존재를 알았으니 자신의 정체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 알려질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인형들을 보내 자신의 요새를 지켜야만 할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러니······ 빨리 찾아야 해.”

자신의 병사를 보낸 본래 목적.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전에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

헌터들의 용어 중에는 침략자라고 쓰이는 말이 있었다. 사냥 중이던 게이트 안으로 난입해 사냥감을 뺏는 불한당들을 말하며, 사실상 교전이 불가피하게 일어나 헌터들을 죽이는 헌터 킬러라고도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개발 도상국 측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서도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빈번하게 출현했다. 헌터 킬러에 관한 정보를 알거나, 잡아 오면 포상금을 주겠다는 나라에 정책을 맡겼지만, 그것도 썩 좋은 대책이 되지 못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던전을 도는 편이 더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방법도 까다롭고, 잡는 법도, 출몰하는 시기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침략자들을 사냥이 아닌 제압을 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죽여서 데려간다 해도, 지금 나오는 침략자들은 전부 호문쿨루스들이었다. 그들이 죽으면 어차피 가죽만 남긴 채로 사라질 것이고, 증거라면 코어와 검 그리고 가죽만이 남으니 마땅한 증거가 될 수가 없어 여러 곳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는 중이었다.

“나 때문인가?”

대한민국 쪽에서도 부쩍 많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유선이 습격을 당하기 이전에도 상승 곡선을 그리던 중이었다. 그 상승 곡선은 불가피하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는 말은 유선도 단순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든지 그 침략자들에게 당할 상황이었고, 그것이 하필이면 세계수의 씨앗을 심으러 갔을 때 일어났을 뿐이다.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 그리고 그에 대적하는 수십 명 호문쿨루스. 유선은 그것을 다시 떠올렸다.

‘보통 다른 파티였으면······.’

전멸했을 것이다. C급 공략 공격대가 호문쿨루스 1명을 겨우 죽였고, B급 공략 공격대는 4명에게 전멸당할 뻔한 거로 알려졌다.

유선은 만약 자신의 랭크에 맞춰 A급 공략 공격대를 꾸려서 갔더라면 그 수십 병사들을 상대할지 의문이었다. 상대가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였기에 범접할 수 없는 격차로 무척이나 쉽게 끝났다.

다음 격전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을 찾아온다면, 그들을 우연히 만났던 것과 다르게 분명히 철저히 준비한 상태로 올 게 분명했다.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에게 대항하면서 유선 자신에게도 데미지를 줄 커다란 뭔가를.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

“다녀왔어요, 오빠.”

유선은 문 너머로 들려오는 하이 톤 목소리에 깜짝 놀라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세네타였다. 위험 요소가 있는 던전을 홀로 클리어하고 온 것이 틀림없는데, 레더 아머 차림이 아닌 캐주얼 복장이었다.

“어, 그래. 고생했어.”

“무슨 생각 하셨는데, 방해되었나요?”

“아니야. 내가 너한테 이러라고 부탁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유선은 미소 지어 보였다. 세네타는 유선의 방으로 들어오며 그가 부탁했던 것을 말해 주었다.

“어제 오빠가 말한 그 침략자라는 것이 저와도 조우했어요.”

유선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도? 몇 명?”

“8명이었을 거예요. 일단 제가 처리한 게 4명뿐이니.”

“8명이라······. 쉬웠어?”

세네타는 유선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냥 허점을 찾아서 찌르니까 바로 터져 죽더라고요. 별달리 어려운 건 없었어요.”

“그렇구나.”

다른 사람들이 쩔쩔매는 S급 던전도 홀로 도는 몸이니, 8명 정도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그······ 네.”

그녀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유선은 그녀의 머뭇거림에 이상하다 싶어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상처 났어?”

8명을 손쉽게 처리했다지만, 천하의 세네타도 그 공격을 피할 수 없는 맹렬한 속도라도 가졌는지 궁금했다. 유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하지만 세네타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뇨. 다치진 않았어요. 그냥······.”

“그냥, 뭐?”

“이런 질문은 잘 받아 본 적이 없어서······.”

“······.”

유선은 설레발을 치다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절벽 끝에 세워서 키워졌다시피 했으니, 아직 유선의 말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유선은 괜스레 물어본 게 무안해졌다.

“그래,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유선은 그렇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넘겨 버렸다. 불편한 분위기를 어떻게 깨야 할까 생각하던 찰나.

에에에엥! 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긴급 문자가 날아오면 울리는 신호였다. 유선은 서둘러 문자를 확인했다.

-현재 자이언트 크롤러 각성! 난입 바람!

호문쿨루스와 관련된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중대한 문제인 건 확실했다.

“이런······.”

유선은 얼른 겉옷을 입고, 엘레노어를 찾으러 가려 했다.

“각성 몬스터인가요?”

“응, 곤란한 모양이야. 빨리 가서 도와줘야 할 것 같네.”

그러자 세네타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저도 따라갈게요.”

그녀의 말에 유선은 발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열의에 찬 모습에 불안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격전을 치르고 왔는데,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데, 피곤하다고 미루는 건 용사의 덕목이 아니에요.”

그녀의 신념은 확고한 것이 용사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엘레노어와 함께 간다면 분명히 자이언트 크롤러도 ‘빤치’ 한 방에 가 버릴 게 분명했다. 세네타가 굳이 와서 할 이유는 없었다.

‘세네타한테 맡겨 볼까?’

열의를 보이는 만큼, 분명히 싸우고 싶어 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네타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으니······.’

렛놈 때도 그녀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유선은 이건 좋은 기회였고, 놓칠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래, 따라와.”

“네, 오빠.”

유선은 엘레노어를 위한 소풍이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구경을 해서 만족하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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