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47. 호문쿨루스 (1)
-공격.
-공격.
한가운데로 뛰어든 오르넵토스. 그 도약 범위 안에 있던 검사들은 재빠르게 몸을 굴러 오르넵토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오르넵토스가 속도에서 한 수 위였기에, 오르넵토스는 그들 중 한 명을 제압했다.
그는 발톱으로 다리를 찍어 그대로 무게 균형을 무너트렸다.
검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오로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 싸우려는 몸짓을 보였다. 기다란 검으로 머리를 내리찍으려 들었고, 오르넵토스는 늑대의 머리로 비스듬하게 그 공격을 흘려보냈고, 틈이 생긴 찰나를 이용해 재빠르게 반격에 들어갔다. 오르넵토스가 검을 든 병사의 목덜미를 재빠르게 물어뜯었다.
우직!
거칠게 흔들어 목을 뜯어 버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목을 이루던 살점이 떨어져 나왔지만, 피가 솟구치지 않고 그 목에는 붉은 액체도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푸쉬이이익······.
바람이 빠져나가는 소리만 나며 가죽과 검만 남긴 채로 형태가 사라졌다. 마치 풍선 인형을 터트린 것 같은 광경이었다.
‘역시 그냥 인간을 닮은 몬스터일 뿐이었구나.’
몬스터라고 하기도 애매하게 그저 더미 같은 놈들이었을 뿐이었다. 유선은 만일에 하나, 악마에게 홀려 버린 인간이 아닐까 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어서 다행으로 생각했다.
늑대 오르넵토스는 곧바로 다음 타깃을 찾아 달려들었다. 그녀가 도약하면 한 명은 무조건 잡혔고, 운이 좋다면 세 명을 동시에 절명시켜 버릴 정도로 강렬한 일격을 보여 주었다. 파죽지세로 달려드는 그녀의 거침없는 공격은 제아무리 재빠른 검사라 해도 그 공격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인형들은 오르넵토스와 의미 없는 혈투를 벌이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약아빠지게 머리를 쓸 줄 아는 것들이었다. 로봇처럼 공격과 회피를 생각하던 인형들이 유선을 향해 슬쩍 보았다. 그리고 유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다시 눈을 돌렸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짓이었다. 다른 헌터들이라면 쉽게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마음을 읽는 유선은 그들의 행동을 엿보았다.
-최우선 대상 발견.
타깃이 자신에게 잡혔다는 것인지 했다. 무리 중에 가장 약하고, 동시에 약점이 될 것을 파악했다. 오르넵토스와 싸우려고 진을 펼친 인형들의 행동에는 변화가 생겼다. 오르넵토스를 상대하려는 최소의 병력을 남기고 유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유선은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검사의 행동이 무의미함을 보여 주듯 엘레노어가 그 앞을 막아섰다.
“빤치!”
엘레노어의 작은 주먹이 인형의 배에 닿았다.
팡!
쾅이나 다른 몬스터들을 때릴 때와는 확실히 다르게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그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찢겨 나간 가죽이 흩날리고 검이 바닥을 굴렀다. 그 공격은 늑대 오르넵토스와 확연히 다르게 압도적이었다.
“유선 님한테 못 가!”
엘레노어는 든든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작전 변경.
만만하게 생각하고 돌격해 오던 인형들이 다시 물러났다. 하지만 최우선 대상이 유선이라는 건 변함없었다.
유선은 검을 뽑아 대비했다. 낌새가 자신을 덮쳐 오는 이가 분명히 있으리라 여겼다.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분명히 자신을 향해 노리려 할 것이다. 그는 오감을 분산시켜 적을 탐색했다. 또 다른 적이 어디 있는지 감지했다.
“이런!”
예상대로였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선은 몸을 비틀어 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후웅!
허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 끝에 뭔가가 재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속도로 보면 분명히 닿아야 정상이었다. 검날이 향한 것은 가느다란 목. 그리고 그 검이 목에 닿기 전, 그 짧은 찰나에 목을 꺾어 버렸다. 스쳐 지나간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기습을 가한 병사와 거리가 벌어졌고, 유선은 그 기습을 시도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유선은 정체를 확인하고 소름이 돋고 말았다.
자신의 머리를 노렸던 것은 짧은 단검. 그리고 그것을 쥔 것은 꼬마였다. 하지만 소름 돋고 말았던 것은 그 주인의 정체가 아니었다.
그 소년이 보이는 감정이 원인이었다. 얼굴은 웃지 않지만, 유선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는 기분 나쁠 정도로 비릿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공격’ 그 너머로 보이는 악의
소년은 다시 한 번 더 공격을 시도했다. 작은 체구로 눈에 보이지 않다시피 파고들어 오자 유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깜짝 놀란 채로만 있을 수 없기에, 유선은 그 공격을 회피하려 몸을 비틀었다. 교감의 반지를 착용하는 중이었기에, 그 공격을 읽어 가까스로 피해 내기는 가능했다. 공격이 엇나가자 소년은 능숙한 헌터처럼 바로 몸을 비틀어 다시 한 번 더 유선의 목을 향해 힘껏 그었다.
“읏!”
날 끝이 아슬아슬하게 목을 스쳐 지나가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유선은 그대로 두 번째 공격을 허용할 수 없어 검으로 소년을 내리쳤다. 소년은 자신의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유선은 그 일격에 온몸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꼬마가 이다음 일격은 분명히 엇나가지 않고 자신의 몸을 뚫을 것을 직감했다.
꼬마가 몸을 날려 단검을 양손으로 쥔 채로 돌격해 왔다.
검으로 막고 그대로 반격했다. 유선은 그 생각으로 검 면으로 돌려 파고들어 오려는 단검을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파창!
유선의 검이 부서져 버렸다. 마치 작은 돌멩이를 얇은 유리막에 던진 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단검이 그대로 유선의 가슴을 파고들어 오려 했다.
“이런!”
유선은 재빠르게 작전을 변경했다. 손잡이를 놓고 힘이 실린 손으로 그대로 아이의 팔을 잡았다. 검을 찔러 오는 걸 애써 힘으로 막아 보았다.
“크윽······.”
겨우 막는 게 고작이었다. 힘도 아이 쪽이 겨우 우세한 수준이었다. 움직이면서 제대로 보지 못한 기분 나쁜 웃음이 얼굴을 마주했다. 억지로 지어진 미소가 아닌 철저한 감정에 따른 미소였다. 죽인다는 기쁨! 그 감각에 미쳐 버릴 듯 기뻐했다.
“흐압!”
유선은 꺼림칙한 악의로 찬 꼬맹이한테 가만히 당할 생각이 없었다. 빠르게 다리를 이용해 소년의 복부를 발로 찼다. 한순간 무너진 균형을 이용해 소년의 손목을 꺾어 버려 검을 놓치게 했다.
우둑!
그리고 재빠르게 떨어지는 검을 다시 쥐고 소년의 목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머릿속으로 그려진 그림은 그러했다.
엘레노어가 중간에 난입해 재빠르게 진압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에잇!”
엘레노어가 유선의 위에 올라탄 소년을 들어 올리며 그대로 바닥에 꽂아 버렸다.
쿵!
몸이 말 그대로 꽂혀 버렸다. 개그 만화처럼 과장된 표현 기법같이 몸이 바닥을 뚫어 버렸다. 그에게 보이는 것이라곤 바동거리다가 축 늘어지는 하반신 부분뿐. 단단하기 짝이 없는 바닥이 젤리처럼 느껴지게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움찔거리더니 곧 가죽으로 변해 형상을 잃었다.
엘레노어가 손을 탁탁 털어 내면서 유선을 보고 물었다.
“괜찮아?”
“이 정도쯤은 혼자서 잡을 수 있었는데······.”
유선은 박진감 넘쳤던 긴장감이 딴 방향으로 새는 게 조금 아쉬웠다. 유선은 그 단검을 쥔 채로 일어나 다음에 올 적들에 대비하려 했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유선이 한 개에 낑낑거리는 동안 그 많던 수십 개 인형은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의 손에 단숨에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엘레노어는 순진한 얼굴로 제대로 못 들었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
“왜에?”
“아냐, 아무것도. 고마워.”
유선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아꼈다.
‘뭘 해도 얘네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네.’
유선은 허탈한 웃음을 내지었다. 터져 버린 가죽들과 검은색 검들이 어질러진 곳에서 오르넵토스가 짐승의 폼으로 그르렁거렸다. 유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시선에는 아직 인형 병사가 남았다.
그 병사들은 더는 적의를 뿜어 봐야 의미 없음을 깨달았는지, 몸을 돌려 유선의 파티에 관심을 끊고 도주했다. 오르넵토스도 그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르렁거림을 멈췄다.
“오르넵토스, 이제 그놈들은······.”
-컹!
“우왓!”
유선은 자신을 향해 짖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방심하다 그녀의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크르르······, 크크크. 그렇게 놀라고 그래, 계약자! 내가 너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여?
늑대의 모습을 하던 오르넵토스가 인간의 형상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유선의 반응을 보던 엘레노어도 그녀를 따라 까르르 웃었다. 유선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오르넵토스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너, 이 녀석.”
“아으으,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그믄 즈브등그······.”
오르넵토스에게 충분한 고통을 주고 놓아주었다. 그래도 유선이 깜짝 놀란 표정이 웃겼는지, 피식피식 웃는 건 멈추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졌지?”
“응, 더는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아무것도 없어!”
엘레노어도 거들며 주변이 완전히 정리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도대체 그것들은 뭐였을까?”
“인형으로 된 것들이라면, 예전에도 많이 봤던 것들이야. 악마들이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첩자 역할을 하려고 만들었던 것들로 알아. 다만 너무 멍청해서 심복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문제였지. 그나마 술집 같은 데서 사람들을 홀리는 정도만 했을걸?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하네. ‘호문쿨루스’였던가?”
“호문쿨루스라······.”
본뜻은 연금술사가 창조해 낸 인조인간으로 알았다. 아마 이것은 악마가 탄생해 놓은 새로운 생명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선은 너덜너덜한 가죽들을 뒤적거렸다. 엘레노어가 부숴 버린 것들과 다르게 오르넵토스는 거의 제 형태를 유지해, 자신이 생각하는 물건이 있을까 생각하는 마음에 뒤져 보았다.
“역시나.”
비교적 온전한 가죽 안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작은 코어였다. 소형 몬스터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그런 코어였다. 다만, 이것도 비정상적으로 힘이 들어 있음을 느꼈다.
오르넵토스가 말한 대로 악마들이 개입했다면 그 코어들이 있으리라 생각한 대로였다. 하지만 코어가 있다고만 알 뿐, 그가 품는 의문이 모두 풀리진 않았다. 그 죽인다는 기쁨에 사로잡힌 꺼림칙한 감정과 하나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것. 그리고······.
“무기······.”
그리고 손에 쥐어졌던 제각각의 무기들. 유선은 이상하게 그 풍선 같은 인형들보다는 검이 신경 쓰였다. 인형들이 보였던 악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꺼림칙했다. 마치 검이 악의를 품은 것처럼 느껴졌다. 유선은 무기가 지닌 악의를 짐작하며 생각했다.
“인형들이 지닌 무기······. 악마의 하수인이라······!”
그렇다면 이 무기도 악마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한 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루데릭. 그 덕분에 이 의문을 찝찝하게 안고 갈 필요가 없어졌다.