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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호문쿨루스 (2) (9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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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호문쿨루스 (2)

“이건······. 포어셰크의 작품이로군.”

던전을 완전히 공략하고, 벗어난 유선은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루데릭에게 그 단검을 보여 주더니, 해 준 답이었다. 유선도 그 이름을 언급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자신에게 교감의 반지를 만들어 준 장인이니 말이다. 유선도 무기를 만드는 사람을 그라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 루데릭도 포어셰크를 언급할 줄은 몰랐다.

“포어셰크라면 그 남자, 아니 그 악마지?”

“그렇다. 주인의 반지를 만들어 준 녀석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쾌하게 굴던 사람이 그런 병사들을 수색을 벌이다가, 자신을 타깃으로 삼았다? 포어셰크의 평소 행실과는 달랐다. 유선은 루데릭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면 포어셰크가 나를 죽이려 했을까?”

그러자 루데릭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중립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한 놈이야. 단순한 유흥 거리에 더군다나 주인을 죽일 만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데다, 인형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

루데릭이 확신한다면 그런 게 확실했다. 유선도 포어셰크가 그럴 거라고 믿진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포어셰크의 무기가 그 인형들을 손에 쥐였을까? 그 의문은 풀 수가 없었다.

“인형을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형은 어디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지 짐작은 하겠다만······. 우선은 포어셰크 녀석의 무기가 왜 그 인형에게 쥐였는지가 문제구나.”

루데릭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휴대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그리고 전화번호가 찍혔는지 그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를 것 같군. 아직 한국에 있을 테니까 내가 물어보마.”

몇 번의 통화 연결 음 끝에 멈추고, 루데릭이 말을 걸었다.

“나다. 네놈한테 할 이야기가 있는데······.”

루데릭은 그 단검을 힐끗 눈짓하며 유선이 보았던 것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3분 정도 설명하자, 그에 대한 답신이 들려왔는지, 유선을 슬쩍 보더니 그에게 말했다.

“주인을 바꿔 달라는군.”

“그래.”

대충 이런 흐름일 것 같다고 생각은 했다. 유선은 그 전화를 넘겨받았다.

“네, 정유선입니다.”

-어, 형씨. 혹시 그 무기를 잡았어?

“네?”

-그 무기를 잡았냐고?

뜬금없이 물어보는 말에 유선은 일단 그 대답에 대꾸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짝! 그의 대답을 들은 포어셰크가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는 끌끌 웃으면서 말했다.

-오우, 형씨. 정말 간도 크군, 그래.

“무슨 말입니까?”

-우선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이건 중요한 사항이지만 형씨에 대해서 갑자기 더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

유선은 너무 급하게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 천천히 그의 말에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말은 충분히 함정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조금 신용이 가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이봐, 이봐. 내 공방 안까지 들여보내 준 사이인데, 지금 와서 의심해서 뭐 해? 그리고 그 검은 내 게 확실하지만, 네가 만났다는 그 인형들과 나는 관련 없어. 아니, 관련이 있긴 해도 그 악의와는 관련이 없어. 내 맹세하지.

악마들의 맹세. 루데릭이 말하길, 악마들이 말한 맹세는 절대로 깰 수가 없었다.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도 포어셰크가 분명히 이 충돌에 관해서 설명할 거리가 있음은 분명했다. 유선은 마땅치 않지만, 그가 제안한 만남에 수락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는지 말만 해 주십시오.”

-좋아, 형씨 회사 근처 카페로 잡아 놓을게. 그쪽이 더 편할 테니까.

포어셰크는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유선은 루데릭에게 전화기를 돌려주며 물었다.

“이번에도 애들 재울 생각이야?”

교감의 반지를 만들 당시에 했던 것을 할 생각인지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루데릭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잠깐 다녀오는 것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그 녀석이 믿을 만한 놈이지만, 그래도 그 꼬맹이를 보이는 건 마음에 걸린다.”

“그러면 혼자 가면 되겠······.”

“본인이 따라가마.”

말하려던 찰나, 루데릭이 재빠르게 끊어 버렸다. 유선이 그의 평소답지 않은 발 빠른 행동에 살짝 놀라 한 번 더 물었다.

“네가?”

“제아무리 안심되더라도 한 명 정도는 같이 있어 주는 편이 안심되지 않겠느냐?”

“뭐 그렇긴 한데······.”

“그리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중요한 정보를 흘리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서 그렇다.”

“······.”

유선은 입술을 살짝 깨물어,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참았다.

“루데릭.”

“왜 그러느냐?”

“너 그거 알아?”

“······뭘?”

“너 당황하면 되게 말 길어진다!”

“뭣······.”

길게 뭔가 주절거리는 자신의 입을 만지더니, 루데릭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마, 말이 길어진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본인은 원래부터 이렇게 말했고, 그저 주인에게 조언해 주려면 이렇게 말이 어쩔 수 없이 많으······.”

“······.”

“이건 그러니까······.”

“푸······크흠.”

“으, 됐다!”

스스로 말이 길어짐을 의식하며 화를 버럭 내고 그대로 끊어 버렸다. 삐쳐 버린 그 모습이 귀여워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유선은 웃음을 거두고 그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장난이야. 삐쳐도 같이 갈 거지?”

“본인은 그렇게 좀생이가 아니다. 주인처럼 짓궂지도 않고.”

유선이 건네는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못 하고 입안에서 꽁꽁 싸매 감춰 버린 다음 감정은 감정이고, 일은 일이라는 듯이 생각할 게 분명했다.

***

유선의 회사 근처 카페에 말대로 포어셰크가 들어왔다.

“요, 형씨. 다시 만나서 반가워.”

“저도 반갑습니다.”

예의상으로 건네는 인사, 포어셰크는 선글라스를 끼고, 여전히 힙합에 찌든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여행객의 기쁨을 누리며 유선에게 말해 주었다.

“이태원이란 곳에서 아주 잘 먹히더군. 버킹 레이시즘이 많다기에, 흑인 놈들이라고 뭐라 할 줄 알고 조금 조마조마했는데, 생각보다 좋아하더라고! 같이 한 번 사진도 찍고, 함께 힙합의 세계에 빠져 보기도 하고 말이야. 특히 여자들이 말이지, 내게 아주 관심이 많은 게 아래쪽에 아주 그냥······.”

“그 얘기는 나중에 하죠.”

“그래. 네놈의 추잡한 그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비위가 대단하지 않다.”

장소가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음담패설을 주고받고 싶진 않았다. 잔뜩 들뜬 포어셰크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알았다고. 이 유머 감각도 없는 놈들. 그래서 그 검은 가져왔지?”

“네, 여기 있습니다.”

유선은 혹여나 오해받을까 봐, 검에다 수건을 싸 놓았다. 그 검을 꺼내어 포어셰크에게 보여 주었다.

“Shit.”

웃음기와 장난기를 장착한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지며, 그 검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예상은 했지만 내가 마계 쪽에 있을 때, 한창 만들었던 습작품 중 하나였구먼.”

포어셰크는 그 물건이 뭔지 기억한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의 턱을 만지면서 심각하게 유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씨, 이 검, 한 번 더 쥐어 볼래?”

“네, 뭐······.”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에 다시 한 번 더 한 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살피더니, 흐음······ 하며 묘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내뱉은 질문은 다른 문제였다.

“이것들 말고도 다른 것들 많았지? 모양도 제각각이고 특징도 제각각인 것들 말이야.”

“네, 아시는군요.”

“다 기억해. 내가 만들었던 것들이니까. 모름지기 장인이라면 자신의 검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지.”

공방의 신이라는 것이 괜히 붙여진 별명이 아니라는 듯, 자랑하는 기억력.

“하지만 그것들이 그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상상도 못 했구먼······. 끝물이 다 된다고는 알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까지 할 줄이야······.”

찜찜하다는 듯이 탄식하며 등받이에 기대었다. 그의 눈동자가 한 번 더 유선의 손을 향하더니 그의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그걸 놓는 게 어떤가?”

“쥐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물론.”

포어셰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검을 아주 제대로 잡는 게 내가 보기에 자살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처럼 보여서 말이지.”

“······.”

유선은 포어셰크의 농담 같지 않은 말에 꺼림칙한 느낌에 검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포어셰크는 자신이 오해를 남길 말이었음을 알고 끌끌 웃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기분 나빠하진 마. 농담이니까. 넌 이미 한 번 잡아 봤다는 걸 알기에 시켜 봤으니까 그럴 일은 없어. 그리고 모든 검은 자신을 죽일 수 있지. 안 그래?”

“그렇지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루데릭은 포어셰크의 농담 따먹기가 질린다는 듯이 정색하며 말했다.

“이제 이 검이 뭔지 설명 좀 해 주지? 네가 만든 걸 알았다고 모두 끝나지는 않잖아?”

“알았어. 성격도 급하셔.”

포어셰크는 그가 올려 둔 검을 자신이 쥐며 말했다.

“장인이 무기를 만들 때는 절대로 감정을 가져선 안 된다는 걸 알아?”

그의 물음에 유선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보이는 것처럼 아주 감정이 풍부한 인간 같은 악마지. 안 그런가?”

“너같이 인간 같은 놈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야.”

루데릭이 비아냥거리듯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튼, 그 감정 중에서 가장 독은 악의야. 누군가를 헤치고 싶어서 안달 난 그 생각들이 단순한 목적을 위한 무기가 아닌, 살육을 위한 무기로 탈바꿈했으니까. 그때 나는 그런 걸 몰랐지. 그저 누군가를 죽이는 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악의가 정점에 섰을 때, 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지. 검으로 인간들을 파멸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동족마저 파멸시키고 말았지. 그 길로 나는 역적으로 몰렸고, 죽을 위기에 처할 뻔했고 말이야.”

포어셰크가 히죽 웃으며 루데릭에게 눈길을 던졌다. 루데릭은 그런 포어셰크를 째려보며 응수했다.

“결국엔 도망쳐서 어떻게든 목숨은 부지했어. 그리고 그 이후로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됨을 알고, 그 잡념을 떨치려고 모든 악의를 검으로 쏟아부었어. 망치질할 때마다, 내 검은 악의가 깃들도록, 모두를 저주하면서 파멸할 것을 여기며 검들을 미친 듯이 찍어 냈지.”

망치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가 가볍게 손목을 흔들지만, 유선은 그가 망치질하면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악의에서 자유로워졌어.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등을 돌려 바라본 내 무기들은 1만 2천하고도 3자루가 산을 이루었고 말이야.”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 무기들을 보면 자신의 고개가 얼마나 쳐들어질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 많은 검을 어떻게 했습니까?”

유선은 그 검들의 행방이 궁금했다. 천장에 매달렸던 것은 족히 수천 자루가 넘었지만, 1만 2천 자루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에 맞는 처분을 했지. 악의의 정점에 선 무지막지한 검들은 더는 사용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용암로에 그대로 버렸고, 그나마 온순한 수천 자루는 내 공방에 두기로 했지. 천장 장식 겸으로 말이야. 그리고 매달리지 못한 것들은 모조리 인간계에 매장해 버렸어. 아주 깊숙한 곳에 말이야.”

악의의 크기만큼 처분하는 방법들이 모두 달랐다. 유선은 매장해 버린 것들이 그 인형들이 쥐었던 검이었음을 눈치챘다.

“그것들은 왜 안 없애 버렸습니까?”

중간 크기라 해도 악의가 있으니 용암로에 던져 버리는 것이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포어셰크는 끌끌하며 말했다.

“그것들은 그 누구에게도 사용되지 못할 졸작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그 어떤 주인도 찾을 수 없는 엄청난 마스터 피스이기도 하단 뜻이야.”

졸작이자 동시에 명작. 그의 말은 모순되었다. 하지만 유선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좀 전에 말했던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검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약이자 독이라는 그 의미가 분명했다.

“그런 졸작들을 이용해서 인형들에게 악의를 심어 준다······ 에고르트, 정말 재밌는 생각을 했어.”

포어셰크는 큭큭 웃으면서 동시에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물건이지만 어찌 됐든 그 검은 자신이 만들어 낸 물건, 자신의 물건을 함부로 썼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루데릭은 그가 언급한 이름에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 그 기분 나쁜 놈인가? 긴가민가했는데······.”

“등 굽은 노익장 말고 누가 있겠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뉴 페이스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뉴 페이스 같은 건 없어. 마계가 정체된 이후로는 더는 뭐라 할 것 없이 좋은 놈들은 없거든.”

포어셰크는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둘만의 이야기가 진행될 때, 유선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해 머리 위에 물음표만 띄울 뿐이었다.

“에고르트가 누굽니까?”

“아, 형씨는 모르겠구나. 한때 내 스승이었던 자였어.”

“스승?”

유선은 공방의 신이라는 악마에게 스승이 있다는 말에 놀랐다.

“나도 견습 시절이 있었어. 하지만 그것도 말만 스승이지, 그 사람과 내가 만드는 건 천지 차이야. 내가 무기를 만들기 좋아한다면, 그 녀석은 생명체를 개조하고 만드는 걸 좋아해. 거기다가 마왕을 추종하는 세력이었거든. 나는 자유방임 사상이고 말이야. 차이가 커서 밑에서 가르침 받을 때 이후로는 남남이나 다름없어.”

“그렇군요.”

에고르트 같은 악마가 한 명이 아니라는 말에 걱정되었다.

“그렇다면 그 인형들이 대체 왜 주인을 덮쳤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어. 수십 년 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나왔다면 다시 활동할 일이 생겼다는 거겠지.”

포어셰크도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

“우연히 걸렸을 수도 있어.”

우연히. 그러고 보면 그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어디론가 걸었다. 유선을 찾는다고 생각하기엔 한 가지 목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선은 그저 얻어걸린 적일 뿐이었다.

그러면 그 주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포어셰크나 루데릭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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